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아사나는 초원의 새로운 황금씨족이 되어 유목 군주로서
‘외튀켄‘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오르두, 즉 조정을 설치하고 그 내부에 다양한 관제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자신을 중심으로 한 행정 체계를 구축함과동시에 외연을 동서로 구분해 종실인 아사나의 자제들에게 백성인 ‘보둔‘을 나누어 통제하게 함으로써 돌궐 국가인 ‘일‘을 새롭게 조직해냈다. - P169

돌궐의 발전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돌궐이 에프탈을 무너뜨리고시르다리야Sir Darya 연안까지 진출함에 따라 동서 교역로 상에 위치한 대 - P182

부분의 오아시스를 부용 집단으로 확보한 것이었다. 이것은 소그디아나Sogdiana(속특粟特) 또는 소그디아Sogdia라고 불리는 오아시스에 대한 통제와 연결되면서 단순히 기존에 몽골 초원에서 접촉했던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국제 상인들, 이른바 소그디아나 출신 상인(이하 ‘소그드 상인‘으로통칭)들을 적극적으로 장악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중국에서부터 페르시아에 이르는 거대 권역이 최초로 하나의 체제로 통합된 사상 유례가 없는 상황의 출현이었다. - P183

이와 같은 외교 관계의 설정은 돌궐이 앞에 열거한 거대한 국가들과 직접 외교 관계를 맺을 만큼의 위상을 가진 국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아사나를 중심으로 한 핵심 집단과 이를 적극 지지하는 연맹 집단, 그리고 국가의 토대가 되는 종속 집단과 그의 외연을 싸고 있는 다양한 부용 집단이 하나로 결속된 제국 규모의 ‘일‘의 성립이었다. 특히 초원만이아니라 이를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오아시스 세계까지자신의 기치 아래 하나로 통합하면서 그 주변에 위치한 거대 문명권을 보다 활발하게 연결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거대한 유목제국인 돌궐은 과거와 같은 분절적인 체제가 아니라 비문 자료에서 ‘퀵 투르크‘라고 부른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세계였다. 그리고 이를 묶어냈던 권위의 근원은 새롭게 등장한 황금씨족이 된 아사나의 성장에서 기인했는데, 이것은 중앙아시아 세계의 향후 전개 과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 P190

돌궐은 유목 권력과 상인 관료집단이 서로의 장점을 바탕으로 이른바 ‘정경유착‘을 통해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려는 ‘중상주의적 교역 국가‘로의 지향을 보여주었다. 돌궐 중심의 국제 질서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재화 구득과 유통 체제구축을 통한 이익의 독점은 유목 군주와 결탁한 일부 상인 관료들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는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결국 유목제국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 P220

타스파르카간사후 계승 분쟁 과정에서잠재되어 있던 앙금이 수조에 대한 원정 실패, 몽골 초원에 있는 투르크계유목 부락들의 반란, 심각한 자연재해, 주변 복속 지역의 이반, 그리고 종실 내부 반대파에 대한 대카간의 공격 등으로 인해 더 이상 봉합되지 못하고 한꺼번에 폭발했던 것이다. - P248

일릭 초르 카간을 밀어낸 아크 탁(백산白山) 주변의 계필과 알타이 서남부에 있던 설연타는 계필추장계필가릉契楞을 베젠 바가 카간(BezenBagha qaghan으로 추정. 이물진막하가한易勿眞莫何可汗)으로 추대하고 탐한산貪汗山(톈산 산맥 동쪽 줄기에 있는 최고봉 보그도 울라) 주변을 근거지로 삼아국가 건설을 선언했다. - P268

이때 양제가 무리하게 북순을 추진한 것은 적대 세력화하고 있는 동돌궐을 제압해 추락한 자신의 권위를 다시금 회복하고자 함이었다. 이제까지 그 어떤 세력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였던 동돌궐을 위압할 수 있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자랑하고자 했으나 이것은 양제의 착각이었다. 견제를 받았다고 판단한 세비 카간은 순행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고이에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했다. 북방 순행을 성공해 대내적 안정을 확보함과 동시에 주변 세력을 위압하려고 했던 양제의 구상은 완전히 무너질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동돌궐의 세비 카간은 대규모의 기습 공격을 펼쳐 북순에 나섰던 양제를 포위 공격함으로써 연이은 고구려 원정의 실패로 약화된 수조에 치명타를 날렸다. 돌궐은 이를 계기로 수조의 붕괴를 가져오게 했을 뿐만 아니라 일릭 뒤 카간 이래 중국의 종속 변수로 저락低落했던 자신들의 처지를 반전시켜 오히려 중국을 압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 - P292

이후 동돌궐은 혼란에 빠진 북중국의 다양한 할거 세력들과 관계를 설정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대신해 국제 질서를 주도하며 과거 거대 유목제국 돌궐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돌궐은 수조가 중국을 통일한 뒤 동서의 분열과 상쟁으로 고비 남부로 내려가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서 세계를 연결하는 교통로를 재개통해 교역을 지향하는 체제를 다시 구축해낼 수 있느냐의 시험대에 올라섰다. - P293

