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을 찾아서
박정석 지음 / 민음사 / 2005년 5월
평점 :
1.
지은이가 코모도를 가기 위해, 다시 들른 발리까지.
그는 문명의 편리함과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담아 보지만, 혜안(慧眼)은 없다. 사진을 찍 듯, 그곳의 풍경을 스케치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없다. 자아도 없다. 객관적 관찰자만이 저 만치 서 있다.
과연 객관적 관찰자가 사람과 어울리며 자연을 담으며, 혜안을 가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내 고개는 쉽게 들리지 않고 옆으로 갸우뚱 한다. 쉽게 단정 지을 수가 없기에 계속 읽어갈 것이지만, 기우(奇遇)가 봄비 속에 돋아난다.
다음 읽을 쪽,
[띠르따강가에서]
문제,
1. 사진 찍 듯 담은 풍경이 인간 삶의 묘사이며, 삶의 전체를 아우르는 상징적 표현인가?
2. 그렇다면 나는, 속을 못 보고 겉만 보는 바보. 글 읽기만 하고 있다.
3. 단순한 사진 찍기 글쓰기라면, 그의 글은 사색 없는 떠남일 것이며, 사진 대신 텍스트로 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4. 즉 그의 글이 담고 있는 상징성의 문제? 과연 있는가와 있다면 나는 제대로 읽어내고 있는가라는 점…
"발리 곡창 지대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중부와 동부의 농촌 지역이다. 파릇파릇 올라오는 푸른 모로 뒤덮인 논들은 지층의 결을 따라 세심하게 조각된 것처럼 발리의 산과 평야를 지나며 층층이 계단을 형성해 높아지거나 낮아진다. 색이 조금씩 다른 푸름 조각보를 정교하게 기워서 만든 것처럼 반듯반듯 네모지던 논들은 산기슭을 만나면서 위로, 위로, 조금씩 높이를 달리하며 조형미 넘치는 층계를 형성한다. 이것이 바로 발리의 농촌을 찍은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계단식 논(rice paddy)의 모습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계단식 논이라면 필리핀 중부 산간지대의 비경 바나우에를 꼽겠지만 발리는 풍경 또한 그림처럼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논이라면 사실 별것도 아닌데, 그래도 참 아름답단 말이야."
나는 발리를 방문한 적이 없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고 있으면 말할 수 없이 평온한 느낌이 들거든."(44쪽)
논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고 서정적(?)' 이 의미는? 우리나라 남해 가랑이 논은?
"주린 배를 부르게 해 줄 풍요로운 벼 이삭의 모체가 될 것이라는 흐뭇한 상상(44쪽)"
객관적 시선이 존재하고, 벼를 무논에 심고, 땡볕에서 피를 뽑고,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시골에서 못자리가 농사의 반이라 한다. 그 만큼 힘겹다는 이야기인데, 지은이는 아마도 무논에서 벼를 심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험을 통해 몸에 벤 경험은 다른 곳에 갔을 때에, 다시 안개처럼 피어올라 낯선 곳에서 같은 경험을 불러일으키고,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하게 한다. 무논에서 벼를 심어보지 않은 지은이는 그냥, ‘마냥 서정적이다’라고 표현한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지금의 모습 즉 보여지는 면, 자연뿐이기 때문이다.
2.
사람이 없는 그림이나 사진은 단지 죽은 사진이다. (아마 김영갑 아저씨는 나와는 반대로 말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사진에도 사람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사진에 비록 사람이 없지만 사진 뒤에 지은이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갔다 붙이기씩 이야기인가?) 즉 지은이가 보는 풍경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 없다. 발리에서 "달려드는 메니큐어들과 마사지 아줌마(38쪽)"는 뿌리쳐야 할 대상, 즉 그곳에 그들이 없어야 비로소 풍경이 된다. 그는 사람과 소통하며 자연과 어울려 사는 사람들의 일상-행복, 힘겨움, 기쁨, 슬픔, 나눔 등을 묻지 않는다. 쌀은 아름다움 색이며, '米'가 지니는 참 뜻-여든여덟은 기억되지 않아도 되는 숫자이다. 어쩌면 일상에 얽매이지 않고, 떠나고 싶을 대 떠나는 자유로운 의지는 사람의 일상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즉 그는 자연을 담음에, 사람을 빼버리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많이 보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24쪽)
위의 화두(話頭)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지는 함축적 의미가 빠져있다. 책을 읽으면서 잡히는 그 의미는 '많이 본다'는 것은 볼 것, 유명한 곳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 가운데나 혹은 낯선 곳을 나타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게 된 의미는 묻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한다.
내가 유추해 보기에, '사람이 없는 자연'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즉 사람이 없다. 홀로 방랑자이며, 자유인이며, 바람이다. 누구나 그를 부러워 할 수 있다. 어쩌면 일상에 더 얽매인 사람일수록 사람과 더 멀어지며 더 낯선 곳을 찾는다. 우리 곁에 숨 쉬는 자연의 신비함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고 다가갔을 때, 그냥 다가오는 낯선 장면에만 취한다. 일상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 이는 영원히 떠돌뿐이다. 그 자유로움이 자칫 부러움을 비춰지겠지만, 내적 공허함을 감추지는 못할 것이다.
