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뜨 2 창비세계문학 82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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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은 삶이라는 계좌를 마주하고 솔직하게 셈을 해보는 것이 좋다. 항목들을 계산하면서 자신을 속이고 불행 항목에 행복이라고 써넣는다면 그는 불쌍한 사기꾼이다. 고뇌를 고뇌라고 부르고, 절망을 절망이라고 부르라. 단호하게 힘주어 굵은 필치로 둘 다 써넣으라. 그러면 ‘운명‘에게 진 빚을 갚기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거짓으로 적어보라. ‘고통‘이라고 써야할 곳에 ‘특권’이라고 써보라. 그런다고 완강한 채권자가 사기를 눈감아주거나 당신이 내미는 가짜 동전을 받겠는가? 가장 강한 천사, 즉 가장 사악한 천사가 피를 요구하는데 물을 줘보라. 그가 순순히 받겠는가? 한 방울의 붉은 피 대신 창백한 바다 전체를 주어도 받지 않을 것이다. - P179


1권의 마지막에서 존의 편지를 기다리는 루시에 대해 이야기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기다려본 일이  있는가. 편지를 쓸 때의 설레임, 두근거림. 편지를 보낼 때의 벅참. 그런 감정을 한 번이라도 느껴보았다면 루시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와 이성의 양 극단에서 그는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이성을 선택한다. 그는 사랑보다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존은 이후 폴리나와 이어진다. 존이 원했고 결국 선택한 여성상은 전형적인 모성애, 여자다움을 갖춘 이상향이다. 루시는 애당초 그런 여성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루시는 폴리나를 선택하는 존, 존에게 선택당한 폴리나를 교차해서 보여주며 자신의 내면이 혼란스럽다고 끊임없이 내뱉는다. 질투의 감정이 크겠지만 단언해서 질투만 존재한다고 보기에도 어려운 복잡함이었다.


(이 괄호 속에서 단언하건대, ‘연심‘이 아닐까 하는 모든 의심을 극히 경멸하고 부인하겠다. 처음부터 그리고 교유하는 내내 그런 착각이 치명적으로 어리석은 짓이라는 확신이 드는 경우, 여자들은 그런 ‘연심‘을 품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거친 물결 위로 떠오르는 ‘희망‘의 별을 본 적이 없거나 꿈꾼 적도 없으면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다). 나와 ‘감정‘은 편지에 깊은 존경심과 끝없는 관심으로 찬 호감을 표현하려고 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의 고통을 모조리 내가 대신 감당해주고 싶다는 애정, 언제나 몹시 염려가 되는 상대방을 폭풍과 번개로부터 막아주려는 마음을 표현했다. 바로 그 순간, 마음의 문이 흔들리더니 빗장과 자물쇠가 열리고 앙심에 찬 ‘이성‘이 힘차게 뛰어들어와, 그 종이들을 모두 낚아채서 읽은 다음 비웃고 지우고 찢어버렸다. 그리고 ‘이성‘은 다시 한페이지밖에 안되는 간결하고 짧은 편지를 써서 접어 봉한 뒤 주소를 써서 부쳤다. ‘이성‘이 옳았다. - P9


지네브라 팬쇼는 어리고 젊은 걸 무기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육체는 아름답고 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안다. 결국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한 그런 남자를 택함으로써 결혼에 투자한다. 루시는 자유분방하고 감정에 솔직한 팬쇼를 좋아했으면서도 그의 결혼 선택은 비판적으로 본다. 여기서도 감정과 이성의 갈등이 있었겠지만 이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며 이겼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열망과 남성에게서 독립하고 싶은 충동의 갈등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뽈 선생과의 관계다. 뽈 선생은 전형적으로 여성을 가부장제 하에서 바라본다. 여성은 감성적이어서는 안되며 바르게 행동해야 하는 등 전형적인 성모마리아상을 바라고 있다. 둘을 가로막는 장벽은 이렇게 성차별적 성향이다. 

또 둘은 종교도 다르다. 기독교 구교인 뽈 선생과 신교인 루시. 결혼을 해보니 종교가 서로 다르면 유지하기 어렵다라는 생각을 한다. 책에서는 이 갈등이 잘 무마되는 듯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기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에 의하면 "지적인 여성"은 일종의 "기형"으로, 불운한 우연이며 창조에서 차지할 위상이나 효용성이 없고 아내로나 노동자로나 쓸모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는 아름다움을 여성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겼다. 사랑스럽고 온화하고 수동적이고 평범한 여성이야말로 남성다운 사고와 분별로 골치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유일한 베개라고 마음 깊이 믿었다. 그리고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남성의 정신만이 훌륭하고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소?

