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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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어느덧 백 년,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서로 나쁜 인과를 초래하는 악인(惡因)과 악과(惡果)가 되어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다!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 P13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노부나가와 반대로 행동하리라. 노부나가와 같은 길을 간다면 그것은 곧 아라키 가문의 멸망을 뜻하기 때문이다. - P143


주인공은 오다에게 반기를 든 아라키 무라시게. 무라시게의 투구에는 아라키 가문 당주, 셋쓰노카미, 셋쓰 일대의 지배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아리오카성을 비롯해 아마가사키성, 미타성, 그 밖의 수많은 변두리 성에서 농성하는 아라키 병사들의 목숨도 걸려 있다. (P221) 
그는 오다에게 반기를 들 때 만반의 준비를 했다. 보병을 고용했고 철포를 사들였으며 병량 창고를 몇 채나 지어 쌀과 소금을 채웠다. 그래도 아리오카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사람이었다.(P280)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전술, 전략 등이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가 승패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얻으려면 역시 믿음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성주는 자고로 위엄을 지키기 위해 저택에 머무르며 경솔히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지만, 무라시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보아야 할 것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들어야 할 것은 두 귀로 직접 듣는 신조다. 성안을 둘러보는 무라시게가 누군가를 견책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가신들은 무라시게의 시선을 유독 두려워했다. - P168

아리오카성의 성주가 된 무라시게는 성 안에 숨어 지시만 하지 않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행동에 나서며 앞장서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무라시게는 자신을 위해 모여든 가신들과 백성들에게 신뢰를 쌓았다.

오다를 향해 칼 끝을 겨눈 무라시게는 그와의 일전을 위해 준비를 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오다의 군사인 구로다 간베에가 찾아오는데 무라시게는 그를 죽이지 않고 지하감옥에 가둔다. 쓸모가 있다 생각했던 것일까.

한편 아리오카성에서 겨울, 봄, 여름 순차적으로 기괴한 사건이 발생한다. 겨울의 인질 살해, 봄의 수훈 다툼, 그리고 여름의 철포 저격, 이 세 가지 사건은 부처의 벌이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한 점으로 귀결된다.(P460)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처가 벌을 내린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성 안의 민심은 어지러워지고 군사들은 기강이 해이해진다.
무라시게는 이대로 가다가는 위험하다 생각하고 구로다 간베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는 그 때마다 힌트를 건넨다.

당시는 전국시대, 다양한 종교들이 난립해 있었다. 
전쟁으로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믿을 곳을 찾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인다. 종교에 귀의함은 사람과 직업을 가리지 않았다. 하다못해 싸움에 나서야 하는 무사들도 설사 내일 죽게될 운명이여도 기도를 하며 가문의 안녕을 빌었던 것이다.

전쟁은 결국 운이다. 자기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운명으로 사람은 어이없게 죽고, 예상을 뛰어넘어 살아남는다. 수훈을 세우는 것도, 치욕에 빠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운에 따른 것이다. 그 운명의 한복판에서 누가 신불을 믿지 않을 수 있으랴. 무사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가문의 영예를 위한 일이다. - P222

이 책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믿음이 아닐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신벌보다 주군의 벌을 두려워하라.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
'신하와 백성의 마음이 떠나면 반드시 나라를 잃는 법, 기도하고 사죄해도 그 벌은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신벌, 주군의 벌보다 신하와 만민의 벌이 가장 두려우니라.' - P523



역사에 추리를 가미한 소설이다. 


추리 소설을 간혹 읽는데 역사적 배경에 추리하는 맛까지 곁들여지니 읽는 재미가 더했다. 배경 때문에 무협지를 읽는 느낌도 나고 추리가 뻔하게 흘러가지 않아서 흥미로웠다. 반전의 묘미까지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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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24 0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이제 역사 추리 까지!ㅎㅎ
곧 영상으로 제작 된다고 합니다

흑뢰성!찜! 👆

거리의화가 2022-10-24 08:38   좋아요 2 | URL
오 그렇군요! 영화 제작까지. 영상미가 더해지면 어떨까 궁금합니다ㅎㅎㅎㅎㅎ

희선 2022-10-26 0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하와 백성의 벌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보니, 백성이 하늘이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 말 목민심서에 있는가 봅니다 그뿐 아니라 예전엔 그런 생각 많이 했겠지요 지금도 그럴지... 그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2-10-26 09:15   좋아요 2 | URL
저는 저 구절 보았을 때 맹자가 떠올랐어요^^ 맹자가 주장한 사상이 백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였거든요. 통치자가 저 구절을 염두에 두고 통치를 한다면 백성이 살기 좋을텐데 말입니다. 자기 욕심 채우는데 진심인 통치자들만 가득한듯해서 씁쓸해요ㅠㅠ

mini74 2022-10-30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아라키 무라시게 이야기군요. 왜 반기를 들었는지 궁금했는데. 흑뢰성~ 도서관에 있나 한 번 봐야겠어요 ~

거리의화가 2022-10-31 09:05   좋아요 1 | URL
최근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도서관에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상호대차로 빌려서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