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사랑

사랑에 대한 어떤 위협에도 느끼게 되는 공포는 사랑의 정치적 중요성에 대한 좋은 실마리가 된다. 사랑이 여성 또는 성심리에 관한 어떤 분석에서도 중심적이라는 또 다른 징후는 그것이문화 자체에서 누락되어 있고 ‘사생활‘로 격하되었다는 사실이다.(침실에서의 논리에 관해 들어본 사람 있는가?) 그렇다, 그것은 소설, 심지어 형이상학에까지 그려져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사랑은 묘사되어 있거나 더 낫게 재창조되어 있기는 하지만, 분석되어 있지는 않다. 사랑은 충분히 경험되어 왔고 그 경험이 전달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이해된 적은 없다. - P183

상대방에 대한 존경(선망)은 상대방의 특질을 받아들이려는(소유하려는) 소망이된다. 자아의 충돌은 상대방의 커져가는 지배력을 물리치려는개별적 시도로 이어진다. 사랑은 상대방과 최종적으로 마음을터놓는 것(혹은 상대방의 지배에 굴복하는 것)이다. - P186

우리는 사랑이불평등한 권력 상황에서는 성취할 수 없는 것으로 상호 간의 상처를 요구한다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이상화, 신비화, 찬사를 통해서 여성의 계급적 열등감을 무화시키는 남성의 시각이 교체하는 과정일 뿐이다. - P191

상대방의 진정한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증가하는 것은 ‘맹목적‘인 것이거나 ‘이상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시야가 더 깊어지는 것이다. 파괴에 책임이 있는 것은 우리가 앞서 기술한 허위 이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것은 사랑의 과정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정치성, 즉불평등한 권력관계다. 누가, 왜, 언제 그리고 어디서 하느냐가 지금 사랑을 그러한 대참사로 만드는 것이다. - P192

구속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많은 남성들은 구속이 격해지기 시작할 때마다 나가서 우발적인 연애를 즐긴다. 그러나결국 사랑 없이 사는 것은 여자에게 그렇듯 남자에게도 견딜 수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그러면 모든 정상적인 남성에게 남겨진물음은 어떻게 동등한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얻을 것인가다. - P199

여성을 열등하고 기생적인 계급으로 정의하는 남성이 운영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남성의 승인을받지 못한 여성은 불행하다. 여성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위하여 여자 이상more than woman이어야 하며, 자신이 열등하다는정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출구를 끊임없이 찾아야만 한다. - P200

그녀는 결코 근거 없이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안전성을 보장받아야만 한다.
1) 우리가 보아온 대로, 그녀가 요구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감정적 안정성.
2) 일과 인정을 통해 찾을 수 있어야 하지만 그녀에게는 거부된, 그래서 남자를 통해 그녀의 정의definition를 찾도록 강제하는감정적 정체성.
3) 이 사회에서 남자를 ‘낚는‘ 그녀의 능력과 결부된 경제적 계급의 안전성.
세 요구 중 두 가지는 사랑에는 부당한 조건들이지만 사랑을이용하고 압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여성들은 자발적인 사랑의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다. 그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남성의 사랑과 승인은 지극히 중요하지만 남성의 헌신을 보장받기 전에 생각 없이 사랑하는 것은 그 승인을 잃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이다. - P202

그는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미리 가지고 있던 환상에 맞게 그녀가 연기를 너무 잘했기 때문에 그녀를 들여보낸 것이다. - P205

‘해방된‘ 여성들은 남성들이 따르고 모방할만한 ‘훌륭한 사내들‘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남성의 성적 패턴을 모방함으로써(여기저기에 추파를 던지고, 이상을 추구하고, 육체적 매력을 강조하는 등), 해방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그들이 포기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것에 빠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정신으로부터 비롯된 것도 아닌 질병을 스스로 주입했다.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멋‘이 천박하고 무의미하다는 것, 그 뒤에서 그들의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는 것, 그들이 나이 들고 퇴폐적이 되어 간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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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스톤은 인종차별주의가 권력의 분배에 따른 불평등에서 기인했다고 이야기한다. 성별에 따른 계급이 존재하듯 인종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차별주의는 성차별주의가 확장된 것이라는 결론이다.

하지만 백인 남성이 자기의 여자를 ‘부양하며’ 때리지도 않는다. 백인 남성은 항상 정중하고 친절하며 예의바르다. (168p) -> 이런 구절은 좀 난감해진다. 지나친 비약이며 왜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챕터를 읽으며 여러 권의 책이 떠올랐다.

1. 흑백 분리에 대한 상황을 묘사한 책으로는 <The Help> 가 떠오른다. 영화화도 되었다.

2. 작년 1월에 읽었던 넬라 라슨의 <패싱>은 백인 여성을 동경하는 흑인 여성의 미묘한 마음을 잘 보여줬다. 아이린과 클레어의 삶은 닮은 듯 다르다.

