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지음, 해란 사진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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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림책 시장이 커졌다는 것은 나 같은 문외한의 사람도 알고 있다. 최근 들어 볼로냐상 등 해외 유명 수상작에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였을 때는 집안에 돈이 없어서 그림책은 커녕 책 자체도 읽을 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돈에 여유가 생긴 이후에도 그림책을 사 본 적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림책을 저평가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뜨끔했다. 성인이 되면 몸이 상하거나 마음이 다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는 발전한다고 하는데 갈수록 몸과 마음이 고립되는 성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림책은 현실에서는 권력을 가지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과 경쟁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에게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매개체다. 그렇기에 그림책에 갈수록 많은 이들이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10인의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작가가 작업한 그림책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 책을 작업할 때 가진 생각들을 담아놓았다. 인터뷰를 요청한 이가 작가들의 작품을 충분히 읽고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인터뷰를 통해 내가 겪은 인생의 경험들을 떠올렸고 작가의 몇몇 말에서는 공감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를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권윤덕 작가님의 책과 인터뷰를 통해서는 학창 시절 입학, 첫 수업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수업에 들어가던 날은 나를 늘 긴장시켰다. 겁이 많고 소심한 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하며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건지 두렵기만 했던 때였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게 되면 한 두명의 친구가 생겼으나 새로운 사람과 만나게 되면 매번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발표는 왜 그리 떨리던지 그때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덜덜 떠는 손과 발, 온 몸에 긴장이란 긴장은 다 하던 기억이 난다. 말을 하면서 말도 빨라지던 기억. 이렇게 부딪치고 넘어지고 싸우면서 겪어낸 과정의 경험은 여전히 두렵지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주었다. 

자기확신을 경계하신다는 말도 울림이 있었다. 나는 늘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닌가, 내가 가진 확신이 맞고 옳나를 생각한다. 경직성과 사투하며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고 늘 주문을 외운다. 작업을 위해서 극우 유튜브까지 보셨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내가 가해자라는 생각을 못하지 않나. 상대가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 것인지 알려면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설화 작가님의 책과 인터뷰에서는 속내를 들킨 사람 같이 느껴졌다. 나는 외부의 시선과 반응에 무척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속상하고 괴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하는 작업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닐텐데 나는 자꾸 타인과의 비교, 외부의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가두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채워지기 쉽상이다. 몇 년전 함께하는 동아리 사람들과 놀러간 적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께서 해설을 권유하셨다. 잘해내고 싶었지만 나의 얕은 지식과 그것을 말로 풀어내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선생님과 동아리 사람들은 잘했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소중하다. 준비하는 과정도 제법 길었고 그 과정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 묻고 설사 그것이 실패한 결과라 하더라도 나의 한계였어를 받아들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하는 주문이다. 


유준재 작가님을 통해서는 기다림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깨우칠 수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라고 하는 말에는 '그렇구나' 싶었다. 작가님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면서 순간을 기록한다고 한다. 그런 수많은 작업의 결과물들 중 쓰여지는 것은 1할이어서 아깝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으시단다. 오감을 열고 주변을 탐색하며 아이디어를 얻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결론을 얻기까지 탐색 과정이 필수인데도 나는 그 확장의 과정을 쉽게 닫고 수렴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곱씹게 되었다. 기다리면서 혼란의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넘어가면 혼란스러움을 덜 겪어도 되니까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누구나 멈칫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 순간은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것일 수 있지만 이를 통해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노인경 작가님을 통해서는 매일을 기적이라 생각하고 작고 사소한 것에 감탄한다는 자세를 배웠다. 결혼을 하고 인간 관계가 확 줄고 나서는 삶의 패턴이 정형화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집-회사를 말고는 딱히 주기적으로 들르는 장소란 산책 코스, 가끔 들리는 도서관 정도가 아닐까. 작가는 매일 보는 가족의 얼굴과 일상의 풍경을 그리며 보통 일주일에 한 권의 노트를 채운다고 한다. 매일 보는 것들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기록들이 나올까 생각했다. 반복되는 하루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일기도 비슷한 내용이어도 조금씩 다르다. 풍경도, 감정도 조금씩 다르다. '어차피 똑같은데 넘어가지 뭐'하면 결국 시작조차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바꾸고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만으로 어떤 결과물이든 나올 것이다. 거창한 것을 계획하기 보다는 소소한 결과물을 생각하고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근사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겠지.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렇게 알찬 인터뷰라니~ 책을 통해서 보고 싶은 그림책들도 여럿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두권씩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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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8-19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읽으셨군요~! 리뷰 잘 읽었어요. 화가님 개인 경험담과 함께 버무려주시니 더 와닿네요^^ 앞으로 그림책에 더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그림책 업계 관련자 아닙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9 12:18   좋아요 3 | URL
도서관 대출도서라 반납기일이 다가오길래 열심히 읽고 마쳤습니다.
에세이를 읽으면 특히나 작가의 생각에서 공감을 발견하거나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개인적인 경험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 같아요.
ㅎㅎㅎ 그림책 앞으로 일반책 읽을 때 한두권씩 같이 포함시켜서 읽어도 좋겠다 싶더군요.

