살아 있음의 역설,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 완벽한 기쁨.
승리한 투사, 적을 죽여서 흡족해진 우월한 원초적 야수는 발을 당당히 딛고…… 56p
머리 위에서는 북극광이 차갑게 빛나고 별들이 춤을 추다 얼어붙고 대지가 눈의 휘장 속에서 무감각하게 얼어 버릴 때 에스키모개들의 노래는 어쩌면 삶에 대한 유일한 도전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길게 끄는 울음소리와 반쯤 흐느끼는 듯한 구슬픈 소리는 생존의 고뇌를 표현한 삶의 애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래된 노래, 개 종족만큼이나 오래된 노랫소리로, 슬픈 노래만 있었던 때 묻지 않은 세상의 태곳적 노래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에 수많은 세대의 슬픔이 담겨 있어 그 비애에 벅의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그가 신음하며 흐느낄 때 그 속에는 오래된 삶의 고뇌, 야생의 조상들이 지녔던 고뇌가 있었고, 그들에게 공포와 신비를 던진 바로 그 추위와 어둠이 드리워 있었다. 벅이 그 소리에 그토록 끌린다는 것은 그가 문명의 상징인 불과 지붕의 세대를 거슬러 울음의 시대였던 거친 태초의 삶으로 완전히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했다. - P49
삶에는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어떤 정점을 나타내는 환희가 있다. 그런 것이 살아 있음의 역설이다. 그 환희는 살아있기에 찾아오지만 살아 있음을 완전히 망각할 때에야 찾아온다. 그 환희, 살아 있음의 망각은 감흥의 불꽃 속에서 자아를 잊는 예술가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싸움터에서 전쟁에 미쳐 자아를 잊고 생존을 거부하는 군인에게 찾아온다. 달빛 속에서 번개처럼 앞질러 가는 살아 있는 먹이를 잡기 위해 늑대의 오래된 울음소리를 내며 앞장서서 달려가는 벅에게도 바로 그 환희가 찾아왔다. 그는 시간의 자궁 속으로 되돌아가며 본성, 자신보다 더 깊은 본성의 일부, 그 심오함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를 냈다. 그는 순수하게 솟구치는 삶과 조수처럼 밀려드는 존재의 파도, 근육과 관절과 심줄 하나하나가 움직일 때 느껴지는 완벽한 기쁨에 압도당했다. 솟구치는 삶은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는데, 맹렬히 불타오르며 움직임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냈고 별 아래, 움직이지 않는 죽은 물질의 표면 위로 환호하면서 날았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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