동돌궐은 중국 내지에 적극 간섭해 자신들의 이익과 위상을 확보하면서 이를 보다 쉽게 만들기 위해 심지어 양제 사후에 수조를 다시 복벽시켜 괴뢰 정권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양정도 정권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동돌궐이 주도한 복벽이 오히려 기존 북중국 여러 할거 세력과의 갈등을 유발했을 뿐만 아니라 명분에서도 수조를 원하지 않던 상황을 고려해보면 정당성조차 얻지 못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게다가 북중국에 대한 약탈을 계속 벌인 것 역시 중원 세력과의 갈등을촉발하면서 여러 세력 중 하나에 불과하던 당조가 급속하게 성장하는 것을 도왔다. - P3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궐의 경우에도 실현자에 해당하는 아사나가 암이리가 낳은 아들 또는 누르 투르크 샤드를 중개자로 패망한 국가의 귀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내아이 내지는 색국에서 나온 이길 니샤 초르, 즉 파견자와 연결된다. 이런 구성은 공간적으로 실제 ‘이주‘했다기보다 신화에서 현지의 모계 집단이 신의 계시 또는 신의 중개자를 통해 파견자와 연결되고, 그 사이에서태어난 존재가 건국자의 조상이 되는 신화의 일반적인 구조를 그대로 빌려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돌궐 신화는 하늘의 명령을 전달해주는 매개자인 샤먼shaman의 역할을 한 이리가 중개자를 낳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돌궐의 아사나는 이리 신화소를 매개로 자신을 하늘의 명령이나 권위를 전달해주는 존재로 신화 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이것은 아사나가 북아시아에서 내 - P94

려오는 정통성을 계승한 존재가 되었음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것이었다.
게다가 아사나는 자신이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주‘ 내지는 ‘결혼‘이라는 표현을 통해 신화의 서사 구조를 완성시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리는 하늘과 지상의 세계를 연결해 그 축복qut을전달하는 영매로서 아사나에게 정통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리는 원래 소규모 세력인 아사나의 상징이었던 산양을 대신해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95

유목은 특히 자연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항상성이 취약하다 보니 심한 계급 분화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지도자의 혜시가 그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단위가 결성되었는데, 이것이 생활 단위이고 이동의 단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목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었다. 유목민들은 주기적, 계절적으로 이동을 하는 생활방식으로 인해 필요에 따라 생활 단위를 바꾸기도 했다. - P121

또한 유목민들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몰이사냥이나 계절적 이동 내지는 공동 행사 등을 위해 보다 큰 단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것이 유목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단위‘로, 이른바 ‘바그bagh‘라고 불렀다. 그 내 - P121

부에는 씨족clan 정도의 규모를 가진 ‘보드bod‘라는 작은 단위가 여러 개묶인 ‘보둔bodun‘이 있었다. 보드는 대가족 내지 친족 정도를, ‘보둔’은 그것의 복수로 여러 개의 친족 집단이 모인 단위 안에서 ‘지배를 받는 백성‘ 또는 구성원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
그 내부의 최상위에는 ‘벡beg‘이라 불리는 자연 발생적인 지도자가 존재했다.
이들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비록 모계는 달랐지만 동일한 부계를가졌다는 동족의식을 지닌 집단이었다. - P122

씨족 정도 크기의 단위인 ‘바그‘의 상위에 이런 단위 몇 개가 모인 연합체인 일이 있었다. ‘일‘은 개별 친족 집단인 ‘바그‘가 여러 개 모인하나의 연합이라 이른바‘부족部族(tribe)‘ 정도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아사나는 자신을 포함한 열 개의 집안을 중심으로 ‘돌궐‘이라는 ‘일‘을 형성했다. - P123

‘일‘ 내부의 서열을 구축해낼 수 있는 지도자 역시 ‘벡‘이라 불렀는데,
그는 이른바 부족 정도 규모의 구성원들을 거느렸다. 그는 ‘바그‘ 또는 ‘일‘ 내부의 분쟁을 조절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느 역할을 했다. - P124

‘돌궐‘의 ‘벡‘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유목 세계 안에 새로운부족 정도 크기의 연합 체제를 만들고, 이들 상호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위해 권위를 강화하려고 했다. 이것의 성공을 통해 전보다 결합력이 더욱강한 ‘부족연합체部族聯合體(tribe confederation)‘, 즉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는 기존의 일을 대표하는 추장들보다 상위의 지도자인 ‘대추‘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후 부족연합체 정도 크기의 ‘일‘을 이끄는 지도자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력을 통합해 유목 국가를 만들려고 했으며, 실제 상쟁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유목 국가가 출현하기도 했다. - P126

