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7시 20분, 홍대 역에 내렸다. 내리자마자 지나가는 연인들을 칼같이 갈라주며 냅다 뛰었다. 7시 30분, 칼같이 도착한 곳은 KT&G 상상마당 앞이었다. <하림의 러브레터>를 알려주는 현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예상했던 안내 관계자는 없었다. 그렇다. 늦은 것이다. 몇 분의 여유도 없이 시간을 딱 맞춰온 탓에 졸지에 지각생이 되어있었다. 교보문고 당첨자들이 쓸데없이 성실한 거라며 구시렁댔다. ‘내 초콜릿 머핀은 남아있을 까’를 걱정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지하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서야 방긋거릴 수 있었다. 앙증맞은 초콜릿 상자와 머핀이 가지런히 정렬한 채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내데스크에 쌓인 <밀리언 달러>책을 보며 ‘공짜로 받을 수는 없을까’를 궁리하던 차, 공연이 시작되었다.


기타치고 있는 하림

하림의 기타선율로 시작하는 오프닝은 좋았다. 그러나 너무 편안한 자리라서 그랬을 까. 진행보다는 노래 진행이 더 자연스럽다고나 할까. 첫 무대에 나온 황경신씨의 인터뷰는 좀 실망스럽다. 아마 내가 <밀리언 달러>를 읽지 않아서인지, 많이 겉돌았다. 그래서 인상에 남는 건 없다. 사진만 남았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황경신, 하림


사진 왼쪽에서부터 권신아, 황경신, 하림

일제시대 때 불렸다는 애달픈 고전가는 하림이 아니면 못 부를 것 같다. ‘사랑은 맹랑한 것’로 시작하는 가사인데 아코디언 연주와 잘 어울렸다.


하림

사진 왼쪽에서부터 양진숙, 하림

다음은 내가 읽었던 책, <빵빵빵 파리>의 작가 양진숙씨였다. 조근 조근 여성스럽게 이야기해서 귀에 착착 감기던 인터뷰였다. 책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녀는 ‘나에게 줄긋기 (p.260)’란 페이지를 낭독했다. 그런데 그 많은 문장 중에 왜 그걸 낭독했는지, 궁금했다. (막상 기회가 있었던 싸인회 때는 한마디로 건네지 못했다. 뭘 말할까 고민하는 통에 어색하게 웃고 있었는데, 덕분에 싸인 내용에 썩소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갔다.-.,-) 프랑스 유학을 망설일 때 줄긋기 방법을 썼다고 책에 나와 있었는데, 아마 그 것이 자신을 작가로 바꾼 계기라 소개한 것이 아닌 가 싶다. 유학생활이 힘들어서 퐁 데 자르 다리를 서성였던 게 실화라는 이야기, 받지 못한 크리스마스 러브레터 이야기가 인상 남는다. 즉석에서 케익을 만들고 관객 한 분께 깜짝 선물도 했다. 딸기를 올리는 단순한 데코레이션 작업이었지만 순간, 저자가 참 예뻐 보였다. 빵을 만들고 그 빵을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재주도 순간 왜 그렇게 부럽던지.


그녀가 직접 구웠다는 150개의 머핀 중 2개를 챙겼다. 황경신씨가 가지고 온 초콜릿도 2상자 가져왔다. 동행과 헤어져 집에 들어오자마자 한 입씩 맛봤다. 달콤했다. 이럴 때 문학동네 최고를 외쳐준다. 서포터즈의 단 맛은 이런 게 아니겠냐며 썩소를 씨익 지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8-03-05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건 혼자만 다니시구.

