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최지혜 지음 / 혜화1117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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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근대 백화점 상품들의 기원 탐방기다. 


근대 문물(상품)에 대한 기원을 알 수 있는 책은 그동안 역사, 에세이 등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원했던 것은 이 책에 특화된 부분이었고 그런 면에서 프롤로그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프롤로그는 1933년 9월 대구 청년 사업가였던 이근무가 경성 백화점을 순례하는 기행문을 적어 놓았다.

그는 1920~30년대 대구에서 이미 서적과 양품을 취급하는 상점인 무영당을 운영했던 사업가였는데 경성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백화점을 보면서 대구에서도 백화점 운영해보면 어떨까를 꿈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꿈은 실제로 현실이 된다. 이근무는 1937년 대구에 무영당 백화점을 열었고, 대구 3대 백화점이 될 만큼 성업했는데 중요한 것은 그 건물이 아직도 현존한다고 한다(이 부분이 놀라웠음!). 

그런 의미에서 그가 경성 백화점을 순례한 것은 자신의 사업을 위한 사전 탐방의 성격이 컸을 것이다. 지금의 청년 사업가가 꿈을 계획하고 실현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대구 본점(오늘날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8)에 지은 무영당 백화점 5층 건물은 1936년 11월 말 준공되었다. 당시 대구 안에서 최대 경쟁사였던 미나카이 백화점 외관과 비슷하게 지었고 그는 드디어 "고추씨 서 말을 들고 대구로 내려와 거상이 된" 것이었다. 

무영당 백화점은 원래 취급하던 서적과 잡지, 문방구부, 운동구부, 액연회구부(액자와 그림도구), 양품잡화부, 악기부에 더해 12월부터는 여행구부, 양가구부, 식료품부, 완구부, 도자기, 식기부, 사진부, 식당 등을 새로 열었다. 그밖에 휴게장, 전망대 등 설비를 완비하여 이듬해 1937년 9월 15일 본격적인 백화점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조선에는 경성 뿐 아니라 지방에 많은 백화점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백화점은 서울 뿐 아니라 지방도 신세계, 롯데 등 브랜드 백화점이 대부분이라 아쉬운데 당시에는 독자적인 백화점들이 많았다. 개성의 김재현 백화점, 충북 괴산의 아모 백화점, 함흥 동양 백화점, 군산 풍천 백화점, 원산 기린야 백화점 등이다. 


이 무렵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은 안락한 환경 속에서 산책하듯 백화점 곳곳을 천천히 둘러보고 점원의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온갖 신문물을 마음껏 접해볼 수 있었다. 백화점에 머무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바깥 현실을 잊고 최상류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을 것이다. 물건값을 흥정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각종 먹을거리,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 백화점은 물 건너온 박래품과 유행하는 온갖 물품, 말 그대로 '백화'가 넘쳐나는 스펙터클한 공간이었다.

현대인들도 백화점에 대한 로망이 있다. 

백화점의 문턱은 지금도 꽤나 높다고 생각하는데 우선 갖춰 입고 가야 할 것 같은 진입 장벽이 있고, 어느 매장에 들어갔을 때는 구매를 하지 않고 둘러보는 것만으로 뭔가 부담스러운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

대부분의 백화점 1층은 화장품 코너인데 들어가자마자 확 풍기는 향내가 후각을 자극한다. 부끄럽지만 백화점에서 차마 비싼 가방, 옷을 지르지 못하고 평소 잘 사용하지도 않는 고급 향수와 립스틱을 샀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사실 먹는 것에 진심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백화점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식품 매장에서 빵 코너다. 자칭 빵순이기 때문에 빵 냄새가 그렇게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다. 다들 특정 코너 앞을 서성거린 경험이 있으실 거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과거 강릉에 있는 에디슨 박물관 가서 보았던 카메라, 축음기 등 근대 물품들을 보았던 기억이 스쳤고 잠시나마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이런 근대 박물관 구경하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 여전히 지금도 쓰여지는 물건도 있고 사장된 물건도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근대에 나온 상품을 보는 것만으로 과거로 떠나 여행을 하고 거기에 그 시절 물건에 추억이 있다면 향수를 떠올릴 수 있는 마법이 있다. 또 당시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즐거움도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이 시절 백화점에 어떤 물건들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을지 엿볼 수 있다. 

1층 식품부·생활 잡화부, 2층 화장품부·양품잡화부, 3층 양복부, 4층 귀금속부·완구부·주방용품부·문방구부, 5층 가구부·전기 기구부·사진부·악기부 이렇게 층별로 상품이 배열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물건을 소개하는 방식을 백화점 코너를 둘러보는 느낌을 주듯 전달했다면 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이 중 나는 식품부와 생활잡화부, 문방구부가 참새를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관심 있는 코너라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다. 


소개된 상품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그 중 3가지만 꼽아 본다. 


