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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 정말 괜찮은 걸까
김병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이성과의 만남이다. 이젠 나도 외로운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소개팅조차 쉽지가 않다. 주변에선 내가 아직 어리다는 것이다.
‘쳇. 나도 알건 다 안다고! 실전이 부족할 뿐이지’
그래서 읽었다. 연예란 우물을 넘어 결혼이라는 거시적 안목을 위해, 넘쳐나는 외로운 시간을 죽이기 위해......
‘성격차이 때문에 이혼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성격차이 때문에 끌린 것’이란 말이 먼저 눈에 띈다.
성격차이로 이혼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성격차이 때문에 끌린 것이다. 성격차이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조정하지 못해서 싸우는 것이다. (p.7) 유전학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생산한 2세는 생존 가능성이 떨어진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짝짓기’는 나보다 우수한 유전자를 갖춘 2세를 생산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와 유전자를 교환하는 과정인데, 비슷한 사람끼리의 결합으로 탄생한 2세는 유전자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못해 보다 많은 문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중략) 내가 상대방에게 끌리는 것은 이미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저항할 수 없는 생존 메커니즘의 명령 때문이다.(p.29~30)
그동안 심리학책에서 보아온 상식은, 성격차이라는 핑계를 대고 성(性)격차 때문에 이혼을 결심한다고 했었다. 김병후 씨가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으나 궁극적으로 말하고 자 한 것은 남여의 사고 차였다.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차이 중 하나는, 가족에 대해서 남자는 대가족으로 여자는 핵가족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영 씨 남편에게 결혼한 가정은 ‘확대된 나’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계속 유지된 채 ‘나’의 한 부속물로 아내가 생긴 것이다. 결혼 전에는 가족 행사를 귀찮아하다가 결혼 후에는 먼 가족 행사에도 선영 씨를 데리고 가는 이유는 ‘성장한 나’를 가족에게 내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결혼을 함으로 써 남편은 당당한 대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선영 씨는 결혼과 동시에 부모와 비로소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와 ‘작은 빚’ 계산도 철저히 한다. 하지만 선영 씨 남편에게 ‘엄마 돈’은 언제든 ‘내 돈’일수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을 것이다.(p.95~96) 배우자와 자녀는 ‘확대된 나’이므로 배우자가 나의 부모, 나의 형제에게 하는 행동은 또 다른 ‘확대된 나’에게 하는 행동과 동일하게 여긴다. 아내가 내 부모나 형제에게 잘못하는 것은 나의 한 부분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과 같다. 비록 배우자가 나와 부모나 형제를 비난하는 것이 실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남편은 이것을 무의식적으로는 자신의 어떤 면을 사랑하지 않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p.237)
성장과정 중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는 이미 많은 책에서 이해시켜 왔으므로 따로 쓰고 싶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여기에도 사랑을 피력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당신이 ‘마음으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 사랑은 존재하지 않은 것과 다를 게 없다. 사랑하고 이해한 사람은 있는데, 정작 그것을 받은 사람은 없을 때 그 사랑과 이해의 존재 유무는 전적으로 받은 사람의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p.226)
싸움을 하는 것에도 요령이 필요하고, 눈치껏 행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싸우는 상황에서도 상대의 말을 들어주라는 것은 많은 처세술 지침서에서 피력했었다.
문제해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문제가 생겼을 때 내 감정에 따라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다. (p.122)
내 주변 남자들은 이 책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을 본 남자들이 혹여, 너무 가혹한 과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불쌍타. 가부장으로 모셔 줄만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대는 홀아비 팔자인 것이다.
가장 양성 평등이 발달했다는 미국 사회에도 가부장적 가정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최상류층을 이루고 있는 카톨릭 근본주의자들의 가정이 그렇다. (중략) 최상류층의 가정이 가부장적인 것은 ‘가부장’의 경제적 능력이 다른 무엇도 압도할 만큼 크기 때문이다. (중략) 경제적 자유와 사회적 지위가 너무나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그런대로 문제없이 굴러가게 되어 있다. 사회가 더 분화되고 발전된다 하더라도 이런 가부장적 가정은 일부 잔존할 것이다. (중략) 지금 한국 남성과 여성은 가정의 경제력을 누가 책임지느냐에 따라 가정의 운영 원리가 정해진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p.86~87)
모든 책임을 홀로 져야하는 가부장이란 거, 솔직히 안 돼 보인다. 잠시 힘들고, 지칠 때 같이 상의할 수 있는 아내가 내가 계획한 미래의 나다. 시대를 앞서가신 아버지 덕에 딸자식 평등하고, 개방적인 집에서 자랐다. 아주 완벽한 부모였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사촌동생들에게 인기 많은 아빠를 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이 책은 부부생활 판타지를 다룬 책이 아니다. 지금의 우리 부모님을 말하는 것 같아 내 눈엔 참 당연해 보이는데, 상대는 이해해 줄지 걱정된다. 내가 결혼할 때쯤엔 이 책을 잘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지금은 일단, 용모 출중한 남자를 만난 후 부딪히면서 교육에 임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