부락 구조를 ‘초부락적‘인 것으로 전환시킨 ‘대추‘는 이를 바탕으로 유목 세계 내의기존 권위를 해소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내적 결속력을 확보하기 위해개별 구성원인 ‘보둔‘을 새롭게 재편하려고 했다. 이를 기초로 대외적 우위를 확보해 내부에 존재할 수도 있는 원심적인 경향을 극복한 초부락적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유목 세계를 대표하는 군주인 ‘카간‘으로 발돋움할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관철시켜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고대 유목 국가 건설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었다. - P127

돌궐의 세력이 확대되어 부족연합체 정도의 규모를 갖춘 ‘일‘이등장하자 이제까지 어느 정도 병렬적이었던 일 내부에도 층위가 발생하면서 핵심 집단을 제외하고 이제까지 하나의 ‘돌궐‘을 형성했던 여타 집단들이 연맹 집단으로 변모했다. - P129

바탕으로 강력한 유대의식을 공유하며 하나의 세력인 ‘돌궐‘로 발전했기때문에 핵심 집단과 자신들이 공동운명체라고 여겼다. 따라서 이들을 기초로 다른 족속들을 포섭하면서 부족연합체가 형성되었고, 핵심 집단의지도자인 아사나의 추장 튀멘 역시 자신을 자연 발생적인 의미의 추장인 ‘벡‘이 아니라 ‘샤드‘라든가 ‘야구‘ 같은 관직명으로 칭할 수 있었다.
아사나를 배경으로 성장한 튀멘은 자신의 지배력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기존 부족연합체 규모의 단위를 해체해야만 했다. 그리고 종실, - P130

즉 핵심 집단의 일원을 그 통치자로 삼아 병렬식 체제에서 벗어나 수직 체계를 갖는 국가 조직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다른 유목 부락들을 복속시켜확대된 종속 집단을 그의 하위에 편입시키고, 이들에 대한 강력한 지배를관철시킴으로써 느슨한 부족연합체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강력한 유목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튀멘은 이를 위해 반드시 기존의 권위인 유연을무너뜨리고 몽골 초원의 패권을 빼앗아야만 했으며, 이는 552년 몽골 초원으로의 진출과 유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 P131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3-07-02 0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 배우면서 스쳐 지나가는 이름이 ‘돌궐‘인데 돌궐족에 대한 책이라니 흥미롭네요. 학교 다닐 때 역사 수업을 좋아했지만 ㅎㅎ 졸업하고 나서는 따로 찾아서 역사책을 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이 두껍지 않다면ㅋㅋㅋ 거리의 화가님 밑줄 긋기 따라 읽은 후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7-02 21:13   좋아요 1 | URL
중국의 수당 시대와 한반도의 삼국 시대와도 연관이 깊은데도 불구하고(특히 고구려) 돌궐의 역사에 대해서는 외교 관계로 짧게 배우는 게 다인 듯 싶습니다. 저도 이참에 들여다보고 있어요. 두껍긴 한데 믿을 만한 연구자가 쓴 것이라 좋습니다. 읽다 보니 밑줄이 너무 많아서 일부 발췌해서 올리고 있네요ㅠㅠ 단발머리님께도 도전의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토지 18 - 5부 3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8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신문에는 온통 전쟁에 관한 기사뿐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신문은 전쟁에 관한 것 일색이었지만 전선이 달라지고 적대국이달라지면서부터 일종의 히스테리처럼 신문지면은 요란해진 것이다. 식량증산, 저축장려, 국방헌금, 유기·기타 금속류의 헌납, 지원병 독려와 아울러 동태 상황에 대한 선전, 각종 단체들은 영일(寧日)없이영미)를 성토하고 각계각층의 인사들은 연일 진충보국(盡忠報國)과 성전환수를 외쳐대고 있었다. 특히 지식층, 그 중에서도 글 써서 행세해왔던 문인들 문학단체들은 남 먼저, 보다 과격하게 일왕(日)에 대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결사보국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마치 총 든 놈이 뒤에서 목덜미를 겨누고 있기라도 하듯이. - P53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일으켰고 미국이 참전하면서 전쟁은 격화되었다. 그러나 1943년 2월 1일 일본은 과달카날에서 철수하였고 4월 18일 일본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비행기 속에서 사망하였다. 2월 2일 독소전쟁의 격전지인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 원수인 파울루스가 항복한다. 7월 25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체포되고 같은 달 28일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이 해체되면서 침략국의 전세는 전체적으로 어두워졌다. 같은 해 조선에는 3월 1일 징병제가 공포되고 8월 1일에 시행되었다. 6월에는 학도 전시동원체제 확립 요강을 결정하고 10월에 실시되었다. 3월에는 친일 문화 단체를 통합한 반도문인보국회가 결성되었다.