1. 캐러멜

당시 수입 과자로 유명한 회사는 삼영, 즉 모리나가였다. 모리나가는 미국에서 서양 과자 제조법을 배운 모리나가 다이치로가 1899년 세운 회사로 주요 상품은 밀크 캐러멜, 밀크 초콜릿, 웨하스, 비스킷 등이었다. 모리나가 캐러멜을 일약 히트 상품으로 이끈건 1914년 출시한 휴대용 포켓 사이즈 캐러멜 포장 덕분이었다(우리가 기억하는 그 제품 맞다).

캐러멜은 이후 여러 회사에서 만들었는데 오사카 하면 떠오르는 글리코에서도 캐러멜을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했다(이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창업자 에자키 리이치가 굴을 끓여 추출한 글리코 겐으로 1922년에 만든 것으로, 빨간 캐러멜 상자에 넣은 '문화적 자양 과자', '한 알에 300미터'라는 카피로 유명하다(P79~80). 




2. 축음기

1920년대 미국 축음기 생산 회사가 260개가 넘을 정도로 다양한 축음기들이 쏙아져나왔다.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많은 것들이 수입되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축음기인 빅터, 콜럼비아를 비롯하여 일축에서 만든 '이글 B호'를 포함하여 니폰노혼 17호, 22호, 25호, 32호, 35호, 50호 등 다양한 모델들이 판매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빅터 사는 밖으로 노출된 나팔 관리가 까다롭다는 주부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1906년부터 캐비닛 가구나 상자 속에 내장한 모델 빅트롤라를 출시, 이후 '그랜드형' 축음기라고 불리며 각광을 받았다. 

빅터나 콜럼비아 회사는 지금도 그 이름을 들으면 '아!'할 정도로 유명하다. 축음기 하면 나팔관부터 떠오르는데 모형을 보기도 했지만 관리는 무척 까다로웠을 것 같다. 나는 평소 고전 음악을 듣는 편이라 오디오 등 관련 장비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앱이 워낙 편해서 평상시에는 앱으로 많이 듣지만 가끔은 아날로그적으로 CD나 LP로 듣는 맛이 분명히 있다. 




3. 만년필. 

만년필은 현재도 외제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은 품목이다. 그런데 외제 만년필의 홍수 속에서 동원상회에서 제작, 발매한 국산 반도 만년필도 있었다. 홍보는 주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방식이었는데, 만년필 대 한가운데에 한반도 지도를 중심으로 '바 ㄴㄷ ㅗ'라고 한글을 새겨 넣었다. 또한 광고 지면에 "외국제를 방지할 반도 만년필의 일대 성명"이라는 타이틀 아래 구구절절 외쳤다(P465). 1924년 무렵 조선에 만년필 소매점은 700~800개였고 만년필 행상도 1천 명이 넘었다(놀랍지 않나). 1924년은 조선물산장려운동이 한창이었던 만큼 반도 만년필의 당시 광고로 국산품 소비 장려의 일환을 엿볼 수 있다(P468). 

만년필은 미쓰코시나 조지야 3층, 화신 2층에서 판매했다. 히라타 백화점은 이미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만년필을 전면에 내세워 종류와 선택법, 그리고 관리법에 대해 신문 광고를 통해 상세히 안내했다(P469). 



이 책은 무엇보다 사진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서 구경하는 맛이 있다. 여름 여행기 책으로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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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8-08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러멜 상자 보니까 완전 익숙하네요 ㅋ 아직도 저 색상으로 있는거 같은데 ㅎㅎ

요즘 백화점은 너무 비사서 못가겠습니다 ㅋ

거리의화가 2023-08-09 09:10   좋아요 1 | URL
어릴 적 저 카라멜 먹으려면 좀 비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좀 비싸지 않나요?ㅎㅎ 아무튼 저 상자에 담겨져 나오는 형태도 한결 같고 맛도 한결 같은데 여전히 나오고 사랑 받는 걸 보면 그만큼 먹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겠죠?ㅋㅋ

백화점 저도 잘 가는 편은 아니에요. 올 초였나 집 근처에 백화점이 생겨서 구경할 겸 한 번 가보기는 했습니다. 그 이후론 안 가네요.

독서괭 2023-08-08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사책 다방면으로 읽으시는 화가님👍
저녁시간이라 배고픈데 캐러멜 보니 군침이 꼴딱 넘어가네요..

거리의화가 2023-08-09 09:12   좋아요 1 | URL
역사책도 다양하게 보면 더 즐거운 법이죠^^ 한참 무더위에 읽었는데 두꺼워도 술술 읽혀서 금방 읽었습니다.
가다가 캐러멜 사셔서 드셨나요?ㅎㅎㅎ

건수하 2023-08-08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샀는데 제 책이 아닌 책입니다. 화가님 읽으셨군요 ^^

거리의화가 2023-08-09 09:13   좋아요 1 | URL
수하님 이 책 사셨었군요^^ 네. 나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놓았었습니다. 술술 읽혀서 금방 읽었어요!ㅎㅎ

희선 2023-08-09 0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신문 헤드라인(반도 만년필)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야 하는군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다가 이상한 말이네 했습니다 예전에는 백화점이 많았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8-09 09:15   좋아요 1 | URL
예전 신문은 오른쪽에서 왼쪽 배열이었을 겁니다! 신문들이 한문&일본어가 많아서 읽기 힘들더군요. 표어 같은 것은 쉬운 한자를 쓰는데 내용에 섞여 있는 경우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도 백화점이 많았다는 게 신기했어요. 사람 마음은 비슷한가 봅니다.

