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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 불어요! ㅣ 창비아동문고 224
이현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2006년 5월
평점 :
짜장면은 아마, 초등학생, 더구나 집이 어느 정도 가난하다면 부러움의 음식으로 화려하게 탄생한다. 지금은 다른 음식이 많이 나와 있지만, 어린 시절에 짜장면은 아버지가 일을 하시고, 월급을 탄 날에 먹을 수 있는 대접받는 음식이다. 어느 가수의 엄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셔셔 할 만큼 우리에게 짜장면은 음식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는건지 모른다. 아마도 그건 힘겨운 시절에, 우리의 허기진 배와 꿈을 달래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짜장면이 불어요」의 매력은 흡인력이다. 주저리주저리 내 뿜어져 나오는 면발 같은 이야기를 나는 허급지급 아귀들린냥 주워 삼킨다.
"짜장면은 태어나는 순간 사람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아 버렸어. 쫄깃쫄깃 야들야들 면발에다 고소하고 살짝지근하면서도 뜨끔뜨끔한 쏘스, 그리고 언제가부터 그 위에, 올려진 하얗고 동글동글한 메추리알, 거기다 아삭아삭 새콩달콩한 단무지를 곁들이면 아! 세상에 뭐가 그 맛을 당하겠냐. 응? 그렇지? 너도 짜장면 좋아하지?(49쪽)
어느 정도배가 부르게 되니, 한결 여유가 생기고, 나는 다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나를 무습도록 빨아들인 흡인력을 다시 살펴보니, 내 눈이 놓친 겉보리가 보인다. 알맹이는 없고, 죽정이만 남아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짜장면은 그 맛을 알아야 하고, 그 맛을 아는 건 그 속에 엉겨붙은 채소를 알며, 그 정성을 알게 되는 것일진데... 맛은 두리뭉실흘러가고, 이야기는 수면 위로 떠 있는 거품처럼 부유한다. 즉 깊은 바다에서 무엇을 건져낸 무직한 느낌이 없다. 내가 허급지급 먹은 짜장면은 맛이 좋았다기 보다 내 허기진 배로 인해 부풀려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는 「짜장면이 불어요」에서는 시원한 말로써 한 작품을 잉태했지만, 다른 작품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性)」은 이야기는 있고, 묘사가 없다. 스토리만 있고 플롯이 없고, 뒷북만 있고 암시와 복선이 없다. 예고된 반전이 저 앞에 나와 있다. 이는 「짜장면이 불어요」에서도 보여진다. 즉 제목으로써 이미 반전을 예고해 놓았다.
「3일간」은 이분법적인 잣대로 작품을 ?어가는데, 너무나 주제의식이 강하다.
"개는 자기 부모가 이혼하는게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인 줄 아는 모양이더라. 흥!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더는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애집 부자쟎아." (89쪽)
영선의 눈에 보여진 사흘. 이 속에는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들어있다.
집이 가난한 희주는 윤서의 투정이 아니꼽고, 가출을 놀이로 생각하는 윤서의 투정은 어리광으로 비춰진다. 스무해 교사 생활한 선생은 모든 문제를 가정과 부(副)로 연결시키고, 학생의 일기를 훔쳐보며 매를 강요하는 비인격체로 그려진다. 여기에는 나는 어느 것 하나 눗?그르다 하지 않고, 못 볼 것을 봤다고 들려준다. 이 이야기는 어떠한 주제를 품고 글쓰기가 이루어지지만, 모든 상황이 의도적으로( -눈에 띄게) 엮어져 가고 있다. 즉 인연의 연결 고리와 사춘기 소년소녀의 내적 상황을 통한 아픔이 없으며, 당면논리, 기성 세대에 대한 비판의식에 머물렀다.
어느 작품이든 주제의식이 속삭을 드러내지만 너무 튀어나오면 목적론적 글쓰기에 전환했다. 「3일간」에서 보여지는 면은 분명 이 부분에 크게 침몰되어 있으며, 「짜장면이 불어요」도 짜장면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으로 긴장 구도가 없음이 큰 아쉬움이다. 나는 「짜장면이 불어요」에서 보여지는 입말의 능청스러움에는 감탄을 보내지만, 그 속에 얼마만큼의 혜안이 담겨져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참 재미난 글이다'읽라는 생각 뒤에, 왠지 공허함이 배를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