이 "그렇지 않소?"는 내게서 반박이나 반대를 이끌어내기 위한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저하고는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는 문제네요"라고만 말하고 곧바로 "가도 되나요, 선생님?" 하고 물었다. - P168~169


나는 그에게 우리 종교에선 신과 인간 사이에 격식이 없으며, 적당한 예식을 위해 필요한 예배 속에는 오직 집단으로서의 인간의 본성만이 담겨 있다고 했다. '무한' 속에 거하시고 존재 자체가 '영원'이신 '그분'을 향해 고양된 내밀한 비전을 가지는데 집중해야 하는 그런 순간, 그런 상황에서 꽃이나 금박, 양초나 장식물이나 구경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죄와 슬픔, 지상의 부패, 도덕적 타락, 지상에서의 비애를 생각하는 와중에, 찬송하는 신부나 입 다문 군인의 화려한 모습에 끌릴 순 없다고 했다. 존재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밀려올 때,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과 끝없는 의심이 눈앞에 떠오를 때, 그럴 때면 과학적인 논리나 사어가 된 박식한 라틴어로 된 기도는 "하느님, 죄인인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울며 갈구하는 마음을 방해하고 괴롭힐 뿐이라고 했다. - P276~277


<빌레뜨>의 가장 큰 재미는 인물들의 성격을 상황을 통해 엿보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다. 주인공인 루시는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기 보다는 다른 인물들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설명하려한다. 나는 특히 이 지점이 좋았다. 

누구든 자신을 스스로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외부로부터, 비교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성격은 단편적이지 않고 A가 바라보는 나, B가 바라보는 나, C가 바라보는 나는 모두 다른 것처럼.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때때로 얼마나 상반된 특징들이 우리에게 부여되는가! 베끄 부인은 나를 박식하고 우울한 여자로, 팬쇼 양은 신랄하고 빈정대기 좋아하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홈 씨는 모범적인 선생에다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 즉 다소 관습적이고 엄격하고 편협하며 까다롭기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교사다운 정확성을 지닌 산 표본으로 평가했다. 반면에 다른 사람, 즉 뽈 에마뉘엘 같은 사람은 알다시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성격이 불같고 무모하며, 모험심이 강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대담하다고 암시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웃음을 지었다. - P84~85


나는 둘러대거나 변명을 늘어놓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일시적인 현실 도피나 모든 것을 추월해 빠르게 달려오는 무서운 '사실'을 피해 비겁하게 도망가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사실'이라는 유일한 군주에게 복종하지 않으려고 유약하게 보류하거나 정복욕에 차 전진하는 '힘'앞에 얼버무리고 떨면서 저항하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나는 '진실'을 배반하는 반역자와는 거리가 멀다. - P349



<제인에어>와 <빌레뜨> 두 작품을 비교하며 나는 어느 것이 더 완성형에 가까운가 생각했다. 공통점부터 찾아보자면 둘 다 대화가 적고 인물과 상황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내겐 읽기가 편했다(나는 설명하는 문장을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둘 다 그림처럼 문장이 아름답다. 비유도 탁월하고 재치가 돋보이는 문장들이 많다. 여성을 구속하는 가부장제, 종교에 대한 믿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내가 보기에 <제인에어>는 좀 더 쉽고 대중적인 문장으로 쓰여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 비해 <빌레뜨>는 성경 속 인물이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들이 많아 더 난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제인에어>가 대표작이 된 것에는 대중적 표현에 따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완성형 작품으로는 어떤 것이 가치 있을까. 대부분의 독자가 <제인에어>에 손을 들 것이라 느꼈다.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시간에 따라 심지가 더 단단해지는 등 성장 서사를 통해 완성형에 가까운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전히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 면에서 따진다면 나는 <빌레뜨>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 불완전성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완전하지 못하고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적 흔들림을 참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소설적 재미를 위해서 스포를 최대한 자제했다. 결론도 기대처럼 평범하지 않았어서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주관적인 감상기이니 직접 읽어보고 각자 판단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인생의 어떤 부분들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시점, 어떤 위기, 어떤 감정, 즉 기쁨이나 슬픔이나 놀라움 등은 돌이켜보면 마구 빙빙 도는 바퀴처럼 희미한 물체,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 물체처럼 떠오를 뿐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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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1-01 17: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빌레뜨 너무 재미있을 것 같잖아요!! 어쩐지 저도 제인 에어 보다 빌레뜨를 좋아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듭니다!!