책읽는나무 2023-08-09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대구에 다녀왔을 때 중구 쪽이었던가? 암튼 근대화 거리 비슷한 곳이 있었어요. 거리를 걸으며 옛 성당이랑 병원 건물을 구경한 적 있었는데(성당에선 그 때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어 들어가보진 못했었네요. 그때 드라마가 꽤 유명했었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ㅋㅋ) 무영당 백화점도 혹시 그 근처에 있었던 걸까? 생각만 해봅니다^^;;
그 시절 다른 지역에도 백화점이 많았었군요? 좀 놀랐습니다.
하긴...제가 어렸을 때 백화점이란 쇼핑 공간이라면 부산 도시를 나갔었어야 했는데 백화점 이름이 지금의 체인점? 백화점이 아닌 자체 백화점 이름이 여러 곳이었던 것 같아요. IMF가 직격탄이었고, 롯데 백화점이 들어선 후 모두 사라졌습니다.
만년필도 국산이 있었다는 것도 새롭네요.
바ㄴ도ㅗ....^^

거리의화가 2023-08-09 09:18   좋아요 1 | URL
대구도 근대화 도시죠^^ 무영당 건물은 중구에 있다니까 나무님이 보신 게 맞을 것 같은데요? 생각보다 건물 자체 외관은 소박한 편인 듯 합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겠어요. 그냥 사무실 같은 외관이라!ㅎㅎㅎ
백화점이 엄청 많았더군요. 경성은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지방에도 많아서 놀랐어요. 인용한 백화점 말고도 많아서 몇 개만 올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IMF가 지방 백화점 위기의 직격탄이었겠네요ㅠㅠ 이제는 브랜드 백화점 지점 말고는 거의 보기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국산 만년필 신기하죠!ㅎㅎㅎ 저렇게 글자를 늘여서 쓰는 것도 마케팅인가 싶었어요.

자목련 2023-08-09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안겨주는 책이네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주제를 좋아하는 지인에게 기억해두었다가 알려줘야겠네요. 이미 알고 있을지도^^

거리의화가 2023-08-09 11: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목련님. 재미와 지식을 동시에!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이런 주제를 좋아하신다니 아마도 평상시에 관련 책을 보거나 박물관 등에 자주 가보실 것 같네요^^ 그분께서 이 책을 읽어보신다면 흥미로워하실거예요!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아우또노미아총서 81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신지영 외 옮김 / 갈무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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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에 여성으로 살면서 '마녀'라는 말과 '마녀사냥'이라는 표현에 익숙하다는 사실은 씁쓸함을 낳게 한다. 


그렇다면 마녀의 기원은 언제부터였는지 우리는 궁금해진다. 예전에 <여성괴물>을 읽을 때였나 아니면 어떤 다른 책일 수도 있겠지만 그 기원은 꽤나 오래되었다. 16세~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종교와 가부장적 사회의 결합이 원인이었다고 기억된다.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라는 책의 제목을 보고 마녀의 기원, 역사를 설명하고 오늘날을 진단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치게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반성했다. 


'마녀'에 대한 박해가 가부장 권력의 표현의 일환으로 행해진 점은 원래도 이해하고 있었으나 이것을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와 연결시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에서 여성은 소외적인 존재였다(이는 여성 뿐 아니라 장애인, 동성애자를 비롯한 소수자들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여성을 평가 절하하는 방식의 기제로 자본주의가 작용했고 무엇보다 마녀사냥이 식민주의 국가의 경로를 따라 확대되었다고 논지를 전개한 것에서 저자의 탁월함을 느꼈다.

과거에 식민주의를 경험했던 국가였던 제3세계 여성들은 기존의 가부장제에서 벗어나는 것 뿐 아니라 식민주의, 현재의 자본주의와도 갈등이 맞물리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1부에서는 자본주의와 유럽의 마녀사냥의 연결고리를 확인하고 2부에서는 오늘날의 마녀사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페데리치의 핵심 주장이 담긴 <캘리번과 마녀>을 읽기 전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책이어서 '좀 궁금한데?'하면 정리한다는 느낌이라 아쉬웠다. 그러니까 맛보기용이라고 볼 수 있겠다. 더 깊은 내용은 <캘리번과 마녀>를 읽으시길. 

