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아름다움이 너무도 희귀해 바다를 바라보는 내 기쁨이 놀라움으로 더 커지는 날도 있었다. 어떤 특권이 있기에다른 아침이 아닌 바로 그날 아침에 창문이 방긋 열리면서 놀라움으로 가득한 내 눈앞에 글라우코노메**란 요정을 드러내보였던가? 느릿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부드럽게 숨을 쉬는 요정에겐 어렴풋하게나마 에메랄드의 투명함이 있었고, 그 투명 - P112

함 너머로 요정을 채색하는 여러 무거운 요소들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요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안개 너머로 나른한 미소를 지으면서 태양을 뛰놀게 했고, 투명한 표면 주위에 마련된 텅 빈 공간에 불과한 안개는 이 때문에 더욱 압축적이고 인상적으로 보였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 덩어리에 나머지 돌들은 다듬지 않고 내버려 둔 채 여신상만을 뚜렷이 드러나게 하듯이. 이렇게 요정은 그 유일한 빛깔 안에서 우리를 거친 대지위 도로를 달리는 산책에 초대했고, 빌리지 부인의 사륜마차안에 앉은 우리는 결코 요정에게는 이르지 못한 채 그 부드러운 파닥거림의 싱그러움을 하루 종일 멀리서 바라보았다. - P113

나는 꽃들을 바라보다 램프 불 밑에 갖다 놓았다. 발베크에서 여명이 붉은빛으로 물들었을 같은 시각에 같은 붉은빛으로 물드는 꽃들을 바라보면서 그토록 오래 자주 그 앞에 있었고, 상상의 길 쪽으로 꽃들을 옮기고 꽃들의 수를 늘리면서 내가 마음속에서 외우다시피 한 그 울타리 친목초지의 준비된 액자 안에, 이제 막 준비를 끝낸 화폭 위에 이 꽃들의 데생을 펼쳐 놓았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목초지를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다면, 봄의 색깔이 천재의 매력적인 영감과 더불어 캔버스를 뒤덮는 바로 그 순간에 보고 싶었다. - P116

우리는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럽게 공정해지려고 노력하면서 보수주의자들의 사상을 직접 비난하는 걸 거부하는데, 바로 이런 정신을 가진 사람을 통해 진보적인 의견이 솔직하게표명되는 걸 듣자 - 그렇다고 해서 빌리지 부인이 그토록싫어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의견까지는 아니라 해도 - 할머니와 나는 만물의 척도와 진리의 본보기가 이 유쾌한 동반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꺼이 믿게 되었다. - P120

만약 습관이 없다면, 시시각각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존재들에게는 ㅡ 다시 말해 모든 인간에게는 삶이 감미로워 보일 것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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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미세먼지도 별로 없는데다 기온까지 쾌적해서 여기 저기 돌아다녔다.


옆지기 생일이어서 신발을 사준다고 아울렛을 갔는데 2~3년만에 갔다고 있던 브랜드 매장이 하필 사라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브랜드 신발을 구입할 수 밖에 없어서 아쉬웠다.

뭐 그래도 내가 입을 여름티도 샀으니 됐지뭐 이러면서...


아울렛은 거의 1시간만에 주파하고 

근처에 정육 한우식당이 보이길래 그리로 가서 한우를 먹어주었다.

생일이라고 옆지기가 무려 꽃등심을 사 주었다^^;

비록 ++는 아니여도 맛만 좋으면 되지~



그리고는 집 근처에 와서 종종 가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이 집 카페 인테리어도 좋지만 커피 맛이 좋다. 카페가 커피 맛이 좋아야 가는 것이지 분위기고 뭐고 다 필요없다. 무조건 커피가 맛있어야^^;





그리고 지지난주 주말에 아주 오랜만에 뒷동산에 올랐고 지난 주말에도 올랐다. 2주 연속 오른 셈.

요즘처럼 산에 다니기 좋을 때가 없는데 계속 미루다 이제야 다녀왔다.

집에서 불과 5분이면 오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번 이렇게 늦어진다. 


여름의 진녹색이 아닌 봄의 연둣빛 녹색으로 가득한 산의 모습이다.

힐링이 절로 되었다.




그 와중에 다 떨어지지 않은 벚나무도 발견했다^^



지난 달 김윤아 콘서트를 부푼 기대에 예매했건만 아뿔싸 공연장에 문제가 생겨서 취소가 되었다.

