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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빵, 파리
양진숙 지음 / 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놈의 직장을 나가기 시작했을 때, 건강하던 위장과는 굿바이 해야 했다. 불규칙한 수면에 절제 없는 야식습관은 소화불량을 불러왔다. 요리에 대한 무관심과 궁상스러움도 위장 버리는 데 한 몫 했다. 그렇다고 밥 챙겨먹기는 더 귀찮은 일. 빵으로 끼니 해결 하는 날이 많았다. 그 다음 순서는 후회다. 입 속에 구겨 넣고는 이딴 빵 쪼가리 먹으려고 돈 버냐 싶어 우울해한다. 그렇다고 뱉기는 뭣해 다 삼키는데, 삼켜보면 배부르다. 그 후엔 이대로도 살만하지 않더냐하며 방바닥에 드러눕는다. 배부른 돼지의 무념무상, 소화불량, 게으름의 반복과 반성. 그래서 내게 빵이라 하면 게으름과 우울함이 먼저 떠오른다. 달콤한 중독을 숨긴 우아한 케이크, 생존권을 부르짖던 프랑스 혁명의 빵, 인생을 논는 눈물 젖은 빵과는 많이 다르다.
해서 한 동안 빵집 근처는 가지도 않았다. 빵 관련 책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이 책을 사고 말았다. 이유는 북 콘서트라는 걸가기 위해서. 단지 그뿐이었다. 안 읽고 가도 그만이지만, 읽고 가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에 다 읽었다. 결론은 만족이다.
빵 좀 굽고, 쿠키 맛보러 다니고, 파리 좀 싸돌아다닌 얘기가 다였더라면 중간에 집어 던졌다. 하지만 저자의 얘기엔 끝까지 다 보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마카롱을 훔쳐 먹던 이야기, 조교로 일하던 어려움, 인생의 후회 같은 거 말이다. 글에서 착하게만 보이는 빵순이의 악바리 근성을 읽었다. 순진한척, 못 본 척 해도 같은 가면을 쓴 사람은 서로를 알아본다. 그래서 더 애정 가는 책이 돼버렸다.
30년 이상 서민들을 위해 케이크를 굽는 것이 행복이었지만, 이젠 틈틈이 쉬면서 가족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쉐프는 대뜸 자신이 불행해보이냐고 물었다. 감히 나의 잣대로 행복을 가늠하고 저울질할 수 있겠냐고 대답했지만, 그가 아무리 선한 의도로 케이크를 굽는다고 해도 손님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그래도 행복할까? 그래도 보람을 느낄 수 있을까?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눈앞에 놓고도 절대로 손을 뻗지 않는 그를 만나고 그곳을 나서는데 갑자기 눈이 매워지는 것은 왜일까. (p.65)
제과점에 대한 소개 글은 잘 모르겠다. 유럽여행은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라서 말이다. 파리공항이나 찾아가게 될지 모르겠다. 제과점 주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녀의 인생 배움도 함께 할 수 있다. 게 중엔 너무 잘 아는 척 하는 통에 반은 픽션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픽션이면 뭐 어떠랴. 픽션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그려 가면 논픽션이 되는 거지.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파리를 닮은 사랑 편이 읽을 만했다. 양진숙이라는 사람 빵 만들기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글도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같은 빵순이란 소리를 듣는데 난 이런 달콤 고소한 글을 쓸 수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