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궐의 경우에도 실현자에 해당하는 아사나가 암이리가 낳은 아들 또는 누르 투르크 샤드를 중개자로 패망한 국가의 귀한 존재로 여겨지는 사내아이 내지는 색국에서 나온 이길 니샤 초르, 즉 파견자와 연결된다. 이런 구성은 공간적으로 실제 ‘이주‘했다기보다 신화에서 현지의 모계 집단이 신의 계시 또는 신의 중개자를 통해 파견자와 연결되고, 그 사이에서태어난 존재가 건국자의 조상이 되는 신화의 일반적인 구조를 그대로 빌려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돌궐 신화는 하늘의 명령을 전달해주는 매개자인 샤먼shaman의 역할을 한 이리가 중개자를 낳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돌궐의 아사나는 이리 신화소를 매개로 자신을 하늘의 명령이나 권위를 전달해주는 존재로 신화 속에 그려낼 수 있었다. 이것은 아사나가 북아시아에서 내 - P94
려오는 정통성을 계승한 존재가 되었음을 은유적으로 설명한 것이었다. 게다가 아사나는 자신이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이주‘ 내지는 ‘결혼‘이라는 표현을 통해 신화의 서사 구조를 완성시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이리는 하늘과 지상의 세계를 연결해 그 축복qut을전달하는 영매로서 아사나에게 정통성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리는 원래 소규모 세력인 아사나의 상징이었던 산양을 대신해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P95
유목은 특히 자연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 항상성이 취약하다 보니 심한 계급 분화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지도자의 혜시가 그 사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지도자를 중심으로 공동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단위가 결성되었는데, 이것이 생활 단위이고 이동의 단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목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부부와 미혼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이었다. 유목민들은 주기적, 계절적으로 이동을 하는 생활방식으로 인해 필요에 따라 생활 단위를 바꾸기도 했다. - P121
또한 유목민들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몰이사냥이나 계절적 이동 내지는 공동 행사 등을 위해 보다 큰 단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것이 유목 사회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단위‘로, 이른바 ‘바그bagh‘라고 불렀다. 그 내 - P121
부에는 씨족clan 정도의 규모를 가진 ‘보드bod‘라는 작은 단위가 여러 개묶인 ‘보둔bodun‘이 있었다. 보드는 대가족 내지 친족 정도를, ‘보둔’은 그것의 복수로 여러 개의 친족 집단이 모인 단위 안에서 ‘지배를 받는 백성‘ 또는 구성원 정도의 의미를 가졌다. 그 내부의 최상위에는 ‘벡beg‘이라 불리는 자연 발생적인 지도자가 존재했다. 이들은 같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비록 모계는 달랐지만 동일한 부계를가졌다는 동족의식을 지닌 집단이었다. - P122
씨족 정도 크기의 단위인 ‘바그‘의 상위에 이런 단위 몇 개가 모인 연합체인 일이 있었다. ‘일‘은 개별 친족 집단인 ‘바그‘가 여러 개 모인하나의 연합이라 이른바‘부족部族(tribe)‘ 정도의 규모라고 할 수 있다. 아사나는 자신을 포함한 열 개의 집안을 중심으로 ‘돌궐‘이라는 ‘일‘을 형성했다. - P123
‘일‘ 내부의 서열을 구축해낼 수 있는 지도자 역시 ‘벡‘이라 불렀는데, 그는 이른바 부족 정도 규모의 구성원들을 거느렸다. 그는 ‘바그‘ 또는 ‘일‘ 내부의 분쟁을 조절하고 항상성을 유지하느 역할을 했다. - P124
‘돌궐‘의 ‘벡‘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성장해 유목 세계 안에 새로운부족 정도 크기의 연합 체제를 만들고, 이들 상호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위해 권위를 강화하려고 했다. 이것의 성공을 통해 전보다 결합력이 더욱강한 ‘부족연합체部族聯合體(tribe confederation)‘, 즉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는 기존의 일을 대표하는 추장들보다 상위의 지도자인 ‘대추‘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이후 부족연합체 정도 크기의 ‘일‘을 이끄는 지도자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력을 통합해 유목 국가를 만들려고 했으며, 실제 상쟁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유목 국가가 출현하기도 했다. - P126
부락 구조를 ‘초부락적‘인 것으로 전환시킨 ‘대추‘는 이를 바탕으로 유목 세계 내의기존 권위를 해소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내적 결속력을 확보하기 위해개별 구성원인 ‘보둔‘을 새롭게 재편하려고 했다. 이를 기초로 대외적 우위를 확보해 내부에 존재할 수도 있는 원심적인 경향을 극복한 초부락적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유목 세계를 대표하는 군주인 ‘카간‘으로 발돋움할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방식을 관철시켜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루어내느냐에 따라 고대 유목 국가 건설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었다. - P127
돌궐의 세력이 확대되어 부족연합체 정도의 규모를 갖춘 ‘일‘이등장하자 이제까지 어느 정도 병렬적이었던 일 내부에도 층위가 발생하면서 핵심 집단을 제외하고 이제까지 하나의 ‘돌궐‘을 형성했던 여타 집단들이 연맹 집단으로 변모했다. - P129
바탕으로 강력한 유대의식을 공유하며 하나의 세력인 ‘돌궐‘로 발전했기때문에 핵심 집단과 자신들이 공동운명체라고 여겼다. 따라서 이들을 기초로 다른 족속들을 포섭하면서 부족연합체가 형성되었고, 핵심 집단의지도자인 아사나의 추장 튀멘 역시 자신을 자연 발생적인 의미의 추장인 ‘벡‘이 아니라 ‘샤드‘라든가 ‘야구‘ 같은 관직명으로 칭할 수 있었다. 아사나를 배경으로 성장한 튀멘은 자신의 지배력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기존 부족연합체 규모의 단위를 해체해야만 했다. 그리고 종실, - P130
즉 핵심 집단의 일원을 그 통치자로 삼아 병렬식 체제에서 벗어나 수직 체계를 갖는 국가 조직을 만들었다. 이와 함께 다른 유목 부락들을 복속시켜확대된 종속 집단을 그의 하위에 편입시키고, 이들에 대한 강력한 지배를관철시킴으로써 느슨한 부족연합체가 아니라 이를 뛰어넘는 강력한 유목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튀멘은 이를 위해 반드시 기존의 권위인 유연을무너뜨리고 몽골 초원의 패권을 빼앗아야만 했으며, 이는 552년 몽골 초원으로의 진출과 유연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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