미미 2022-08-19 1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각 작가님들 글에 관한 감상이 조곤조곤하고 감성을 자극하는데가 있네요~♡ 여기저기 제 이야기도 여럿 있어서 공감됩니다.ㅎㅎ 저도 이 책 찜해두었는데 먼저나온 유럽편도 인기였나봐요. 읽고나면 그림책이 더 좋아지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9 12:20   좋아요 2 | URL
미미님~ 감성을 자극했다니 뭔가 뭉클합니다. 10명의 작가를 통해서 한 두작가는 본인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생각하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유럽편도 있더군요. 저도 기회가 된다면 그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이 책 읽고 나면 10명의 작가 이름과 더불어 그림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실거에요!^^*

책읽는나무 2022-08-19 19: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괭님 리뷰 읽고 찜해 뒀었는데 화가님마저!!!!^^
우리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멋진 그림책들이 많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도서관도 많고, 그림책 작가님들 얘기도 듣고....요즘 아이들은 그런 점에선 무척 부럽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20 09:49   좋아요 2 | URL
좋은 그림책들이 이리 많았구나 싶어서 놀랐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아져서 좋겠지만 스마트폰이나 볼 거리가 많아져서 책에 관심이 덜 가는 건 아닌가 생각하게 되기도 하네요. 그건 어른도 마찬가지지만요~ㅎㅎㅎ
어릴 적 볼 책들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여유가 없었어서 접할 기회는 없었을 것 같아요. 사람이 여유가 생겨야 눈에 들어오는 게 있더군요. 나무님이 이 책 읽으시면 저보다 더 잘 읽어내실 게 분명합니다*^^*

희선 2022-08-20 0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은 어린이뿐 아니라 모두가 보는 거죠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림보다 글을 더 보는군요 어릴 때는 책을 거의 안 보고 모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림책이 많이 나오고 한국 사람이 상도 받아서 좋네요 같은 날이어도 거기에서 다른 걸 보는 거, 참 좋을 텐데 그것도 쉽지 않군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이라도 그러면 좋을 것 같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20 09:51   좋아요 1 | URL
저는 그림책에 관심 자체가 아예 없었는데요. 이 책 보면서 그림책에서 충분히 위로와 감동을 얻을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일반책과 전혀 다르지 않았어요. 한국의 그림책 시장이 많이 성장해서 이제는 볼 책들이 참 많아진 것 같아요. 희선님도 그림책을 통해서 힐링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mini74 2022-08-20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린시절엔 그림책 대신 커서 학교 도서관의 동화책으로 시작한 거 같아요. 전래동화 등도 다 글책으로.ㅎㅎ 그래서 아이 어릴적에 그림책 욕심을 잔뜩 부렸죠 주로 제가 읽으면서 ㅎㅎㅎ글이 없는 그림책을 보며 웃고 우는 법을 그때 배운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2-08-20 10:30   좋아요 1 | URL
그림책을 도서관에서 종종 봐야겠다 싶더라구요. 경쟁률이 치열할지는 모르겠으나~ㅎㅎ 보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는 않으니 있는 것부터 집어서 보는 것도 좋겠죠. 그림책을 보며 울고 우는 법을 배웠다는 말씀이 와닿네요. 저 책 속에 몇몇 그림들은 제 감정을 끌어당기게 만드는 것들이 많았어요.
 
시민의 한국사 2 - 근현대편 시민의 한국사 2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돌베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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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2권은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 2권으로 나눈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분량 문제이기도 한데 기존에 한국역사연구회가 1992년도에 펴낸 한국통사 저작인 한국역사는 1권으로 나와서 아무래도 내용상 압축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었다. 


시민의 한국사의 압권은 2권이라고 생각한다. 2021년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정말 최근까지의 한국사를 담고 있다. 게다가 보수/수구 정권의 눈치에 은폐되거나 축소된 다양한 시민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때문에 제목에 걸맞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2권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감탄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를 찾으시면 좋겠다.


2권의 가장 큰 장점이 최근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다양한 시민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 하나의 장점은 한국사만으로 국한하지 않고 주변국의 정세를 비롯하여 세계사의 흐름을 담고 있어서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근현대사는 특히나 세계 정세를 이해하지 않으면 역사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세계사의 흐름을 같이 다루어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생각된다. 


1권에서도 돋보였지만 2권은 더욱 그러한데 경제 파트를 상당히 많이 다룬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식민지 시기 경제 파트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이를 시기별로 잘 다루고 있다. 일본이 조선을 어떻게 경제적으로 침탈하고 자본을 잠식했는지 농업과 공업 등 분야별로 확인할 수 있었다. 


