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달걀 두 알을 삶아 간장에 졸이고 브로콜리를 데치고
남편 도시락 반찬을 만들며 인간극장을 훔쳐보는데
수락산 밑 노천식당 안에서 하얗게 입김을 피우며
전 프로복서 박종팔의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깜짝 놀랐다.
불 위의 작은 냄비에 된장 푼 물은 반도 채 안 되어 보이는데
도마 위의 큼직큼직하게 썬 배추가 산더미다.
그 많은 배추가 냄비 속에서 한 소끔 끓어오르자 된장물 속에 가라앉았다.

아침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 앞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배춧국과
숯불에 구운 고등어 한 토막으로 상을 차려내는 아내.
속대가 반 투명하고 야들야들하게 끓여진 배춧국.
제각각 배우자를 잃고 재혼한 지 3년 되었다는 늙수그레한 부부가
마주앉아 배춧국을 맛있게 먹는다.

늙으면 국물맛을 안다.
급히 냉장고 채소통을 뒤지니 배추가 없다.
꼭 배추가 아니면 어때!(이 노회함이라니!)
된장을 한 숟가락 풀고 3분의 1통 분량 남은 양배추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었다.
급히 육수를 낼 때 멸치 몇 마리를 가스불에 슬쩍 구워 넣으면
국물맛이 더 좋다는 것도
지난 여름 인간극장에 출연한 맛객에게서 배웠다.

나는 왜 그동안 배춧국에 배추를 그렇게 조금만 넣었던 것일까.
어제는 기어이 배추를 사와 반 통을 썰어 넣고 배춧국을 끓였다.
도시락에도 저녁 밥상에도 양배추국과 배춧국을 계속 올렸더니
(나는 뭐에 한 번 꽂히면 물리도록 그것을 계속하는 버릇이 있다)
참다못한 남편이 어제 퇴근길에 순대국을 사왔다.

 

 

 

 

 

 


 

 

 

 

썸네일




 


댓글(28)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2-01-04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04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보 2012-01-04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드무비님.반갑습니다, 잘지내시지요,
올한해 건강하시고,,행복하시고 즐거운 하루하루 되세요,
그리고 자주 님의 글을 읽고 싶습니다,
저도 배춧국참 좋아해요, 집 배란다에 있는 배추로 내일은 배춧국을 끓여 먹어볼까나 싶네요,,

로드무비 2012-01-04 23:12   좋아요 0 | URL
울보님, 류 얼굴 보고 왔습니다.
저도 최근 리뷰든 뭐든 쓰고 싶어 알라딘 방에 들락거렸는데
잘 안 써지더라고요.
역시 전 먹는 걸 보고 '필'을 받는 것 같아요.^^

blanca 2012-01-04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중한 정보들이네요. 양배추를 넣는 것도 괜찮겠어요. 멸치를 후라이팬에 구우면 되는 걸까요? 참, 로드무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드무비 2012-01-04 23:17   좋아요 0 | URL
멸치는 몸통째 직접 가스불에 끄슬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냄새를 포함 그게 요리하는 기분도 더 나고요.ㅎㅎ
blanc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2-01-05 0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에 배추국만한게 없지요.
저도 어제 배추 한통 사왔어요. 순전히 배추국 생각으로요.
양배추로 끓여도 맛있을 것 같아요. 더구나 양배추가 좀 달달한 맛이 나서 어쩌면 더 좋을 것도 같은데요? ^^
'늙으면 국물 맛을 안다' 이 말씀에 웃음을 지어봅니다. 우러나오는 맛을 알아가는 것이겠지요.

로드무비 2012-01-05 16:38   좋아요 0 | URL
hnine님 맞아요. 겨울에 특히 좋지요.
양배추로 끓이니 맛이 조금 다른데 이것도 들큰하니 맛있어요.
맛도 맛이지만 몸에 좋다면 눈이 번쩍 뜨이는 나이가 되었는지라...
그런데 신기한 게 전 어릴 때부터 국물 맛을 알았어요.=3=3=3

twoshot 2012-01-05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새벽녘에 배춧국이라니요!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로드무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드무비 2012-01-05 16:34   좋아요 0 | URL
twoshot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벽에 뭐 하셨어요?

