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링, 천국을 바라보다 - 시즌 3 엘링(Elling) 3
잉바르 암비에른센 지음, 한희진 옮김 / 푸른숲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동생아. 안녕하니? 네 편지 잘 받았다. 네게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니, 우편함에 군사편지가 꽂혀 있더구나. 봉투를 뜯어보고 나서야 서로 엇갈린 내용으로 써 보냈음을 알았다. 나는 세상의 따뜻함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너는 세상의 냉담함에 대해 썼더구나. 몰라서 전화 받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그 편지를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이 못난 놈아. 인터넷 광장에 내보낼 듯한 그 것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했다. 화냄을 겁내지 않는 게 다행스럽고, 얼마나 외로웠으면 저리 됐나를 생각했다. 네 성급한 결론은 우려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웃게도 되더구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실은 나도 외로움 잘 타고, 낯선 체제엔 적응 잘 못하는 사람이거든. 그러면서 같이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오래 전에 읽은 <엘링, 천국을 바라보다>의 주인공 엘링이다. 엘링은 30년간 어머니와 단 둘이서만 지내다가 무척 폐쇄적으로 성장한다.

자기주장이 지나치게 또렷한 나머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인물. 어머니를 여읜 후 그는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 바깥 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책을 많이 읽는 아주 철학적인 인물이다. 그는 멍청하지도, 남보다 뒤처지지도 않았다. 단지 그의 지적인 능력이 거의 완벽하게 고립된 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차이만 있을 뿐. (p.6)

그는 바보가 아니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해 바보처럼 느릴 뿐이지. 그는 호기심을 잃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사회적응을 시작해. 그 에피소드들이 신묘하게 우습고 기묘하게 슬프고 영묘하게 감탄스럽다.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는 모습도 좋지. 지금의 너처럼 말이다. 낯선 곳도 한계선 긋지 않고 도전하는 너처럼.

책 속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처음 봤을 때는 고개가 약간 기울 수밖에 없었다. 미혼모인 레이둔과 욕정을 다 보여주는 키엘의 만남이 그랬지. 알고 보니 유명시인 알폰스와 엘링의 만남도 그랬고. 책의 모든 에피소드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다 읽은 후엔 고개 끄덕이게 된다. 그들의 엉뚱한 행동들은 일반적인 사회약속들을 지키지 않아. 엘링의 상상도 과대망상적인 면이 많아. 그걸 풀어내는 저자가 대단한 거지. 노르웨이 문학작품은 처음 접해 보는데, 알고 보니 저자가 꽤 유명한 사람이더라. 서문 말미쯤에 밑의 내용이 있었어. 그 걸 보니 책장 넘기기도 전에 저자가 왜 유명한지 알겠더라고.

독일의 심리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은 엘링을 주제로 삼아 다방면으로 토론을 벌여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것에 별 관심이 없다. 우리가 좀더 안전한 지면에 발을 딛고 서 있다는 것을 제외햐면 그는 우리들과 여러 변에 닮아 있다. 한 개인의 삶은 다양한 진단과 판정이 가능하다. (중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엘링이라는 인물을 창조한 지 십오년째가 되는 지금, 엘링에 대한 팔백 페이지의 기록이 방향을 잃은 서구사회 인간을 우회적으로 묘사한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p.8)

이 책이 원래 시즌1부터 4까지 있는 연작소설인데 내가 읽은 것은 시즌 3편이었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매끄럽고 다른 시즌은 어떨까 더 궁금하게 만들지. 그래서 기회가 되면 다른 시즌들도 더 읽고 싶어. 아마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읽고 있지 않을까 싶다. 편지 못 받았다고 너무 괘념치 말고, 엘링처럼 씩씩히 웃으며 돌아와. 마중 나갈 테니. 그럼 몸 건강히 안녕히.


2008년 2월 어느날
누나가.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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