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소개된 책 들 중에 별도로 묶어볼 만한 책들이 있다.)

 

어산지는 누구인가? 현재 그는 성폭행혐의로 기소되어 런던에서 전자발찌를 찬 채 경찰의 감시하에 있다. 전세계의 정보를 뒤흔든 그는 파렴치한 성폭행범인가? 아무래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그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려는 듯 하다.


하지만 그가 성폭행범으로 몰리는 과정은 너무나 이상하다. 두 명의 여성에게서 성폭행으로 신고되었는데 두 명의 여자 모두 그와의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웨덴에서는 성관계 도중 콘돔이 찢어진 상황에서 성관계를 거부할 수 있고 이 때 성폭행이 성립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두 건 모두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 여성 중 한명은 스웨덴 출신 미국 공무원인데 CIA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이 사건에 미국 정부가 깊숙히 관련되었다고 의심되는 이유이다.


위키리크스는 한동안 전세계를 뒤흔들었다. 대한민국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공무원들이 중국을 비하하거나 중국 관료를 비하한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2월에 위크리크스에 관한 책이 두권 출판되었다. 한권은 독일 <슈피겔>지의 기자들에 의해, 다른 한권은 위크리크스 설립에 관여했던 위키리크스2인자에 의해 씌여졌다.



<위키리크스-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등 지음•박규호 옮김/21세기북스•1만5000원

"그리하여 “아날로그 세상과 디지털 세상, 현실 정치와 인터넷 속 도전자들 사이의 한판” 거대한 싸움은 권력 쪽의 승리로 끝난 듯이 보인다.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국가의 적’ ‘초국가적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 주류사회는 사이버 세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들을 정비하는 한편 위키리크스 사이트를 집중 공격해 접속 불능의 마비상태에 빠뜨렸다. 서버를 임대해주고 있던 아마존도 정치적 압박 때문에 임대를 철회했다. 머니부커스와 스위스 우체국 자회사 포스트파이낸스 등이 위키리크스 계좌를 정지시켰고 지불서비스업체 페이팔도 협력 해지를 통보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 역시 위키리크스로 들어가는 돈의 송금업무를 중단했다. 이제 남은 자금조달원은 독일 헤센주 국스하겐의 비영리단체 ‘바우 홀란트 재단’ 하나뿐이다.

 

백악관은 정부 부처와 기관, 하원 도서관 컴퓨터의 위키리크스 및 폭로협력 매체 사이트 접속을 원천 차단했다. 위키리크스 활동 중에 ‘불법’으로 확정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는데도. 지은이들은 유죄 판결을 받은 적 없는 위키리크스에 대해 무죄추정주의를 적용하지 않겠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개인신상 정보와 외교관들 아이티(IT) 정보까지 수집하는 명백한 불법 ‘간첩활동’을 하도록 지시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계좌는 왜 정지시키지 않고, 꼭같이 기밀문서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 등 유력 매체들은 왜 그냥 두느냐고 힐난한다.

하지만 대다수 기성 언론들은 위키리크스 활동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면서 “새로 밝혀진 건 거의 없다”는 권력의 김빼기 작전을 재빨리 수용하고 비아냥거렸으며, 미국 동맹국들 역시 워싱턴이 제시한 모범답안을 그대로 따랐다. 친미로 올인한 한국 언론들한테서 예외를 기대할 수 있을까. 서방의 대중매체와 정치권의 이런 굴종적인 자세를 두고, 지은이들은 만일 모스크바나 베이징에서 중국이나 러시아 기밀문서가 유출되었을 때도 과연 그런 논조를 취할까 하고 되묻는다.

 

기성 매체들은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사회가 자신의 실존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게 하겠다는 위키리크스의 파격적인 도전이 이미 자신들이 기득권자인 기성체제의 안전성을 깨뜨릴까 두려워 정부를 편드는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러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어산지는 이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을 뿐,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선언했다. “최초의 진짜 정보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터는 위키리크스이고 당신들은 전투병력이다.” 디지털인권운동 ‘전자프런티어재단’ 공동설립자이자 ‘사이버공간 독립선언문’ 작성자인 존 페리 발로는 수많은 인터넷 유저들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탄압자 못지않게 저항자들도 나름 군대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자 페이스북과 트위터 지지자와 팔로어 숫자가 가파르게 치솟는 거대한 국제연대 물결이 일어나고 바우 홀란트 재단에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엄청난 기부금이 몰려들었다.