대부분의 마녀사냥 역사가는 가장 정치적 직관이 탁월한 학자들인 경우조차도 사회학적 분석에 머무르면서 ‘마녀들은 누구였는가? 기소된 죄목은 무엇이었는가? 어디에서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 같은 질문들을 고찰했다. 또는 의료 전문직의 탄생, 기계론적 세계관의 발전, 가부장적 국가 구조의 도래 같은 주제들에 국한된 마녀사냥 분석을 전개했다. 그러나 노예무역과 ‘신세계‘ 토착민의 박멸과 마찬가지로 마녀사냥이,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부상하는 길을 열어젖힌 다양한 사회적 과정의 교차점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은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 P35

인클로저 개념은 토지 매·독점, 소작료 폭증, 새로운 과세 명목 등을 아우른다. 인클로저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폭력적 과정이었음은 분명하다. 호혜적 유대가 특징이었던 공동체들은 극심한 양극화를 겪게 되었다. 토지 귀족뿐만 아니라 부유한 농민도 담장 두르기를 했고, 적개심이 커졌다. 서로가 가까이 살았고 보복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 P42

여성에 대한 폭력, 특히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과 및 아메리카 선주민 여성에 대한 폭력이 증가하는 이유는 자본이 이 세계의 자연자원과 인간노동에 대한 압도적인 통제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재식민화 과정이 ‘지구화‘이며, 지구화는 자기 공동체의 재생산을 직접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상업모험기업의 거점이 되고 있고 반식민주의 투쟁이 가장 강력하게 벌어져 온 지역들(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더욱 극심해졌다.여성에 대한 야만적 행위는 ‘신 인클로저‘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준다. - P97

어떤 페미니스트는 소유권을 부여하는 것이 여성들의 안전을 더욱 보장하거나, 아프리카의 농촌에서 종종 마녀사냥이나 여러 형태의 무력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어 온 토지 분쟁을 막을 수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환상이다. 그 이유는 세계은행과 미국국제개발청이나 영국 정부 같은 다른 개발업자들이 추진하는 토지법 개정은 외국 투자자들에게만 이익을 주고 농촌에는 더 많은 부채, 더 많은 토지 양도, 그리고 빼앗긴자들끼리의 더 많은 분쟁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 P156

를 대신해서 필요한 것은 토지와 다른 공동의 자원에 대한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새로운 공동체주의의 형태들이다. 여성이 자식이 없더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가 아들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어서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더라도, 또는 남편이 죽고 보호해줄 남자 후손이 없더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공동체주의의 형태들이 필요한것이다.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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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8-07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오 완독 축하합니다, 거리의 화가 님. 후딱 다 읽고 리뷰까지 쓰셨네요. 저는 오늘 아침 시작했습니다. 부지런히 얼른 읽도록 할게요!!
저는 실비아 페데리치를 비롯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단체를 만들고 활동하고 연대하고 운동했던 기록에 대해 보노라니, 와 정말 다들 대단하다 새삼 감탄했어요.

거리의화가 2023-08-07 10:57   좋아요 2 | URL
네. 얇아서 금방 읽을 수는 있는데 안의 내용은 사실 굉장히 많은 것을 담고 있더군요. 캘리번과 마녀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미 2023-08-07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캘리번의 마녀>도 역시 후딱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에서는 독서 자극이 엄청나서 (화가님은 두꺼운 책까지!)
매일매일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나는데다 각각의 책들이 또 스스로 가지를 뻗어나가니 쉴틈이 없습니다. ㅎㅎㅎ

2023-08-07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수하 2023-08-07 1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이렇게 금방 읽고 후기까지 쓰셨으니 <캘리번과 마녀>도 잘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긴 좀더 촘촘한 근거가 들어가 있답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7 13:07   좋아요 1 | URL
촘촘한 근거가 궁금하여 <캘리번과 마녀> 읽어보려구요^^ 이번 달 책을 읽었으니 짬이 생겨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 지나면 또 안 읽게 되니 이번엔 꼭! 감사합니다.
 
하버드 중국사 송 - 유교 원칙의 시대 하버드 중국사
디터 쿤 지음, 육정임 옮김 / 너머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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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오대 십국의 혼란기를 겪은 후 송 왕조가 들어섰다. 송은 이전 왕조와는 색채가 확연히 다르다. 수나라와 당나라는 제도 등을 많이 이어받았고 사회적 분위기 등도 비슷했으나 송나라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송도 초반까지는 당 말의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에는 분위기가 확연히 바뀌는데 이는 유교적 국가 체제로 변화된 것이 결정적 이유라고 생각된다.

송대 왕조는 공자 이전 시대부터 있었던 조상 숭배와 국가 제사와 같은 유교적 규범을 이상화하여 국가 정교로 받아들였다. 송대 이후로 변화한 유교 중심의 사회는 오늘날까지도 중국의 문화적 기반 특성을 유지하는 견고한 중심이 되었다. ‘유교국가‘라는 용어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 또는 유토피아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상고시대에서 차용해온 유교적 통치의상적인 구조와 혼동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지성의 전통을 이끌어온 사상과 지배적인 행정 체제인 관료정치가 역사의 무대에서 긴밀히 결합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고대 경서에 뿌리를 둔 유교는 도덕, 즉인, 의, 예, 효, 충 그리고 무武보다 우선하는 문의 원리와 의례등에 기초한 윤리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교양 있는 상류 계층, 즉 계층적인 구조의 사회에서 다른 모든 계층이 제공하는 봉사를 필요로 하는 지식인 지도층의 행동지침으로 간주되었다(P68).