개항기는 유럽과 미국의 세력 경쟁이 외부로 본격 격화되는 시기였다. 청일/러일 전쟁으로 동아시아의 질서는 일본 중심으로 변화되었다. 조선의 개화 세력은 일본 or 청 or 러시아에 기대면서 자력으로 근대화를 추구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청이 영국과 아편전쟁 끝에 강제적으로 조약을 맺고 일본이 미국과 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서구 국가들은 사회진화론에 기반한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 논리를 바탕으로 비서구 지역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였다. 서구가 아시아와 맺은 조약의 기반은 국제법으로 서구와 비서구를 구분하는 체계였다. 국제법은 1648년 30년 간의 종교전쟁을 종결짓는 베스트팔렌조약 이후 유럽 기독교 국가 간의 관계를 규정한 공법에서 출발한 것이다. 18세기 이후 서구 법학자들은 비서구와 비독교 국가의 법체계에 비문명 요소가 있다 판단하고 국제법은 서구 기독교 국가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유럽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국제법 논리에 따라 비서구 비독교 국가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자국법을 적용하는 치외법권을 강요한 것이다. 서구열강은 청일본과의 조약에서 치외법권의 특권을 확보했으며 이후 일본이 다른 국가에 이를 동일하게 적용하면서 불평등조약체제가 성립되었다. 


개항기 대표적인 민중 항쟁이라면 동학농민전쟁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동학농민군은 1, 2차로 나뉘어지는데 그 성격도 다르고 전쟁의 양상과 결과도 매우 달랐다. 1차 봉기는 1894년 2월부터 6월까지 지속되었고 동학농민군은 고부와 고창을 점령하고 황룡촌에서 관군을 격파한 후, 정읍과 태인, 전주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에 긴장한 민씨 정부가 청에 도움을 청하면서 청군과 일본군이 조선에 잇달아 파병되는 결과를 낳는다. 동학농민군은 이에 관군과 6월 11일 전주화약을 체결하며 1차 봉기가 마무리된다. 2차 봉기는 1894년 10월부터 12월까지 지속되었다. 동학군이 공주를 총공세 목적지로 삼자, 동학군과 일본군은 11월 말부터 공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동학군은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버텼으나 12월 10일 우금치 전투에서 최종적으로 패배했다. 

동학농민전쟁을 공부할 때마다 민씨 일가가 청군을 부른 것은 결코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남의 나라에 손벌려놓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순진한 생각 아닌가? 조선은 속방국이므로 조선을 보호해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을 것을 생각하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청-일 간 맺어진 텐진 조약으로 청의 도움은 일본까지 끌어들이게 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었다.



(동학농민군 제1차 봉기)



(동학농민군 제2차 봉기)


그렇게 조선에 들어온 일본은 청을 상대로 전쟁의 빌미로 이용했고 1894년 6월부터 1895년 4월까지 근 1년 간 청일전쟁이 진행된다. 일본은 조선의 독립과 동양 평화라는 구호를 내세웠지만 청과 일본의 주도권 싸움이었던 이 전쟁으로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었다. 게다가 청일전쟁의 결과는 혹독했다. 조선의 내정 개혁은 친일 세력에 의해 일본의 입김에 의해 이루어졌고 이후 조선의 철도 등 많은 이권은 일본이 차지하게 된다. 



(청일전쟁)


개항기 파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부가 한 여러 시도들이었다. 아관파천(1896) 이후 강제 병합(1910) 이전 시기까지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어떻게 조선이 무너져 갔는가 하는데 주로 집중하여 외국에 의해 침탈되는 이권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비록 실패는 했을지언정 백성들도 정부도 여러 시도들을 했다. 

1720년(숙종 46) 정부는 양전 제도를 170여년 동안 시행했으나  전국적으로 확대되지 않은 탓에 토지와 소유자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조세 부과와 징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한제국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1898년 7월 전국 단위의 양전사업에 착수했다. 양지아문을 설치하고 서울은 외국인 전문가 주도하에 서양식으로 측량하고, 지방은 각 도 단위로 양무감리와 양무위원을 중심으로 결부제에 기초하여 측량하였다. 양전은 결부제를 바탕에 둔 전통 방식에 새로운 특징을 더했다. 전답을 소유한 주인인 시주와 소작인을 함께 기재해 납세 의무자 및 지주 전호관계를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또 전답 위주의 기록이었던 이전과 달리 산림과 천택, 가사 등 모든 부동산을 조사 대상으로 삼았다. 또 실제 면적을 기입하고 절대 면적을 표시하면서 객관적 파악을 하게 하였다. 양지아문은 1899년 6월 시작되었으나 1901년 흉년이 들며 12월에 중단되었다. 그때까지 양전이 실시된 지역은 대상 지역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범위였다. 

