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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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막이 내린다는 말이 들어가는걸 보니 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리즈의 마지막편이라고 한다. 많은 작품을 쓰는 히가시노 작가의 여러 시리즈 중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는 이름부터 기억하기 좋았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인 형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특히 기억에 남고 재미 있었던 시리즈였다. 그 시리즈의 최종회라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가가 형사는 현대의 경찰이지만 형사라는 직업이 내내 전해주는 여러가지 미덕을 잘 실천하는 형사다. 첨단 기기를 능숙하게 다룬다기 보다는 고전적으로 하나하나 찾아가는 방식. 좀 더디고 금방 어떤 단서를 찾는건 아니지만 수많은 경우의 수를 하나씩 하나씩 확실하게 제거함으로써 수사의 정당성과 함께 단단한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느리지만 진정성을 느낄 수 있고 그와 함께 범인을 추격하는 마음이 되어서 흥미롭게 책을 읽게 되었다.

 

이번 책에서는 가가 형사의 개인적인 사생활이 사건의 중심이 된다. 왠지 평범하지는 않은 가정사를 가진거 같았는데 역시나였다. 그의 어머니는 가가가 어릴때 남편과 아들을 놔두고 무작정 가출을 했던 것이었다. 옛추억이 있던 어느 곳에서 정착해서 수십년동안 살다가 혼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누구도 알지 못할꺼 같았던 그녀의 죽음은 알수 없는 경로로 가가에게 전해지고 사망 후 정리를 그녀의 외아들이 하게 된다.

 

어느날 사망 사건이 일어난다. 한 아파트에서 어떤 여자가 타살 의혹을 가지고 시신으로 발견되고 어느 오두막에서 남자가 불에 탄 채 발견이 된다.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건이었는데 둘 사이에 뭔가를 발견하게 되면서 연속된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겨우 겨우 신원이 밝혀지지만 대체 어떤 곡절인지 알수가 없는 복잡한 사건이었다.

 

한편 사망한 여성은 원래 살던 곳이 아니었고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 밝혀진다. 그 친구는 고향 친구면서 어릴때 친했던 연극 연출가 아사히 히로미였다. 아사히가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을꺼라는 심증은 깊어가지만 어떤 결정적인 단서가 없다. 그러던중에 가가의 어머니 유품중에 열두 개 다리 이름이 적힌 종이가 있었는게 이것이 죽은 여인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것과 내용과 필체가 똑 같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사히와 가가는 과거에 검도와 관련해서 교류가 있었다. 이제 이 사건은 가가와 뗄려야 뗄 수가 없는 사건이 된 것이다.

 

가가와 형사들의 집요하면서도 착실한 수사는 처음에는 느렸지만 점점 실력을 발휘하게 되어서 사건의 실체에 서서히 다가가게 된다. 역시나 아사히 히로미가 사건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결국 결정적인 단서를 손에 쥐게 되는 가가.

 

글 전개는 느리다. 인터넷 등 첨단 기기가 등장하는 요즘의 수사 스타일과는 다르게 가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수사를 한다. 수많은 사람과의 탐문. 수많은 사진과 서류 검토. 아무런 단서가 될꺼같지도 않고 시간만 많이 드는 그런 방식이지만 그것이 결국 통하게 된다. 이 책은 아주 별난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은 아니다. 어찌보면 그리 새로울꺼 없는 살인 사건에 인내를 가지고 천천히 사건에 다가가는 전개 방식이다.

 

그러나 그 속에 '이야기'가 있다. 각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것이 또 개인만의 문제인지 등을 생각하게 하면서 단순히 사건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 속에 가가 형사가 있었고 이번에 막을 내리는 이 시리즈는 가가 형사의 가정사와 연결지으면서 그의 오래된 마음의 빛을 청산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가와는 안녕을 고하게 되고.