비연 2012-01-0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추국..입맛이 다셔지는데요. 이 추운 날, 김 모락모락 나는 배추국과 밥 한그릇. 으으.
로드무비님, 자주 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로드무비 2012-01-05 16:33   좋아요 0 | URL
비연님, 반갑습니다.
서재 이미지 눌러서 봐야 할 듯.
저도 자주 뵙고 싶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12-01-05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래서 인간극장을 좋아하나 봐요~
아!!! 로드무비 님!!! 그동안 사느라고 제가 격조했었는데, 기냥 반갑네요~ 지난 공백이 무색하리만큼, 어제도 만난 로드무비 님 같고 그래요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드무비 2012-01-05 16:31   좋아요 0 | URL
icaru님, 저도 인간극장이라면 환장합니다.
특히 맛객이나 요리사 스님이라도 나오면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봅니다.
icaru님을 무척 오랜만에 보는데 수다를 떨라면 1박 2일이라도
떨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혜덕화 2012-01-0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노회함(?)이 그리웠답니다.
배추국, 저도 배추를 많이 넣지 않고 끓이는데, 님의 레시피처럼 해봐야겠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드무비 2012-01-05 16:27   좋아요 0 | URL
혜덕화님, 배추를 많이 넣고 끓이니 된장맛이 엷어지고
굉장히 부드러워요. 냄새도 식감도.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우와 연우 2012-01-0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맛깔난 글이 없으면 알라딘이 공허해요.
이제야 서재가 달큰하고 구수한 배추국 냄새가 흥건히 사람사는 곳 같아요.

로드무비 2012-01-05 16:25   좋아요 0 | URL
헤헤, 말씀도 어찌 그리 다정하게 해주실까요잉.
건우와 연우님의 무국이랑 제 배춧국 냄새가 진동하네요.^^

BRINY 2012-01-0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장고에 알배추가 조금 남아있는데! 멸치도 있구요!

로드무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분들 모두 건강한 새해 보내시길~

로드무비 2012-01-05 16:23   좋아요 0 | URL
BRINY님, 멸치와 배추만 있다면 만사 오케이!
된장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재 이미지가 바뀌지 않은 것도 반갑네요.^^

LAYLA 2012-01-0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오랜만이에요 로드무비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드무비님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는 2012년이 되면 좋겠어요 :)

로드무비 2012-01-05 22:42   좋아요 0 | URL
LAYLA님 정말 오랜만이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우리 예전처럼 그래볼까요?ㅎㅎ

치니 2012-01-05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와, 로드무비 님이다 ~ 올해는 글 많이 많이 써주세요, 뿌잉뿌잉 ~

로드무비 2012-01-05 16:19   좋아요 0 | URL
치니님, 안 그래도 그럴려고요. 뿌잉뿌잉~

잘잘라 2012-01-06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아침부터 오늘 점심까지 계속 배추된장국에 밥 말아 먹은 터라 반가워서 인사 남기고 갑니다. 배춧국에 반찬은 배추김치!!! 올 겨울은 배추가 주식인것만 같아요. ^^

로드무비 2012-01-15 00:24   좋아요 0 | URL
메리포핀스님, 안녕하세요?
배추 싸고 맛있죠? 이왕이면 배추전도 한 접시 추가하세요.
밀가루반죽 훌훌하게 풀어서 배추 한 잎씩 적셔 프라이팬에 구우면 됩니다.^^

sacrebach 2012-01-19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왜 그동안 배춧국에 배추를 그렇게 조금만 넣었던 것일까.'
난 이 대목이..가슴을 치네, 친구야...
올핸, 좀 더 같이하자..뭐든, 니캉내캉!
잘 지내~ 내친구!

로드무비 2012-01-19 16:49   좋아요 0 | URL
율리?
글쎄말이야.
배추 조금만 넣고 끓인 국을 맛있다고 잘도 냠냠짭짭댔지.
그런 게 뭐 한둘일까?

공연 보고 그냥 가지 말고 가끔 들러 밥이나 먹고 가.
구정 잘 지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