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인 이한위가 오늘 아침 절친한 후배 조재현과 함께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에 나왔다.
연기자로서의 그가 제일 처음 내 눈에 들어왔던 건 오래 전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한석규의 거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 역할이었다.
제일 인상 깊은 건 함께 술을 마시고 담벼락인가 변기 앞인가 나란히 서서
오줌을 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많은 장면에 나온 것도 아닌데 강직한 얼굴과 연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소지하고 있던 영화잡지를 뒤져 그의 이름을 찾아봤다.
그때까지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스타급의 주인공들에 묻혀 그의 이름이 박경호든 김철수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가 한둘이겠는가.
영화 <헤어드레서>의 조형기를 떠올리게 하는 <미녀는 괴로워>의 이한위는 별로였다.
성격파 배우로서보다 그의 연기는 어디까지나 '별볼일없는 보통사람'일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 별 대수롭지 않은 일들에 상처를 받고 예를 들어 겉으로 보기엔 태연하지만
소주 한잔을 털어넣는 동작에서 그 상처가 미세하게 감지되는......
오늘 아침 이한위는 보라색 셔츠와 카디건을 멋지게 입고 나왔다.
카디건의 단추는 떼어서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고 싶을 정도로 알록달록 제각각의 모양이었다.
그런 단추가 주르륵 달린 카디건을 입은 이한위가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조재현 왈, 친하지 않을 때 방송국에서 보면 그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요란한 색상의 옷을 입고
로비에서 제일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사람이어서 피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이한위의 대꾸.
역할에 관계없이 자기는 항상 패션에 신경을 썼고, 남 눈치 안 보며 옷을 입었고,
무슨 일론가 늘 바빴다고.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었다.
최근 데뷔 후 몇십 년 만에 팬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려,
"늦은 나이란 없다, 네 꿈을 펼쳐라!"라는 광고에 그 눈물의 의미가 사용되기도 한 모 탤런트보다,
자신이 맡은 역할에 상관없이 언제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는 뻔뻔한 이한위가 훨 좋다.
남의 카디건 하나에 아침부터 이렇게 기분이 유쾌해질 수도 있다니......
(하긴 나란 인간이 카디건을 워낙 좋아하긴 했다. 지금은 어깨가 떡 벌어져 잘 입지 않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