공연이 연기라는데 아무래도 이 공연장에서는 안될 것 같고 다른 공연장을 알아봐야하는 모양이다.

지난 금요일 퇴근 전 이 소식을 듣고 그리 아쉬울 수가 없었다ㅜㅜ


어쨌든 봄은 소리 소문 없이 이렇게 잘 흘러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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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4-10 17: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름답네요.



고기가….

거리의화가 2023-04-11 09:03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고기는 아무 때나 먹어도 맛있죠. 생일에 먹는 고기는 더 꿀맛!ㅎㅎ 꽃등심은 오랜만에 먹었네요!^^

서곡 2023-04-10 22: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드려요! 사진도 잘보고갑니다 ~ / 엌 님이 아니라 옆지기님 ㅋㅋㅋ 제가 난독이 ㄷㄷㄷ

거리의화가 2023-04-11 09:06   좋아요 1 | URL
네. 생일은 며칠 남았는데 주말에 비는 시간이 지난 주말 밖에 없어서 미리 다녀왔어요^^ 감사합니다.

다락방 2023-04-10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주말에 산에 갈까 하다가 너무 귀찮아 안갔네요. 산 풍경 좋습니다. 고기 사진은 네, 아름답고요!

거리의화가 2023-04-11 09:07   좋아요 0 | URL
산에 오르기 전까지가 늘 어려운 것 같아요^^; 막상 가면 참 좋은데 말이죠. 이번주도 별 일 없으면 가야겠습니다. 고기는 언제나 아름답죠^^!ㅎㅎㅎ

책읽는나무 2023-04-11 07: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생일 날엔 늘 꽃등심이군요?^^
지난 번 화가님 생일에도 소고기 드셨던? 아니었나? 눈이 와서 고기 드셨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토끼잔...ㅋㅋㅋ
저는 아울렛 한 번 가면요.
브랜드 명이 생소한 가게들이 많이 생겨나 조금 멍~ 해지더군요. 발음도 어려운 브랜드 가게들은 참....겨우 알게 된, 또는 선호하는 가게들이 사라지면 참 난감하긴 하더군요.
브랜드도 유행을 타서 정말 휙휙 빨리 바뀌는 것 같아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저 산 풍경이 제일이네요^^

거리의화가 2023-04-11 09:51   좋아요 2 | URL
생일날에 먹는 꽃등심은 역시 좋습니다^^
지난 번 생일 때 뭐 먹었는지 저조차 기억이 안나는데 뭘 먹었죠? 암튼 뭔진 모르겠지만 고기를 먹었을겁니다!ㅋㅋㅋㅋㅋ 고기가 최애 음식이라ㅎㅎ
토끼잔 귀엽죠? 앞모습은 당근이 그려져 있는데 그것만 보고 귀엽다 했더니 뒷모습이 더 저리 귀여운 것이 붙어 있을줄이야!ㅎㅎㅎ
설마 우리가 가려던 브랜드가 없어질 줄은 몰랐습니다ㅜㅜ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당했네요! 그래도 대신 고른 신발이 마음에 든다네요~ 다행이죠^^
산 풍경이 저도 넘 좋습니다. 요즘 연녹색 빛이라 완전 예쁠 때예요! 자주 가야겠습니다*^^*

새파랑 2023-04-11 1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한우 보니까 힐링이 되네요 ㅋ 완전 맛나 보입니다. 고기사진이 너무 아름답네요 ^^ 역시 책보다는 고기? ㅋ

거리의화가 2023-04-11 11:11   좋아요 1 | URL
역시 기승전 한우인가요?ㅎㅎㅎ 고기를 좀 줄이고 싶은데 그러기엔 너무 좋아해서...ㅎㅎㅎ 먹는 게 남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선 2023-04-13 0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지났지만, 주말 잘 보내셨군요 산이 집에서 가까워서 좋으시겠습니다 오분만 가면 된다니... 공기도 좋겠네요 그래도 요며칠처럼 황사 미세먼지가 심하면 안 좋겠지만... 그래도 더워지다 좀 서늘해져서 다행이다 싶어요 벌써 꽃들은 피어나고 진 것도 있지만... 좀 더 나중에 피어야 하는 것도 다 핀 듯합니다 공연 연기되고 다른 곳에서 하게 됐군요 아쉽겠습니다 빨리 공연 날짜가 잡히기를 바랍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13 09:10   좋아요 1 | URL
원래 공연은 이미 취소되어서 언제 하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아티스트가 더 아쉽겠죠ㅠㅠ
물론 가까우면 좋지만 마음만 있다면 가깝고 멀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본문에도 써놨지만 5분 거리인데도 산에 가려고 나서는게 쉽지 않잖아요ㅎㅎㅎ
어제도, 오늘도 미세먼지가 무척 좋지 않네요. 희선님 호흡기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4-14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서야 글 읽고 있는데, 고기들이...;;
꽃보다 한우!
뭐 그런 건가요?

