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 The Reade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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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 전, 원작을 다 보고 갔었다. 영화는 아주 감동적이고 좋았다. 원작의 철학적 질문이 필름 안에 모두 들어 갈 순 없었으니, 원작에 비해 영화의 한계가 나타날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훌륭했다.

영화<더 리더>엔 미하엘이 마이클로 바뀌어 있었다. 미하엘의 영어식 발음이 마이클이란다. 마이클역을 데이빗이 맡았던 건 스티븐 달리드 감독의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 사랑에 열뜬 연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꼭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웠다. 영화 예고편에서 강조되던 목욕신 때문에 야한 영화로 찍히지 않았을 까 걱정했는데(=기대했는데 --;) 전혀 다.

원작과 영화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다. 조금씩 달라져있다. 원래 마이클은 간염을 앓았었는데, 영화에선 성홍열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 속에서 여행지의 쪽지도 생략되어 있었고, 법대 교수랑 한나를 상의하는게 아니라 원작에선 아버지와 상의를 했다. 원작에선 영화엔 마이클이 딸에게 고백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원작은 자기 글로 남긴다. 영화엔 생략되어 버렸지만, 수용소 한나의 방에서 마이클은 사진을 발견했었어야 했다. 그게 큰 여운이었는데 생략되어 있다. 그렇지만 영화로도 충분히 좋다. 필요한 만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연기는 훌륭했고, 시나리오는 원작을 잘 살리고 알맞게 배분했다. 1부의 마이클과 한나의 즐거운 나날, 2부의 나치 전범 재판, 3부의 한나가 수감된 이후의 일에 대하여, 고르게 말이다. 몰입했다.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이 가장 좋았었는데, 스크린으로도 보게 되니 너무 좋았다. 가장 따뜻하고 관능적이었던 문장.

   
  그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0분 뒤 나는 다시 그녀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나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나는 모든 게 다 내 책임이라고 말했다. (중략) 나는 그녀가 상처받은 것을 이해했다. 또 나 따위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녀가 상처받지 않은 것도 이해했다. 나는 그녀가 나로 인해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의 행동을 그냥 단순하게 보아 넘길 수는 없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녀가 나로 인해 상처받았음을 고백했을 때 나는 행복했다. 그녀는 그녀가 보여준 행동처럼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고 무덤덤한 게 결코 아니었다.

“나를 용서해주는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날 사랑해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p.55~p.56)
 
   

그리고 또 하나, 한나가 죄를 시인하는 장면에서 터져 나오는 마이클의 눈물.
생각해보니, 책에서든 영화에서든 가장 많이 용서를 빌고, 울먹이고 울었던 사람은 마이클이었다. 단호해 보이는 한나와는 달리 마이클은 아주 여린 꼬마였다. 시간이 훌쩍 지나 한나가 수감된 이후는 달라진다. 한나는 여전히 마이클을 꼬마라 부르는데 마이클은 그 여린 꼬마가 아니었다. 옛사랑의 상처를 너무 크게 받은 마이클이었다.
 
영화의 첫 부분에 중년의 마이클이 딸에게 고백하는 게 있다. “네 잘못이아니야. 난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해”라고 한다. 그 말을 하는 순간 한나의 그늘 속에서 나가지 않으려는 울고 있는 꼬마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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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Slumdog Millionair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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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십리 CGV에 <슬럼독밀리어네어>(이하 슬럼독)시사회를 보러갔다. 오후 2시가 상영시간이었는데 좀 일찍 도착했다. 월요일 오후2시에 영화를 보겠다니, 도착한 사람들은 영화 마니아던가 마니아로 위장한 백수거나 백수가 되고 싶은 나 같은 사람들일 거였다. 그러나 대기실은 텅 비어 있었다. 조용했다. LCD광고만이 전기는 끊기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2시간 일찍 도착하긴 했다. --; 오곡 쉐이크와 머스타드 소스를 뿌린 핫도그를 우적거렸다. 핫도그 포장지를 버리러 잠깐 눈 돌린 사이, 대기실은 꽉 찼고 2시가 되었다.  