모과양 2008-03-05 21:59   좋아요 0 | URL
회사 다니시느라 바쁘시잖아욧! ㅋㅋ
동행이 있었답니다. 빵을 2개 받아 왔잖아요. 내일은 <조경란 작가와 함께 하는 와인 낭독회>가요. 이런 곳에 계속 가다 보면 아프락사스님도 우연히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면 상상마당에서 '정군님'을 봤거든요. 문학동네 스텝으로 참여하신 거겠지만, 반가웠어요. 물론 정군님은 저를 모르시기 때문에 조용히 .... 보기만 했습니다. -.,-a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 시즌 3 엘링(Elling) 3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동생아. 안녕하니? 네 편지 잘 받았다. 네게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니, 우편함에 군사편지가 꽂혀 있더구나. 봉투를 뜯어보고 나서야 서로 엇갈린 내용으로 써 보냈음을 알았다. 나는 세상의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너는 세상의 냉담함에 대해 썼더구나. 몰라서 전화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그 편지를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이 못난 놈아. 인터넷 광장에 내보낼 듯한 그 것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화냄을 겁내지 않는 게 다행스럽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리 됐나를 생각했다. 네 성급한 결론은 우려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웃게도 되더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실은 나도 외로움 잘 타고, 낯선 체제엔 적응 잘 못하는 사람이거든. 그러면서 같이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의 주인공 엘링이다. 엘링은 30년간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지내다가 무척 폐쇄적으로 성장한다.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또렷한 나머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인물. 어머니를 여읜 후 그는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바깥 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책을 많이 읽는 아주 철학적인 인물이다. 그는 멍청하지도, 남보다 뒤처지지도 않았다. 단지 그의 지적인 능력이 거의 완벽하게 고립된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 (p.6)

그는 바보가 아니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해 바보처럼 느릴 뿐이지. 그는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사회적응을 시작해. 그 에피소드들이 신묘하게 우습고 기묘하게 슬프고 영묘하게 감탄스럽다.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는 모습도 좋지. 지금의 너처럼 말이다. 낯선 곳도 한계선 긋지 않고 도전하는 너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처음 봤을 때는 고개가 약간 기울 수밖에 없었다. 미혼모인 레이둔과 욕정을 다 보여주는 키엘의 만남이 그랬지. 알고 보니 유명시인 알폰스와 엘링의 만남도 그랬고. 책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다 읽은 후엔 고개 끄덕이게 된다. 그들의 엉뚱한 행동들은 일반적인 사회약속들을 지키지 않아. 엘링의 상상도 과대망상적인 면이 많아. 그걸 풀어내는 저자가 대단한 거지. 노르웨이 문학작품은 처음 접해 보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꽤 유명한 사람이더라. 서문 말미쯤에 밑의 내용이 있었어. 그 걸 보니 책장 넘기기도 전에 저자가 왜 유명한지 알겠더라고.

독일의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엘링을 주제로 삼아 다방면으로 토론을 벌여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우리가 좀더 안전한 지면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을 제외햐면 그는 우리들과 여러 변에 닮아 있다. 한 개인의 삶은 다양한 진단과 판정이 가능하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엘링이라는 인물을 창조한 지 십오년째가 되는 지금, 엘링에 대한 팔백 페이지의 기록이 방향을 잃은 서구사회 인간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p.8)

이 책이 원래 시즌1부터 4까지 있는 연작소설인데 내가 읽은 것은 시즌 3편이었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매끄럽고 다른 시즌은 어떨까 더 궁금하게 만들지. 그래서 기회가 되면 다른 시즌들도 더 읽고 싶어. 아마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읽고 있지 않을까 싶다. 편지 못 받았다고 너무 괘념치 말고, 엘링처럼 씩씩히 웃으며 돌아와. 마중 나갈 테니. 그럼 몸 건강히 안녕히.


2008년 2월 어느날
누나가.


