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달걀 두 알을 삶아 간장에 졸이고 브로콜리를 데치고
남편 도시락 반찬을 만들며 인간극장을 훔쳐보는데
수락산 밑 노천식당 안에서 하얗게 입김을 피우며
전 프로복서 박종팔의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깜짝 놀랐다.
불 위의 작은 냄비에 된장 푼 물은 반도 채 안 되어 보이는데
도마 위의 큼직큼직하게 썬 배추가 산더미다.
그 많은 배추가 냄비 속에서 한 소끔 끓어오르자 된장물 속에 가라앉았다.
아침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 앞에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배춧국과
숯불에 구운 고등어 한 토막으로 상을 차려내는 아내.
속대가 반 투명하고 야들야들하게 끓여진 배춧국.
제각각 배우자를 잃고 재혼한 지 3년 되었다는 늙수그레한 부부가
마주앉아 배춧국을 맛있게 먹는다.
늙으면 국물맛을 안다.
급히 냉장고 채소통을 뒤지니 배추가 없다.
꼭 배추가 아니면 어때!(이 노회함이라니!)
된장을 한 숟가락 풀고 3분의 1통 분량 남은 양배추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었다.
급히 육수를 낼 때 멸치 몇 마리를 가스불에 슬쩍 구워 넣으면
국물맛이 더 좋다는 것도
지난 여름 인간극장에 출연한 맛객에게서 배웠다.
나는 왜 그동안 배춧국에 배추를 그렇게 조금만 넣었던 것일까.
어제는 기어이 배추를 사와 반 통을 썰어 넣고 배춧국을 끓였다.
도시락에도 저녁 밥상에도 양배추국과 배춧국을 계속 올렸더니
(나는 뭐에 한 번 꽂히면 물리도록 그것을 계속하는 버릇이 있다)
참다못한 남편이 어제 퇴근길에 순대국을 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