 

시리즈가 마지막이라니 아쉽다. 여러 형사가 있지만 가가 형사가 주는 독특한 느낌을 더 느낄 수 없다니 아쉬울뿐이다. 책은 역시 주인공에게 촛점을 맞추면서 시리즈의 끝을 맺는 것에 걸맞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수십권에 달하는 시리즈가 아니라는 점은 새롭게 처음부터 통독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다시 이 시리즈를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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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 사막의 망자들 잭 매커보이 시리즈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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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스릴러 액션 미스터리 소설이 있다. 그중에서 재미있는 작품도 많이 있지만 책 내용에 비해서 우리의 상상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참 현실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느낌을 주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마이클 코넬리다. 물론 그의 책도 대부분 창작이고 상상력이 가미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현실감을 주는 이유는 그가 전직 신문 기자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경찰서 범죄 담당 기자. 수많은 범죄를 목격하면서 어떤 식으로 사건이 일어나는지를 현실성있게 그렸기 때문에 읽는 독자들은 실제로 일어났는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생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이 책도 그런 것이 밑바탕이 되어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른바 시인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 전작인 '시인'에서 연쇄살인마와의 혈투를 벌였던 주인공인 기자 잭 매커보이는 그뒤 중견 기자로 맹활약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수첩, 탐문, 펜 등은 구석기 시대 유물이 되고 이른바 인터넷 시대가 열렸다. 어렵게 찾던 정보를 쉽게 찾는 것은 물론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진짜 정보를 찾아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것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잭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다. 그러나 이렇게 주저앉을 잭이 아니다.

 

잭은 평범하게 보이는 살인 사건에서 연쇄살인의 감을 잡게 된다. 사건을 차분히 추격하던 차에 몇가지 단서를 발견하게 되고 이내 집중적으로 파고 들고 그 저돌성에 진범인 '허수아비'는 역공을 취하기로 한다. 바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잭의 상황을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그의 모든 사회적 신분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활동성을 제약하게 된다.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할줄 아는 범인 앞에 구시대 인물인 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잭은 그의 옛연인이자 FBI요원인 레이첼 월링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아 허수아비를 맹추격하게 된다. 작은 단서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찾아들어가는 잭. 결국 그는 얼굴도 모르는 허수아비의 실체 앞까지 다가서게 된다.

 

신문기자와 경찰 혹은 FBI라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구조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었다. 그것은 인터넷을 이용한 범죄라는 우리에게 이제는 익숙한 소재를 바탕으로 확실한 캐릭터를 가진 등장 인물들과 사건의 얼개가 조화롭게 잘 전개시켰다. 그래서 이야기에 빠져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배경은 인터넷 초창기때라서 지금 입장에서는 옛날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오래전이 배경인 셜록 홈즈도 재미있게 읽는 마당에 초기 인터넷 시대가 어떠랴. 지금도 문제가 되는 개인 정보가 그때는 정말 무방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야기가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만한 이야기마냥 탄탄한 현실성을 바탕으로 사건이 전개가 되는 것이다.

 

작가는 다른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등장 인물의 캐릭터를 확실히 구축을 한다. 평면적인 범죄자나 주인공이 아니라 이런면도 보이고 저런면도 보이는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개성있는 인물들에게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자신의 성장도 느끼게 해서 참 좋았다.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안 났는데 새롭게 읽으니 그 맛이 더 좋은거 같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진득한 느낌을 새롭게 느낄 수 있었고 사건이나 등장 인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역시 마이클 코넬리 답다란 생각이 든다. 이 작가는 서로 느슨하게 연결된 여러 시리즈를 갖고 있는데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 잭 매커보이 시리즈는 많이 나오지 않은거 같다. 사건을 헤집고 다니는 잭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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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스토리콜렉터 74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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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을 나는 방법은 여러가지겠지만 가장 좋은건 에어컨 밑에서 편하게 쉬는거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열치열이라고 해서 더운것을 먹고 땀을 흘려서 더위를 좀 가시게 하는 것인데 이것도 효과가 나름 있다. 그런데 정말 정말 재미있는 책을 읽는다면? 선풍기 하나로 몇시간이고 더위를 모를 수 있다. 정신없이 책을 읽다보면 더운것도 모르고 몇시간이나 시간을 보낼 수 있는것이다.

