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을 기다려왔다. 어제는 아침부터 부리나케 준비를 하고  조조(10시 30분)로 영화를 보기 위해 뛰듯이 걷는데 문득 마이 도러에게 학교 마치고 미술 선생님 집에 바로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 전 무슨 대회에  아이들 금연 포스터를 미술 선생님이 직접 갖다내어 장려상으로 뽑혔는데 시상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던 말도......그리고 여동생에게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도......

먼저 남자친구(같은 선생님께  미술수업을 일주일에 두 번 받는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국일보 몇 층(송현클럽이 아닐까, 짐작)에서 오후에 시상식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미술수업 대신 그 시상식에 참석해야 한다고......그러나, 어이하리!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개봉 첫날 조조로 이 영화를 보고 싶었고... 그래도 엄마라고 순간 잠시 갈등을 하긴 했다.

도시락을 싸간 날이라 점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지만 딸아이가 무거운 책가방을 내려놓기 위해 미술선생님 댁에 가지 않고 집에 먼저 온다면 어떡할 것인가? 열리지 않는 문앞에서 엉엉 운다면?

나는 그런 장면을 상상하면서도 마을버스에 올랐고 전철을 갈아타고 극장으로 갔다.(그 발길을 붙잡을 수 있는 건 미안하지만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미안하지만 오늘 자기가 마이 도러 1일 엄마 해줘!"  뻔뻔스럽게도 내가 그녀에게 부탁한 건 달랑 그 한마디.

서울에 간 김에 영화를 보고 나서  시상식장으로 가면 좋겠지만 그 시간에는 집으로 돌아와 어린이집 버스에서 내리는 조카아이를 맞아야 했다. 그것도 미리 부탁하여 평소보다 한 시간 연장한 것.

그녀는 수업이 끝날  즈음 학교로 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마이 도러의 손목을 나꿔채는 데 성공했다. 차를 끌고 학교 앞에서 남의 아이를 기다리는 수고는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친구 엄마는 시상식이 끝난 후 선생님과 아이들과 인사동길까지 한 바퀴 돌고 뭘 좀 간단하게 먹고 저녁 일곱 시경에 돌아왔다. 마이 도러는 이런 일이 하도 다반사라 "엄마는 왜 시상식장에 안 왔어?" 하고 묻지도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장려상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는데(그림을 잘 못 그리는 남자친구도 함께 뽑혔다고 해서 참석만 하면 상장 한 장씩 나눠주는 대회인 줄 알았다)  소년한국일보라는 신문의  수상자 명단에도 떠억하니 실리고 문화상품권도 부상으로 받아온 걸 보니 그것이 꽤나 뻑적지근한 전국적인 대회였다는 걸 뒤늦게 안 셈이다.

'주하야, 미안해!  어제는 엄마가 너의 시상식 말고 영화를 선택했구나!  앞으로도 그러려니 하고 잘해주길 바래!'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perky 2005-05-27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가 참 장하네요. 축하드려요. 그리고, 로드무비님 때때론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일 같아요. 너무 자책은 마세요~

chika 2005-05-27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주하도 대단한 인재였군요!! (근데 이 페이퍼 읽으면서 내다 팔자, 라고 하는 주하의 강한 생활력을 이해했음이예요!!)
아~! 로드무비님, 마지막 줄요... 좀 고쳐주세요. 엄마가 너 말고..에서 '너'가 아니라 '시상식'이라고요. 설마 주하와 영화중에 영화를 택했겠어요? 주하의 시상식과 영화중에 영화를 택한거겠지요. ^^;;;;;;;;;

하루(春) 2005-05-2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주하가 정말 그림에 소질이 많군요.
그나저나 '극장전' 벌써 개봉했군요. 극장전... 최종제목으론 좀 이상한 것 같지만, 아무튼 기대돼요. 영화 어땠는지도 써주세요.

로드무비 2005-05-2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카님, 시키시는 대로 고쳤습니다. 저 예쁘죠?ㅎㅎ
퍼키님, 아니 차우차우님. 이름 멋져요.
전 대부분의 시간이 자기만의 시간인 사람예요.ㅎㅎ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용기백배입니다.^^

비로그인 2005-05-2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 미술상 탔데요? 히야.. 짜슥..제 어린 시절이랑 통하는 구석이 있다니깐두루, 긁적적.. *^^* (아이고, 커서 나 같은 악당되면 안 되는데..) 그나저나 로드무비님, 괜챦아요! 정말 마음은 번잡하셨겠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좋은 일 아닙니까!

urblue 2005-05-27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사시는 모습을 보면 <앙상블>이 생각난다니까요. 주하도 틀림없이 그 딸(이름이 생각 안 나는군요. -_-)처럼 예쁘고 똑똑하게 자랄거에요. ^^

로드무비 2005-05-2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 영화 너무 재밌었어요.
한 번 더 보러갈 생각이에요.^^
복돌이님, 어제는 자숙하는 의미로 서재활동도 안했습니다.
저 너무 훌륭하지 않습니까?^^
(복돌이님 그림 잘 그리시는 거 이미 알아봤네요, 뭐. 사진도 그렇고...)