S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동생아. 안녕. 잘 지내고 있지? 추위로 몸은 고단하겠지만 출소할 날을 기다리며 잘 견디리라 생각한다. 아버지한테 네 소식을 들으니 눈물이 앞을 가리더구나. 곧 돌아올 거면서 무슨 편지 타령이냐? 내 너를 어여삐 여겨 한 통 더 보내주마. 하지만 펜을 들려니 이 말을 먼저 해야 할 말을 할 것 같다. 네가 가고 난 다음, 집구석을 둘러보니 화가 나더구나. 누나가 정리정돈에 대해 유난떠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너도 알거다. 하지만 너랑 지내보니 깔끔함과 까칠함을 동시에 가져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면 각오해라. 네가 지낸 훈련소보다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그건 그렇고 너에게 무슨 내용을 써 보낼까 생각하니, 난감하더구나. 네가 가고 난후 달라진 건, 약간의 자유 말고는 없었다. 원래부터 해오던 걸 되찾은 것뿐이니 아무 감흥도 없었다. 직장 가서 일하고 휴일엔 책 읽는, 그야말로 일상 반복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 권, 감동받은 책이 있긴 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대니얼이라는 정신상담 전문가가 외손자 샘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뤄진 책이다.

저자 대니얼은 자동차사고로 전신마비환자가 된다. 사고 후 삶을 보는 눈이 변하는 건 당연했다. 우울증과 몸의 불편함이 그를 옭아매지. 전신마비로 누워있던 어느 날, 그를 향해 어떤 여성분이 통고성 상담을 해버린다. 대니얼은 그 상담을 통해 자신의 역할과 희망을 알게 된다.

내가 걸을 수 있는지, 춤을 출 수 있는지, 사랑을 나눌 수 있는지 따위는 그녀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바로 앞에서 자기 고통을 듣고 있는 사람의 끔직한 고통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고통이 전부였고, 오직 고통받는 자신을 내가 도와주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말이다. 샘. 그녀의 얘기에 귀기울이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거였다. 비관적인 내 처지도 잊을 수 있었다. 사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때 나는 오로지 그녀의 고통에 집중했고, 그녀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p.90)

그는 서로를 살렸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이미 생의 의지를 내재한 사람이었다. 상담을 통해 밖으로 표현하게 될 줄 안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가 욕창에 대해 표현하는 대목에서도 볼 수 있거든.

“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다 있습니다. 필요한 영양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스스로 알아서 상처를 치유하죠.” (p.53)

똑같은 시련에도 누구는 무너지고 누구는 주저앉는다. 어린 생각 때문에 뒷날이 티끌이 좀 묻고 더디게 움직일 수밖에 없더라도 나는 때타고 느린 움직임도 멋지더라. 동생아. 이건 내게 하는 말이자 너에게 하는 말이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겠지. 71쪽에 쓰인 인생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도 좋았다. 많은 책에서 보았던 내용인데, 또다시 보게 되니 부끄럽더구나. 편지로 전하는 것 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아직 열흘이나 남았구나. 경험으로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아직은 자신 없다.

샘은 세상과 소통하는데 장애를 가진 자폐아다. 대니얼은, 그 손자를 위해 세상사는 방법을 서두르지 않고 따뜻하게 말한다. 아무래도 자기를 계속 돌아봐야하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더 다져진 것일 지도 모르지. 책의 추천사 중에 정혜신씨가 쓴 글이 그렇더구나. 

외과의사의 치료도구가 수술용 메스라면 정신과의사의 치료도구는 자기 인격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요체는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p.242)

책을 다 읽고 보니, 누군가에게 글을 남겨 주는 것도 참 의미있단 생각이 들었다. 일이 바빠 편지 못해줘서 미안하다. 건강히 잘 지내서, 열흘 뒤에 보자꾸나.


