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내가 읽은 십 인(人)의 그림, 그리고 현실에 대한 인식.

박재동,
그의 그림은 이분법 논리로서, 극단적 묘사를 추구한다. 원인 규명은 어디에도 없고 현실에 대한 단면 묘사. 현실의 어떤 모습을 그려내는가도 작가적 깊이를 드러낼 것이다. 지은이가 인식하는 차별의 깊이와 넓이, 즉 문제성은 어디어디에 있는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손문상,
조세평등(27쪽)으로 나아가는 재치는 웃음 속에 가시가 있지만, 모든 여성의 차별, 어머니의 그림(31쪽)에는 뭉개트렸다. 즉 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가난, 무지, 국졸, 호남을 읽을 수가 없다. 치열함이 없다. 그냥 상징적 어머니로 그림을 그릴 것 뿐. 그림을 놔두고 국졸, 가난, 무지, 호남의 모습을 읽을 수가 있는가? 나는 그러하지 못하다.

홍승우,
차별을 위한 차별적 그림, 부부애의 갈등만 그려냈지, 서로의 합일점을 찾지 않고 있다. 즉 여자는 무조건 차별받고 있고, 남자는 무조건 혜택만 누린다는 단순논리.

조남준,
아이들의 차별의식에 대한 안타까움 대신에 가벼운 현실 비판만 존재한다. 그러니 대안이라고 내세우는 게, '개한테 배워라'는 경비원 아저씨의 말, 저 아이가 커서 어떤 감정에, 어떤 차별에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그림밖에 있다.

이우일,
코미디가 지나치다. 희극이라는 것은 적당한 긴장감 속에 웃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만화는 상대방에 대한 복수심만 깔려있다.

홍윤표,
그림이 부끄럽다.

유승하,
그의 그림은 낯설고, 선이 많이 가 있지만 정겹다. 『헬로우 블랙잭』처럼 구조적 모순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잔잔한 이야기는 내 가슴에 오래도록 머물 듯 하다.

장경섭,
반전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왜 아버지였는가, 그의 이해력이 부족하지 않은가에 대한 점을 묻지 않기로 한다. 모든 문제는 아버지(=남자)한테 있고, 그가 왼쪽으로 고래를 돌리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지극히 단순한 논리로 그림을 마무리 한다.

최호철,
아홉시 뉴스를 봤다. 사장인 돈독이 올라, 외국인 근로자를 부려먹고 월급은 주지 않았다고 하더라. 어떤 이는 불치병에 걸려 두 다리를 평생 못 쓰게 되었다는 말도 들려오더라.

왜 공장에 가지 않느냐? 하루 종일 기름 묻히며, 월급 백만 원이 모자라는 돈으로 일하려 하지 않는가? 펜대 굴리는 것이 육체적 노동만큼 힘들다고? 티비 뉴스가 나오면, 사장만 욕한다.

물질만능주의의 톱니바퀴에 돌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사장과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분법으로 치환된다. 그리하여 나와 우리는 면죄부를 받을 수가 있다. 열심히 공부하여 펜대를 굴려라, 욕은 사장에게 주고, 힘든 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주고, 내가 하는 일은 티비를 보며 사장을 안주삼아 씹으면 된다. 그러면 내 죄는 모두 사하여 지고, 천국의 문이 가까우리라.

이희재,
세상은 더불어 사는 것, 그의 글이 조금은 유치해도, 함께 나아간다는 말에 나는 가슴을 적신다. 이분법 시선으로 '너는 그러하다'는 어설픈 비판보다, 함께 나아갈 길 찾는 게 더 옳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오세영의 『부자의 그림일기』가 살아있음에 대한 숭고미라면, 이희재의 그림은 함께 사는 나누미(美)이다. 조잡한 그림으로 이분법으로 재단하는 것보다 일상의 잔잔함을 희망차게 그려내는 이 그림이 나는 왠지 좋다.

2.
차별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며, 타산지석을 삼자는 의미인가? 아이한테 공부해라 공부해라하는 부모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진다. 그런다고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차별 없는 모습을 그려, 아름다운을 동화시킴이 어떨는지? 즉 엄마 아빠가 책을 보면 아이들이 따라하 듯……. 나는 만화책을 보다, 우리나라에는 차별만 존재하는 나라가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 문제, 우리나라의 몇 몇 만화가들은 날로 먹으려고 한다. 옆 동네 사람들은 그림 하나하나에 세심한 관심을 보이는데, 우리나라 만화가들은 배경 빼고, 인물 감정 빼고, 눈하고 금(線)만 그린다. 아무리 봐도 연출력의 부족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내용의 단순함, 그림의 단순함, 양 단순함이 날개가 되어 책의 앞뒤에 붙어있다. 차별이 벌어지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그리고 그들이 인식하는 차별의 넓이와 깊이는 신문만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발이 불어터지도록 걷고, 보고, 아파하고, 느끼면서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이 저 멀리에 있다는 느낌이다.

3.
왜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인가? 이 만화의 공통점은 남자는 못 땐 놈, 여자는 착한이라는 이분법 시선이다. 만화를 그린 이들도 남자인데……. 남자는 폭력이고 여자는 선(善)의 대명사인가? 너무 얇거나 좁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아마 그들은 농촌에서, 가진 것 없는 부모님 밑에서, 지방대를 나왔다고 일자리 구하는 힘겨움을, 소도시에 사는 문화적 혜택과 시골에서 공부를 하는 어린아이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경험을 하지 않았거나 고민이 부족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책을 덮을 때 쯤 밀려온다.

차별에 대한 그림, 많은 만화가들이 한 가지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너무 단순하고, 이야기의 구성이 너무 단순하고, 생각의 폭이 너무 단순하고……. 이렇게 단순하게 줄 세우는 나도 단순하고……. 그러니깐 다양한 모습을 담아주지. 에이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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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3-1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재미있게 본 만화인데 꽤 세밀하게 평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