원작<Q&A>를 읽고 갔었다. ‘누가 십억의 주인이 될 것인가?’란 퀴즈쇼와 퀴즈를 맞추게 된 경위를 따라가는 줄거리는 똑같다. 그러나 원작과 영화는 많이 달랐다. 원작에서 주인공이름은 람 모하마드 토머스다. 힌두교와 이슬람, 기독교가 섞인 이 이름은 사연이 많다. 작명 때부터 새로운 사건 때 마다 이름이 바꿔진다. 그만큼 험난한 고행길을 드러내는데, 영화에선 깔끔하게 자말 말리끄로 불렸다. 450쪽의 두꺼운 이야기가 필름두께로 재단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형제로 나오는 살람은 영화에서 주인공을 괴롭히는 형으로 바뀌어 있었고, 원작에선 등장하지 않은 라띠까가 주인공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자말이 퀴즈쇼에 우승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고문하는 장면이 첫 컷이다. 이후 자말의 7살 시절, 엄마와 함께 살던 슬럼가 장면이 나온다. 경찰에게 쫒기는 설정인데 빈민가 아이들이 도망가면서 비춰주는 빈민가 장면은 압권이다. 세계 최고의 슬럼가란다. 실제 인도의 뭄바이와 그 변두리 지역은 약 2200만 인구가 몰려있는 데다가 촬영이 시작되면 금세 수천만의 사람이 몰려 인도 제작자조차 꺼릴 정도라고 한다. 그 곳을 감독 데니 보일이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신나게도 찍었다. 유명 배우에게 싸인을 받겠다고 푸세식 화장실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이 영화가 웃음코드도 잘 챙겨 뒀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주인공의 삶은 정말 처절하다. 종교 폭동으로 엄마를 잃고, 넝마주이를 거쳐 앵벌이 견습소에서 봉사가 될 위기도 빠진다. 여기서 미워할 수 없는 형, 살람의 도움으로 구사일생한다. 형과 함께 무임승차한 기차여행에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떨어진다. 타지마할 관람을 하게 되는 데 여기서 낮에는 관광객 안내요원으로 밤에는 뒷골목 청소년들로 성장 한다. 
 
인도하면 카레와 같이 유명한 타지마할이, 실은 영화 촬영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곳이란다. 책 한권 분량의 공식 문서도 준비해야 하고 인도를 펌하할 것을 우려하여 실제 사용 승인을 받은 방송과 영화가 없단다. 그런데 담당자가 감독에게 신뢰도 했었고, <슬럼독>시나리오도 좋아 촬영 승인해주었단다. 

이래서 상을 받았지 않았나 싶다. 시나리오도 좋았겠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세계최고의 슬럼가와 타지마할을 찍었다는 게 아카데미에 반영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면에서 주제는 평범하다. 가난한 아이가 노력하여 부자가 된다는 식상한 스토리에, 위험을 무릅쓰고 얻은 사랑이야기는 진부하다. 하지만 그걸 포장하여 전하는 공감과 리얼리티가 영화의 힘이다. <슬럼독>은 주인공과 관객이 함께 있는 듯 리얼리티가 강하다. 2000년에서 2007년까지 인도에선 실제로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국민 퀴즈쇼가 있었단다. 영화에서 나오는 문제들도 실제 퀴즈쇼의 문제였고, 퀴즈의 진행방식과 무대를 그대로 재연하기위해 실제 프로듀서와 작업했다고 한다.
 
원작의 순서가 추리소설을 이어 붙이듯 서로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하지만 영화는 순차적이고, 쉽다. 결과적으로 원작과 영화의 이야기가 달라서, 더 좋았다. 원작조각 찾는 재미도 컸고, 소설이 영화로 바꿀려면 어떻게 각색해야 되는지도 봤다. 기왕 재미있게 보고 싶다면 소설과 영화 둘 다 보라고 추천하겠다. (영화는 15세 관람가지만, 원작은 성행위 묘사없이 야하다. --;) 인도의 종교분쟁, 빈부격차, 역사, 정규교육에 대해 확장해석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쉽게 즐길 휴먼 드라마였다. 

티켓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시사회는 일반 당첨자는 볼 수가 없었다. 영화기자거나 파워 블로거만 초대받는 행사였다. 영화잡지를 구독하지도 않고, 파워 블로거도 아니었지만 덕분에 좋은 영화를 보고 왔다. 덤으로 ‘기자시사회도 영화상영 시간은 똑같다’는 시간의 공평함(?), 그 진실도 확인하고 왔다. 

ps. 상영 2시간 전에 도착하면 안 된다. ‘다 때가 있다’는 어머님의 잔소리도 진실로 편입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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