그녀는 ’패싱‘이라는 위험한 일에 대해 알고 싶었다. 익숙하고 친근했던 모든 것을 끊어내고, 아마 전적으로 낯설지는 않더라도 분명 전적으로 우호적이지는 않을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으려는 시도에 대해. - <패싱> 34p


3. <인종, 여성, 계급>은 초기 페미니즘의 역사를 잘 알 수 있는데 블랙팬서 당의 일원이었던 앤절라 데이비스의 눈을 통해 노예해방과 여권신장의 치열한 대립을 확인할 수 있다.

노예제에 맞서지 않은 백인 여성들은 노예제의 비인도성에 대해 무거운 책임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가사 노동자 노조는 흑인 가사 노동자를 억압하는 중간계급 가정주부들의 역할을 폭로했다. - <인종, 여성, 계급> 157p


4. 관련해서 소설로서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 이 있다. 읽는 내내 답답하고 당시 상황을 온전히 재현한다고 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초기 시민권운동은 너무 오랫동안 진실을 은폐해 왔다. 기존사회에 적응되고 속박되어 ‘검둥이 문제 Negro Problem‘에 관해 아주조심스럽게 낮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즉, 흑인들은 ‘유색인종이고 그들은 백(비유색)인들이 원하는 것과 똑같은 것만을 원한다는 것이었다.("우리도 사람이야.") 그 결과 백인들은 명백한 육체적·문화적·심리학적 차이점들을 가리기 위하여 친절하게도 그들의 시각를 걸러냈다. ‘검둥이nigger‘와 같은 단어들이 사라졌다 - P154

진짜로 백인을 긴장시켰던 것은 흑인의 남성성 자체가 아니라 남성성이 행동에서 의미하는것, 즉 권력이었다. 흑인 남성은 이제 남성 권력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백인들이 가진 것들을 원했다. 더 이상 탭댄스만 추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백인 남성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고무장을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있었다. 다시 한 번, 그것은 남성 대 남성, 한 (무장) 세력 대 다른세력의 문제였다. 그들은 기뻐하며 전선을 가다듬었다. - P155

그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진정한 남성은 억 - P166

압적 힘을 가진 남성[백인 남성]이다. 그만이 흑인 남성이나 흑인여성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아내-매춘부의 삼각관계에서처럼, 다시 그는 포주와 매춘부를 애타게 하고, 서로를통해 그와 싸우도록 한다. - P167

을 예측한다. 성적 매춘 일반이 존경받는 중산계급 가족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흑인 사회의 강간은 더 큰 백인 사회의 가족 구조의 실존을 가능하게 한다. 흑인 사회는 백인 가족의 성적 욕구를 공급하면서 그것의 기능을 유지시키는 외집단outgroup*이다. 그것이 빈민가에는 가족 연대가 없는 이유이다.
사생활에 축소되어 매우 자주 재현되는 이러한 성인종제도의 방식은 문제의 깊이를 드러낸다. 개별적인 백인 가정은 개별적인 흑인 여성을 성적으로뿐만 아니라 평생 가사노동으로 착취함으로써 유지된다. 또 빈민가의 젊은이는 당연하게 포주 일을 하거나 남창까지도 한다. - P169

나는 흑인 남성이 그를 지배하는 백인 남성의 권력에 반응하는 데 세 가지 선택의 여지를 가진다고 말했다.
1) 그는 백인 남성이 마련한 방식에 굴복할 수 있다.(잘하면 코미디언, 운동선수, 음악가와 같은 흑인 유명인사, 혹은 흑인 부르주아지의 일원이 될 수 있다.)2) 그는 별로 ‘남자답지 않은 것으로 정의되는 모든 결과에도불구하고, 동일시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나는 세파에 찌든 빈민가 젊은이들을 서술했다.)3) 그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그를 전복시키려고 노력할 수 있는데, 그것은 혼자 힘으로 권좌를 훔치는 것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혁명을 위한 정치적 조직, 특히 최근의 전투성.) - P170

흑인 여성의 전통적인 수동적 여성으로의 전환은, 흑인 남성의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가 남성적인(공격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있는 것에 맞서는 유용한 부정적 배경을 만들어낸다. 도약판 혹은 한차례 실습용 인체 모형으로서 흑인 여성은 가치가 있으며 ‘
황송하게 구애받아야만 한다. 그녀의 협력은 중요하다. 왜냐하면누군가가 ‘여성‘이 되어야만 흑인 남성이 ‘남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흑인 여성들은 그러한 방식에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 내가 앞에서 인용한 게일 A. 스토크스의 흑인 남성 비난에 대한 대답으로 다른 흑인 여성이 쓴 반박문이 있다. 이것은 여성의 반여성주의 antiwomanism 로 주목된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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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7-14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패싱> 책도 읽고 영화도
봤습니다.

나 자신을 부정하고 다른
인종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저 개인으로서
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3번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을 자처하
면서, 노예제를 옹호한 미국
남부 백인들의 위선을 어떻
게 설명해야 할까요.