거리의화가 2022-11-01 17:27   좋아요 2 | URL
주인공 자체로 따져봤을 때 감정이입이 더 되는 것이 빌레뜨였어요^^ 저와 좀 비슷한 면이 많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느꼈습니다. 인물들도 처음엔 비호감이다가 갈수록 피식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1편보다 2편이 더 재밌었구요^^ 다락방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mini74 2022-11-02 0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정적 흔들림을 잘 표현했다 하시니 관심이 갑니다. 읽다 만 책들이 쌓여있는데도 말이지요 ㅠㅠ

거리의화가 2022-11-02 09:08   좋아요 2 | URL
읽고 있는 책들 하나씩 치워야 하는데 또 새로운 책 발견하면 읽고 싶은 충동이 일죠^^;
미니님 재미나게 읽으실 것 같아요. 저는 이 작품이 제인에어보다 더 좋더라구요ㅎㅎ

scott 2022-11-02 12: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빌레트를 가장 사랑합니다 브론테 작품 중에서!

제인에어 로체스터는 고구마 백만개!ㅎㅎ

화가님 리뷰 빌레트 리뷰 중 쵝오 입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02 12:53   좋아요 3 | URL
스콧님도 빌레트 작품을 좋아하시는군요~ㅎㅎ
저도 로체스터 생각하면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 못해서 안달난 스타일이라고할까~ㅋㅋ
과찬의 말씀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11-02 16: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빌레뜨 리뷰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거리의 화가님께서 좋은 글로 올려주시네요. 열시히 구해서 중고로 구입해놨는데, 아직 못읽었어요. 읽어봐야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11-02 17:07   좋아요 3 | URL
브론테 작품 중 <빌레뜨>가 왜 인기가 덜할까 궁금해서 읽게 된 것도 있었습니다. 역시 읽어봐야 평가가 가능한 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감상평이 궁금해집니다^^

공쟝쟝 2022-11-03 12: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빌레뜨 읽기로 마음 먹었어요 ㅋㅋㅋ 흐흐~

거리의화가 2022-11-03 12:59   좋아요 1 | URL
와. 쟝쟝님 결심하셨군요^^
다미여 벌써 서문 끝내셔서 부럽습니다ㅎㅎㅎ 빌레뜨 즐독하셔요!
 

세계사 고대편으로 서로마 멸망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핵심적인 사건과 인물을 바탕으로 요약한 역사로 챕터 분량이 길지 않아 짧은 시간 내에 세계사를 파악하기에 적합하다. 어렵지 않은 단어 수준, 문장 구조로 초중급자들이 읽기에 딱이며 저자가 교사의 입장이 되고 독자가 학생이 되어 마치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받는 세심함을 느낄 수 있다. 역사적 사실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 사건과 관련한 (뒷)이야기도 들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인도와 중국, 로마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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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10-29 1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도,중국,로마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쓰여져 있을지 궁금하네요. 저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그러려면 일단 사야함🤭

거리의화가 2022-10-29 11:33   좋아요 2 | URL
사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재밌긴 하지만 구석기, 신석기 이런 시기는 지루한 면도 있잖아요. 세계 문명의 태동부터 본격적인 국가들이 등장할 무렵부터 더 재밌습니다^^ 중국은 진시황 이야기(분서갱유 포함), 종교의 탄생, 그리스-로마는 대략 흐름을 잡고 있는데도 단골 이야기 주제를 재밌게 풀어내서 더 좋았어요. 간간히 나오는 비유도 탁월하구요~ㅎㅎ 수준도 어렵지 않아서 미미님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scott 2022-10-31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영어로 읽으면 단어 문장 들이 눈에 쏙쏙 !ㅎㅎ

화가님 요! 책! 마구 페이지 넘어가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

거리의화가 2022-11-01 09:27   좋아요 2 | URL
스콧님 역시 아는 이야기가 더 눈에 잘 들어오더라구요^^ 그런 문장이나 단어들 발견할 때 기쁨을 느낍니다. 제가 역사를 좋아해서인지 이 책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ㅎㅎㅎ 매일 읽기에도 적당한 분량이라 좋았습니다.