2008년 2월 어느 날.
누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 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놈의 직장을 나가기 시작했을 때, 건강하던 위장과는 굿바이 해야 했다. 불규칙한 수면에 절제 없는 야식습관은 소화불량을 불러왔다. 요리에 대한 무관심과 궁상스러움도 위장 버리는 데 한 몫 했다. 그렇다고 밥 챙겨먹기는 더 귀찮은 일. 빵으로 끼니 해결 하는 날이 많았다. 그 다음 순서는 후회다. 입 속에 구겨 넣고는 이딴 빵 쪼가리 먹으려고 돈 버냐 싶어 우울해한다. 그렇다고 뱉기는 뭣해 다 삼키는데, 삼켜보면 배부르다. 그 후엔 이대로도 살만하지 않더냐하며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배부른 돼지의 무념무상, 소화불량, 게으름의 반복과 반성. 그래서 내게 빵이라 하면 게으름과 우울함이 먼저 떠오른다. 달콤한 중독을 숨긴 우아한 케이크, 생존권을 부르짖던 프랑스 혁명의 빵, 인생을 논는 눈물 젖은 빵과는 많이 다르다.

해서 한 동안 빵집 근처는 가지도 않았다. 빵 관련 책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이유는 북 콘서트라는 걸가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었다. 안 읽고 가도 그만이지만, 읽고 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다 읽었다. 결론은 만족이다.

빵 좀 굽고, 쿠키 맛보러 다니고, 파리 좀 싸돌아다닌 얘기가 다였더라면 중간에 집어 던졌다. 하지만 저자의 얘기엔 끝까지 다 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마카롱을 훔쳐 먹던 이야기, 조교로 일하던 어려움, 인생의 후회 같은 거 말이다. 글에서 착하게만 보이는 빵순이의 악바리 근성을 읽었다. 순진한척, 못 본 척 해도 같은 가면을 쓴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래서 더 애정 가는 책이 돼버렸다.

30년 이상 서민들을 위해 케이크를 굽는 것이 행복이었지만, 이젠 틈틈이 쉬면서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쉐프는 대뜸 자신이 불행해보이냐고 물었다. 감히 나의 잣대로 행복을 가늠하고 저울질할 수 있겠냐고 대답했지만, 그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케이크를 굽는다고 해도 손님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래도 행복할까? 그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눈앞에 놓고도 절대로 손을 뻗지 않는 그를 만나고 그곳을 나서는데 갑자기 눈이 매워지는 것은 왜일까. (p.65)

제과점에 대한 소개 글은 잘 모르겠다. 유럽여행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라서 말이다. 파리공항이나 찾아가게 될지 모르겠다. 제과점 주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녀의 인생 배움도 함께 할 수 있다. 게 중엔 너무 잘 아는 척 하는 통에 반은 픽션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픽션이면 뭐 어떠랴. 픽션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그려 가면 논픽션이 되는 거지.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파리를 닮은 사랑 편이 읽을 만했다. 양진숙이라는 사람 빵 만들기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같은 빵순이란 소리를 듣는데 난 이런 달콤 고소한 글을 쓸 수 없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ntitheme 2008-02-17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빵이라면 저도 사죽을 못습니다. 요즘도 매일 아침은 회사식당에서 빵으로 해결하죠. 만들지도 못하고 글도 잘 못쓰지만 빵은 잘 먹고 살아요. ^^;

모과양 2008-02-1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티테마님은 빵돌이(?) ㅎㅎ 주식이 빵이 아니시니까, 맛있으신 거죠. 저처럼 매끼가 서양화되면 위가 황폐화되요 ㅠ.,ㅠ 글을 잘 못쓰신다는 말씀은 겸손이라고 봐요^^

antitheme 2008-02-18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제별명을 알아내시다니...전 독일 출장가서 거기 사람들한테 체질이란 소리들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죠.

