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 15일, 정월대보름이다.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곡밥 해놓을테니 시간되면 먹으러 오라는 전화였다.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 먹으러 친정에 다녀왔다. 결혼하고 대부분 친정에서 오곡밥을 먹었던 것 같다. 현준이의 경우엔 시레기 나물을 무척 좋아한다. 평소 잡곡밥을 싫어하는 녀석도 외할머니네서 먹는 오곡밥과 나물은 잘도 먹는다. 현준이는 엄청나게 많이 먹었는데도 끊임없이 먹겠다고 나서서 결국 남편과 내가 강압적으로 말렸다. 물론 엄마는 할머니가 해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주가 대견하고 기특하셨을 것 같다. 특히 우리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더 맛있다고 말하신다. 워낙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남편과 아이들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 현수가 참 좋아하는 책이다. 백희나 작가의 닥종이 인형을 마음에 들어한다.
전번주에 조카들과 이 책을 가지고 수업을 했었다. 설은 쇴지만 앞으로 남은 전통 문화와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초에는 연애 액厄이라는 글자를 써서 날려 보낸단다. 그럼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단다. 오곡밥을 먹고 아홉가지 나물을 먹는 정월대보름은 어린시절 신나는 날이기도 했는데 요샌 그런 재미가 사라진지 오래다. 정월대보름엔 견과류로 부럼을 깨물어 피부에 종기같은 것이 생기지 않게 빌기도 하고, 귀밝이술을 마시기도 한다. 또 학창시절엔 친구들과 '내 더위 사라'는 말도 주거니 받거니 했던 것 같다. 농사를 짓는 곳에선 쥐불놀이도 했었다. 깡통에 구멍을 숭숭 뚫고 그 안에 불을 넣고 돌리는 일이었는데 나도 어렴풋이 오빠가 하던 걸 옆에서 지켜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리가 튼튼해지라고 다리밟기를 하기도 했던 것 같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 호두를 나누어 먹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대보름을 보고 마음 속으로 빌었던 것 같다. 늘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대강 짐작은 가는데 그때마다 필요한 소원을 빌었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겐 이런 정서가 흔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가고 있단 생각에 서글프단 생각을 했었다. 어린시절 흔하게 하던 놀이들이 이제는 특별한 격식을 갖춘 전통 문화, 놀이가 되어버린 것이 조금은 낯설다고 해야겠다.
오랜만에 놀러왔던 아는 언니에게 저녁엔 친정가서 오곡밥 먹는다고 말했다가 그 언니 친정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 요양원에 계시단 얘기를 전에 들었던게 그제야 생각나서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아직도 밥해놓고 기다려주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감사해야겠다.
오곡밥도 나물도 맛있었지만, 직접 기름 발라 구워놓은 김을 먹어본게 얼마만이지 모른다. 게으른 딸은 마트에서 포장되어 있는 김을 사다먹는데 나이 많은 엄마는 여전히 기름을 발라 김을 굽고 계신다. 정월대보름에 김에 밥을 싸 먹으면 복을 싸먹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우리 아이들이랑 맛있는 김에 오곡밥과 나물 골고루 올려 김을 싸서 먹고 왔다.
맛있는 것 잔뜩 챙겨 한보따리 싸들고 왔다. 아직까지 건강하신 엄마가 계셔서 복에 겨운 날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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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도중, 남편이 "어머니는 새벽밥 잘 하시죠?" 하는 거다. 스무살 넘어 서울살이하러 사촌집에 살게 되신 이후 새벽마다 일어나 밥을 하셨단다. 학교 다니는 조카들 밥 해주었다는 엄마, 40년이 훨씬 넘도록 여전히 새벽밥을 하신다. "어머니 닮았으면 새벽밥 잘해야하는데 꿈섬은 새벽밥을 안 해요."하고 말하니 우리 엄마, "걘 늦게 자나 일찍 자나 옛날부터 8시에 일어났어."하고 말하신다. 에고, 학교 다닐땐 더 빨리 일어났는데 물론 엄마가 더 빨리 일어났으니 난 늘 늦잠꾸러기이긴 하다. "어쩌겠나, 새벽밥 안 해보고 시집가서 그렇지."하고 말하는 엄마, 난 정말이지 새벽에 일어나 밥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깜깜하다. 신혼초에는 애들이 없었으니 새벽밥 챙겨줬었는데 만날 그건 말도 안한다. 요새 아이들 다 컸으니 이제 새벽에 일어나 밥 좀 챙겨달라는데, 마음은 해줘야지 하다가도 그게 잘 안된다. 있는 밥 챙겨 먹고 나가면 좋으련만......나도 누가 아침마다 밥상 차려주는게 좋다. 애들 밥 챙기는 것도 힘들구만......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미안한 마음은 그래도 좀 있다. 가끔 빵도 챙겨가고, 있는 밥 챙겨 먹어주면 좋으련만 내가 차려주는 밥상만을 바라다니...괘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뭐 그렇다.
남편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책 중 눈에 띄는 책들을 담아 보았다. 좋은 남편, 좋은 아내가 되려면 이 책들도 좀 찾아봐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서로 배려하는 부부가 되고 싶은데 남편은 내가 게으르다고만 생각되는가하는 생각에 좀 우울하다. 만날 엄마에게 밥 얻어먹다가 다른 사람 먹이려고 밥을 하는 일이 쉽진 않아도 저녁만큼은 열심히 준비한다고 생각했는데, 새벽밥, 얘기에 우울하다. 대체 새벽 5시, 6시에 밥이 먹힐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말이다. 분명 결혼전에도 시어머니께 새벽밥 얻어먹고 다녔던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오늘부터 새벽밥에 대한 스트레스가 시작될 것 같다. 난 밥만 하는 사람이 아닌데.......새벽부터 밥을 하라고 하다니......아이들 아침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여서 보냈는데......너무하는거 아닌가? 저 위에 보이는 "남편을 확 바꿔봐" 어떻게 바꾸지? 도서관에 가서 있나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