거리의화가 2023-04-17 13:34   좋아요 1 | URL
댓글이 너무 늦었습니다^^; 저는 사실 한우를 그닥 좋아하진 않는데요.(왜 삼겹살이 더 맛있는거죠?ㅎㅎ) 자주는 못 먹습니다만 소금에 찍어 먹는 한우가 살살 녹아서 가끔 먹습니다. 남편이 좋아하기도 하구요^^
꽃보다 한우 좋은데요? 예전엔 먹을 거 앞에 두고 사진 먼저 찍는 게 일이었는데 요즘은 꽃 사진만 주구장창 찍고 있습니다.
 
학문의 권장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70
후쿠자와 유키치 지음, 남상영 옮김 / 소화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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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권장』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대표 저작 3권(서양사정, 학문의 권장, 문명론의 개략) 중 하나이다. 3부작은 서양사정이 1866년으로 처음 저술되었고 학문의 권장이 1872년, 문명론의 개략이 1875년출간되었다. 때문에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적 흐름을 확인함으로써 일본의 개화 시기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서양사정은 서양의 근대 이론을 소개하면서 해당 용어를 일본식으로 번역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학문의 권장은 고향인 나카쓰에 나카쓰시학교가 설립되는 시기에 맞추어 학생들에게 학문을 권면하는 목적으로 쓰여졌다. 처음에는 고향 친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글이었는데 원고를 읽은 누군가가 이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출판을 종용하여 냈다고 한다.

이 책은 서양사정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서양사정은 말 그대로 서양의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학술적 느낌이 든다. 반면 이 책은 학생들에게 학문을 왜 배워야 하는지 권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설득이나 연설조의 글이라 읽기에는 더 수월하다. 마치 미래를 책임질 학생들에게 던지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다고나 할까.
내용은 일본에 특수한 예시들을 제외하고는 당시 기준으로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저자가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일본의 사상가이기 때문에 자국중심주의적 사고가 엿보이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학문'은 이치와 이상을 파고 드는(예를 들면 성리학의 주리론처럼) 그런 고리타분한 학문이 아니어서 마음에 들었다. 이른바 '실학'이다. 조선에서도 실학의 대표 주자들이 활동할 시기가 있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고 난 후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 결과 이른바 서양에서 잘 배워서 일본의 근대를 발전하자는 생각을 가졌다. 이런 일본의 근대 지식인에게서 조선의 개화파 지식인들(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은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총 1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출판 연도가 다 다르다는 것에 눈길이 간다.
메이지 4년 12월 집필, 5년 2월 초편의 출판을 시작으로 17편이 메이지 9년 11월 출판되었으니 모든 편이 출판되기까지 총 4년 정도의 기간이 있는 셈이다. 때문에 각 편의 내용은 당시의 상황이 어떤가에 따라, 즉 일본 국내 사정에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 같다. 실제로 각 편의 내용의 주제가 다르고 어조도 조금씩 다르다.

이 책을 집필할 때 저자의 나이가 39~43세였다고 하니 한참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다. 내용은 구성에 따라 총 3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초편은 이 책의 시작이자 끝, 핵심을 담고 있는 장으로 총론의 성격을 지닌다. 2편부터 7편은 '실학'으로서의 학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8편부터 17편까지는 인간 사회를 살아가면서 지녀야 할 자세와 방법론을 다루므로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총론은 인간의 권리인 보편으로서의 평등을 이야기한다. 이 때 배우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개인이 배움으로 인해서(서당에서의 학문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학문) 독립해야 하고 일국도 독립해야 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는, 인정에 따라 우선 각자의 행동을 바르게 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사물에 대해 폭넓게 알고 각자 자기 신분에 맞는 지혜와 덕성을 갖추며, 정부는 정치를 알기 쉽게 베풀고 모든 인민이 정부의 지배를 받아 고통받지 않도록 하여, 서로가 소임을 다하고 전국의 태평을 지키려는 것일 뿐, 지금 내가 권장하려는 학문도 오직 그것을 위해서이며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 P33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것을 서양 말로는 reciprocity 또는 equality라고 한다. - P43