거리의화가 2023-07-15 07:19   좋아요 0 | URL
<패싱> 보셨었군요^^ 자기 뿌리를 외면하고 다른 것을 동경하는 것은 저 당시 사회상도 분명 한몫을 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인종 문제는 여전하잖아요.
3번 문제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 소설에서도 그 맥락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만 참 어려운 문제이다 싶습니다. 인종과 계급이 맞물려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했네요.

건수하 2023-07-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68 페이지 문장은 흑인 여성의 백인 남성에 대한 생각을 나타낸 문장 아닐까 하며 읽었습니다. 아니면 너무 이상해서…

거리의화가 2023-07-15 07:14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는 생각합니다만 굳이 저런 비교를 했어야 했나 싶습니다. 과하고 극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건수하 2023-07-15 10:34   좋아요 0 | URL
저자가 좀 강하게 쓰는 느낌이 있죠.. 5-7장에서 그게 좀 두드러지는 것 같습니다.
 


4장 아동기를 없애자

페미니즘과 아동기를 없애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페미니즘 철학 입문>에서 파이어스톤 편을 읽었다. 오타가 남발하고 말투도 좀 어색한 것(쉽게 쓰려고 한 의도임은 알겠음)을 제외하곤 읽을 만했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 사회 구조와 직접적으로 연결지을 수 있어서 파이어스톤의 논지의 핵심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의 구분이 생기는 것이야말로 억압을 만들어내는 기제인 듯 싶다. 어렸을 적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했던 적이 많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 시기엔 뭘 해야 하고 이 시기엔 뭘 해야 한다는 식으로 강요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제도는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유지하는 핵심 산물일 것이다. 
현재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한 학교 교육이 아니라면 학생들은 좀 더 창의성 있게 자라지 않을까. 그놈의 객관식 유형 문제 좀 없애고 아이들이 원해서 찾아서 하는 활동이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핵가족 형태가 중산층 계급을 위한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돈이 없는 하층 계급들은 이미 착취당한 상태에서 시작하므로. 아이들은 여성과 마찬가지로 하층 계급이라는 것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경제적 계급이 다른 아이들 사이의 생활상의 차이점은, 여성 선거권의 시대와 우리 시대까지 그대로 존속되었다. 중산계급의 생식적 동산動産이었던 아이들은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더 혹독한 정신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여성들도 그랬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상쇄하는 경제적 보호를 받았다. 하층계급의 아이들은 특별히 아이들로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계급에 기초해 착취되었는데, 아동기의 신화는 너무 환상적이어서 그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중산계급 가족구조의 욕구를 위해 만들어진 아동기라는 신화가 얼마나 임의적인지 구체적으로 보게 된다. - P140


사실상 근대적 의미의 가족은 자본주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요. 부권제 역시도 부계 상속을 통해 유지된다는 점에서 사적 소유의 재산권과 뗄 수 없어요. (...) 그런 점에서 파이어스톤이 가족을 해체하자고 하는 건 근대적 의미의 가족, 즉 착취의 최소 단위일 수도 있겠죠. - P275


지금은 어린이와 어른 사이에 단절적인 지점이 명확하게 있죠. 성인과 비성인의 나이 기준이 법적으로 존재하고, 성년의 날이라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 파이어스톤은 예전에는 성인과 비성인 사이에 이런 불연속적인 분기점이 없었다는 걸 강조해요. 가장 큰 이유는 성인이 아닌 존재를 섹슈얼리티가 없는 존재로 여기는 구분을 파이어스톤이 의문시하기 때문이에요. 당연히 가부장적 근대 가족 체계 안에서 미성년은 섹슈얼리티와 무관한 순수한 존재로 묘사하지만, 어느 순간 불연속적으로 급격하게 섹슈얼리티를 갖는 존재처럼 설명될 수 있느냐는 거죠. 파이어스톤은 인간의 생애사를 구분 짓는 가부장제의 방식에 반대하면서 어찌보면 논란적일 수도 있는 주장을 합니다. 바로 아동기를 없애자는 거예요. - P284


그러니까 결론은 페미니스트 혁명에 "아동기 구분 따위는 없애자"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세 시대에는 아동기와 같은 것이 없었다. 아이들에 대한 중세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 무척 달랐다. ‘아동중심적‘이 아니었을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어른과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하지 않았다. - P114

아이는 가족생활에서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커다란 가부장제 가구의 한 구성원이었을 뿐이었다. - P116

학교(전문화된 기술만을 위한)는 나이와 상관없이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움을 전했다. 도제제도는 어른에게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열려 있었다.
14세기 이후, 부르주아지와 경험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이 상황은 서서히 진전하기 시작했다. 아동기라는 개념이 현대 가족의 부속물로 발달된 것이다. 아이들과 아동기를 묘사하는 용어들이 만들어졌고(예를 들어 불어로 ‘아기 lebebé‘), 그리고 특별히아이들을 지칭하는 다른 용어들이 만들어졌다. [children에 ‘성질‘, ‘상태‘, ‘성격‘을 나타내는 접미사 -ness을 붙인] childreness’는 17세기 내내 유행어가 되었다.(그 후로 그런 용어는 예술과 생활방식으로 확장되었다. - P117