8월 9일 조선식량관리령(식량의 수급 및 가격을 조정하고 배급의 통제를 목적으로 함. 정부는 매입한 미맥을 조선식량영단이나 조선 총독이 지정하는 자에게 매도하거나 기타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음)이 공포되어 식량 배급제가 시행되면서 식민지 조선 경제는 더욱 말이 아니게 되었다. 일본은 식민지의 식량을 통제하는 동시에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모두 쓸어갔고 이에 피해를 보는 것은 가난한 대중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대중을 이끌어가야할 지식인이나 경제계 인사들은 일본의 권력에 빌붙어 조선인들을 탄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에 동원하는 데 앞장섰다.
이 무렵 학교에서 하는 교육이라고는 군사 훈련 과 근로 봉사였다. 결국 전쟁 예비 훈련인 셈인데 아이들을 이러려고 교육받게 한 것은 아닐텐데 참 헛웃음이 나왔다. 천으로 무슨 머리를 가릴 것이며 목검으로 무슨 싸움이 되겠는가. 막상 조선 내 전쟁이 벌어진다면 공멸이 아니였을까.

중학생, 그들은 과연 학생인가? 카키색 교복에 전투모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고 각반을 다리에 감고 그들은 등교한다. 운동장에서는 연일 목(木)을 들고 군사훈련을 받는 것이 그 지난달 그러니까 팔월에는 드디어 조선에도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조선인에게는 병역을 실시하지 말 것이며 절대로 무장시켜선 아니 된다 하고 명치천황(明治天皇)이 유언을 했다던가 어쨌다던가. 사실이 그렇다면 얼마나 다급했으면 유언을 무시하고 징병제를 시행하겠는가. 아무튼 앞으로 중학교 군사 훈련에 박차를 가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공부 안 하기로는 여학교라고 다를 것이 없었다. 전보다 교련시간이 많아졌고 목검(木劍)이다, 나기나타다 하며 무술시간은 체육이나 무용시간을 완전히 점령했고 모내기에서 보리 베기, 벼 베기에 동원됐으며 폐품수집에서 국채 팔러 다니기, 센닌바리 만들어주기, 공장에서 미완성으로 나온 군테 마무리 작업, 게다가 방학의 십일 간을 반납하고 교사부지 고르는 데 동원된 근로봉사, 그런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고통스러운 것이 방공연습이었다. - P222

"알다시피 요즘 학생들 군사훈련 아니면 군수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노동자들 선동하기, 눈치껏 태업하기, 공장기구 파손, 변소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후미진 곳이라면 어디든 벽면에 낙서하기, 그 낙서의 종류에는 별의별 것이다 있는 모양인데 조선독립만세서부터 귀축 일본 물러가라, 해방의 그날이 오면 너희들 모가지는 추풍낙엽이다. 친일 분자의 모가지부터 비틀어버리겠다 등등 지워도 지워도 끝이 없다는 거고, 하는 수 없이 학교 당국에서는 호주머니 속에 백묵이나 연필 따위가 들어 있는지 조사를 해서 들여보내는데도낙서는 줄지 않는다는 거다. 요즘 애들 결코 정면 대결은 하지 않아."
"신통하군요."
"그 애들 보면 희망이 생겨, 옥쇄가 아니고 지속성이거든." - P334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조선인 아이들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오오 덴노사마." 천황을 부르는 말에 웃었다는 이유로 뺨을 갈긴 일본인 선생에 그 학생은 반항을 했고 조선 말을 쓴다 하여 조선인 선생이 벌을 준 일이 교내에 퍼지자 학생들은 흥분하고 분개했던 일도 있었다. 여러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도 조선인 학생들은 갖은 행위로 학교 당국에 경고장을 날렸다.
'아이들, 학생들이 희망이다'. 이것이 전쟁의 흐름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결국 학교 내에는 균열을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그 많은 학생들을 모두 단속한다는 것은 불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선의 악화로 학교도 예비 군사 훈련소가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선생들도 아이들을 억지로 붙잡아 두고 학생들을 일탈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18권에서 크게 두 가지의 사건이 있다.

양현과 영광, 윤국의 이야기가 있었다. 영광은 양현이를 열망하듯 사랑했으나 윤국이의 벽을 인식하면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그는 양현의 마음을 끝내 거부했고 양현은 그런 영광의 마음을 알면서도 괴로워한다. 양현은 윤국과 결혼하라는 서희의 말에 고뇌하고 윤국은 또 윤국대로 고뇌한다. 결국 셋 다 외로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싶어서 마음이 짠했다. 양현이의 사정을 안 명희도 그 옛날 통영에서 방황하던 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당시 썩은 동아줄을 잡았던 명희는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데까지 갔었기에 양현이가 자신과 같은 상황을 마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명희는 자신의 감정과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양현을 부러워한다. 그런 점에서 명희는 여전히 과거를 털어내지 못한 것 같다. 세월이 지난다고 흉터가 저절로 아무는 것은 아니다.