2편부터 7편까지는 사람들 간의 권리의 평등과 국가 간의 평등, 국민과 정부 간의 관계에서의 권리, 법에 의한 통치의 중요성, 유무형의 학문의 차이와 그것의 상호 관련성, 실제적 현상과 그것의 이치와 원리의 탐구를 찾는 중요성, 독서의 목적, 문자나 언어의 문제, 국어를 연구해야 하는 중요성 등 비단 개인의 권리 뿐 아니라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필요한 여러 주제들을 논하고 있다.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정부가 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은 인민이지만, 그것은 단지 편의상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전체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을 때는 국가를 정부에만 맡기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인민의 본분에서 도리가 아니다. - P51

정부는 법을 만들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법은 반드시 엄격하게 실시하여야 한다. 한편 인민은 정부가 만든 법을 지키는 데 불편한 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그것을 정부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법이 시행된 것은 사적으로 그 법의 시비를 논하지 말고 지켜야 마땅하다. - P91

요즘 정순신 장관의 자녀 문제로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었는데 사실 이는 그동안도 고질적인 병폐였다. 문제는 솜방망이 처벌이다. 애매한 처벌로 가해자는 뉘우치기는 커녕 아무 죄의식이 없고 처벌이 주어진다고 해도 집행유예 등으로 이도 저도 아닌 처벌이 되어 버린다. 피해자만 억울한 상황에서 이 사회는 폭력의 해방으로부터 나아가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유럽이나 미국의 나라들은 부유하므로 강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들은 가난하여 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강약은 그 나라의 지금의 상황이며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 나라의 부강한 힘만믿고 빈약한 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가 완력으로 병약한 사람의 팔을 비틀어 꺾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우리 일본도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서양 나라들의 부강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도리에 벗어난 부당한 행위를 당했을 때에는 세계가 다 적이 될지언정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만 내가 느낀 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일본이 자행한 뒤의 오류들이 국가론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당시의 약육강식의 논리와 맞물려 일본의 부강함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지만 상대적으로 짓밟히는 나라에 대한 생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은 문제적이다.

8편부터 17편까지는 인간 사회를 이롭게 할 방법론을 담고 있다. 굉장히 넓은 주제인데다가 지금도 유효하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특히 여성론이나 효행론은 여전히 지금도 가부장제의 공고화로 제대로 인식조차 못한 상태에서 자행되는 문제들에 일침을 놓을 만한 것들이어서 놀랐다.

그 뜻은 아무리 음란한 남편이라도 남편인 이상 어떠한 치욕을 당해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오직 마음에도 없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의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인의 의견에 따르고 안 따르는 것은 오직 방탕한 남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므로 남편의 마음이 곧 천명(天命)이라고 생각할 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또한 불교 서적에는 여자는 죄 많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큰 죄를 지은 죄인이란 말인가. 그 밖에도 일방적으로 여자들을 질책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대학』에 부인의 칠거(七去)라는 말이 있는데, 여자가 음란하면 이혼을 당해도 당연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것은 남자를 위해서는 아주 편리한 내용이다. 너무나 일방적인 얘기가 아닌가. 결국 남자는 강하고 부인은 약하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남녀를 상하로 나누는 명분을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 P113

애도시대 중엽의 교훈서인 ‘여대학’에 대한 비판이다. 조선도 삼종지도를 강조하던 모습에서 비슷하고 이는 현재도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하다는 생각이다.