베트남전 개입 구실을 조작한 정부 문서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는 공개적으로 “아마존의 비굴함에 구역질이 난다”며 아마존을 탈퇴했고 정부 조처를 수용한 다른 기업들에 대한 계약 해지와 불매운동도 거세졌다. 위키리크스의 ‘콘텐츠 미러링’ 호소에 발맞춰 불과 며칠 만에 세계 곳곳에 1200개 이상의 미러 서버가 생겨나기도 했다. 마스터카드와 비자카드 사이트가 위키리크스 지지자들의 공격으로 다운되고, 공화당 리더 세라 페일린과, 어산지를 기소하려던 스웨덴 검찰청 사이트 등이 디지털 집중포격을 당했다. 사상 최대의 사이버 국제봉기가 벌어진 것이다.
....
그 한편에선 중국 인권운동가들이 ‘거번먼트리크스’라는 이름의 사이트를 만들고 있고, 돔샤이트 베르크는 위키리크스 비판자들과 함께 ‘오픈리크스’를 만들고 있다. 발칸리크스, 인도리크스, 브뤼셀스리크스, 트레이드리크스 등 지역적 내용적으로 특화된 많은 대안들은 이미 떴다. 민주주의와 인터넷 주권의 미래는 이런 수천 수만의 위키리크스들이 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분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57.html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지음•배명자 옮김/지식갤러리•1만3800원



한때 위키리크스 2인자로도 불리던 초창기 핵심멤버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가 줄리언 어산지와 결별한 뒤 쓴 책.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를 잘 아는 비판자의 시선으로 본, 아직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위키리크스의 속내와 실체. 원래 미국 정보기술(IT) 대기업 일렉트로닉 데이터시스템(EDS) 독일지사에서 보안전문가•프로그래머로 근무하던 그는 2007년 어산지와 의기투합해 이후 3년 동안 위키리크스의 토대를 구축해간다. 세상을 뒤흔든 비밀문서들의 입수와 사실 확인, 폭로 과정과 제보자(정보원)의 신변보장 방법 등이 구체적인 일화들과 함께 흥미롭게 소개돼 있다.

 

아울러 그들이 왜 헤어지게 되는지, 두 사람의 견해 차이와 결별 과정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를 “그렇게 극단적인 사람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지녔다. 극단적으로 에너지가 넘친다. 극단적으로 천재적이다. 극단적으로 권력에 사로잡혀 있다. 극단적인 편집증이다. 극단적인 과대망상이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와의 결별 뒤에 위키리크스에서 활동한 세월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보람 있었다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어산지에 대해서도 부정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기밀문서 폭로를 이유로 그를 간첩법 위반으로 처벌하거나 미국으로 송환하는 데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일련의 대형 폭로 작업을 통해 위키리크스의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지면서 어산지의 존재감도 커가는데, 그 과정에서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독재자라고, 항상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린다고, 나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자주 비판하게 된다. 수학에 능한 해커 출신의 어산지는 뛰어난 머리를 지녔으나 대인관계는 원활하지 못했고, 조직을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자기 중심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강했다. 위키리크스 운영전략을 두고서도 둘은 충돌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가 대형 폭로에만 몰두하면서 다른 많은 작은 프로젝트들을 소홀히 하는 걸 못마땅해했고, 권력과도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효율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이었다. 그는 어산지 1인체제로의 권력집중이 초래한 폐해, 미디어 스타로서의 처신, 재정 운용상의 불투명성 등을 특히 문제삼았다. 그는 위키리크스의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점들을 보완한 새로운 폭로 인터넷 매체 ‘오픈리크스’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41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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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핀란드가 유행이었다. 세계 학습능력 평가에서 핀란드가 1위, 대한민국이 2위를 차지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핀란드의 학습방법 및 교육정책이 대한민국과 정반대에 있다는 점이다. 경쟁을 우선시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핀란드는 협력을 우선시한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본 핀란드의 시험장면은 가히 놀라웠다. 시험을 마치고 답안지를 제출한 학생에게 선생은 몇 번 문제를 다시 풀어보라고 한다. 그러자 먼저 시험을 마친 학생이 ‘도와줄까’라며 옆에 앉는 장면이었는데 한국식 시험에 익숙한 나로서는 상당히 낯선 장면이었다. 이어지는 교사의 말은 시험은 이 학생이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지 서열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스웨덴이 유행을 타려나 보다. 무상급식 논란에서 시작된 복지논쟁이 스웨덴을 우리사회로 끌고 들어왔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방송을 타고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
신필균 지음/ 후마니타스•1만7000원