여성 존중처럼 아동 존중’은 여전히 더 큰 사회의 일부였을 때인 16세기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가, 명백하게 억압받는 집단을 형성하는 지금에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아이들의 소외와 분리가 시작되었다. 아동중심적인 새로운 부르주아 가족은 끊임없는 감시를 수반했고, 초기의 모든 독립성은 없어졌다. - P118

남자아이의 복장은 특히 성과 아동기의 경제적 계급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남자아이의 복장은 대략 세 단계를 거치는데, 우선유아는 배내옷에서 여자의 원피스로 바뀐다. 다섯 살 때쯤에는 윗옷의 깃처럼 성인 남성 복장의 요소를 가진 긴 옷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소년이 되면 군인 휘장을 완비한 옷으로 나아간다. - P119

소녀들의 복장은 어떤가? 여기에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아동기는 여성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아이는배내옷에서 곧장 성인 여성의 복장으로 간다. - P120

우리는 또한 새로 생긴 아동기라는 개념의 계급적 기초를 그것과 함께 생긴 아동교육 제도에서도 볼 수 있다. 아동기가 추상적 개념일 뿐이라면, 근대의 학교는 그것을 현실화한 제도이다.(우리 사회에서 생애주기에 관한 새로운 개념은 제도들을 둘러싸고 조직된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만들어진 청소년기 adolescence는병역에서 징병을 용이하게 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의 학교교육은 사실상 아동기라는 새로운 개념을 명료하게 했다. 학교교육은 재정의되었다. 더 이상 성직자나 학자에게 국한되지 않았고, 아동기로부터 남성기로의 과정에서 사회적 입문social initiation의 정상적 도구가 되도록 넓게 확장되었다.(진짜 성인기를 맞아볼 일이 없는 소녀들과 노동계급 소년들은 수세기 동안 학교에가지 않았다.) - P121

새로운 학교교육은 아이들을 성인 세계로부터 점점 더 오랜기간 동안 효과적으로 분리시켰다. 그러나 어른으로부터 아이들의 격리, 그리고 성인기로 이행하는 데 요구되는 가혹한 입문 과정은 아이들의 능력에 대한 멸시와 체계적인 과소평가가 커져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 P123

아이들의 건강 이상으로 현대의아동기를 이해하게 하는 핵심 단어는 행복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의 아동기만 있다는 것, 요점은 바로 그것이다. - P135

젊은 성인들은 아이들로부터 인위적으로 격리됨으로써 생긴 공허감을 채우려는 필사적인 시도로그들 자신의 아이들을 가질 꿈을 꾼다. 그러나 그들이 임신, 기저귀, 유모, 학교 문제, 편애, 싸움으로 곤경에 빠질 때가 돼서야 비로소 그들은 다시 한 번 짧은 시기 동안 아이들이 나머지 우리들과같은 인간임을 보게 된다. - P137

상대적으로 어른들에 비해 자연적인 육체적 열등감은 아이들은 훨씬 더 약하고 작다 우리의 현재 문화에서 보상되는 것아니라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법적 ‘미성년자‘들이고 시민권도 없으며 부모의 임의적인 소유물이다. - P138

경제적 계급이 다른 아이들 사이의 생활상의 차이점은, 여성선거권의 시대와 우리 시대까지 그대로 존속되었다. 중산계급의생식적 동산動産이었던 아이들은 우리가 겪었던 것보다 더 혹독한 정신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여성들도 그랬다. 그러나 그들은그것을 상쇄하는 경제적 보호를 받았다. 하층계급의 아이들은특별히 아이들로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계급에 기초해 착취되었는데, 아동기의 신화는 너무 환상적이어서 그들에게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중산계급 가족구조의 욕구를 위해 만들어진 아동기라는 신화가 얼마나 임의적인지구체적으로 보게 된다. - P140

이상적으로는 완전한 충족(무조건적)이 되어야 할 어머니의 사랑이 아이를 사회적으로 더 승인받는 행동으로 이끌기위해 아버지의 사랑 방식대로 행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와의 적극적인 동일시가 요구된다.(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는 다소나중에, 즉 아이가 학교를 가는 시기에 이 동일시가 일어날 수 있다.) 그때부터 사춘기까지 아이는 어떠한 성적인 욕구도 인정하지 않는 비성적인 생활을 해나가야만 한다. - P142

계몽된 교육자들이 아이가 학교를 받아들이도록 유인하고 끌어들이기 위하여 내적으로 흥미를 가지고배울 수 있는 전체 제도를 고안한다 할지라도 그러한 것들은 절대 완전히 성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 자신의 방식과 방향의 호기심에 기여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학교는 개념상 모순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 P145