 

이때 전제조건은 책에 빠질만큼 재미있을것! 여러 책들이 있겠지만 장르적으로는 추리 스릴러 장르가 확률이 높다. 어설픈 스릴러는 오히려 짜증을 유발하는데 여기 딱 부합하는 책이 있다. 바로 '모기남' 시리즈.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다. 이 시리즈는 그야말로 복사하듯이 눈에 본 것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설정을 통해서 해결 불능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인데 책을 한번 잡으면 손을 높지 못할 시리즈다. 이번에 나온 편은 그 시리즈중에서도 가장 밀도있고 흥미로운 작품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는 두뇌의 이상 작용으로 한번 본 것은 모든 것을 다 기억하는 남자다. 마치 동영상을 찍은 듯 그가 본 것은 눈을 통해서 머리에 다 저장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확대할 수도 있어서 사건이 막힐때 마다 그의 장기가 잘 발휘되어서 해결에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기억력이 좋은것이 그에게는 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그것은 자신의 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있는것이 사는게 아니었지만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겨우 겨우 살아가고 있는 처지다. 그에게는 딱히 삶의 목적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한 사건이 끝나면 쉬는 것도 없고 다른 계획이 없다. 그래서 그의 팀에서는 휴가를 억지로 보낸다. 같은 동료인 재미슨의 언니가 산다는 작은 도시로 함께 휴가를 떠나게 된다.

 

한적한 도시에서 그야말로 여유로운 휴식을 보낼려고 했지만 이 도시 자체가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보통의 한가로운 소도시가 아니라 과거에는 잘나갔다가 쇠락한 도시다 그래서 한가롭다기 보다는 뭔가 정체되어있고 불만이 가득한 공기가 있는 도시다. 그런 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도 데커가 쉬고 있는 그 시간에! 데커가 맥주 한잔을 들이키는 순간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서 불빛이 보이고 뭔가 이상한 느낌을 느끼고 그 집에 가보니 두 사람이 죽어있다. 알고보니 이미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있었고 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불쌍한 데커. 간만에 휴식을 즐기러 왔는데 또 사건이라니. 그것도 자신이 직접 사건 현상을 발견하기까지. 여러건의 살인이 일어났기에 지역 경찰은 당황하게 되고 사건의 진실은 찾기가 힘들게 되었다. 데커와 제미슨은 사건에 참여하지 않을수가 없게 되 버렸다.

 

사건이 일어난 작은 도시 배런빌은 배런1세가 세운 도시다. 그곳은 과거에 석탄이 발견된 이후에 탄광과 제지산업으로 발전했으나 이제는 퇴락한 도시가 되었다. 단순히 퇴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약이나 폭력이 난무하고 전 도시에 범죄의 기운이 도사리면서 어두운 곳이 된 도시다. 이런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니만큼 단순 사건은 아닐터. 일단 죽은 사람도 여럿이지만 사건의 내막을 한꺼풀씩 벗겨보니 이게 보통 사건이 아니다. 여러가지가 복합된 복잡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범죄 발생의 가장 큰 이유인 '돈'이 여기에도 작동을 한다. 그 돈을 차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건이 일어났고 그것이 가지를 쳐서 아주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데커가 수사도중 머리를 다치는 상황이 생긴 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에 제약 요소로 작용한다. 이제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모두는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게 된다. 그의 머리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는 앞으로 보통 사람의 기억력으로 돌아갈 것인다. 아니면 그이 목숨과도 연관되 상태가 되는 것인가.

 

책은 단순히 잡고 추격하고 그런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여러 가지 사건을 씨줄과 날줄로 세밀하게 찾아들어가는 내용이다. 그래서 치밀한 추리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이번 책에서는 데커가 탐정이 된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생각도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의 진실이 밝혀지는 재미가 아주 좋다. 어찌보면 전개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서 답답하게 느낄수는 있겠지만 이야기틀의 재미를 느낀다면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할 정도로 흥미롭게 이야기가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 잃고 아무런 삶의 목표도 없이 흘러가는데로 살던 데커가 이번 책에서는 뭔가 꿈틀거리는게 있는거 같다. 약간은 인간적인 면이 돌아온다고나 할까.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이 책에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겠다. 늘 기다려지는 모기남 시리즈. 이번에도 그 기대값을 충분히 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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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나의 집 모중석 스릴러 클럽 46
정 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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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안전한 나의 집이지만 이 '안전한' 이란 것이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무엇으로부터의 안전함일까. 바깥으로부터의? 그렇다면 안에서의 위험에는 안전한 것인가. 제목은 책내용과 뭔가가 다를꺼 같은 암시를 주는거 같다.