그레이스 2022-11-02 1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초등학교 아이들하고 같이 읽을 계획인 책이예요. 번역으로!

거리의화가 2022-11-02 17:08   좋아요 2 | URL
알맞게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번역본도 이북으로 읽어봤는데 괜찮더라구요. 필수 단어들도 실어놔서 공부하기에 좋았습니다^^
 
빌레뜨 1 창비세계문학 81
샬롯 브론테 지음, 조애리 옮김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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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루시 스노우는 사고로 가족을 잃고 대모인 브레턴 부인 집에서 육개월을 지낸다. 브레턴 부인에게는 아들인 그레이엄이 있었다. 루시는 브레턴을 떠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으나 사고의 기억 때문에 그 곳에서 지낼 수가 없었다. 브레턴 부인을 다시 찾아가고 싶었지만 집안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졌다는 소문이 돈 데다가 연락도 끊겨서 갈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 이웃의 마치몬드 여사가 일거리를 찾는다고 하여 찾아간다. 


"쉬운 일은 아닐 거야."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내게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거의 갇혀 있다시피 지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최근의 네 생활에 비하면 견딜만할지도 모르지."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그만하면 견딜 만해 보이는 게 마땅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어쩌면 견딜 수 없을지도 몰랐다. 여기 이 방에 갇혀 살면서 남은 청춘을 다 바쳐 남의 고통을 지켜보고 때로는 신경질도 받아주어야하다니! 아무리 좋게 말해도 이미 사라진 추억들도 그다지 행복한건 아닌데! 한순간 가슴이 무너져 내렸지만 곧 괜찮아졌다. 불운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나는 원래 상황을 이상화하기엔 너무 무미건조한 성격이라 불운을 과장할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 P55


시중 들던 하녀가 결혼을 하게 되어 그 일을 할 적임자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루시는 하녀 일을 오래도록 할 수 없었다. 먼저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다 마치몬드 여사가 숨을 거둔 것이다. 이제는 정말 자립해야 할 때가 찾아왔다. 그렇게 그는 영국을 떠나 '라바스꾸르라' 나라의 '빌레뜨' 도시에 도착한다. 당시 여성들이 단독으로 감행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은데 주인공은 어려운 상황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고 고통을 수용하며 기꺼이 앞으로 나간다. 나는 그의 태도가 인생에서 중요하다 여겨졌다. 


내겐 잃을 것이 없었다.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싫은 과거의 황량한 삶으로는 결코 되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 하려는 일에서 실패한들 나 말고 고통을 당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내가 먼 곳에서 ‘집에서 먼 곳에서‘라고 말하려 했으나 내게는 집이 없었다―잉글랜드에서 먼 곳에서 죽은들 누가 울어줄 것인가?

고통이야 따르겠지만 나는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죽음 자체에 대해서도 나는 곱게 자란 사람들이 갖는 두려움이 없었고, 차분히 죽음을 지켜본 적도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 P75


우여곡절 끝에 닿은 건물은 베끄 부인이 운영하는 여자기숙학교였다. 루시는 유모나 하녀 일이라도 좋고, 내 기운으로 할 수 있다면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당차게 말한다. 부인 마음에 들었는지 루시는 영어 학교의 선생 자리를 꿰차게 된다. 

헌데 아이들이 만만치가 않다. 가톨릭계의 여학생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세고 발랄했던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단시간 내에 휘어잡으며 루시는 그곳에 점차 적응을 해 나간다.


빌레뜨는 국제적인 도시였고, 이 학교에는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 각계각층의 소녀들이 있었다. 라바스꾸르는 국가의 형태는 공화국이 아니었지만, 실제로는 공화국이나 다름없어서 전반적으로 평등이 실현되고 있었다. 베끄 부인의 학교 책상에는 백작의 딸과 부르주아의 딸이 나란히 앉았다. 겉모습만 보고는 누가 귀족이고 누가 평민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귀족들은 오만과 기만이 교묘하게 균형을 이룬 태도를 보이는 반면, 평민들은 훨씬 더 솔직하고 깍듯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 P124