아이들은 깨어있는매 순간 억압당한다. 아동기는 지옥이다.
그 결과는 불안한 사람, 따라서 공격적-방어적이고, 흔히 우리가 아이라고 부르는 몹시 불쾌한 작은 인간이 되는 것이다. 경제적, 성적 그리고 일반적인 심리적 억압에 의해 그들은 부끄러워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악의적인 정체를 스스로 드러낸다. 이러한 불쾌한 특성들은 결국 아이들을 나머지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을 강화한다. 그래서 그들의 양육, 특히 인격형성의 가장 어려운 단계에서의 양육은 기꺼이 여성에게 양도되는데, 여성들은같은 이유에서 그러한 인격적 특성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아이를 가지는 것과 관련된 자아보상ego rewards을 제외하고는, 아이들에게 흥미를 보이는 남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아이들에게합당한 정치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남성은 더 적다.
그러므로 (과거에 아동이었고 여전히 억압받는 아동여성인)혁명은 페미니스트 혁명가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페미니스트 혁명을 위한 어떤 기획에도 아동 억압을 포함시켜야만 한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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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송 시기 역사를 읽으면서 당시와 송사 등의 장르가 있고 당송팔대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나라는 시가 유명했고 송나라 때는 사(시와 비슷하나 조금 다른 운문 문학)가 유명했다. 당시의 대표 주자 '이두李杜'인 이백과 두보, 왕유, 백거이 등이 있다.

이백과 두보만큼은 아니더라도 왕유도 이름이 높았던 모양이다. 놀라운 것은 당시삼백수 등에 보면 이백과 두보만큼이나 아니면 그보다 더 왕유의 시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불교시인으로도 유명한데 당나라는 수나라에 이어 불교가 융성했던 배경 때문이다.


왕유(王維)는 젊어서 시명(詩名)이 높았던 인물이다. 같은 시대에 이백과 두보라는 위대한 시인이 있어 그 그늘에 가려졌지만, 같은 나이 또래인 이백보다 빨리 세상에 나왔고, 시의 작풍도 달랐다. 왕유는 오로지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읊었다. 조용하고 차분하며 법도에 맞고 아담한 정취가 그의 시의 특징이다. 왕유는 무측천 성력(聖曆) 2년(699)에 태어났다. 일설에는 2년 뒤인 장안(長安) 원년(701)이라고도 한다. 만일 후자가 맞다면 이백과 나이가 같은 셈이다. - P235

위수(渭水)는 진(秦)의 성새를 돌아 굽어들고,
황산(黃山)은 예부터 한(漢)의 궁궐을 둘러쳐서 기울었다.
난여는 멀리 선문(仙門)의 수양버들 사이로 나가,
각도(閣道)에 머물러 상원(上苑)의 꽃을 둘러본다.
구름 속에 치솟은 제왕의 성, 두 마리 봉황 같은 궁궐의 문,
비에 젖는 봄 나무 사이로 온 백성의 집이 묻혔구나.
봄기운에 응하여 시의(時宜)의 정령(政令)을 펴려는 것뿐,
물화(物華)를 즐기려는 신유가 아니다.

안사의 난은 시인들을 수렁 속으로 휩쓸어 넣었다. 장안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이 무렵 이백은 고역사를 능멸했다 하여 장안의 조정에서 추방된 뒤 하남에서 장강 유역을 떠돌고 있었다.

햇빛 비친 향로봉에 자줏빛 안개 피어나고,
멀리 폭포를 바라보니 긴 강을 매단 듯.
내리 쏟아지는 물줄기 삼천 자,
혹시 하늘에서 은하수 쏟아지는가.

마침 이곳에서 영왕(永王) 이린(李璘)이 황제에 충성하는 의병을 일으켰다. 이린은 현종의 아들로 어머니 곽씨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숙종이 어렸을 때부터 돌보아 주었다. 영왕은 이 때 이백을 맞이했다. 이백은 안녹산을 토벌하는 의병에 가담할 생각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자신이 속한 영왕군이 황제의 명령군을 어긴 반란군이 되었다. 황제가 된 숙종은 단호한 조치로 토벌군을 파견했다. 이백도 이 때 역적의 참모였다는 이유로 투옥되었으나, 이백을 아끼는 이들이 구명운동을 쳘쳐 겨우 죽음만은 면하고 서남(西南) 지방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이백은 759년 은사령이 내려져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안녹산과 안경서는 죽었으나 사사명이 대연제국 황제를 칭하고 있었고 그것을 토벌하기 위해 이광필이 파견되었다. 이백은 60세의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참가하려고 길을 나섰다 병에 걸려 사망한다.

장안에서 급사중(給事中)으로 있던 왕유는 미처 달아나지 못해 안녹산군에게 사로잡혔다. 현종의 장안 탈출은 비밀리에 이루어져서 양귀비와 황족, 고역사 같은 측근만이 그를 따랐다. 출근 시간에 백관이 궁중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황제의 출분(出奔)을 알고 허둥댔다. - P274


수많은 집 애타는 마음, 들판의 안개로 피어오르고,
백관들 언제나 다시 천자를 뵈올꼬?
가을 홰나무 잎은 떨어져서 빈 궁전 뜰 적막한데,
응벽(凝碧) 연못가에 풍악 소리 높아라.