욕망과 희생의 싸움이었다. 사람 속으로 뛰어들어 자기도 한몫을 하겠다는 충동과 세상을 바라보며 국외자로서 흐르는 대로 흘러가겠다는 에고이즘과의 싸움이었다. 집념과 포기의 싸움이었다. 도덕과 반도덕, 그에게는 윤국이 거대한 성(城)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광은 더욱더 자신이 피를 많이 흘려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것은 믿지 못할 자기 성격적 결함이었다. 제2의 혜숙을 또 만들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은 그의 전진에 제동을 걸었다. 영광은 양현을 사랑했으며 이 세상에 나와서, 가장 강렬한 집념이었다. - P266

팽팽하게 당겨진, 결코 누그러질 수 없는 긴장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양현은 계속해서 울었다. 명희는 저도 모르게 뜨개질하다 만 것을 집어들었다.
‘언제나 그렇게 엇갈려. 왜 그렇지?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간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그런 슬픔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은 살아가고, 얼마나 신기한 일이냐? 양현아, 실은 나도 지금 혼란스러워" - P271

불안한 사랑,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랑, 그러나 양현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그 불안한 사랑에 매달려 있는가를 깨닫는다. 외부의 장애보다 영광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이 그 얼마나 큰 것인가를 양현은 새삼스럽게 통감한다. 그것은 그의 처절한 외로움이며 그 외로움을 타고 흐르려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양현은 그를 꽉 붙잡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의 외로움을 녹여주리라! 마치 영광이 옆에 있는 것처럼 그러는가 하면 등을 돌리는 뒷모습에 매달리는 광경을 보기도 하고 영원히자기 앞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그 돈암동 거리를 눈앞에 떠올려보기도 한다. - P302

윤국은 차안에 서서 피안의 양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강을 결코 건너지 못하리라는 것을, 피안에 닿지 못하리라는 것을 윤국은 깊이 깨닫는다. 양현은 양현의 길을 가고 자신은 자기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 P325

김두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그는 기생인 월화와 바람을 피우는데 정부가 된 서울댁(조강지처였던 막딸은 결국 호적을 팠음)은 이에 노발대발 사건은 터졌다. 그는 진주에서 음식점을 차려 두만이네 식구를 먹여 살린 만큼 지금의 김두만 부는 서울댁의 지분을 무시할 수가 없다. 물론 막딸을 버리면서 부모와도 갈라서고 서울댁은 집안에서 전횡을 부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바람 피운 것이 자랑은 아니지 않나. 그 때 막딸을 때리고 내칠 때도 '미친 놈 개자식!' 욕지거리를 했었는데 정말 끝내 이 놈은 변하지가 않는구나 싶어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허무해서 아마 그러실 거다.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고."
"허무해서 그렇다는 말엔 나도 동감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사업은 올스톱, 돈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부동산 매매나 된단 말가, 땅에서는 공출로 몽땅 나가버리니, 전쟁은 불리하고………… 현재를 실감하는 데 여자밖에 더 있어? 나 역시 그래.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지. 나는 출발에서부터 야망 같은 것 없었으니까, 자네들 수재하고는 형편이 달랐어. 한순간 순간을 즐기다가 가는 거지 뭐. 어차피, 땅속에 들어가 썩을 몸 아닌가." - P346

"네년이 나한테 칼을 들이대 놓고서도 그 자리가 온전할 것 같나? 독사 같은 년, 내가 그거를 모리고 이날까지 살았제. 만정이 떨어진다." 또 서울네는 새우같이 등을 꾸부리고 앉아서 눈을 치뜨고 두만을 노려본다. 힘이 다 빠져서 입도 몸도 뜻대로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래가지고는 어디 마음 놓고 집이라고 찾아오겠나? 저년은 서방 밥그릇에 비상 타고도 남을 년이다. 생각해보믄 저년으로 인해서 부모 형제하고 등졌고 죄 없는 제집 민적까지 파고 자식 놈은 저 모양..…………."
새우처럼 꾸부리고 있는 서울네 등이 튀듯 움직였다. - P352