감시라는 방법으로 학교를 다스리는 만큼 베끄 부인은 당연하게도 감시원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이런 도구들의 자질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가장 더러운 일에 가장 더러운 도구를 거리낌 없이 쓰고는, 그런 인간들을 즙을 다 짜고 난 오렌지 껍질을 버리듯이 내던졌다. 반면에 깨끗한 용도를 위해서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가장 순수한 금속을 찾아냈다. 그리고 일단 녹이 슬지 않은 흠 없는 도구를 발견하면 비단과 솜에 싸서 소중히 보관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을 만한 도구가 이해관계에 들어맞는 지점을 한치라도 넘어서서 그녀에게 의지하려고 든다면, 남녀 불문하고 큰 화를 당할 것이었다. 이해관계야말로 베끄 부인의 성격의 핵심이자 동기의 주요 원천이었고, 삶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 P112


이 학교는 신나고 이상하고 시끄러운 작은 세계였다. 모든 일에 구교의 섬세한 정수가 배어 있었지만 그 사슬은 꽃으로 애써 가려졌다. 다른 신을 허용하지 않는 열성적인 정신적 구속을 상쇄하기 위해 (말하자면) 감각적인 탐닉이 널리 허용되었다. 모든 이들의 정신은 노예와도 같은 상태였지만, 이런 사실들을 깊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육체적인 여가 활동에 대한 구실을 찾아내어 최대한 이용하게 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그 '성당'에서도 자녀들을 튼튼한 육체와 연약한 영혼을 가진 아이로, 통통하고, 혈색 좋고, 건장하고, 명랑하고, 무지하고,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아이로 길러내려고 애썼다. "먹고, 마시고, 살아라!" 성당은 말했다. "너희는 육체를 돌보고 영혼은 내게 맡겨라. 내가 영혼을 치료하고 인도하겠노라. 끝까지 영혼을 보살펴주겠노라." 진정한 가톨릭 교인이라면 자신이 이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거래였다. - P198


가톨릭계에 여자 기숙학교 답게 이곳은 규율이 가득한 세계였다. 감정이 날뛰어서는 안 되는, 이성만이 요구되는 세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느 날 학교에서 하는 연극에 남자 역할의 배우가 펑크가 나 대타로 뛰게 된 루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자고만 생각했으나 막상 자신도 모르게 빠져듬을 느끼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윽고 잠자던 내면의 본성이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그는 자신의 감정을 옥죈다.


그날 밤 내가 느끼고 해낸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황홀경에 빠져 제7의 하늘로 승천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꺼림칙하고 불안하고 냉담한 마음으로 하는 수 없이 그 역을 받아들였으나, 곧 몸이 달아올라 흥미와 용기를 가지고 연기를 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자 그 아마추어 연기를 잘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뽈 선생의 부탁을 들어주고 내 힘을 한번 시험해본 것은 기뻤지만, 다시는 그런 일에 말려들지 않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이번 일로 연극적 표현에 대한 강렬한 흥미가 내 본성의 일부인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 발견된 이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발휘한다면 나에게 환희의 세계가 주어질 수도 있었다. 용기와 소망은 한쪽으로 치워 놓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결의의 자물쇠로 잠가두었다. 그 후로 '시간'도 '유혹'도 그 자물쇠를 열지 못했다. - P221


학교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의사인 존 그레이엄은 학생인 지네브라 팬쇼를 사랑한다. 하지만 팬쇼는 이쁘고 재능도 많아서 인기가 많다. 요즘 말로 하면 여자는 그냥 썸을 좀 탔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리를 좀 걸쳤다고 해야할까 그랬던 것이지만 존 선생은 진심이었다. 짝사랑은 끝이 났고 슬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루시는 마음이 흔들린다. 


그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눈에는 우수가 어려 있었다. 그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내가 얼마나 바랐던지! 그가 그런 일로 가슴앓이를 하는 걸 보고 얼마나 슬펐던지! 그가, 그렇게 훌륭한 그가 짝사랑을 해야 하다니! 그 당시에 나는 몰랐다. 사람에 따라서는 실패에 대해 곱씹을 때 가장 훌륭한 면모가 드러나며, 어떤 약초는 "온전할 때는 아무 냄새도 안나지만 찧으면 향기가 난다는 것"을. - P238