양전 사업으로 토지와 소유자를 조사하고 양안에 기재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때까지 토지 소유권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보호해주는 제도는 없었다. 1901년 10월 지계아문이 설치되면서 오늘날의 등기부 같은 토지 소유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가 비로소 마련되었다. 양안처럼 전답 뿐 아니라 산림, 천택, 가사를 포함하고 개항장 외에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한다는 조항도 들어갔다. 1902년 4월 강원도부터 시작된 지계아문이 2년에 걸쳐 이루어지면서 전국의 3분의 2 정도 지역에 토지 측량이 이루어졌다. 다만 1904년 1월 지계아문이 축소되면서 양전사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식민지 시기는 조선 뿐 아니라 아시아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열강의 이권 다툼에 희생양이 된 시기였다. 한국은 주권을 완전히 상실하였고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억압과 차별, 수탈을 당하였다. 또 일본의 대륙 침략의 기지와 일본 개인과 기업 자본의 활동에 적합한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로 변모하면서 사회경제적으로 대일 종속관계가 만들어지고 민족 간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레닌이 민족자결 원칙을 담은 「평화에 관한 포고」를 발표했고 1918년 1월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원칙으로 민족자결 조항을 포함시켰다. 다만 민족자결원칙은 1919년 1차 세계대전 결과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서 패전국의 일부 식민지에 적용되는 것이었으나 식민지와 반식민지 상태에 놓여 있던 전 세계 약소민족들에게 독립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조선인들은 일본에 맞서 비밀결사운동과 실력양성운동, 사회주의운동, 의열투쟁, 무장투쟁, 정부 구성 등 일본의 지배 시기에 따라 다양한 노선과 방식으로 꾸준한 항쟁을 벌였다. 


일본의 조선 지배가 영국의 아일랜드 지배와 비교할 만하다고 기술한 것이 눈에 띈다. 어째서인가. 영국도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부르지 않고 본국으로 취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1919년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협상 끝에 1922년 아일랜드자유국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1920~1930년대 자치를 거쳐 아일랜드가 독립으로 나아간데 반해 일본은 1945년 패전 때까지 조선의 자치와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종종 대만과 조선이 비교되고는 하지만 둘은 차이가 있다. 대만은 일본의 경제적 식민지였던 데 비해 조선은 경제적 식민지 이상으로 군사적 식민지의 성격이 강했다. 대만은 중국의 하나의 지방이었다면 조선은 오랜 독립국이었기에 일본은 조선인들의 많은 저항에 부딪쳤다.


일제는 조선의 농업 구조를 변화시킨다. 1910년대 개량 농법을 보급하고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으로 식민지 지주제가 정착되었다. 이는 쌀의 공급량을 늘려 안정적으로 일본 시장에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이 시기 조선은 쌀 생산량보다 반출량이 훨씬 컸는데 수확하자마자 일본인 미곡상이 사들여 일본으로 보내버렸고 밭을 논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작물의 재배 기회까지 줄어들면서 쌀 소비량이 급감하여 농민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졌다. 지주의 경제적인 힘이 커지면서 농촌 사회는 자작농의 비율이 감소하고 소작농이 증가하여 양극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농가 경제는 자립성이 약화되고 외부 자극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구조로 변화되었다. 1930년대 이후에는 소작관계법이나 전시 농업통제정책이 시행되면서 식민지 지주제가 둔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런데 일본인 지주제는 일제 말기까지 성장세를 보인 반면 한국인 지주제는 1920년대 후반 이후 위축되는 추세를 보이게 된다. 일제 말기가 되면 식량 공출, 강제 저축, 강제 동원 등이 이루어지면서 농사를 기피하는 풍조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식민지 공업화는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조선에 일본의 자본이 들어와 공장을 설립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총독부는 일본 기업이 경영하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자본가들에게 조선에 투자를 종용하였다. 금융과 세제 지원을 하고 공장 건설에 필요한 용지도 싼 가격에 이용 가능하게 했으며 원료 확보에도 편의를 제공했다. 하지만 노동자 보호를 위한 보호 장치가 적용되지 않았으며 노동자가 조직화하는 것을 철저히 탄압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 자본이 들어간 회사는 점차 증가하였으나 조선인 공업회사는 대부분 영세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41년 말 기준 공업 분야 회사, 개인 기업의 자산 총액 중 일본인 사업체의 비중은 91.5%를 차지한 반면 한국인 기업의 비중은 8.5%에 불과했다. 조선인 공장은 주로 화학, 식품, 방직 분야에 많았으며 주로 생필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었다.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사회주의 운동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조선공산당의 역사는 대부분 소략하게 다룬다. 때문에 조선공산당 책을 따로 읽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후 전 세계를 강타했던 사회주의를 제외하고 식민지 시기를 결코 논할 수 없다. 일제의 치안법(1925)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강력한 탄압과 제재 속에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와 정당이 지하로 숨어들어가는 과정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신간회의 좌우합작 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국내는 사실상  독립운동의 동력이 상실된다.