어느덧 1943년을 지나고 있다. 19권은 보나마다 더욱 각박해진 전황 때문에 암울한 일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도시에는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물들기 시작한 가로수 아래, 얼음 갈라지는 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서늘하고 푸른 하늘 아래,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는 군상들, 누더기 같은가 하면 곤충 같기도 한 군상들이 서로 방향을 달리하며 혹은 같이하며 가고 있었다.
낡은 상자 같은 트럭이 달리고 짐 실은 우마차도 지나가고 있었다. 여인을 신이 만든 꽃이라 했던가, 자연의 열매라 했던가. 꽃으로도 열매로도 볼 수 없는 몸뻬 차림의 우중충한 모습들, 남자들은 한결같이 카키색, 사람들에게는 계절이 없었다. 배급소에서 식량을 달아주고 배급표를 챙기는 그 현실만이 있었을 뿐이다. - P25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3-07-02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생들한테 군사훈련까지 시키다니, 그게 오래 남았던 것 같네요 지식인은 전쟁에 나가야 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보다 더 일본 사람 같은 조선 사람도 있었겠지요 그런 사람은 조선이 독립했을 때도 달라지지 않았네요 학생들이 일본에 반항하기도 하다니 대단하다 싶기도 해요 제가 학생이었다면 그러지 가만히 있었을지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02 21:18   좋아요 1 | URL
얼마 전에 읽었던 ‘제국의 소녀들’이란 책에도 40년대 무렵이 되면 군사 훈련하고 농촌 봉사 하고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조선인이 세운 학교가 일본인 교장, 일본인 교사가 대부분인 곳으로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이렇게 반항하는 모습이 아슬아슬하기도 하면서도 대견하더라구요. 어른들도 독립운동을 접고 친일로 전향하는 마당에… 그래서 아이들이 희망이다 싶더라구요^^*

독서괭 2023-07-12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읽었네요! 18권, 학교 이야기 재밌었어요. 똥 싼 이야기에,, 심각한 학교 상황인데도 큭큭 웃었네요. 아휴.
양현이 너무 안됐어요. 윤국이도 안 되긴 했지만, 양현이가 여러모로 훨씬 힘든 상황이겠죠. 그래도 말못하고 결혼해버리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우리 이제 두권 남았어요~~으흐흐~~^^

거리의화가 2023-07-13 08:53   좋아요 0 | URL
똥싼 이야기는 상황은 심각했을지라도 조선인 입장에서는 사이다일 수밖에 없죠! 19권 읽고 있는데 양현이랑 영광이 이야기가 또 나오더라구요. 영광이는 환국이와도 관계가 애매해지고. 윤국이는 다시 휙 떠나고 안쓰럽습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괭님도 남은 분량 화이팅입니다!
 

"니 내 할 것 없이 다 마찬가지 아니겠소. 기생들이 몸뻬 입고 훈련받으러 나가야 하고 근로봉사 하러 나가야 하고………… 옥봉에서도 장사하는 집 몇 안 돼요. 그놈의 나아리들 땜에, 흥!
반시국적 분자다, 입으로는 그러지마는 금주할 수 없는 높으신 나아리..…… 덕분에 이럭저럭 아직은 문을 안 닫았을 뿐이지" - P332

"알다시피 요즘 학생들 군사훈련 아니면 군수공장에 가서 일하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노동자들 선동하기, 눈치껏 태업하기, 공장기구 파손, 변소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후미진 곳이라면 어디든 벽면에 낙서하기, 그 낙서의 종류에는 별의별 것이다 있는 모양인데 조선독립만세서부터 귀축 일본 물러가라, 해방의 그날이 오면 너희들 모가지는 추풍낙엽이다. 친일분자의 모가지부터 비틀어버리겠다 등등 지워도 지워도 끝이없다는 거고, 하는 수 없이 학교 당국에서는 호주머니 속에 백묵이나 연필 따위가 들어 있는지 조사를 해서 들여보내는데도낙서는 줄지 않는다는 거다. 요즘 애들 결코 정면대결은 하지않아."
"신통하군요."
"그 애들 보면 희망이 생겨, 옥쇄가 아니고 지속성이거든." - P334

"어떤 경우에도형, 징용만은 피해야 합니다. 한 번 죽는 게 아닙니다. 차라리 형무소에 들어가는 편이 나아요. 여기서는 실정을 잘 몰라서 설마 하는 경향이 있고………… 동경서 비밀히, 징용자들이 종사하는 곳의 실태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보았는데 한마디로 지옥입니다. 매 맞고 고문당하고 그런 차원을넘어섰어요. 굶겨가며 일을 시키다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되면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사람을 생매장하기 아니면 숲 속에던져서 야수들이 뜯어먹게 하는 겁니다. 숨을 쉬는데 콧구멍에서 구더기가 기어나와요."
수관은 몸서리쳤다. 말하는 윤국이도 술잔을 들며 눈을 감았다. - P336

"허무해서 아마 그러실 거다. 돈이 많아도 쓸 곳이 없고."
"허무해서 그렇다는 말엔 나도 동감이다. 자네도 알다시피사업은 올스톱, 돈의 가치는 날로 떨어지고 부동산 매매나 된단 말가, 땅에서는 공출로 몽땅 나가버리니, 전쟁은 불리하고………… 현재를 실감하는 데 여자밖에 더 있어? 나 역시 그래.
마음 붙일 곳이 있어야지. 나는 출발에서부터 야망 같은 것 없었으니까, 자네들 수재하고는 형편이 달랐어. 한순간 순간을즐기다가 가는 거지 뭐. 어차피, 땅속에 들어가 썩을 몸 아닌가."
-> 개망나니들. - P346