모든 것은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존 그레이엄은 슬픔에서 빠져나온다. 하지만 루시는 그를 향한 마음이 커져 가면서 거꾸로 혼란 속에 빠진다. 존 그레이엄은 자신을 그저 학교 교사, 그리고 지인으로만 볼 뿐이었다. 루시는 고백을 감히 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나는 영혼이 고통스러워 신음하고 오랫동안 떨다가 마지못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알았다. 이혼한 부부인 '영혼'과 '육체'의 재결합은 쉽지 않았다. (...) 사람들이 유령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사물들을 보고 유령이라 여겼으니 말이다.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유령처럼 여겨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체 기능은 모두 제자리로 돌아왔고, 생명기관들도 곧 원래 하던 규칙적인 일을 다시 시작했다. - P259


그런 곳에서 루시는 이성을 억누르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학교에서 지금과 같이 안정적으로 일을 하려면 그에 대한 마음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이는 마음의 병으로 흘러간다.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 흔하디 흔한 사랑이라 약간 맥빠지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랑은 사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한 것이니까. 다만 우울증을 빙자하여 많은 여성들이 20세기를 훌쩍 넘어서까지 정신병원에 갔다는 이야기가 오버랩되어 서글퍼지기도 했다.


우울증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등장하곤 한다. 그것은 '운명'처럼 어둡고 '병'처럼 창백하며 '죽음'처럼 강하다. 희생자가 순간적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면 유령은 "그렇게는 안되지. 내가 가마"라고 말하고는, 다가와서 가슴속의 피를 얼어붙게 하고 눈빛을 흐리게 만든다. - P335


어느 날 길에 나갔다가 루시는 혼절하고 만다. 눈을 뜨고 나서도 이곳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를 한참. 알고 보니 그 곳은 브레턴 부인의 집이었다. 사정을 들어 보니 집안의 경제적 문제가 잘 해결되었고 이 곳으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들 그레이엄 브레턴은 바로 존 그레이엄이었다! 그 곳에서 루시는 체력이 회복될 때까지 며칠을 지낸다.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 그레이엄 브레턴은 종종 편지를 하겠다고 말하곤 서로 헤어진다.

어쩌면 그 짧은 며칠이 루시에게는 찰나의 행복이자 기쁨이었을까. 2권에서는 과연 루시가 어떻게 그 슬픔을 이겨내고 단단해질까 궁금해진다. 


나는 '이성'의 가혹한 엄격함에 신음했다. 절대로, 절대로라니. 너무 냉정한 말이었다! 이 '이성'이라는 마녀는 내가 쳐다보거나 미소를 짓거나 희망을 품지도 못하게 했다. '이성'은 내가 완전히 압도되어 겁을 먹고, 길들여지고, 산산조각날 때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몰아쳐댔다. '이성'에 따르면, 나는 빵조각이나 벌려고 일하며 죽음의 고통을 기다리면서 평생 낙담한 채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이성'이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는 '이성'을 무시하고 '이성'의 채찍을 벗어나 '상상'에게 달려가서 빈둥대지 않는가. 밝고 부드러운, 이성의 적이자 우리의 상냥한 '구원자'이며, 신성한 '희망'인 '상상'에게 말이다. 끔찍한 복수가 되돌아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이따금 한계를 넘어서기도 하며, 또 그래야 한다. - P359



문장에 성경 속의 인물과 사건이 자주 등장한다. 다행히 나처럼 성경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도 바로 아래 주석을 친절히 달아놓았다. 그리고 상당히 번역이 매끄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서를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읽는데 무리가 없는걸 보면 역자의 공이 크다는 생각이다. 

문장들을 읽다 보면 마치 그림처럼 느껴지는 묘사들이 많다. 문장을 외울 수 있다면 눈을 감고 떠올려보고 싶을 정도^^; <제인에어>와 비교해보고 싶은데 아직 1편 뿐이라 단정할 수 없기에 평가는 2편을 읽고 나서 해봐야겠다.


자매인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으로 아주 오래 전 <폭풍의 언덕>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작품 자체의 영향도 있겠지만 결이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두 자매의 작품을 여러 개 읽으며 비교하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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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26 16: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제인에어부터 읽으려고 줄세워놨어요. 그 유명한 제인에어조차 어릴때 동화책으로 읽은게 다라니 전 그동안 도대체 무슨 책을 읽어온걸까요? ㅠ.ㅠ 오늘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읽었는데 진짜 19세기 여성작가라 해도 다들 이렇게 결이 다른지.... 신기해하면서 요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이 책도 화가님 리뷰덕분에 더 기대되네요. ^^

거리의화가 2022-10-26 16:57   좋아요 2 | URL
네. 대표작이 제인에어니 그것부터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은 세기라도 작가 스타일이 다르니 결이 이렇게나 다르게 작품이 나오는게 신기합니다. 그러고 보면 작가의 세계관이란 놀랍기도 하구요!ㅎㅎ 제가 이렇게 소설을 많이 읽는 경험도 아마 거의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을 왜 읽는지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여전히 제 범위 밖이라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복잡합니다ㅎㅎㅎ 암튼 즐거운 경험이에요! 바람돌이님도 <제인에어> 재미나게 읽으시길요!