1945년 조선의 해방 이후 6.25 전쟁 이전까지의 시간은 한국 현대의 기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이다. 해방 후 임시정부가 내세웠던 통일 정부와 민주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했으나 남한과 북한은 미소 하에 각기 다른 정부가 세워지면서 전쟁을 치르게 된다. 전쟁의 인적, 물적 피해가 컸으나 이념의 갈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서로를 온전히 믿지 못하는 사태를 만들고 말았다. 


이 책의 현대사야말로 2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수면 아래 잠자던 시민의 역사가 요동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이승만 정부, 1960~1970년대 박정희 정부, 1980년대 전두환 정부, 1990년대 노태우,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2000년대 노무현 정부, 뒤이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최근의 문재인 정부까지 짧은 역사인데도 워낙 역동성을 지녔기에 놀라움을 느끼게 한다. 이는 대중이자 시민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수많은 시민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한국현대사는 이렇게 씌여질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4월 혁명, 6.3항쟁, 3선 개헌 반대운동으로 이어진 1960년대 민주화 운동이 유신 반대운동, 재야민주화운동, 학생 운동 등 197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고, 그 흐름이 전태열 열사의 분신으로 상징되는 민중노동운동으로 결합해 1979년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박정희 정권은 종식되었다. 신군부의 광주민주화운동 탄압은 3S를 통해서 대중의 눈을 돌리려 했으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조직화된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미선이 효순이 사건, 광우병 파동 이후 중요 이슈가 나올 때마다 민중은 촛불을 들며 거리로 나왔다. 2016~2017년은 박근혜 정권의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거리를 나선 시민들의 힘이 승리하며 촛불혁명을 만들어냈다.

문화 파트에서는 IT의 발전 이후 대중문화가 미디어를 타고 성장하면서 만들어진 한류에 대해서도 다룬다. 동아시아에 국한되어 있던 한류의 붐이 이제는 BTS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한류 팬덤과 컨텐츠의 인기를 이끌어낼 정도로 성장하였다. 

마지막에 전후 북한 사회의 정치와 경제, 사회, 외교에 대해서도 정리해놓아 북한 사회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당연하겠지만 김정은 시기까지 포함시켜놓았다. 


100여년이 넘는 역사를 500여페이지에 걸쳐 압축적으로 담아 놓았다. 파트별로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 결론만 보여주지 않고 맥락을 제시하고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고 보여진다. 이 책시리즈를 통해 최신의 한국통사를 확인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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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8-19 0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나라에 사는 한사람 한사람이 역사를 만들기도 하죠 이름 없이 살다간 사람... 그때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더 앞날 사람을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치뿐 아니라 환경도 더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인류가 지구에서 살려면... 이건 지구 전체가 생각해야 하는 거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9 09:01   좋아요 2 | URL
네. 한국의 근현대사는 한 사람 한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역사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그 역사가 씌여지고 있고^^ 말씀하신대로 앞으로가 중요하죠. 정치는 엉망인데 환경은 뒷전이 가고 있네요. 이번에 겪은 물난리를 보면 환경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ㅠㅠ 지구 전체가 고민할 문제인데 고물가 및 경제 리스크로 다시 후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8-19 0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 가량의 분량이었을텐데 한 권에 근현대사를 다 담았군요? 그래서 책의 페이지 수도 만만찮습니다.^^
아픔의 역사 일제시대는ㅜㅜ 간혹 이 일본 침략이 없었더라면 우린 또 어떤 근대사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친일파 없는 근대사!!!...그래서 민주화는 좀 더 일찍 시작되고 있었으려나? 싶기도 하구요.
정치적 안정이 나라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었으니...또 지금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겠죠??
하지만 코로나 상황은 똑같겠죠??ㅋㅋㅋ

거리의화가 2022-08-19 12:15   좋아요 2 | URL
네. 그래서 1, 2권으로 나눈 것이 참 다행입니다. 분량은 500여페이지 정도 되는데 저는 생각보다 길지도 않고 너무 짧지도 않고 적당하게 느껴졌어요.
일제시기는 지금도 생각하면 여러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게 하죠. 하지만 그때 국제 정세도 그렇고 우리에게 불리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친일파는 이완용처럼 나라 팔아먹을려고 작정했던 매국노도 있고 지주나 기업처럼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돈벌어먹기 힘들어서 시작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우여 곡절이 있었으나 그리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지나는 와중에도 끊임없는 민주화 시도를 한 시민들의 힘으로 여기까지나마 온 것 같습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4(고소한 맛)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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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자체만으로 풍부한 향과 음미할수록 고소한 단맛이 느껴져서 좋다. 신맛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단맛만 있으면 가볍게 느껴지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서 묵직한 바디감으로 느껴진다. 시지 않아서 아침에도 마시기 편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넘김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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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1 - 전근대편 시민의 한국사 1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 돌베개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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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 만에 한국 통사를 읽게 되었다. 그 때 읽은 책들은 이제는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변태섭의 <한국사통론>, 한영우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였다. 함석헌의 <뜻으로 본 역사>는 사두기만 하고 시도는 하지 못했다. 