송은 외교 정책으로 '공존'을 택한다. 중국은 자신의 우위와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형제애'라는 허구에 합의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요, 서하와의 맹약으로 평화를 가장하고 있었으나 11세기에 들어오면 송나라는 군비 지출이 급증하여 재정적 위기가 초래되면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된다. 인종 때 범중엄 등이 1차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인종이 개혁파를 전폭적으로 지지하지 못하고 보수파들이 개혁을 반대하면서 실패하였다. 그 이후 개혁이 지지부진하다가 신종 때 왕안석이 경제, 군사, 교육 등 전반적인 개혁을 들고 나온다. 하지만 이 때도 반대파들은 왕안석의 개혁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린다며 그의 사퇴를 이끈다. 이후 조정 대신들은 서하에 대한 대규모 전쟁을 강행함으로써 정국을 바꾸어 보려고 했지만 전쟁에 패했다. 개혁파 사이의 투쟁은 북송 말까지 계속되었으나, 왕안석의 뒤를 따른다고 선언한 자들도 왕안석만큼 넓은 식견과 수양을 갖지 못했다. 휘종은 선친 신종과 형 철종의 뒤를 이어 철저한 개혁 정책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휘종은 채경蔡京(1046~1126)이나 동관(1054~1126)과 같은 용렬하고 부패한 관리와 환관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했으며, 이들이 이끄는 사이비 개혁당이 원한 것은 고작해야 황제를 즐겁게 해주어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었다(P129).
1123년 송과 금은 국가 간 계약을 하며 평화 체제를 유지하는 듯 했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금은 1125년 송을 상대로 전면전을 개시한다. 1127 년 개봉과 북송이 붕괴된 이후, 희생양을 찾던 남송의 학자들은 왕안석을 실패한 개혁을 주도한 단독 인물로 지목했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후의 사이비 개혁가들이 보인 떳떳치 못한 행동들까지 왕안석과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P123). 왕안석의 개혁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할 필요가 있겠으나 이후 북송이 무너지므로써 그는 북송의 멸망의 희생양이 된 측면이 컸던 것 같다.

1127년 송 왕조의 붕괴는 북송시대의 끝을 의미했다. 화북 지역을 금에게 빼앗긴 후송 조정과 행정 부서들이 서둘러 남쪽으로 떠나면서 송 왕조 역사의 두 번째 단계, 즉 1279년까지 152년간 지속되는 남송 시대가 시작되었다. 북송과 남송이라는 용어는 물론 송대에는 사용되지 않은 역사학적 명칭이다. 사건을 목격한 동시대 사람들 중에는, 1127년 송 왕조의 와해로 송의 연속성이 훼손되었고 왕조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견해를 일부 보이기도 했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한 왕조가 서한(전한)과 동한(한)으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송의 역사도 1127년을 기준으로 하여 양분된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다(P139).
1130년 금 기병대가 항주를 함락하고 압박을 가하자 송 정부는 고종과 신하들은 도주하여 소흥에 자리를 잡았다. 금의 기병대는 중원을 거듭 습격했으나 송의 지방군이 금의 군대에 끊임없이 대항하면서 고전하게 된다. 이 때 악비를 비롯한 유명한 장수들이 주전파로 활약하였다(주화파 중 유명한 이는 진회가 있다. 그는 악비 독살을 명령하였다). 금은 송을 정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평화 회담을 벌여 결국 1141년 양국 간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로써 송은 회수를 경계로 인정함으로써 중원과 호북성의 두 개의 주를 잃게 되었다.

송대에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 아래, 유학 사상가들이 고대의 중국사상을 재편하고 ‘도학道學‘으로 알려진 철학 체계의 기초를 창조해내기 시작했다. 결코 한가지의 철학학파였다고 할수 없는 이 사상적 운동은 서구 사회에서 대개 ‘신유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일차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질서를 수립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신유학은 합리주의적 인식론이나 근본주의 도덕론 같은 중국적인 가치 체계를 규정하고 재평가하였으며, 이것이 공공 영역은 물론 사적 영역에까지도 송문화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다(P193). 신유학 사상가들은 전통과 개인의 사회적 책임 문제와는 무관하게 개인만을 위한 독립적인 철학이나 구원을 위한 교리를 창조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동에 꼭 필요한 현실적인 답을 제공해주고자 노력했다. 유교 사회라고 해서 유학만을 중심으로 생각했던 사회로 오해하기 쉬운데 기존의 불교와 도교가 융합된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유학'이 아니라 '신유학'이라고 따로 명명했다 생각된다. '신유학'은 남송 시기 제대로 자리를 잡는데 국가 이념 뿐 아니라 사회 구조의 틀을 전반적으로 바꾼다.