“스웨덴식 보편복지는 예컨대 이런 것이다. 18살까지의 아동•청소년들은 무상으로 교육을 받는다. 기초교육과정에는 점수나 등급에 의한 성적평가가 아예 없다. 성적평가는 좋음, 더 좋음, 아주 좋음 세 종류뿐이고 정해진 과목의 90% 이상에서 ‘좋음’ 이상만 받으면 누구나 어느 대학이든 갈 수 있다. 그런데도 고교 졸업생 중 대학에 진학하는 건 43% 정도밖에 안 된다. 가지 않아도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 공부하고 싶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사회평생교육 시설들도 모두 무료다.   
 

육아 지원도 탁월하다. 출산 6개월 뒤 또는 부모 출산휴가(480일) 뒤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각종 유치원과 탁아소 등 다양한 아동센터들이 존재한다. 임신휴가 급여로 월평균 소득의 80%를 최대 5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출산휴가는 480일이고 부와 모 양쪽이 나눠서 쓸 수 있되 어느 한쪽도 60일 미만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역시 평균 소득의 80%를 받는다. 자녀가 아파도 부모가 연간 120일까지(60일까지만 간병 급여 지급) 간병휴가를 받을 수 있다. 16살까지 아동수당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관념이 일반화돼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공감대 속에서 그런 사고훈련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남을 딛고 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교육 전쟁을 벌일 까닭이 없다. 유럽에 드문 속도로 스웨덴 인구가 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65살 이후부터 누구나 보장연금을 받는다. 고용과 소득수준에 비례한 부가연금제도도 마련돼 있는데, 급여액은 소득의 60% 수준이다. 아파서 쉬면 병가급여로 소득의 80%를 받는데, 산업재해를 빼고 최장 550일까지 병가를 받을 수 있고 1년을 넘기면 소득의 75%로 줄어든다. 개인이 부담하는 병원비와 약값은 아무리 큰 수술을 받더라도 연간 45만원 수준을 넘지 않게 돼 있다.

실업급여도 이전 소득의 80%를 14개월간 받을 수 있고 18살 아래 자녀가 있으면 그 기간이 150일 더 늘어난다. 실업자 채용 회사엔 정부가 6개월간 임금의 50~65%를, 장기실업 고령자나 이민자에겐 12개월간 임금 총액의 최대 75%까지 지원한다. 18살이 되면 임대아파트를 신청할 수 있는데, 원룸 학생아파트, 결혼이나 동거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생가족아파트, 노인들이나 장애인을 위한 특수아파트, 호텔형아파트, 맞춤형아파트 등이 즐비하고 임대료도 건물 소유자와 세입자조합 간에 단체협상을 통해 정하게 돼 있다.

19세기 말의 가난에 허덕이던 농업국가 스웨덴을 비교적 단기간에 일류 산업국가로 바꾼 건 절차적 민주주의 쟁취뿐만 아니라 이런 보편 복지정책을 통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까지 이룬 덕이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어려운 시절 나라의 기틀을 바꾸려는 웅대한 장기 비전을 갖고 역경을 헤쳐온 사민주의세력의 혜안과 철학, 가치관, 그리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 폭넓은 참여•존중•합의를 끌어낸 그들의 정치적 리더십에 더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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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의 확대, 소득 수준과 무관”
신필균 사회투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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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않고 해서 받는 쪽이 주눅들게 해선 안 되며 모두에게 꼭같은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선별•시혜적 복지론에 현혹돼선 안 된다고 했다.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스웨덴식 사고가 사회구성원 경쟁력 차원에서도 우월하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은 자신들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현 체제의 모순을 은폐하고 정당화해서 결국 자신들의 독점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회 인사청문회에 나온 자들이 자신의 비리의혹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남들은 더 하지 않느냐고 얘기할 때 제일 화가 난다”고 했다. 거기엔 아무런 비전도 없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핵심 요건은 참여, 존중, 연대다. 복지의 최고 가치는 자유, 평등, 연대다. 양쪽 모두에 연대가 들어 있지 않으냐” 며 “모든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사회•경제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사회복지정책, 특히 보편적 사회복지 정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하다”고 했다. 비록 보통선거권과 같은 민주적 제도가 확립됐다 하더라도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되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결국 소수 엘리트가 모든 걸 좌우하는 과두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9977.html