통사는 말 그대로 한국사 전체를 개괄식으로 훓어내려간 역사다. 어떤 입장에서 쓰느냐에 따라 그릇에 담긴 내용과 서술 방식이 달라진다. <한국사신론>은 지배층의 변화에 따른 역사 서술 방식을 취했고 <한국사통론>은 사회 내부의 발전에 따른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역사 서술 방식을 취했다. <다시 찾는 우리 역사>는 비교적 최근까지(박근혜 정부) 개정을 거듭하였는데 선비 정신을 중요시하는 것이 눈에 띈다. 


<시민의 한국사>는 이 책들에 더해 한국통사의 고전에 오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1권은 전근대편으로 조선 후기 개항 이전까지를 다루었다. 통사는 개론서이기 때문에 상세하게 서술하지는 않는 편인데 이 책은 그런 점을 보완했다고 느껴졌다. 역사 교과서의 사건-연도 단순 나열이 아닌 사건 전후의 과정을 기술하여 맥락을 확인할 수 있게 한 점이 눈에 띄었다. 전근대는 사진이 없던 시기이므로 유물과 유적, 과거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 역사를 추측할 수 밖에 없는데 상당히 많은 유물과 유적 사진, 지도, 도표 등을 싣고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또 균형 잡힌 서술 방식이 눈에 띈다. 지배층의 변화에 따른 정치사 위주의 서술은 교과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지만 애써 찾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는 민중들의 기록은 확인하기 어려운에 이 책은 그런 빈 곳들이 채워져 있다. 특히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의 경우 따로 정리를 하여 독자들이 확인하고 향후 검증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정치사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 문화, 사회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 서술이어서 좋았다.



우리에게는 삼국 시대 이전 낙랑군의 역사가 뚜렷하지 않다. 낙랑군은 중국 왕조의 변화에 따라 변화와 부침을 겪었고 대부분 중국사의 기록에 의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20세기 이후 일제 식민사관에서 낙랑군을 중국의 식민지라고 강조하면서 왜곡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낙랑군은 고조선을 기반으로 성립되었고, 삼한(마한, 진한, 변한)과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낙랑군(대방군도 마찬가지)은 한이 설치한 것이지만 한국사의 일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3세기 중반의 초기 국가들)


삼국시대 중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백제다. 백제는 백제국에서 출발하였다. 사실 역사를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고구려에 더 관심이 있었지만 현재는 백제로 마음이 기울었다. 백제 멸망 후 지배층을 비롯한 상당수의 백성이 당이나 일본으로 넘어가서 자리하였고 자체 기록은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백제 기록의 상당수는 일본이나 중국사에 의존하고 있어 축소되거나 왜곡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백제의 정복 군주하면 4세기 근초고왕을 떠올릴 것이다. 이 때 영토 확장이 이루어진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 영토 확장을 했느냐를 두고 논란이 있다는 것을 책에 싣고 있다.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첫 번째, 마한의 남은 세력을 통합해 전라도 전역을 직접 지배했다는 견해. 둘째, 전북 지역까지만 직접 지배하고, 전남 지역은 간접 지배했다는 견해, 셋째, 전남 지역은 일시적인 복속에 그쳤고, 전북 지역까지만 간접 지배했다는 견해다. 논란은 있으나 근초고왕대에 백제는 적어도 충남 지역까지 직접 지배가 이루어졌고, 마한의 남은 세력에도 강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통일신라 시기는 왜 이리 재미가 없을까. 정치사 위주로 배워서이지 않을까 싶은데(문화 파트는 상대적으로 재미있으니 넘어가자) 정치는 전제왕권 강화, 왕위 다툼 이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래도 책에서 경덕왕 이후 혼란스러운 왕실의 상황을 2~3페이지에 걸쳐 잘 소개해두고 있다. 이런 정리가 없으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여러 기록을 뒤져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물론 상세한 확인을 위해서는 기록을 뒤져봐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그것은 논외로 하겠다. 


한편 통일신라와 함께 나란히 했던 발해가 있다. 기억나시는지. 발해는 고왕(대조영)-무왕-문왕-선왕 이 네 명의 왕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없다. 문왕과 선왕 사이 25년간 6명의 왕이 교체되는 내분이 있었다. 그만큼 왕실은 혼란스러웠고 지방에 미치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발해의 멸망에 대해서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심지어 백두산 폭발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 하지만 이런 내분기가 있었고 9세기 후반이 되면 동아시아가 요동치면서 정세가 혼란스러워진다. 중국은 5대 10국이 들어서며 혼란스러웠고 거란족이 부족을 통일하고 요를 세운다. 발해는 요의 성장에 따른 전략 변화, 기동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데 이는 내부적인 요인이 컸다. 발해는 요와는 한 차례 밖에 교섭하지 않으면서 중국 왕조와는 지속적인 친선 관계를 가졌다. 발해의 통제하에 있던 보로국(한반도 북부에 있던 여진의 소국)과 흑수, 달고(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거주한 말갈족 중 하나) 등이 독자적으로 당이나 신라 및 고려와 교섭하면서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게다가 발해의 지배층조차 백성을 이끌고 고려로 망명하면서 동력을 잃었다. 