송 왕조는 교육과 시험을 통해서 자기 영속이 가능한 관료 혈통을 이루는 문신 가문의 시대가 되었다. 지배층은 특권을 누렸으나 관료 집단 대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과거 시험이 유일한 길이 되었다. 송사회에서 결혼은 조상 숭배를 이어가는 것을 최고의 의무로 삼는 합법적인 후손을 생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송대의 혼례 의식에는 기원전 주 왕조시대의 유교와 가족 연대를 구축하여 특권과 영향력 또 경제적 번영을 확보하려는 사대부 계층의 이익이 융합되어 있었다. 송에서는 지속적이고도 의식적으로 올바른 행동의 모범을 탐구하던 송대 사대부들의 정신이 상고시대 주나라의 경전에 서술된 소박한 매장 관습을 부활시켰다. 고대의 문화를 존중하는 송대인들의 관념이 신유학 사상운동의 지지를 받아 타당하며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한족 중국인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더욱 강화되었다(P302). 송대에 시는 어떤 상황과 변화에 내재한 모습을 드러내기 위하여 쓰였고, 위태로운 정치 영역을 포함한 인식과 존재의 모든 방면을 다루었다. 다양한 유형으로 훌륭한 시를 지을 만큼 재능이 있다는 것은 뛰어난 정신세계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송대 작가들에게는, 내면세계의 본질이 시에 응축되었으며 그와 동시에 그 본질은 외부세계와 자연의 현상들에 대한 인식과 이해와도 복잡다단하게 연관되었다(P308). 시는 당 이전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송 시대부터 과거 제도에 '시'가 과목으로 선정되면서 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본다.

송은 과학 기술의 발달과 함께 상업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특히 개봉은 국제적인 상업 도시였다(대규모의 교외, 24시간 깨어 있는 도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사는 동네들, 도시 의식을 지닌 주민들을 특징으로 한 개방 도시). 송대의 뛰어난 경제적 성취는 몇 가지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조세 등 기상의 농업 경작지가 크게 증가한 것이 송대의 번영을 보장해준 요인이었다. 토지 등록은 과세 호구에 대한 개혁과 함께 추진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자영농이 송대 농업의 중추가 될 수 있었다. 농업 경제의 번창에는 모든 종류의 기술적 개선, 특히 새로운 도구의 사용이 필요했고, 이것은 다시 더욱 효율적인 채광 방법과 철, 구리의 높은 생산을 요구했다. 이러한 금속의 이용이 쉬워지면서 막대한 규모로 화폐를 주조할 수 있었다(P427). 양송 시대에는 상업, 금전대출, 조세제도 그리고 대외 정책에도 현금 통화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P431).

근대적인 표현을 쓴다면, 송대 사람들은 중세의 다른 사회에 비하여 보기 드물 정도로 사적 영역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를 천자에게 순종적인 신민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이론적으로는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을 만큼 잘 알려져 있는 규칙과 제재를 따랐으며 이러한 규율은 유교적인 행동 규범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주택 건축과 의상에서의 기호부터 위생, 오락, 자선의 범주까지 사적인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관찰되는 방임적 태도가 있었다. 그러나 13세기 말 몽골 지배하에 들어갔을 때 중국인이 누리던 자기결정적인 생활방식의 편안함은 끝나버렸다(P503).

남송 시대부터 이후 제국시대의 여성들은 제약을 받고 가내 공간에 갇혀 있게 된다. 이제 완벽한 여성상은 남자보다 작고 날씬하고 부드럽고 연약하며, 집안에 머물면서 부모와 남편, 가족들에게 봉사하고 어린 자녀들을 교육하는 여성이 된다. 이상적인 상류층 남성상 역시 송대를 지나면서 변화하여 호리호리한 체구와 여성적으로 나긋하게 행동하는 세련된 사람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P482~483). 이를 비롯하여 유교가 중국의 발전을 방해한 족쇄였다는 부정적 평가는 19~20세기 들어 강해졌는데 이는 고려 말,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나도 유교 이념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사회가 경직화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도 더 자료를 찾아 보면서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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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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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의 미친 여자>보다 확실히 더 내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왔다. 1950년 제2의 페미니즘 물결 이후의 기록을 되짚으며 여성, 문학, 정치 키워드를 맥락으로 연결짓는다. 특징은 미국을 중심 지도로 위치 시켰다는 점이다. 최근 여성 인권 후퇴의 우려에 대한 고찰을 위해서라도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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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8-05 22: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오오. 저 100자평 7일까지 쓰려고 열심히 읽고 있는 중…

책읽는나무 2023-08-05 23:23   좋아요 2 | URL
헐...완독하고 백자평 써야 했던 건가요?? 오.....😯
7일이 마감입니다.
파이팅~^^

잠자냥 2023-08-05 23:24   좋아요 3 | URL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고 싶어져서 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8-06 17:55   좋아요 2 | URL
앗 저는 7일까지 읽을 자신은 없어서...ㅎㅎ 잠자냥님 표 리뷰 기대되네요^^ 화이팅입니다!