독서괭 2022-10-26 18: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빌레뜨,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제인에어와 비교해주시는 글 기대하겠습니다 ㅎㅎ 저는 지금 오스틴과 브론테 안 읽은 책들을 사는 건 미루고, 집에 있는 안 읽은 책을 한권 꺼내놨는데요, 브론테 자매 중 제일 안 유명한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입니다. 옛날옛적에 사뒀는데 여태 안 읽었.. 과연 올해 읽을 수 있을 것인가..

거리의화가 2022-10-26 21:10   좋아요 2 | URL
아직 1편이긴 하지만 저는 제인 오스틴보다는 좀 더 제 취향인 느낌입니다. 사실 제인에어를 읽으면서도 생각한 거기도 하구요.
저 <아그네스 그레이> 사놨어요ㅎㅎ 음반 주문하면서 9천원이길래 같이 덤으로 샀습니다~ㅎㅎㅎ 하지만 이달 안에 읽을 수 없을 것 같으니 올해 안에는 틀렸습니다ㅋㅋㅋ 언젠간 읽겠지 생각합니다. 2편도 시작부터 느낌이 좋네요~

책읽는나무 2022-10-26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빌레뜨도 빨리 읽어야 하고, 제인 에어도 읽어야 하고, 맘은 바쁜데 읽는 속도는 자꾸 더디네요.
화가님은 꾸준하고 늘 성실하십니다^^
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보면 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오스틴과 이디스 워튼과 조지 앨리엇 아직까지는 세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요. 화가님 말씀 하시는 결이 다르다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경험의 차이일까요?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의 차이일까요? 분명 주제는 하나인 듯 한데 복잡미묘하게 차이가 좀 있더라구요?

거리의화가 2022-10-26 21:13   좋아요 1 | URL
저는 꾸준과 성실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이디스 워튼과 조지 앨리엇은 경험해보지 못했어요. 샬롯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그리고 제인 오스틴 이렇게 세 작가의 작품 몇 개만 경험해봤네요. 그래도 이번에 여러 권 읽으면서 겨우 채워가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읽은 게 없어서 ㅋㅋㅋ
같은 작가라도 작품마다 느낌이 다른데 하물며 작가가 다르면 결이 다른게 당연하다 싶기도 합니다. 아무리 비슷한 시대였어도 그들이 생각하는 바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고 지향점도 다를 수 있었을테니까요~ㅎㅎ 나무님의 꾸준한 읽기도 응원합니다!

희선 2022-10-27 0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에서 제인 에어 말씀하셔서 다시 보니 제인 에어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조금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까 있어 보이는... 제인 에어도 기숙 학교에 들어가고 나중에 가정교사가 되는군요 비슷하면서도 다른... 루시는 어떻게 될지... 2권에 나오겠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27 09:28   좋아요 0 | URL
희선님 <제인에어>는 시작부터 몰아치는 느낌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2편 읽는 중이라 나중에 후기 공유하겠습니다^^

그레이스 2022-10-27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에 꽂혀있는 얘네들을 자꾸 보게 되네요. ^^

거리의화가 2022-10-27 09:29   좋아요 0 | URL
그레이스님 이미 책장에 있으시군요^^ 끌리실 때 읽어보셔도 좋을 듯~ㅎㅎㅎ
 
토지 6 - 2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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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의 구분은 사라졌다는데 한쪽은 지시하고 다른 한쪽은 수용할 수밖에 없는건가. 결국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마는 두 사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는데 풀칠을 위해서라지만 동족을 잡기 위해 앞장서는 건 아니지 않니. 형과 동생의 반대로 가는 행보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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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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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어느덧 백 년,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서로 나쁜 인과를 초래하는 악인(惡因)과 악과(惡果)가 되어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다!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 P13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노부나가와 반대로 행동하리라. 노부나가와 같은 길을 간다면 그것은 곧 아라키 가문의 멸망을 뜻하기 때문이다. - P143