(9세기 발해의 영역)


전근대 역사 중 가장 흥미로운 국가가 있다면 역시 고려다. 중국과 만주의 영역에서 많은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고려는 500년 가까이 왕조를 꿋꿋이 지켜낸 나라다. 11세기 거란, 12세기 여진, 13세기 몽골, 14세기 홍건적과 왜구까지 쉴 틈없는 외적에 대한 고려의 대처는 놀랍기만 하다. 이 중 가장 어려운 적은 역시 몽골이었을 것이다. 몽골의 항쟁은 총 70여년 간 이어졌는데 정권의 주체가 무신으로 변화되는 혼란 속에서 일어났고 정부군의 항쟁 뿐 아니라 곳곳에서 민중의 항쟁이 이어졌다. 삼별초의 항쟁은 진도에서 제주도까지 옮겨가며 끝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았다. 전쟁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는 등 많은 피해가 있었다. 내가 고려를 좋아하는 것은 사회의 유연성 때문일 것이다. 유연한 외교와 사회 구조 등 여러 모로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부계 위주의 가족 구조가 아닌 양가의 혈연의식에 기반한 가족친족 구조이기에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신의 혈연을 중심에 두고 상대의 혈연 이익도 존중하였다. 아들과 딸은 성별과 사회적 역할에는 차이가 있었으나 가족 내에서는 동등한 지분을 지녔다는 것이 눈에 띈다. 



(몽골의 침입과 고려의 대응 및 피해)


조선은 양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국가다. 16세기 사림 세력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도전이 설계한 대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바탕으로 건강한 정치 구조를 지니고 있었다. 과학 기술과 상공업에 대한 천대도 심하지 않았다. 사림 집권 이후 붕당이 심화되고 유교 중심의 국가가 되면서 사회의 폐쇄성이 짙어졌다. 사림의 중심 기관인 서원은 향교와 달리 양반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서원의 원생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뽑았기에 양반들은 더 많은 서원을 건립하고자 했고 집안의 위세를 드러내기 위해 조상을 모시는 문중서원을 세우는 경우도 많아졌다. 조선 후기 양반들은 증가했으나 자리는 정해져 있었으므로 직함 없이 일생을 고향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양반의 지위로 군역을 면제 받으면서 양반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향교와 서원은 이들에게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 시기인 영/정조 시대를 지나고 세도정치기가 오면 부패와 학정으로 민란이 발생했다는 것으로만 기억하기 쉽다. 하지만 순조나 헌종 시기 국왕은 왕권 회복을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순조는 만기요람을 편찬하여 국정 운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고 헌종은 총융청을 총위영으로 바꾸면서 군사력을 확보하려고 했다. 물론 이 때 삼정의 문란이 워낙 심했기 때문에 이들의 의지력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된다. 삼정의 문란은 국가 재정 운영 방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방재정 운영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심해진 탓이 컸다. 

조선 후기가 되면 강력했던 신분제에 변화가 생긴다. 양반이 분화되고 중인과 평민이 성장하며 노비가 급감한다. 개항기 이전 무렵이 되면 양반이 7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하였으나 대부분이 세력 없는 지방 양반인 향반에 머물렀고 일부는 몰락한 잔반으로 소작이나 수공업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평민 중 일부는 상공업의 발전으로 부를 축적하여 양반의 위세를 능가하게 되었고 납속책이나 공명첩으로 양반의 족보를 매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결과 평민과 양반 사이의 간극은 좁아지게 된다. 


전근대 시기 답게 왕위계보도를 첨부해 놓았고 자료의 출처, 참고문헌, 찾아보기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리고 경제 파트를 많이 다루고 있어 도움이 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데 늘 정치나 문화 파트에 밀려 소홀한 경우가 많다. 민란의 대부분은 경제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를 놓치면 역사의 흐름 중 큰 부분을 놓치는 것이다. 

단 한가지 이 책의 아쉬움은 책의 재질이다. 무광이어서 흠집에 민감한 듯하다. 책을 험하게 보는 나는 벌써 여러 군데 찍히고 긁혔다. 코팅을 하거나 유광 재질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이 책을 접한 소감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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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8-17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고민중이었는데 이러히게 딱 올려주시니 ㅎㅎㅎ 추천사가 좋더라고요 제목도 좋고..그러고보면 발해는 교과서에서도 네 명의 왕만 배운거 같아요. 낙랑은 낙랑공주? 맞나요 ~~