부모가 자식의 재산을 탐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며 자식 부부를 시시콜콜 간섭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생각을 옳다고 하며 자식의 의견은 입 밖에도 낼 수 없게 한다. 며느리는 마치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며 자고 먹고 사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부모 마음에 거스르면 불효자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도 시부모가 지나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자기 일이 아니므로 시부모의 편을 들어 불효하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이(理)와 비리를 가리지 말고 부모에게 적당하게 거짓말을 하라며 거짓 행동을 권하기도 한다. 이것을 어찌 가정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어머니의 됨됨이는 며느리 적에 이미 알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킬 때에는 옛날 자신의 시집살이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P117~118

우리나라에서 사족이상의 사람들은 수천 년의 구습에 젖어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며, 부유함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거만하게 무위도식하면서 그것이 자기들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주색에 빠져 앞뒤 분별을 못하는 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 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 것인가. - P135

오늘날 부유한 권력자들을 보면 소름 끼치게 똑같지 않나.

학문을 하는 목적은 독서를 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에 있다. 그 활동을 통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observation은 사물을 관찰하거나 현장에 직접 가서 시찰하는 것을 말하며, reasoning은 사물의 이치를 추구하여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학문의 연구를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외에 많은 책을 읽고 책을 저술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담화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학문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곧 시찰이나 추구 또는 독서는 지식과 식견을 넓혀 그것을 교환하는 것이고, 저술이나 연설은 지식과 식견을 넓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 중에는 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담화나 연설은 상대가 필요하다. 연설회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P149~150

독서를 하고 나서 끝이 아니라 이를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서 모임이나 강연회 등을 통해서 책에 대한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듣고 의견 교환을 하는 활동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 취사선택을 정확히 해야 한다. 학문은 그러한 판단력을 키우는 것에 있다. - P183

이로써 후쿠자와 유키치의 3부작 중 2권을 읽었다. 아까워서라도 남은 저작을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이 내용은 당시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도 유용한 교훈이 많아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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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4-13 0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온 책이기는 하지만, 지금 보고 배울 것도 있겠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는 한국도 비슷하군요 지금은 좀 달라졌을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13 09:11   좋아요 1 | URL
주제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지금도 생각할 수 있는 조언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을 상대로 한 연설 내용이기 때문에 더 그런 취지를 살리려고 했던 것 같아요.
고부 간의 갈등은 지금도... 쉽지 않은 듯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목표는, 인정에 따라 우선 각자의 행동을 바르게 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사물에 대해 폭넓게 알고 각자 자기 신분에 맞는 지혜와 덕성을 갖추며, 정부는 정치를 알기 쉽게 베풀고 모든 인민이 정부의 지배를 받아 고통받지 않도록 하여, 서로가 소임을 다하고 전국의 태평을 지키려는 것일 뿐, 지금 내가 권장하려는 학문도 오직 그것을 위해서이며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 P33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이것을 서양말로는 reciprocity 또는 equality라고 한다. - P43

대개 유럽이나 미국의 나라들은 부유하므로 강하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들은 가난하여 약하다. 그러나 이러한 빈부강약은 그 나라의 지금의 상황이며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 나라의 부강한 힘만믿고 빈약한 나라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가 완력으로 병약한 사람의 팔을 비틀어 꺾는 것과 다름없다. 이것은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 볼 때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최근 우리 일본도 지금과 같은 상황으로는 서양 나라들의 부강함에 미치지 못하지만 국가의 권의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도리에 벗어난 부당한 행위를 당했을 때에는 세계가 다 적이 될지언정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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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강대국이 되었을 때 한 행동은? - P47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정부가 하고 그들의 지배를 받는 것은 인민이지만, 그것은 단지 편의상 서로의 역할을 분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라 전체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을때는 국가를 정부에만 맡기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인민의 본분에서도리가 아니다. - P51

원래 용기란 독서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독서는 학문을함에 있어 기술에 해당하고, 학문은 일을 성취하는 데에 기술이 된다. 현장에 가서 실제로 접해 보고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그일에 대해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 P81

정부는 법을 만들 때에는 될 수 있는 대로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법은 반드시 엄격하게 실시하여야 한다. 한편 인민은 정부가 만든 법을 지키는 데불편한 점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그것을 정부에 호소해야 한다.
그러나 이미 법이 시행된 것은 사적으로 그 법의 시비를 논하지 말고 지켜야 마땅하다. - P91