주인공은 오다에게 반기를 든 아라키 무라시게. 무라시게의 투구에는 아라키 가문 당주, 셋쓰노카미, 셋쓰 일대의 지배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아리오카성을 비롯해 아마가사키성, 미타성, 그 밖의 수많은 변두리 성에서 농성하는 아라키 병사들의 목숨도 걸려 있다. (P221) 
그는 오다에게 반기를 들 때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보병을 고용했고 철포를 사들였으며 병량 창고를 몇 채나 지어 쌀과 소금을 채웠다. 그래도 아리오카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었다.(P280)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전술, 전략 등이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승패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얻으려면 역시 믿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성주는 자고로 위엄을 지키기 위해 저택에 머무르며 경솔히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무라시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아야 할 것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들어야 할 것은 두 귀로 직접 듣는 신조다. 성안을 둘러보는 무라시게가 누군가를 견책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신들은 무라시게의 시선을 유독 두려워했다. - P168

아리오카성의 성주가 된 무라시게는 성 안에 숨어 지시만 하지 않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행동에 나서며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무라시게는 자신을 위해 모여든 가신들과 백성들에게 신뢰를 쌓았다.

오다를 향해 칼 끝을 겨눈 무라시게는 그와의 일전을 위해 준비를 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다의 군사인 구로다 간베에가 찾아오는데 무라시게는 그를 죽이지 않고 지하감옥에 가둔다. 쓸모가 있다 생각했던 것일까.

한편 아리오카성에서 겨울, 봄, 여름 순차적으로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겨울의 인질 살해, 봄의 수훈 다툼, 그리고 여름의 철포 저격, 이 세 가지 사건은 부처의 벌이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한 점으로 귀결된다.(P460)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처가 벌을 내린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성 안의 민심은 어지러워지고 군사들은 기강이 해이해진다.
무라시게는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생각하고 구로다 간베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는 그 때마다 힌트를 건넨다.

당시는 전국시대, 다양한 종교들이 난립해 있었다. 
전쟁으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믿을 곳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인다. 종교에 귀의함은 사람과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싸움에 나서야 하는 무사들도 설사 내일 죽게될 운명이여도 기도를 하며 가문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전쟁은 결국 운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으로 사람은 어이없게 죽고, 예상을 뛰어넘어 살아남는다. 수훈을 세우는 것도, 치욕에 빠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운에 따른 것이다. 그 운명의 한복판에서 누가 신불을 믿지 않을 수 있으랴. 무사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문의 영예를 위한 일이다. - P222

이 책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믿음이 아닐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신벌보다 주군의 벌을 두려워하라.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
'신하와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반드시 나라를 잃는 법, 기도하고 사죄해도 그 벌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신벌,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만민의 벌이 가장 두려우니라.' - P523



역사에 추리를 가미한 소설이다. 


추리 소설을 간혹 읽는데 역사적 배경에 추리하는 맛까지 곁들여지니 읽는 재미가 더했다. 배경 때문에 무협지를 읽는 느낌도 나고 추리가 뻔하게 흘러가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반전의 묘미까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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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24 0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이제 역사 추리 까지!ㅎㅎ
곧 영상으로 제작 된다고 합니다

흑뢰성!찜! 👆

거리의화가 2022-10-24 08:38   좋아요 2 | URL
오 그렇군요! 영화 제작까지. 영상미가 더해지면 어떨까 궁금합니다ㅎㅎㅎㅎㅎ

희선 2022-10-26 0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보니, 백성이 하늘이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 목민심서에 있는가 봅니다 그뿐 아니라 예전엔 그런 생각 많이 했겠지요 지금도 그럴지... 그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26 09:15   좋아요 2 | URL
저는 저 구절 보았을 때 맹자가 떠올랐어요^^ 맹자가 주장한 사상이 백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였거든요. 통치자가 저 구절을 염두에 두고 통치를 한다면 백성이 살기 좋을텐데 말입니다. 자기 욕심 채우는데 진심인 통치자들만 가득한듯해서 씁쓸해요ㅠㅠ

mini74 2022-10-30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아라키 무라시게 이야기군요. 왜 반기를 들었는지 궁금했는데. 흑뢰성~ 도서관에 있나 한 번 봐야겠어요 ~

거리의화가 2022-10-31 09:05   좋아요 1 | URL
최근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도서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상호대차로 빌려서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