[흥정의 미학]
-펼쳐 놓고 고민 中….
더 읽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다. 진전이 없다. 한 푼이라도 벌려고 모이는 사람들은 돈독이 올랐으며, 관광지를 도는 일정은 이미 티비로 보아 익숙하며, 사색 없는 행적기는 낯선 이름으로 지루하다. '용을 잣으로 가서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호기심이 일기는 이는데… 너무 단조롭다. 하~~ 잠 온다.
"현지인의 순수함이라는 것이 돈에 대한 무관심을 일컫는 것(48쪽)"
완전 도둑놈 심보이다. 자기는 비행기며 차타고 와서,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달려 와서는, '너희는 돈을 몰라, 즉 내 돈을 탐내지 마라'라는 시선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들을 울타리 없는 동물원의 동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겠지? 순수함이란 돈에 대한 무지가 아니다. 정당한 대가이다. 즉 잠을 자게 해 주는 대신에 일을 하든가 노자를 주어 그에 대한 보답을 하는 것이다. 돈이라는 그 자체가, 순수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해 주고 그 대가를 돈으로 교환하는 것, 즉 물물 가치의 진일보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의 요구는 턱없이 '서울의 집값'이라면 순수함을 잃었지만 시골 장터 국밥집의 밥값이라면 순수하다. 또한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인해, 돈을 주지 않아도 되고 미국이나 유럽가면 입장료를 꼭 내어야 한다는 사고라면 분명 많이 엇나가고 있다. 이렇게 불쑥 나오는 지은이의 사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림에 무게를 더 하게 한다.
3.
"이런 천국에도 가난은 여전히 존재한다.(138쪽)"
천국이라 함은 어디이고 가난이라 함은 무엇인가? 천국이라고 하는 것은 내 돈 내고 문명의 최상위인 비행기를 타고 단순에 달려와서, 문명의 오지인 한적한-염라대왕마저 부러워할 곳에서 "발가락을 깊숙이 파묻는 해변의 모래"를 거닐며 "지칠 때 까지 스노클링?을(137쪽)" 할 수 있는 곳, 즉 그곳의 '삶의 체험'은 티비에만 나오면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자연, 즉 이것이 천국임을 말한다. 건데 이런 풍경에 옥의 티가 있으니, "얼굴이 검은 조그만 소녀가 파인애플과 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달고 시원한 파인애플 사세요!(138쪽)"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는 소녀를 붉은 녹이 잔뜩 슨 조그마한 칼로 쑥 내밀려 어쭙다는 표정을 짓는다고 적는다. 과연 그곳의 문화를 돈과 바꾼 이는 누구인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책을 보면, 어린 여선생이 날마다. 집앞에 찾아와 선물하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수가 없어 동전을 한 잎 주었더니… 동내 꼬마들이 선생이 일어나기 한참 전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것을 적잖이 당황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들은 단순히 선생이 좋아서 선물을 했고, 선생은 그 고마움을 돈으로 표현했는데… 선물은 대가를 준다는 의미를 알게 된 아이들은 선물을 장사라고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행동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한다. 과연 관찰자여야 하는가 참여자여야 하는가?
지은이는 비행기 타고 와서는 동물원 구경하듯 가면 되지만, 남은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바가지에 대한 감정 섞인 눈 대신에 돈을 많이 벌어, 다른 곳을 여행할 때 어떤 시선을 담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은 없다. 과연 그들은 다음에 어떤 모습으로 우리나를 찾아올까? 여유로운 자의 일상은 지지리 궁상인 삶에 과연하지 않는다.
숙소 근처의 어느 식당에 들러니, 종업원이 값싼 메뉴판을 내밀자 좋아라하며, 친절하다고 자랑하는 지은이의 글 솜씨는 바닥을 드러낸다. 혹시 메뉴판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라면… 과연 그네들의 문화와 삶에 대한 이해가 있는가? 아니 관심이라도 있는가? 그냥 낯선 곳의 자연이 그리운은 아니겠지. 그리고 무인도라는 용을 찾아가는 여행기가, 아직 섬에 닿지 않았으니 혹시 발을 디디면 끝나는 것이 아닌지… 약 반을 넘기고 있는데, 무인도는 수평선 너머에 있고, 나오지 않던 'G씨'가 나와 이야기를 엉뚱한 곳으로 에둘러 간다. 영……. 밋밋하다.
148쪽, [대탈주]
고민고민 하던 난, 여기까지 읽은 부분에 대한 내 이해만 기록하고 책을 덮는다. 용을 찾아 무엇을 했는지……. 조금 궁금하지만 급반전을 기대할 수 없으니, 바가지를 씌우는 이를 만나며 못된 사람이라 할 것이고, 사람이 없는 풍경에서 발 담그고 하루 종일 잠을 자는 것을 지상천국이라 하겠지. 혹시라도 다 읽으신 분이 계시다면 뒷부분 이야기를 좀 들려주세요. 저는 성격이 곱지가 않아, 계속 동행을 하지 못하고, '대탈주'를 합니다. 그럼 이만… 종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