대개 국민 한 사람에게는 두 개의 역할이 있다. 하나는 정부 밑에 속한 국민으로서의 입장이다. 곧 손님에 해당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민 전원의 합의에 의해 하나의 국가라는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그 회사의 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입장이다. 곧 주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 P94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외국과 조약을 체결하는 것도 모두정부가 맡은 권한이며 그 권한은 원래 인민이 정부에 부여한 것이므로 정부의 정책과 관계없는 사람은 결코 그것에 대하여 논의할자격이 없다. 만약 인민이 그 정신을 잊어버리고 정부의 정책이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멋대로 물의를 일으켜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하여, 심지어 외국과의 전쟁도 불사한다며 폭거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면 나라의 정치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
이건 아님. 내 나라가 전쟁을 불사한다면? 위에서 엉망인 조약을 맺고 돌아온다면? - P95

인민은 평소부터 정부의 국정 처리를 잘 살펴보고불안한 점이 있으면 거리낌없이 성심껏 그 잘못된 점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 - P98

주인을 위해서라든가 주인에게 면목이 없다며 오직 자신의 생명 하나만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해서 도리를 몰라 생기는 일이다. 문명의 대의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생명을 바칠 곳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P102

그 뜻은 아무리 음란한 남편이라도 남편인 이상 어떠한 치욕을 당해도 따를 수밖에 없고 오직 마음에도 없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의무만 있을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인의 의견에 따르고 안 따르는 것은 오직 방탕한 남편의 마음에 달려 있을 뿐이므로 남편의 마음이 곧 천명(天命)이라고 생각할 뿐 별다른 방법이 없다. 또한 불교 서적에는 여자는 죄 많은 사람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여자는 태어나면서부터 큰 죄를 지은 죄인이란 말인가. 그 밖에도 일방적으로 여자들을 질책하는 말들은 수없이 많다. 예를 들면 『대학』에 부인의 칠거(七去)123)라는 말이 있는데, 여자가 음란하면 이혼을 당해도당연하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것은 남자를 위해서는 아주 편리한 내용이다. 너무나 일방적인 얘기가 아닌가. 결국 남자는 강하고부인은 약하다는 힘의 논리에 의해 남녀를 상하로 나누는 명분을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애도시대 중엽의 교훈서인 ‘여대학’에 대한 비판. 조선도 삼종지도를 강조하던 모습에서 비슷하다. - P113

부모가 자식의 재산을 탐하고 시어머니는 며 스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며 자식부부를 시시콜콜 간섭하고 이치에 맞지도 않는 생각을 옳다고 하며 자식의 의견은 입 밖에도 낼수 없게 한다. 며느리는 마치 지옥 같은 생활을 하며 자고 먹고 사는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부모 마음에 거스르면 불효자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도 시부모가 지나치다고는 생 - P117

각하면서도 자기 일이 아니므로 시부모의 편을 들어 불효하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혹은 어떤 사람은 이(理)와 비리를 가리지 말고 부모에게 적당하게 거짓말을 하라며 거짓 행동을 권하기도 한다. 이것을 어찌 가정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어머니의 됨됨이는 며느리 적에 이미 알 수 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시집살이 시킬 때에는옛날 자신의 시집살이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P118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일신일가를 이루고 의식을 해결했다고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사람의 천성에는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약속이 이미 있으므로 인간교제에 참여하여 그 일원으로서 자기의 입장을 자각하고 세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안 된다. - P128

우리나라에서 사족이상의 사람들은 수천 년의 구습에 젖어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며, 부유함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도 모르고 거만하게 무위도식하면서 그것이 자기들의 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사람들은 주색에 빠져 앞뒤 분별을 못하는 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런 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 것인가. - P135

명분은 이미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다만오해가 없도록 한 가지 덧붙여 말하면 여기서 말하는 명분은 허식적인 명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허식적인 명분은 상하 모두에게 쓸모가 없는 것이다. 허식적인 명분을 떠나 실질적인본분을 성실히 수행하면 명분이 있어도 상관이 없다. - P145

학문을 하는 목적은 독서를 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활동에 있다. 그 활동을 통하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 P149

있도록 여러 방면의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observation은 사물을관찰하거나 현장에 직접 가서 시찰하는 것을 말하며, reasoning은사물의 이치를 추구하여 자신의 논리를 세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만으로 학문의 연구를 다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외에 많은 책을 읽고 책을 저술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 담화도 하고자신의 의견을 펼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학문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곧 시찰이나 추구 또는 독서는 지식과 식견을 넓혀 그것을 교환하는 것이고, 저술이나 연설은지식과 식견을 넓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것들 중에는혼자의 힘으로 가능한 것도 있지만 담화나 연설은 상대가 필요하다. 연설회가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 - P150