장안 평강방(平康放) 보리사에 갇혀 있던 왕유는 친구인 배적에게 안녹산이 낙양의 응벽지에서 음악회를 열었을 때 참가한 사람들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불리게 했다고 한다. 이 노래는 안녹산에게 점령당하지 않은 지역에서 누구나 불렸다고 한다.

두보는 안사의 난을 피해 도망가던 도중에 안록산군에게 붙잡혀 장안에 연금되었다. 그 곳에서 <춘망春望>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나라는 망했으나 산하는 남아서,
성 안에 봄이 오니 초목이 무성하구나.
시절에 감동하여 꽃에도 눈물을 뿌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 소리에도 마음 놀라네.
봉화는 석 달이나 이어지고,
집의 소식은 만금보다 값지도다.
흰 머리를 긁으니 더욱 짧아져,
다 모은들 비녀를 이기지 못할 것 같구나.


이백(701~762)은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으나 25세 강남을 유람했고 현종 때가 되어서야 한림학사의 직위를 얻게 되었다. 벼슬에 올랐다가도 끊임없이 정쟁에 휘말려 유람 생활을 반복했다.

<월하독작月下獨酌>

꽃떨기 사이 술 한 병 놓고,
홀로 마시노니 짝할 사람이 없구나.
잔 들고 밝은 달을 마주하니,
그림자 합하여 세 사람이 되었구나.
달이야 술 마실 줄 모른다 쳐도,
그림자야 한갓 내 모습만 따라 하누나.
잠시나마 달을 짝하고 그림자를 거느리니,
즐거울 때 모름지기 봄맛을 느껴야지.
내 노래에 달은 배회하고
나의 춤에 그림자도 산란하다.
깨어서는 함께 어울려 기뻐하고,
취한 뒤엔 각각 제 갈 길 가겠지.
영원히 망정忘情의 친구가 되어,
저 아득한 은하수에서 서로 만나길.

'월하독작'은 이백이 장안에 있을 때 아무런 실권이 없는 한림공봉이라는 벼슬을 얻자 만족하지 못하고 읇은 시라 한다. 이백은 술로도 유명하다. 봄 밤 달 아래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의 시는 그림을 그리듯 아름답다.


두보는 이백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시인이다. 그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으나 시대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자탄하는 삶을 살았다. 숙종 대 좌습유의 벼슬을 얻게 되었으나 직언으로 숙종의 미움을 받아 화주 사공참군으로 밀려났다. 그는 당시 사회상은 물론 백성의 고통을 잘 표현한 시풍으로 이름이 높았다.

<망악望岳>


태산은 무릇 그 어떠한고?
제나라 노나라 지역으로 푸르게 끝없이 이어졌구나.
조화옹께서 신기한 것, 빼어난 것을 모두 모아 놓았고,
밝은 곳, 어두운 모습 밤낮처럼 분명하게 나뉘었네.
시원하게 트인 풍경에 층층 구름 피어오르고,
눈을 크게 뜨니 돌아오는 새 시야에 들어오누나.
내 언젠가 저 꼭대기에 올라,
그 아래 작은 산들 한번 훑어보게 되겠지.

'망악'은 개원 23년(735) 두보가 낙양에서 진사 시험에 낙방하고 조제(하남, 하북, 산동 지역) 일대를 유람하다가 태산에 이르러 지은 것이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는 뛰어난 문장가 여덟 명을 가리키는 말로 당나라 문장가로서는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이 있고 송나라 문장가로서는 구양수(歐陽修), 소순(蘇洵), 소동파(蘇東坡), 소철(蘇轍), 증공(曾鞏), 왕안석(王安石)이 있다.

수나라 때 흥기한 불교는 당대에 와서 흥성한다. 그러나 송명 도학파 즉 요즘 말하는 신유학도 이때 싹텄다. 불교가 흥성하던 곳에 공자의 학문을 따르고 계승한 학자들이 나타났다는 것이 놀랍다.


송명 도학파의 선구적 인물은 한유(韓愈, 768-824)다. 『신당서』의 그의 전기는 말한다.
수나라까지 도교와 불교가 성행하여 성인의 도[유학]은 겨우 명맥만 유지되었고, 유자(儒者)들도 국가의 이념을 괴이하고 귀신적인 것에 의탁하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한유만은 홀로 탄식하여 성인의 사상을 인증하며 온 세상의 미혹과 싸워 모함과 비웃음을 받았지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분투했다. 처음에는 신뢰받지 못했으나 마침내 당시에 크게 유명해졌다.
한유는 맹자를 몹시 추존하여 공자의 정통 전수자로 여겼고 이에 『맹자』는 송명 도학파의 중요한 근거 전적이 되었다. 한유는 "도(道)" 자를 제시했고 도통설(道統說)을 만들었다. 이 설은 원래 맹자가 이미 대충 언급했지만 한유가 제창한 이후 송명 도학자들이 모두 견지했고, 도학도 송명 신유학의 새 이름이 되었다. - 중국철학사(하) P417~422



한유는 최고의 고문가이기도 했다. 어릴 때 고아로 형수에 의탁하여 성장했다고 한다. 정원 8년 진사에 올라 이부시랑을 역임하였다. 현종 때 불교를 반대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폄직되기도 했으며 만년에 국자좨주國子祭主를 지내기도 했다. 그의 시와 문장은 웅장한 기세를 즐겨 썼으며 유가적 사유에 밝았. 

