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꽤 긴 시간의 외출을 끝내고 마이 도러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꽃집이 문득 눈에 띄었다.
아이의 학교 숙제를 알리는 공문에 '화분에 씨앗 심기'가 있던 것이 생각났다.
물을 주고 잘 키워 나중에 학교에서 가져오라고 하면 검사 받으라는......
씨앗을 사서 조그만 화분에 직접 심고, 싹이 나고 자라는 과정을 관찰일기로 적으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너무 피곤해서 그랬는지, 흙은 어디서 퍼올 것이며, 화분도 없고, 갑자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이의 손을 막무가내로 잡아끌어 꽃집 안으로.
앞치마를 두른 권태로운 표정의 여인이 가게 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어디선가 나타났다.
나같이 게으른 학부모가 더러 있는지 화분에 씨앗을 심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장갑을 낀다. 작업 준비!
그리하여 우리 모녀가 하나씩 고른 건 패랭이꽃과 백일홍.
혹시 화분 하나가 잘못될 경우를 생각하여 두 개를 골랐다.
큰 화분 속의 시커먼 흙을 모종삽으로 퍼서 작은 화분에 3분의 2쯤 담고 씨앗 봉지를 끌렀다.
그리고 씨앗을 각각 심고 그 위에 다시 흙을 조금 덮고.
백일홍 씨앗이 패랭이꽃 씨알보다 훨씬 크다는 친절한 설명까지.(혹시 그 반댄가? 벌써 까먹다니!)
씨앗봉지의 꽃 이름을 가위로 잘라서 헷갈리지 않게 각각 화분의 흙 위에 올려주는 배려가 고마웠다.
얼마냐고 물으니 두 개 합해서 2,600원.
씨앗에, 화분에, 흙에, 그 수고에, 내가 생각할 때는 말도 안되는 금액이었다.
자동반사적으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놓은 프리지아 두 다발을 빼들었다.
그날 산 프리지아가 조금 전 꽃망울을 터뜨렸다.
꽃을 보고 있자니 문득 뜬금없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프로는 자기 노동의 가치를 '세상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패랭이꽃과 백일홍은 일주일 혹은 열흘쯤 뒤 싹을 내밀 것이라 한다.
분무기로 매일아침 조심조심 물을 주는 일은 아이에게 맡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