원망은 인간교제에 해가 된다. 그 원인을 따져 보면오직 그것은 궁(窮)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궁함이란곤궁이나 빈궁 등의 궁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언路)를 막고 활동을 방해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스런 활동을 막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약 빈궁과 곤궁이 원망의 원인이 된다 - P161

현재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장사는 잘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장부의 총점검이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잘 파악한 뒤 나아갈 방향을 확실히 하는 것은지혜의 사업에서의 재고조사이다. - P174

무엇을 믿고 무엇을 의심할 것인가취사선택을 정확히 해야 한다. 학문은 그러한 판단력을 키우는 것에 있다. - P183

만약 다른 사람들의 일에 불만이 있으면 자기자신이 직접 그 일을 한번 해보라. 다른 사람의 장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직접 장사를 한번 해보라. 옆집 사람이 단속을잘못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이 한번 그렇게 해보라. 다른 사람의 저서를 비평하고 싶으면 먼저 자기가 한번 책을 써보라. 학자를 비평하고 싶으면 먼저 학자가 되어 보라. 의사를 비평하고 싶으면 먼저의사가 되어 보라. 세상의 중요한 일에서 사소한 일까지 어떠한 일이든지 다른 사람의 행동에 참견을 하고 싶으면 먼저 자기가 그 입장이 되어 활동해 보라. 혹은 전혀 다른 직업이라면 서로의 일의어려움이나 의미를 잘 생각해볼 일이다.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일지라도 서로의 활동을 잘 비교해 보면 그렇게 크게 그릇된 판단은 하지 않을 것이다. - P202

영예와 인망은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추구할 때 자기의 본분에 맞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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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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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북조선'이라는 국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들의 행위주체성의 다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단을 가로질러 이주하면서 탈분단적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코즈모폴리턴적 주체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가부장적 체제에서 '어머니' 역할에 골몰하는 이들도 있고 도다른 이들은 좀더 자유롭고 독립된 주체성을 체현하기도 한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구조를 무력화하는 일상적 실천에 나서는 이들도 상당하다. 수많은 얼굴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좀더 다가가는 것은 남한사회와 사람들의 정체성에 깊게 내재해 있는 분단을 반추할 기회이기도 하다. - P10~11

북한은 어떤 나라인가?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분단이 되고 한국 전쟁이 끝난지도 70여년이 지났다.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는 커졌고 냉전 종식 이후에는 북한이 핵 개발에 들어가면서 안보적 이슈까지 더해져 통일이라는 단어는 이제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북한을 생각하면 우리는 이념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국가론적으로 인식하기 쉽다. 그래서 북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을 둘러싼 이분법적 사고 체계에 문제점을 먼저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연구자가 쓴 글은 대체로 학술적이어서 딱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는 북한대학원 교수로 사회과학적 글쓰기에 익숙하다고 고백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작가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산문 형식으로 글을 써 내는 실험을 감행했다. 쉽지는 않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보인다.

이 책의 중심에는 북한 여성이 있다. 작가는 여러 명의 북한 여성들을 인터뷰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해냄으로써 북한의 현실과 여성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전체적으로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북한의 현대사에서 북한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북한에서 선전을 목적으로 소개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북한의 역사를 빠르게 훑어내려가면서 2000년대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이 버무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2부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의 북한 여성과 조선족, 자이니치와 북조선 여성들을 작가가 인터뷰 대상으로 만난 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만남을 통해 느낀 작가의 소감이나 소회도 함께 실었다. 3부는 북한 연구자로 북한 여성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깨닫고 그것에 북한 여성들과의 만남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재인식하게 되었는지 정리하였다.

그동안 북한 역사서를 몇 권 읽어보았지만 대부분 학술적으로 정리해놓은 것들이었다. 최근 업데이트된 북한 역사서에는 1990년대 초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각자도생을 위해 시장인 장마당이 허용되었고 그 중 장사 수완이 있는 이들은 돈주로 성장했고 김정은 정권까지의 역사가 짧게나마 소개되어 있다. 다만 교과서적인 텍스트이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진 느낌이다. 북한 사람들의 생활은 실제로 어떠한지 속속들이 알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가 평소 북한에 대해 보고 듣는 정보는 언론, 통일부 등을 통해서 접하는 제한적인 것들이다보니 사실인지 홍보인지 왜곡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더군다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북한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는 딱히 접할 수 있는 경로가 없다. 이런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서 비로소 접하게 되는 것인데 이 책은 딱딱하게 쓰여지지 않아서 대중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는데다가 북한 현대사도 덤으로 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보여진다.