거리의화가 2022-08-17 17:42   좋아요 2 | URL
오 미니님 고민중이신 책이었군요^^ 제 리뷰가 추천에 도움이 되시면 좋겠네요^^*
ㅋㅋ 발해 진짜 네 명의 왕밖에 모르겠죠. 너무 간단하게 다뤄서 아쉽습니다. 고려 때 발해의 역사를 정리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두고 두고 아쉬워요. 낙랑은 더 정보가 없고요ㅠㅠ

바람돌이 2022-08-17 21:24   좋아요 3 | URL
낙랑공주의 낙랑에 대해서는 현재 통설이 없는 상태입니다. 한사군의 그 낙랑이라는 주장도 있고, 당시 고구려 주변의 별도로 있던 소국이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전자일거같은데 모르죠. ㅎㅎ
낙랑이 중국 한나라가 세운 일종의 점령군이었다보니 한국 고대사에서는 이 부분을 얼버무리고 잘 넘어갑니다. ㅎㅎ

거리의화가 2022-08-18 09:45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낙랑 뿐 아니라 한국 고대사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죠. 정설이 없다보니 그런 것이지만 그래도 다양한 가설을 소개해준다면 좋을텐데 그부분이 아쉽더라구요.

책읽는나무 2022-08-17 23: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발해 땅은 보면 볼수록 위대합니다.
넓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지도를 보면 매번 놀랍니다^^
저렇게 넓고 활달한 나라였었는데 참 애통합니다.
낙랑이 한사군의 낙랑일 수도 있었다구요?
저는 고구려 땅 옆의 옥저 동예랑 같은 나라인 줄 알았는데 아녔군요? 아...그래서 낙랑군은 옥저와 동예에 비해 자세한 설명이 없었던 건가 봅니다. 위치상으로 중국이 가깝긴 합니다.
이 한 권의 책이 조선까지 역사를 아우르는군요.
경제사까지 다룬다니 저도 조금 땡기네요^^

거리의화가 2022-08-18 06:27   좋아요 3 | URL
그쵸. 저도 발해땅을 보고 나면 한반도 너머의 땅을 떠올리게 됩니다. 만주땅은 독립운동 장소로도 쓰여서인지 더 남다른 것 같아요.
낙랑군은 여전히 미지수의 나라입니다. 많은 가설들이 존재해서 어느 게 맞는지 정확하지가 않아요. 말씀하신대로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 같아요. 경제도 다루니 조선 후기 같은 경우는 지금 읽는 토지하고도 연결되더라구요. 경제를 잘 모르지만 역사 속 경제는 더 열심히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scott 2022-08-18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양 학자들 중 몽골 제국 연구자들에 의하면 제국을 점령하는데 가장 용맹하게 싸웠던 장군들이 고려 출신이나 후예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일명 현재 ~탄으로 끝나는 영토 지역을 정복 합병 통치 하기도 했고 유라시아 전역을 누볐고 백제 후예들은 일본땅으로 아주 많이 끌려 갔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8-18 09:38   좋아요 2 | URL
몽골도 고려가 가장 싸우기 힘든 상대였을 겁니다. 고려인들의 투지와 항전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게만 느껴지는 듯합니다. 100년마다 새로운 적과 싸운다는 게 어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ㅠㅠ 사실상 고려 정권 내내 외적이 침입한건데 말이죠.
일본에 건너한 백제의 후예들이 많이 남아 있죠. 지금도 그들은 백제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하더라구요.

희선 2022-08-18 0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낙랑군이 있었군요 낙랑 하면 낙랑공주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이 낙랑공주는 나중 낙랑인가 봅니다 고구려가 멸망시켰다는 말이 있는 걸 보니... 조선이 오백년 이어졌다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고려도 다르지 않더군요 고려는 여자도 남자도 살기에 좀 나았을 것 같기도 하네요 조선시대가 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08-18 09:42   좋아요 1 | URL
희선님. 고려도 그렇고 조선도 그렇고 참 오래간 국가죠. 주변국들의 역사를 봐도 이리 오래 정권을 끈 역사가 드문데 말입니다^^
고려는 조선에 비해서 가족 안에서는 남녀가 평등했기 때문에 여성도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는 사회였던 것 같아요. 조선이 오히려 이 부분에서는 많이 후퇴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이 부분에서는 박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다락방 2022-08-18 0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라면 전혀 모르는데 이걸로 시작해야겠어요. 덕분에 저도 도전해보겠습니다. 불끈!!

거리의화가 2022-08-18 09:44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어느 분야든 처음 시작은 어렵지만 조금씩 읽다보면 들어오는 것들이 많아지더군요. 저도 그랬고요. 이 책 저는 참 좋았어요. 생각보다 상세히 적혀 있어서 참고하기에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응원합니다!*^^*
 
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 피해자에서 생존자, 그리고 감시자가 된 마녀 D의 사법연대기
D 지음, 김수정 외 감수 / 동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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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은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만든다. 피해자에게 건내는 위로의 말이 겨우 버티고 있는 그들에게 가혹한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곱씹게 된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 살아남지 못한 이들을 위해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싶다. 적어도 그들이 외롭지 않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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