 

지은이가 한국계 미국인이다. 처음에 지은이 이름만 보고 우리나라 소설인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발간된 책이다. 사실 이 책이 스릴러 시리즈로 발간이 되었는데 일반적인 스릴러 장르와는 좀 다르다. 뭔가 분위기나 상황상 스릴감을 느끼는 형식이랄까. 아마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분위기가 낯설기에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사실 그리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문화의 어두운면이 미국에서 발현된 느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경은 성공한 사람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서 괜찮은 여성을 만나서 안락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러나 좋은 집을 사기 위해서 너무 많은 대출을 받은 나머지 상환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그래서 살던 집을 세주고 부모님댁으로 들어가서 살아야할 처지가 되었다. 그것과 관련해서 부동산 중개인과 이야기 하던 도중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가까이에 사는 부모님에게 강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부모님의 목숨은 무사했지만 어머니가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만다.

 

이야기 초기는 생각치도 못한 일로 전개가 된다. 경은 부모님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지만 어쩔수없이 합가를 해야 할 처지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과 오랫동안 거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연락을 끊은것도 의절한 것도 아니지만 부모님을 보는게 불편하다. 일년에 몇번 있는 집안 행사도 최소한의 접촉만하고 피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것은 과거 어릴때부터 있었던 가정 폭력때문이었다. 그의 집안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한 이민자 가정. 낯선 미국땅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치열하게 살아야 했던 그의 아버지는 분풀이를 하듯 그의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했고 아무런 기반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미국에서 어머니의 스트레스 해소상대는 그의 아들뿐이었다. 비록 모종의 사건으로 폭력은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지만 경의 인생에서 부모의 존재는 멀어져 버리고 말핬다.

 

그런 그에게 부모가 당한 일은 경이 부모에게 다가갈수 밖에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인데. 하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어찌보면 아슬아슬하게 지탱되던 그들의 가족이라는 묶음은 같이 있으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점점 더 끈이 약해지기 시작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같이 있을수는 없게 되버리고 만 것이다.

 

책에서 경의 가족은 전형적인 한국 가정의 모습을 보인다. 과거에 많이 그랬고 아직도 보이는 가부장적인 모습 말이다. 집안의 여자는 아버지에게 절대 충성을 해야하고 모든 집안일은 여자들이 해야한다는 그런 모습. 수백년동안의 전통아닌 전통으로 여성들이 가정내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왔던가. 그런데 거기에 더해서 가정폭력이 있어왔던 것인데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것이 그리 큰일도 아닌것처럼 치부되던 시절도 있었다.

 

