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passport을 만들었다. 비행기 타본 것도 2년 전 제주도 여행 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선 입사 순서대로 해외 연수를 보내준다. 올 2월에 해외여행 참가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봤을 땐 별 느낌이 없었다. 새로운 일로 바쁘게 일하던 중이라, '쉴 수 있겠구나'가 내 감상의 전부였다. 그러던 것이 빨리 여권 사본과 신청서를 내라는 총무과의 지령이 떨어졌다. 여권 사진을 찍으면서부터 기분이 고조됐다.
'내 또래 사람들이 다들 어학연수, 해외여행을 가더니 나도 외국을 가긴 가는 구나'에서 '앞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까지로 변했다.
구청 여권 창구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권 신청서를 작성했다. "10년동안 10번 해외여행!"을 암팡지게 외치며 싸인을 하던 중, 옆자리 아주머니와 창구직원의 대화가 들렸다.
직원 : 단수여권은 한 번 다녀오시면 더이상 쓰실 수 없는 여권입니다. 그래도 하시겠어요?
아주머니: 제 평생에 해외여행을 해 볼 일이 없어요. 계모임에서 가자니까 따라가는 거예요. 제 돈으로는 해외여행 갈 일은 없으니, 싼 걸로 해주세요.
아주머니는 처음으로 떠나는 해외여행의 설레임을 표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옆자리에 앉은 나는 기분이 가라앉아 버렸다. 연수든, 계모임이든 갈 기회가 생겨서 해외로 나가는 일은 신나는 일이다. 어려운 시대에 국부유출이니, 뭐니 해도 즐거운 것은 즐거운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남았고, 여유 시간이 더 많아 지실 분이 왜 저렇게 생각하시는 지 안타까웠다. 보통에 아주머니 체념이 읽히면서 기분이 상했다.
왜 자신의 돈으로는 해외여행을 못간다고 생각하죠? 왜 아주머니는 돈이 없죠? 일해서 벌 면 되잖아요? 아주머니의 자녀들은 뭐하세요?
한 소리 빽 질러주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우리 부모님도 여권이 없다. 아버지가 일본 해외연수 다녀 오신 것 말고는, 돈 잘버는 동생도, 여유 시간이 많으신 엄마도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내년엔 부모님이 더 늙기 전에 가족 해외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아버지 정년퇴임을 기다리다 이리 되지 않았나.
의학용어도 더듬더듬 읽는 나 같은 인사에게도 해외여행의 기회는 온다. 체념하지 말지어다.
ps. 10년 동안 해외 10번 간다는 생각도 소시민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