북한 여성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누구보다 용감했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삶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넘쳤다. 여성들은 아무래도 '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삼시 세끼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 분투해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남한 여성이나 북한 여성이나 같았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난 그녀들이 이주 과정을 회고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는 때로는 너무 사소해서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사선을 넘어온 북조선 여성들의 증언에서 김치, 국수, 고추장과 된장, 삶은 감자, 두부밥 이야기를 좀처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체제, 폭력, 굶주림, 죽음과 생존 등과 같이 북조선을 가리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면 더더욱 그녀들의 '밥'에 대한 깊은 애착을 흘려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녀들의 '밥'이야기를 조금 더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그것이 그녀들의 전쟁과도 같은 삶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라면 먹지 않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으니 '밥'을 마련하기 위한 그녀들의 분투기는 인간이자 어머니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 기록에 다름 아니다. - P242

그녀들의 위치가 그녀들을 제약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들의 눈물겨운 행위주체성은 전복성과 해방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동안 열등감에 휩싸여 중심만을 지향하며 살아온 내가 그들을 만남으로써 조금씩 변화했다. (...) 나는 그녀들의 고통을 통해 나의 삶을 되돌아봤으며, 그녀들의 기쁨과 행복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녀들이 내 안으로 불쑥불쑥 들어온다. - P239

북한 연구자로서 북조선 여성들을 직접 만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 vs 사람'이 아니라 분단 국가에서 사는 남한의 북한 연구자와 북한 여성들의 만남에는 개인적인 감정으로만 정리되기 어려운, 이념과 거리감이 어쩔 수 없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분단은 식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가로막는 현실적인 제약과 장벽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를 깨부수지 않으면 이 체제는 공고히 이어질 수 밖에 없음을 동시에 인식하게 된다.

이 책은 분단된 나라에서 사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론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사람들의 수준에서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지금까지 북한학의 기존 연구는 국가와 민족의 분단을 다루는 까닭에 국가 중심성이 상당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 입장이론과 탈식민주의 문화연구로부터 시작된 나의 문제의식은 다양한 집단의 다층적인 경험을 밝혀냄으로써 억압적 사회구조의 작동 메커니즘의 면면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뒷받침된 것이었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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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4-09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런 연구는 진짜 쉽지 않을듯한데 아주 귀한 책이 나왔네요. 화가님의 이 리뷰 아니었으면 몰랐을 책이네요. 냉큼 담아갑니다.

거리의화가 2023-04-10 09:45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저자의 연구도 소중한데 연구서가 아닌 대중서로 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구요^^ 바람돌이님께도 유용한 책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건수하 2023-04-10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엔 밥에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출근하며 정희진의 공부를 들었는데, 정말 그 놈의 밥이 뭔지...
강경애의 <소금>을 읽으며 소금이 비싸서 간을 맞추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그 마음이 생각납니다 ㅠㅠ

북한에도 사람이 사는 건데, 그 사람 이야기들이 궁금하네요.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출판된 것들이 훨씬 많을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4-10 09:47   좋아요 0 | URL
네. 결국 밥입니다^^ 사람이 먹고 사는데 밥만큼 소중한 게 없는데 말이죠.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모두 다 기아에 허덕이고 (고위층 빼고) 있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람보다는 북한 정권 자체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경향이 더 많아서 아쉽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 북한 사람들의 실상을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생각해요. 이런 류의 다양한 대중서가 나오면 좋겠습니다. 좋은 시도의 책이에요.

희선 2023-04-13 0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한에서 여성으로 사는 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잘 모르지만, 바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가까이 있지만 아주 멀기도 하네요 한국과 북한은 통일을 할지...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하던데... 전쟁보다 평화를 생각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3-04-13 09:13   좋아요 1 | URL
네. 많은 북한 여성들이 분투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 여성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구요. 이념과 사상, 국가 간의 경쟁 때문에 그렇지 우리가 멀게 느낄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ㅠㅠ
이제는 통일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죠. 아예 다른 국가로 생각하고 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