"네년이 나한테 칼을 들이대 놓고서도 그 자리가 온전할 것같나? 독사 같은 년, 내가 그거를 모리고 이날까지 살았제. 만정이 떨어진다." 또 서울네는 새우같이 등을 꾸부리고 앉아서 눈을 치뜨고 두만을 노려본다. 힘이 다 빠져서 입도 몸도 뜻대로 놓아주지 않는것 같았다.
"이래가지고는 어디 마음 놓고 집이라고 찾아오겠나? 저년은서방 밥그릇에 비상 타고도 남을 년이다. 생각해보믄 저년으로인해서 부모 형제하고 등졌고 죄 없는 제집 민적까지 파고 자식놈은 저 모양..…………."
새우처럼 꾸부리고 있는 서울네 등이 튀듯 움직였다. - P352

"사람들은 해악을 당할까봐 두려운 거야. 미운 놈 떡 하나더 준다는 말도 있지 않아? 왜 떡 하나를 더 주겠니? 제발 해코지 말고 물러가라는 뜻이지. 악신을 달래는 것도 우리들 풍속이야. 어떤 면에서는 아주 노회한 생각이지만, 그리고 또 일부에서는, 소위 친일 패거리들인데 그 여자 뒤에 엄청난 힘이 있는 거로 착각을 하고 이용해보려는 속셈도 있겠지. 그 여자는그렇게 생각하게끔 하는 데는 비상한 재주가 있는 모양이고,
하기야 뭐 경찰 간부의 정부면 힘이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 - P414

탱화에서 눈을 떼고 백씨를 바라보던 명희는 여간하여 그 예배가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다시 관음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순간 명희는 참으로 기이한 충격을 받는다. 그렇게 현란하게 보이던 관음상이 폐부 깊은 곳, 외로움으로 명희 이마빼기를 치는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명희는 자기 마음 탓이려니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이었다. 숙연한 슬픔, 소소한 가을바람과도 같이 영성(靈性)을 흔들며 알지 못할 깊고도 깊은 아픔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원초적이며 본질적인 것으로 삼라만상에 대한 슬픔인 것 같았다.
법당에서 나왔을 때, 선명한 단풍과 아직은 푸름이 남아 있는 맞은편 숲이 투명한 푸른 하늘에 묻어날 듯 명희 시계에 들어왔다. 마치 인생의 한 고개를 넘은 듯 명희 입에서 가느다란한숨이 새나왔다. 도대체 김길상이란 누구냐 하는 의문도 명희마음속에서 강하게 소용돌이쳤다. - P426

"철없는 젊은이들은 산에 들어만 가면 솔잎을 뜯어 먹더라도살 수 있다 생각할지 모르나 실제 있어보면 그렇게는 안 되어있거든. 첫째는 식량이 문제고 산이 표적이 되어서도 곤란한일이지요."
"그건 그렇소."
"그렇다고 해서 명을 걸고 들어오는 사람 막을 수도 없는 일아니겠소?"
"평사리 우가 놈, 면소에서 서기질을 하는 그런 놈이 하나 있어요. 그놈이 사냥감을 찾듯이 며칠 전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간 일이 있었지요. 그놈을 잡아 없이하는 거야 어려운 일 아니나 일이 크게 벌어져서 산사람들 많이 다칠까 싶어서."
"한 놈이 와서 뭘 어떡하겠소. 이 넓은 산중에서."
"그도 그렇지만 들어오는 사람 중에 염탐꾼이 끼어들 수도있을 것이며 미련한 산놈 중에서 내통하는 자가 없으란 법도없지요." - P434

"천지만물의 이치는 하나일세. 공연히 식자들이 그것에다 각기 다른 옷을 입혀 다른 것같이 생각하는데, 내 말을 끝까지 듣게. 그러면 그 옷이란 무엇이냐, 소위 이론일세. 이론이란 꿰맞추거나 틀에다가 넣어서 비어져나오는 것은 짜르고 비어 있는곳은 메우고 반듯하게 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사람 사는 이치가다 드러난 것일까? 아니지. 하기야 끝없이 부연한다 하더라도진리가 도드라질까?" - P443

"되어 있는 밥 엎어버리고 언제 꼬부랑 글씨 배워서 새 밥을 짓누,
내 것을 모멸하고 부수면서 독립운동을 해? 내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려는 마음이어야 독립운동도 되는 거지.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우리들의 대표격이 이 아무개인데, 그자가 독립운동을 안 했던 것도 아니요, 그러나 오늘은 어떠한가? 당연히 갈자리에 가서 서 있는 게야. 하루아침에 변절한 것은 아닐세. 내것을 버려라, 버려, 깡그리 버려야만 우리가 산다, 그러던 자가어찌 끝내 독립지사로 남으리. 결국 본받아라, 본받아라 했던그곳으로 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 아니겠는가. 당연한 귀결이지." - P4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1년부터 알라딘 활동을 시작했다고 되어 있으나 (작년에도 말했듯) 내가 이 곳에서 붙박이로 활동한지는 1~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오래 붙박이로 계시는 분들이 계시지만 소식이 뜸하거나 끊긴 분들도 있고 향후 돌아오겠다 하고 떠나신 분도 계시다. 