책의 내용은 결국 이 가정폭력이 어떻게 마음을 피폐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책에서 경은 매사에 짜증이고 부정적인데 자기 부모에게도 냉정하지만 그의 결혼을 반대했던 처가에도 별로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대체 경의 지지자는 누가 있기라고 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결혼까지 했는지도 의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뭐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경에 대해서 읽는 사람 자체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어릴때부터의 그 폭력이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이 되었긴 하지만 경이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상황을 통제하면서 좋은쪽으로 갈수는 없었을까. 경의 행동이 짜증 나기는 했지만 과연 내가 그 상황이었으면 그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한국식의 가정 폭력을 배경으로 해서 소재 자체가 익숙하다. 그래서 이야기가 술술 잘 넘어간다. 지금까지도 심심치 않게 있는 일이라서 더 몰입이 잘 되었던것도 있다. 나쁜일이 일어나면 가족이 제일 큰 힘이 되는게 맞다. 사이가 소원하더라도 내편 들어줄 사람은 결국 가족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가족이 또한 상처의 원천이기도 하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가족일때는 참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가족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싸주고 의지할수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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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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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일부 재판에 한해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배심원 재판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기본적으로 배심원에 의한 재판을 하는 나라기 때문에 일찍부터 법정 스릴러물이 많았다. 피고와 원고사이에 잘잘못을 가리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 자체가 흥미롭고 재미있기에 법정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존 그리샴 같은 작가의 책들은 한번 손에 잡으면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소재가 떨어졌는데 옛날만큼의 참신하고 잘 읽히는 법정물이 잘 없었는거 같다. 그래서 이 책의 홍보 문구에 유명 장르 소설 작가들의 추천사를 들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왠걸 읽어보니 새로운 스타일의 스릴러가 출연한 듯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책은 주인공을 바로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구조다. 보통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추적해서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범인이 처음부터 등장해서 극을 이끌어가는건데 제목에 그 신분에 대한 단서가 있다. 범인이 배심원과 관련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초반에 바로 나오는데 조슈아 케인이라는 살인자는 원래 배심원에 선정되는 사람을 살해하고 그 배심원에 자신이 떡하고 들어간다. 완전 사이코패스 극악무도한 살인자다. 한편으론 대체 이 살인자가 무슨 생각으로 배심원에 들어가서 그 사건에 개입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진다.

 

이 살인자가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될 사건은 온갖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는 유명 배우의 살인 사건이었다. 그 배우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자신의 아내와 보디가드를 살인한 죄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많은 증거들이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누가 와도 이 판을 뒤집지 못할 분위기의 사건인데 이 사건에 또다른 주인공으로 에디 플린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판단하기에 무죄라고 할 만한 사람만 변호하는 변호사다. 나름 산전수전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라서 조그마한 일에 흔들리지 않고 냉정하게 사건에 대처하는 스타일인데 그가 보기에 이 배우는 무죄다. 그래서 많은 증거들이 배우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리는데도 그를 변호하기 위해서 뛰어들게 된다.

 

케인은 그야말로 완전 범죄를 꿈꾸는 자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은폐할뿐만 아니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어서 영원히 사건의 진실이 묻히게 할려는 천재적인 악당이다. 거기에 에디가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이 책은 이 두 사람을 거대한 축으로 치열한 수싸움으로 스릴감을 극대화시키는 소설이다. 아무 관계없는 한 사람을 두고 살인자는 그를 지옥으로 보내려고 하고 변호사는 지옥에서 빼내오려고 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이야기는 아주 몰입감있고 속도감있게 읽힌다. 오랫만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다고나 할까. 법정 스릴러는 이제 나올만한 소재는 다 나와서 더 이상 나올꺼리가 없다고 봤는데 이 책이 그것을 깨주는거 같다. 판사나 검사 혹은 변호사 경찰이 악당인 경우도 봤고 배심원이 나쁜 경우도 있었지만 악당이 정식 배심원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생각도 못했다. 설정 자체가 참신하고 흥미로왔는데 이야기가 흘러가는 과정 또한 재미있게 잘 전개가 되어서 재미있었다.

 

살인자가 아주 공을 들여서 배심원이 되는 과정을 보니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막을 수가 있을까도 싶다. 보통은 살인을 저지르고 멀리 달아나지만 이렇게 사건 가까이에 그것도 전혀 의심받지 않을 위치에 있다면 잡기 쉽지 않을꺼 같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잡힌다고 볼 수도 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잡히지 않을 확률이 높지 아무리 변장을 한다고 해도 근처에 있다가는 언젠가 꼬리를 잡히게 마련이다. 이 책의 범인은 그 수법이 악랄하면서도 천재적이긴 하지만 너무 자신을 과신한거 같다. 하긴 그러니 사이코패스긴 하겠지.

 

오랫만에 보는 재미있는 스릴러물이었다. 범인과 변호사의 캐릭터도 잘 구축이 되어서 현실감을 높여주었고 주변 등장 인물들도 적절히 잘 배치해서 전체적인 균형미가 좋게 느껴졌던 이야기 구조여서 만족감있게 읽은 책이었다. 지은이가 쓴 다른 작품이 얼른 나오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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