독서괭 2023-08-06 20:22   좋아요 3 | URL
잠자냥님 파이팅!

잠자냥 2023-08-07 00:04   좋아요 4 | URL
이틀만에 다 읽은 나 칭찬해요! ㅋㅋㅋㅋ 여러분 이건 작품 많이 안 읽어도 쭉쭉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7 08:18   좋아요 4 | URL
잠자냥님 엄지척!!!

책읽는나무 2023-08-07 08:21   좋아요 3 | URL
와...잠자냥은 한다면 한다.ㅋㅋ
완독 축하드리고, 무엇보다도 작품 많이 안 읽어도 된다니 넘 반갑습니다요^^

독서괭 2023-08-06 2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우리는 12월에 읽어요.. ㅋㅋ

거리의화가 2023-08-07 08:18   좋아요 2 | URL
네^^ 사전에 독서 좀 하고 읽으면 더 맛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토지 20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1권부터 20권까지 근 1년여 기간 동안의 독서 대장정을 끝마쳤다. 뒤로 갈수록 대강 훑어 읽은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뭉클함이 있었던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과 내공은 역시 대단했다 싶다.


20부는 무엇보다 조선인이면서 앞장서서 조선인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게 만든 장본인이 심판을 받아서 후련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 한 사람의 무게가 징용 인원 몇 십명 또는 몇 백명의 무게와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이지만 사람은 당장 내 앞가림을 위해서 누구보다 잘 살고 싶어서 내 동포를 팔아넘기는 유혹에 굴복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유혹을 이기고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인류는 여전히 나, 개인,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여 돌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이것은 역사를 넘어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강두매와 홍이는 만주에 온 영광과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상현 씨 말이야. 인생이 시궁창인 걸 모르겠어?
하는 일 없이 땀 흘려 만들어낸 곡식이나 축내고."
"나도 이선생을 곱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자네 말대로 나 역시 프롤레타리아니까. 하지만 인간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그것에는 동조 못 해! 인민은 일하고 밥 먹는 기계 아니야!"
"기계가 되어야만 미래가 열린다. 그때까지 고생을 해야 해."
"인간은 기계 부속품같이 그렇게 해체되는 게 아니야. 이 만주 벌판 눈구덕 속에서 수많은 우리 조선인들이 죽어갔지만 그들은 심정적으로 죽어갔어. 고귀한 마음으로 죽어갔단 말이야!"

강두매와 홍이는 한 바탕 설전을 벌인다. 송영광은 진심으로 싸우는 줄 알고 놀랐고 홍이는 별 일 아니라 했지만 왠지 슬퍼보였다.

"서로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강두매는 깨끗하다. 깨끗한 정열이지. 사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친구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있어. 획일적인 그것이 맘에 안 들어. 주의와 주장이 어떻게 다르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치나 조직은 다수를 통제하는 것, 보다 이상적으로는 전부를 통제하는 것 아니겠어? 나는 정치나 조직 같은 게 생리적으로 싫어. 당장 시급한 것은 내 터는 찾아야 하고 억압하는 왜적은 물리쳐야 하고, 싫고 좋고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저는 뭡니까? 돼지군요."

영광의 '돼지' 타령은 이상현과 이어진다. 머리도 몸도 굴리지 않고 그저 한탄하며 사는 삶, 본인을 비하하는 동시에 나아가 이상현도 그런 사람의 일종이라는(강두메의 주장처럼)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 룸펜들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영광은 뒤에 정석과 이상현을 만난다. 송관수의 아들인 송영광을 보면서 이상현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동족임을 느꼈는지 동질적인 감정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송영광도 전쟁이 끝나더라도 조선으로 돌아갈 지 어떨지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상현과 같은 방향일지 모른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사람도 그 감정도 정리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떠밀려 만주로 온 송영광, 그리고 몇 십년째 만주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상현, 둘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만큼은 공통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조병수가 지리산 절로 아들인 남현과 함께 발걸음을 했다. 길상이 그린 관음탱화를 볼 겸 스님이 된 소지감도 만날 겸 해서다. 둘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꿀의 단맛에 취했을 것이며 세속적인 거짓과 허무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내 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 기쁨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시간이 그리 허술했다 할 수 없고..." - P96

아비인 조준구가 없었다면, 불구의 몸이 되지 않았다면 병수는 더 행복했을까. 병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신체를 가졌어도 그 아비는 남을 해치고 욕을 먹는 비루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그런 망나니 같은 아비를 탓하지 않았으며 아비가 돌아갔을 때도 진심으로 울던 이가 그였다. 누구나 조병수처럼만 산다면 이 세상은 희망적일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홍이는 한복이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홍석기라는 청년을 만난다. 그는 낯선 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징용 갔다가 어느 할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술술 내뱉는다.