<팔월십오야증장공조八月十五贈張功曹>
엷고 섬세한 구름 사방에 말아오니 은하수가 사라지고,
맑은 바람 불어오니 빈 하늘에 달빛이 물결처럼 퍼져 가네.
모래가 평평하니 강물도 소리를 죽이고 그림자도 끊겼는데
한 잔 술 권하노니 그대는 의당 노래라도 불러야지.
그대 노래 소리는 시고 가사 또한 괴롭구려,
끝까지 다 듣지 못한 채 눈물이 비 오듯.
"동정호는 하늘로 이어졌고 구의산은 높이 솟아,
교룡이 출몰하고 성성이와 날다람쥐 울부짖네.
구사일생 고생하여 임지에 다다르니,
깊숙한 거처는 적막하여 마치 도망쳐 숨을 곳인 듯.
침상 아래는 뱀이 무섭고 먹을 밥은 독약이 두렵도다.
바다 기운 습기와 벌레에 비린 냄새 풍겨나네.
사면령이 내렸다고 어제 주부州府의 문에 큰북이 울려으니,
새로 등극하신 황제께서 기와 고요 같은 어진 신하 임용하리라.
사면의 문서는 하루에도 천 리 길을 달려왔으니.
대벽의 큰 죄인도 죽음에서 제외되고,
좌천을 당한 자도 모두 유배지에서 되돌아가,
흠을 씻고 때를 벗은 채 조정의 깨끗한 반열에 서게 되리.
그러나 주부에서 올린 우리 명단 관찰사가 억제하여,
불우한 우리 신세 단지 강릉으로 이송될 뿐이라네.
우리 받은 판사 벼슬이 너무 낮다 말도 못한 채,
먼지 속에 태장이나 면하면 그나마 다행.
함께 귀양 왔던 동료들은 모두 수도로 돌아가는데,
수도 장안 가는 길이 험난하여 따라잡기 어렵구나."
그대 그만 노래를 쉬고 내 노래를 들어다오.
지금 부를 내 노래는 그대와 크게 다르도다.
일 년 중 밝은 달은 오늘밤이 으뜸이라.
사람의 삶이란 명에 달린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로다.
술 있으니 마시지 않고 저 밝은 달을 어이하리!

덕종 정원 19년(803) 한유가 장서와 함께 남쪽으로 유배되었다가 21년 순종이 등극하자 그해 두 사람 모두 사면을 받아 침주(지금의 호남)에 이르러 명을 기다렸다. 1년 만에 순종이 죽어 헌종이 황제로 등극하여 대사면령을 내렸으나 호남 관찰사 양빙楊憑의 방해로 수도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릉(지금의 호북 강릉)으로 이송되어 한유는 법조참군, 장서는 공조참군이 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현재 한유가 남긴 문장을 읽고 있는데 그는 '도'를 무척 중요시한다 느낀다. 그는 당시 문장을 꾸미는 데만 집중한 문장가들을 비판했다. 글에는 글쓴이의 정신, 도와 덕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의 기술만을 중요시했던 이들을 비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는 과연 신유학의 대표 주자였다라는 생각이 든다.
한유는 이백과 두보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훨씬 뒷 세대이다. 그들이 동시에 활동했으면 어땠을까. 한유가 안사의 난을 겪었다면 아예 두문불출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익은 한유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한유는 그에게 '글을 짓는 일'에 대해서 편지를 보냈다(801년).

氣는 水也요 言은 浮物也니 水大而物之浮者大小畢浮니라 氣之與言도 猶是也하야 氣盛則言之短長與聲之高下者皆宜니라 雖如是라도 其敢自謂幾於成乎아 雖幾於成이라도 其用於人也奚取焉이리오 雖然이나 待用於人者는 其肖於器邪아 用與舍屬諸人이니라 君子則不然하야 處心有道하고 行己有方하야 用則施諸人하고 舍則傳諸其徒하고 垂諸文而爲後世法이니라 如是者인댄 其亦足樂乎아 無足樂也아

기는 물이요. 말은 (물 위에 ) 떠 있는 물체니 물이 많으면 그 크고 작음에 따라 뜨기가 정해진다. 말도 기와 같은 것이다. 기가 성하면 말의 길고 짧음이 소리의 높고 낮음도 모두 그에 따른다. 그러나 기가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다 하더라도 사람에게 쓰이는 것이 어찌 그에 따르겠는가. 사람이 쓰이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물을 닮았다. 쓰고 버려지는 것은 사람에게 속해 있는 것이다. 군자면 마음이 처한 곳에 도가 있고 자신의 행동에 지향점이 있어야 한다. 쓰일 때는 모든 이들에게 베풀고 버려지면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전하면 (결국) 문장에 드리워져서 후세의 법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데 만족하고 즐길만하겠는가 그렇지 않겠는가.
-> 그러니까 (마음에 도를 닦아) 군자가 된다고 해도 출세길에 올라 누구에게 쓰이는 것은 사람에게 달린 일이니 쓰임을 받으면 백성들에게 베풀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고 버려진다면 후학을 양성하거나 자기 제자들을 키우거나 하면 족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다.

