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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최혜진 지음, 해란 사진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한국의 그림책 시장이 커졌다는 것은 나 같은 문외한의 사람도 알고 있다. 최근 들어 볼로냐상 등 해외 유명 수상작에 한국 작가들의 이름이 올라오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였을 때는 집안에 돈이 없어서 그림책은 커녕 책 자체도 읽을 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돈에 여유가 생긴 이후에도 그림책을 사 본 적이 없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그림책을 저평가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뜨끔했다. 성인이 되면 몸이 상하거나 마음이 다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는 발전한다고 하는데 갈수록 몸과 마음이 고립되는 성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림책은 현실에서는 권력을 가지지 못하고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과 경쟁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에게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매개체다. 그렇기에 그림책에 갈수록 많은 이들이 눈길을 주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은 10인의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작가가 작업한 그림책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 책을 작업할 때 가진 생각들을 담아놓았다. 인터뷰를 요청한 이가 작가들의 작품을 충분히 읽고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인터뷰를 통해 내가 겪은 인생의 경험들을 떠올렸고 작가의 몇몇 말에서는 공감을 하기도 했으며 현재를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다.
권윤덕 작가님의 책과 인터뷰를 통해서는 학창 시절 입학, 첫 수업이 떠올랐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수업에 들어가던 날은 나를 늘 긴장시켰다. 겁이 많고 소심한 나는 사람이 무서웠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하며 친구는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건지 두렵기만 했던 때였다. 며칠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나게 되면 한 두명의 친구가 생겼으나 새로운 사람과 만나게 되면 매번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발표는 왜 그리 떨리던지 그때는 한 반에 6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있어서 덜덜 떠는 손과 발, 온 몸에 긴장이란 긴장은 다 하던 기억이 난다. 말을 하면서 말도 빨라지던 기억. 이렇게 부딪치고 넘어지고 싸우면서 겪어낸 과정의 경험은 여전히 두렵지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주었다.
자기확신을 경계하신다는 말도 울림이 있었다. 나는 늘 너무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게 아닌가, 내가 가진 확신이 맞고 옳나를 생각한다. 경직성과 사투하며 유연성을 키워야 한다고 늘 주문을 외운다. 작업을 위해서 극우 유튜브까지 보셨다는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가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내가 가해자라는 생각을 못하지 않나. 상대가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 것인지 알려면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설화 작가님의 책과 인터뷰에서는 속내를 들킨 사람 같이 느껴졌다. 나는 외부의 시선과 반응에 무척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 속상하고 괴로움을 느낄 때가 많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하는 작업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닐텐데 나는 자꾸 타인과의 비교, 외부의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가두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채워지기 쉽상이다. 몇 년전 함께하는 동아리 사람들과 놀러간 적이 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아는 선생님께서 해설을 권유하셨다. 잘해내고 싶었지만 나의 얕은 지식과 그것을 말로 풀어내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선생님과 동아리 사람들은 잘했다고 이야기해주었지만 나는 그때만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은 소중하다. 준비하는 과정도 제법 길었고 그 과정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내가 최선을 다했는가 묻고 설사 그것이 실패한 결과라 하더라도 나의 한계였어를 받아들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하는 주문이다.
유준재 작가님을 통해서는 기다림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깨우칠 수 있었다. 두려움과 설렘이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라고 하는 말에는 '그렇구나' 싶었다. 작가님은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면서 순간을 기록한다고 한다. 그런 수많은 작업의 결과물들 중 쓰여지는 것은 1할이어서 아깝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으시단다. 오감을 열고 주변을 탐색하며 아이디어를 얻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결론을 얻기까지 탐색 과정이 필수인데도 나는 그 확장의 과정을 쉽게 닫고 수렴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곱씹게 되었다. 기다리면서 혼란의 과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넘어가면 혼란스러움을 덜 겪어도 되니까 스스로 문을 닫아버리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누구나 멈칫하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그 순간은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것일 수 있지만 이를 통해서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노인경 작가님을 통해서는 매일을 기적이라 생각하고 작고 사소한 것에 감탄한다는 자세를 배웠다. 결혼을 하고 인간 관계가 확 줄고 나서는 삶의 패턴이 정형화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집-회사를 말고는 딱히 주기적으로 들르는 장소란 산책 코스, 가끔 들리는 도서관 정도가 아닐까. 작가는 매일 보는 가족의 얼굴과 일상의 풍경을 그리며 보통 일주일에 한 권의 노트를 채운다고 한다. 매일 보는 것들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기록들이 나올까 생각했다. 반복되는 하루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일기도 비슷한 내용이어도 조금씩 다르다. 풍경도, 감정도 조금씩 다르다. '어차피 똑같은데 넘어가지 뭐'하면 결국 시작조차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바꾸고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만으로 어떤 결과물이든 나올 것이다. 거창한 것을 계획하기 보다는 소소한 결과물을 생각하고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것들이 모이고 쌓이면 근사한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겠지.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렇게 알찬 인터뷰라니~ 책을 통해서 보고 싶은 그림책들도 여럿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두권씩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