로드무비 2005-05-27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주하는 앙상블 딸아이 해도 별로 안 어색한데
전 도무지 그림을 대입할 수가 없군요.;;;;
아무튼 주하가 엄마 의지 안하고 잘 커줬음 좋겠어요.

릴케 현상 2005-05-27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좋으시겠네요^^ 저는 그림 잘 그리는 사람 넘 부럽더라...

인터라겐 2005-05-2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는 생활력도 강하고..독립심도 강하고... 어디다 내놔도 손색없네요.. 엄마의 힘이 느껴집니다.. 어린이 대회는 상장만 주는줄 알았는데 상품권까지 주다니...

아 로드무비님..넘 멋지게 사시는것 아네요?

숨은아이 2005-05-2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그러려니 하고 잘해주길 바래... 크하하... 주하에게 축하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남자친구 어머니도 고맙구... 주하야, 강하게 자라야 해!!

세실 2005-05-2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멋진 로드무비님...
전 당연히 시상식으로 달려갔을텐데.....
당연하게 받아드리는 주하가 부럽습니다....

Phantomlady 2005-05-2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가가 되고 싶다더니 정말 그림을 잘 그리는군요.. 마지막 글이 히트였어요 ㅎㅎ
극장전 어떤가요? 저도 김상경 팬이라서 보러갈 건데.. ^^

로드무비 2005-05-2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롭님, 한번 더 보러 갈 거라니까요.
김상경 저도 좋아하는데 이번 영화에선 엄지원에게 더 꽂혔어요.^^
세실님, 제가 무지 게으른 사람이라 딸아이를 알뜰하게 못 챙겨줘요.
이런 페이퍼로 나중에 마이 도러에게 점수 좀 딸라고요.
점수가 될지 족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숨은아이님, 왠지 님도 엄마가 되면 제 타입일 거 같아요.
"주하야 강하게 자라야 해!"라니...
제가 님을 모독한 건가요?-.-;;
인터라겐님, 마이 도러가 생활력이 강해서 나중에 우리 부부 노후를 책임져 주기를
강력히 바라고 있답니다.
그리고 멋지긴요, 부끄럽죠.;;
산책님, 왠지 님 글씨를 보니 이쪽으로 님도 한가닥하시는 분 같은데요?^^

숨은아이 2005-05-27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독이라뇨. ^^ 전 아이 낳으면 아예 방치해버릴까 봐 겁나서 안 낳습니다. --;;

딸기엄마 2005-05-27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에게 앞으로도 그러려니 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라는 로드무비님의 말씀에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님이 부러워요~

조선인 2005-05-27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께 몰표요. 캬햐햐햐

울보 2005-05-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대단하세요,,
전 용기가 없는거겠지요,
아직도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나를 찾는 아이때문에 ,,
다른 친구들은 어린이집 보내달라는데 엄마 안가면 자기도 안간다는 주의라서,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게 놀아주는데요,,그러네요,
차츰 나아지겠지요,,,
전 그래도 님의 그 결단력에 박수를 주하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로드무비 2005-05-27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보님, 이렇게 정색을 하고 말씀하시면......
아주 어릴 때부터 그렇게 길을 들였더니 아이가 좀 독립적이에요.
사실 전 교육 차원이라기보다 귀찮아서 그런 거거든요.;;
류도 조금만 더 크면 나아질 거에요. 아무 걱정 마세요.^^
조선인님, 숨은아이님이 뭐라 하셨길래?
아하, ㅋㅋㅋ
지우개님, 전 아이 알뜰하게 거두는 야물딱진 엄마들이 부러워요.
님도 얘기 좀 털어놓아보시죠?(주하랑 동갑인 따님 이야기...)
숨은아이님, 말씀만 그렇게 하시는 거 알아요.^^

클리오 2005-05-2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진짜 맘에 듭니다. 로드무비 님이나 주하나.... ^^

로드무비 2005-05-28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마음에 드셨다니 기쁩니다.^^

비로그인 2005-05-28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울 베이비가 드뎌 언론에 이름을 드러내었군요! 이거, 알라딘에 경사가 여그저그서 들려오던데, 이제 조금씩 알라딘 키드덜이 사회에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려. 꼭 제가 상 탄 것 마냥 기쁘고 좋네요. ㅎㅎ 축하해요, 베이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