매일 밥을 먹고 활동하며 살아가듯 책을 읽고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알라딘 서재인들을 보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다. 그래서 설사 내 글 솜씨가 못나다고 자괴감이 느껴지더라도 더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 하는 자극을 받게 된다. 어쨌든 뒤늦게라도 이 곳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어김없이 올해도 알라딘 X주년이라고 나의 기록을 알려주었다. 매해 보지만 참 생경하다.


SONY CLASSICAL 이 최애 출판사라니 내가 음반을 많이 사긴 했었구나.

최애 분야와 작가는 대략 맞는 것 같은데 결제 금액을 보니 생각보다 덜 샀구나 싶기도 하고!(물론 알라딘에서만 그런 것이겠지)



다른 분들도 이 기록을 만나셨겠지. 올해는 다들 어떠신지 궁금하다^^



얼마 전 내가 쓴 과거의 기록을 살펴 보다가 '아니 왜 이런 고민을 했지?' '몇 년이 지났는데 비슷한 고민을 하다니!' 대부분 일 때문에 속앓이를 하거나 관계로 힘들어하거나 하는 일들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고민은 비슷한 것인가 싶고 특히 왜 우울할 때만 글을 쓰는 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향후 비슷한 고민을 갖게 되더라도 내면이 성장하여 더 단단하게 대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23-06-3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짧은 시간동안 음반을 정말 많이 구매하셨네요? 저는 오래전에는 음반 구매를 곧잘 했었는데 이젠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나네요. 아무튼 우리 책은 많이 사고 돈은 아끼도록 합시다. (응?)

거리의화가 2023-06-30 14: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음반은 몇 년전까지만 구입을 했고 요즘은 커피랑 책만 삽니다. 초반에 음반을 많이 구입해서 저렇게 기록에 잡히는 것 같아요. 알라딘에서 책을 본격적으로 구입한 것은 최근 들어서라서...ㅎㅎㅎ
근데 돈 아끼려면 책을 안 사야할텐데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ㅋㅋㅋ

잠자냥 2023-06-30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 님 정말 짧은 시간 안에 굵직하게 쓰셨습니다...?!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6-30 15: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맞습니다. 짧고 굵게가 이 정도였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네요ㅎㅎㅎ

잠자냥 2023-06-30 15:12   좋아요 1 | URL
뭘 걱정입니까. 가봅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6-30 15:26   좋아요 1 | URL
다함께 굵고 길게 갑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나리자 2023-06-30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기록이세요!!!

거리의화가 2023-06-30 16:27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결국 많이 구매했다는 이야기죠뭐ㅎㅎ

은오 2023-06-30 20: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잉 화가님 서재활동 아직 1-2년차?! 느낌으론 화가님도 여기서 오래 읽고 쓰신 고인물이셨는데 🫢 ㅋㅋㅋㅋㅋ 여기 10년 가까이 그리고 그 이상 활동하신 분들도 많은 거 보면 아직 화가님도 애긔..... 저랑 같이 오래오래 놀아요!!

거리의화가 2023-06-30 20:40   좋아요 3 | URL
맞아요 알라딘 서재 고인물 되려면 멀었습니다! 10년은 넘어야…ㅎㅎ 은오님 어디 가지 마시고 여기 꼭 붙어서 읽고 쓰며 계속 함께 해요!^^

새파랑 2023-06-30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가님의 최애분야는 한국 근현대사군요 ^^ 역시 역사 하면 화가님~!!
알라딘 25주년에도 화이팅 입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3-07-01 12:1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새파랑님은 역시 소설 분야가 최애분야시죠^^ 내년에는 얼만큼 기록이 쌓일지 궁금해집니다. 새파랑님도 25주년 화이팅!

희선 2023-07-02 0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많이 사셨군요 이런 거 보면 저는 부끄럽습니다 책은 읽지만 산 건 얼마 안 돼서... 그저 이런 게 있구나 할 뿐입니다 거리의화가 님 앞으로도 책 즐겁게 사시고 즐겁게 만나세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02 21:15   좋아요 1 | URL
그저 기록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써 놓고 보니 부끄러워서 민망해집니다ㅎㅎㅎ 저는 이 곳에서 희선님을 만나게 된 것이 기쁘네요. 앞으로도 계속 희선님의 글을 만나고 싶습니다^^

자목련 2023-07-03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기협 작가를 검색하는 페이퍼!

거리의화가 2023-07-03 10:22   좋아요 0 | URL
ㅎㅎ 검색하시다니 제 숨은 의도가 성공했군요! 감사합니다 자목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