글을 짓는 일은 결국 공부를 하는 것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이 정도 실력인데 왜 나를 알아보는 이가 없지?'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하고 누구에게 쓰임을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쓰임을 받기 전 준비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끝내 알아주는 이가 없더라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당나라 때 과거 제도가 시행되기는 했지만 송나라 때 와서야 과거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벼슬길에 제약이 많았다. 비루한 출신이었던 한유는 더군다나 출세에 오르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벼슬길에 올랐으나 말년에 가서야 고위직에 올랐고 그 전까지는 미관말직을 전전했다. 그래서 그는 편지로 주변 이들에게 청탁을 하는 류의 글을 많이 지었다고 한다.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비슷한 것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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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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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내 품사를 재배치하고 더 오늘날에 맞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지금의 독자가 읽기에는 더 수월해졌으나 길이가 다소 길어졌다는 느낌도 받는다. 노래하는 맛을 살린다면 이전 번역이 나을 듯도 보이는데 이는 독자의 선택이 될 것같다. 역자의 고민과 노고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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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7-1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844쪽 의 책을 읽으셨네요! 거리의화가 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거리의화가 2023-07-11 09:53   좋아요 1 | URL
ㅋㅋ 다락방님 오해십니다. 펀딩책이라 오늘까지 100자평 남겨야 해서 부랴부랴. 다 못 읽었어요 걱정마십쇼!ㅋㅋ

페넬로페 2023-07-11 1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로 번역된 이 책은 어떨지 넘 궁금해요^^

거리의화가 2023-07-11 10:14   좋아요 1 | URL
기존 천병희 선생님이 하신 번역과 한 단락 정도 비교해봤는데요. 단어를 ‘분노->노여움‘ 이런 식으로 바꾸고 문장 내 배치를 더 이해하기 쉽게 변경한 듯 보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는 더 잘 되는 것 같았어요. 물론 책을 전체를 다 봐야 알 수 있겠지만요.

책읽는나무 2023-07-11 1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다 읽으신 줄 알았어요^^
지금 읽고 있는 <갈대 속의 영원>에 일리아스랑 오디세이아랑 뻑하면 제목이 나와요.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왕을 붙잡았을 때 장식장의 값비싼 보물과 독특한 보물상자를 발견하였는데 그 보물상자에 알렉산드로스는 <일리아스>를 보관하라고 했다는군요.
그래서 나도 언젠간 일리아스를 꼭 읽어 보리라! 생각만...^^;;;

거리의화가 2023-07-11 10:29   좋아요 1 | URL
ㅋㅋㅋ 펀딩 적립금 받으려면 어쩔 수 없었어요. 3주 내 읽고 100자평을 써야 하는데 애시당초 불가능한 책인데다가 지금 다른 책 읽고 있어서 언제 읽을지 기약이 없었답니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두 권 모두 예전에 천병희 선생님 역으로 완독했었어요.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또 멋진 문장들이 많답니다. 언젠가 나무님도 접해보셔요!

책읽는나무 2023-07-11 11:13   좋아요 1 | URL
그러고보니 저도 북펀딩했던 책 100자평 썼어야 했는데....아!!!!!
날짜 지났나 봅니다.
6월말 경에 받았던 알림은 이미 지나가버려 찾을 수가 없군요!ㅜㅜ
저도 오늘이라도 얼른 써서 올려야겠어요^^
이젠 북펀딩 100자 평도 다 놓치고 있네요.^^;;

전 일리아스 예전 천병희 샘꺼 가지고 있어요.
옛날에 좀 읽다가 너무 등장인물이 많아서 헷갈려서 중간 포기했었네요.ㅜㅜ
다시 재도전 할 수 있을지 좀 두렵네요^^;;

거리의화가 2023-07-11 11:23   좋아요 1 | URL
펀딩한 책 3주 내 못 읽을 거면 책 받은 즉시 올리는 게 좋겠더라구요. 잊어버리면 적립금 날아가는 사태가ㅠㅠ
일리아스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것 이미 가지고 계셨네요. 등장인물이 많기는 하지만 역사적 배경을 알고 읽으면 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판본은 좀 더 현대적으로 번역된 느낌이었어요. 나무님이 읽기에 좀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2023-07-12 0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람이 읽기에 좋게 번역한 거군요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적이 없네요 가장 오래된 책, 이야기니 읽어보면 좋을 텐데...


희선

거리의화가 2023-07-12 11:02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원전은 역자에 따라 늬앙스가 다르게 번역되어서 보는 맛이 있습니다. 저도 전문을 다 읽은 것은 아니여서 어떨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