모과양 2008-02-20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안티테마님 좋아하시는 걸 모르시는군요.ㅋㅋ 그 분의 모든 걸 알아두는 건 팬으로써 당연한 것 아닌지요? 실은 그냥 때려 맞췄어요ㅎㅎ 어디서든 둥글둥글하고 따뜻한 이미지에 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차가운 밤에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소설 좀 봤다는 여자라면, 세밀화 같은 일본감성에 대해 썰 좀 해주고 절대 감명과 눈물 좀 흘려줘야 하나? 아니. 내가 읽은 일본 소설 중에 눈물 흘리면서 본 건 이시다 지로의 <러브레터>단편이 다였다. (훗날 영화<파이란>의 원작이 된 작품이다.) 감정을 예민하게 건드리는 작품도 있었지만 무라카미 류의<69>처럼 ‘재미없는 것은 죄’라 외치는 작품들도 있었고, 하루키처럼 씨 나락 까먹는 귀신을 묘사하는 것도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처럼 살짝 꼰 소설은 내놓으면 다 챙겨봤었다. 우리문학이 최고를 외치고는 있지만 이것저것 떠올려보니 일본 현대소설도 꽤나 봐버렸다. 일본 문학이 좋네 나쁘네를 떠나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더니 생각보다는 축적된 게 많다. 그동안 본 일본 소설에는 잡념이 없었다. 이것저것 끌어오지만 않으면 책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머리 어지러울 때 읽으면 딱 이었다. 

한 감성 한다는 사람들 속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가 유행했을 때가 있었다. 별 감성 없는 년인지라 그녀의 책엔 손도 대지 않았다. 작년, 그녀의 섬세함이 좋다며 일본소설 찬사가 있었던 책모임에 다녀와서도 읽지 않았다. 정확히는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아서 난감했다. 책장 구석바닥에 있는 그녀의<당신의 주말은 몇 개 입니까>는, 올해로 4살이나 먹었지만 아직도 인쇄소 비린내를 벋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에야 에쿠니 가오리를 대면했다. 첫 대면의 인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사고 치고도 당당한 천진난만한 소년이 하루키 단편에 숨어있다면, 에쿠니 가오리는 수줍음 잘 타는 소녀가 보인다. 죽은 애견이 청년으로 돌아왔다는 <듀크>에서 처음 보았었다. <여름이 오기 전>의 결혼 상상에서, <어느 이른 아침>의 크리스마스 아침 아이스크림에서도 보인다. 그 소녀는 조금 개구진 구석도 가지고 있는데 마치 숨은그림찾기 하는 느낌이다. <후지시마 씨가 오는 날>의 고양이, <코스모스 핀 마당>에서 혼자만의 휴일을 즐기는 아비, <밤의 아이들>의 전쟁놀이 하는 어른으로 모습을 바꾼다. 내연녀가 본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겨울날 방위청에서>에서는 장난기 가득한 소녀가 이까지 드러내고 웃는다. 에쿠니 가오리는 담담한 맛만 내는 줄 알았는데 고소한 맛도 낼 줄 알았다.

에쿠니 가오리의 개구진 소녀가 내게로 왔다. 마주보며 배시시 웃는다.

“아, 맛있게 먹었다. 좋았어요, 이렇게 만나 뵈어서. 시미즈 씨가 당신에게 반한 이유를 알겠네요.”
그 말에는 아무런 가시도 독기도 없었다. 가시도 독기도 없지만, 반론의 여지가 없는 강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적조차 못 되었다. 에리코 씨는 모르는 척하면서 말을 이었다.
“우리가 오늘 만난 거 시미즈 씨에게는 비밀로 해요. 당황하면 가엾으니까.”
나는 더는 참을 수 없어 소리 내어 훌쩍거리고 말았다. 나를 울리는 거쯤이야, 그 사람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겨울날 방위청에서 p.171)

새벽 5시 49분, 이 아침 첫 손님이 왔다. (중략)
“어서 오십시오.”
명랑하게 말하면서 돌아보니, 후카자와 아키미가 서 있었다. 감색 코트에 녹색 머플러. 두 볼이 발갛게 얼어 있다.
“아이스크림.”
후카자와가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내게는 ‘메리크리스마스’로 들렸다. 나는 크리스마스의 아침 식사를 웨하스 컵 두개에 듬뿍 퍼 담았다. (어느 이른 아침 p.17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2-12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과양 2008-02-1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아잉 부그러워 하시긴^^
바쁘신데 책으로 부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 나중에라도 필요한 것이 생기시면 꼭 이야기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