"할머니가 따라왔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지요. 부처님한테 너가 무사하기만을 빌겠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그 할머니 얼굴이 바로 부처님 같았십니다."
"세상에 일본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다 있나? 하 참."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동쪽을 보고 절을 합니다.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장가든 지 한 달도 못 되어 잡혀간 홍석기. 징용에서 도망나온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 것이겠지만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감행했을지, 그리고 끝내 징용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다치거나 죽어서 돌아온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면 뼈아프고 숨이 가쁘다. 그런 그의 사연을 듣고 홍이는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홍이는 그 때문에 곤욕을 겪는다. 조그마한 일로도 정치, 사상범으로 몰아 잡아 가두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김두수는 만주를 떠나 서울로 아예 들어온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더 이상 만주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대받으며 살아온 것이 어디 나라 탓이오? 아버지 죄업 탓이지."
"반가에 태어나서 시정잡배만큼의 대접도 못 받고 능멸과 하시 속에서 살았다. 왜 그랬지? 어떤 놈은 만석 살림으로 떵떵 거릴 적에, 나라도 살인했겠다! 하고말고, 아버지 잘못인가? 이놈의 땅, 세상 때문이지."
"딱하요.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김두수는 애초부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라곤 한복이 밖에 없었다. 결국 김두수는 한복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부모를 두었지만 김두수(김거복)와 김한복의 삶은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한 사람은 세상 탓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러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고 욕 안 먹으며 살아왔다. 한복이는 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이 감정은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명희가 마음을 먹고 내 놓은 거금을 둘러싸고 운동 세력 간에 충돌과 갈등이 발생한다. 충돌의 중심에는 이범준과 몽치다. 이범준은 극렬한 사회주의자인 반면 몽치는 그런 이념과는 거리를 두었고 어찌 보면 신분제에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도 있음에도 그 세계에 부합하며 사는 측면이 있다. 이 무렵 지리산에는 이범준을 받들며 모여든 많은 청년들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모두 동학의 교도라 할 수는 없지만 계급 타파에 대해서는 이론보다 심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이 땅 식으로, 말하자면 토종, 순종이라 할 수 있는데 자네는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결국은 민족주의 얘기로군요. 그것은 반통합적이며 세계혁명으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혼돈하지 말게."
"이 말 저 말 할 것 없고,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무너져 가고 있는 일본, 느슨해진 후방, 이때야말로 우리가 나설 때 아닐까요?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대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해외파들에게 국내에서도 체면이 서는 일이며 민심에도 크게 고무될 것입니다. 앉은뱅이 늙은이도 아니겠고 암죽 받아먹는 갓난아기도 아니겠고 이 산에 있는 사람들은 피 끓는 청년들입니다. 넘쳐나는 힘, 열정에 불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 생광스러운 힘을 산속에 사장하려는지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력들이 범상하지 않은 여러분께서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는 겁니까? 저는 여러 번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는 것입니까? 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까?" - P384~386

이범준의 말은 과격하지만 분명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방향이 다른 것일 뿐인데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보면서 해방 후 극렬한 좌우대립의 미래가 그려지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닐 것 같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독립이 되면 우리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미래상을 떠올려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테지. 눈을 뜬 몇몇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많았고 사회주의 안에서도 분파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잠재적인 불안 요소를 작가님께서 미리 배치해두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은 났지만 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주갑이 아저씨는 살아 계시는건지, 인실이는 어떻게 되었으며 오가타와 쇼지와는 만났는지, 윤국이와 성환이는 살아 돌아오는건지 등등... 그러나 그 많은 인물들의 소식을 다 담기란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은 상상하는 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의 기호에 맞게 그들의 미래가 어떠했을지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뭔가 시원하기도 한데 섭섭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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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08-01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권 완독하시다니 대단합니다~!
오늘부터 토지의 화가로~!!
이런 엄청난 장편을 완독하셔서 시원섭섭하실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8-02 09:07   좋아요 1 | URL
토지의 화가ㅎㅎㅎ 새파랑님이 그동안 응원해주셔서 더 지치지 않고 잘 읽을 수 있었다고 하면 오버인가요?ㅋㅋ 작년 8월부터 읽기 시작했었더라구요. 딱 1년만에 완독의 결실을 맺을 수 있어 뜻깊습니다. 이 책은 재독, 삼독해도 좋을 책임에는 분명한 듯 싶어요. 감사합니다^^

은오 2023-08-02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누가 저한테 토지 읽었냐고 물어보면 아니 안읽었지만 내 친구분들 중에 토지 완독하신 분이 있어! 하고 대답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축하드려요 화가님!! 1년의 대장정 마무리라니 크!!! 😆

잠자냥 2023-08-02 22:0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아 나도 그래야겠닼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8-03 09:34   좋아요 1 | URL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막판에는 초반 회상 장면 나올 때 사건의 기억이 가물거릴 지경이었다는ㅠㅠ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