 

미국사 산책 1~17
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각권 1만4000원



1990년대 실명비판의 장을 열었던 강준만, 2000년대에 들어서는 역사를 둘러보는 작업을 내놓고 있다. 한국근대사, 현대사에 이어 이번에는 미국사를 내놓았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강준만교수의 작업은 한국사 연구에 있어 독특한 위치에 놓인다. 자료를 중심으로 정치, 사회, 문화, 예술을 모두 엮어낸 솜씨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초기 저작부터 그랬지만 강준만의 작업의 특징은 방대한 자료를 중심으로 한다는 점인데, 역사를 묶어내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

““왜 모든 분야와 주제들을 ‘비빔밥’처럼 요리해 통합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시도가 이렇듯 외면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모든 분야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착할 경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이게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고 ‘산책’ 기술 기본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 교수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기술 원칙은 파편적으로 파고만 들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닿아 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냐는 것일 터. 그 능력이 바로 강준만 역사쓰기의 비결이요 요체다. 미국 조지아대, 위스콘신대에서 미국언론사•대중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공부한 강 교수는 굉장한 수집가다. 국내외 전문서적, 신문, 방송 보도, 잡지, 논문 등 그가 인용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 사료를 찾는 그의 안테나와 채집망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성 연구나 보도자료들을 적절히 채집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적당히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수집력 못지않게 그것을 선별해내고 재조립•재해석하는 선구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건 또 엄청난 독서력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

애초 강 교수는 이 책을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꾸밀 작정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산책이니만큼 특히 한-미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과 겹치는 이 책의 미국사 부분은 좀더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도 유용하다.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닮은 점으로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을 꼽고, 한국의 반미주의와 사대주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그는 여기서도 친미냐 반미냐, 사대주의냐 아니냐 식의 이분법적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섣불리 이론화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통섭’은 친미-반미뿐만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 등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재료로 적절히 요리해서 내놓을 테니 최종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관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가려내고 재배열할 때의 선구안 그 자체에 이미 강준만의 역사관•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그게 이 책에 의미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732.html


국사의 필수과목 지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국사가 선택과목이었나 본데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다. 나라의 근본이니 이런 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국사라는 말 자체가 합당한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차라리 역사라는 과목으로 세계사 그 속의 동아시아사 그 안의 한국사를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는 교육은 어떨지? 한국사만 강조하기엔 너무나도 깊은 관계를 맺어온 동아시아사를 놓쳐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작년부터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동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고민중에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사는 세계사 최소한 동아시아사 속에서 같이 공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1, 2
유용태•박진우•박태균 지음/창비•1만8000원

“중국 근현대사 전공의 유용태 서울대 사범대 교수, 일본 근현대사 전공의 박진우 숙명여대 교수, 한국 근현대사 전공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동아시아 3국 근현대사 전공자 3명이 토론과 협의를 거듭한 지난 6년간의 구상과 집필 작업 끝에 내놓은 <함께 읽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는 냉전 해체 이후 등장한 동아시아 담론들을 역사서술로 심화시키면서 기왕의 각국사나 동아시아사의 한계를 돌파하려 한다. 지은이들은 국사와 세계사라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분적인 역사서술은 메이지 유신 이래 제국일본이 구축한 자국중심주의와 유럽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것이라며, 탈냉전으로 일국사에 갇혀 있던 동아시아에 지역사가 등장할 조건이 갖춰졌다고 본다.

………이 책의 특징은 이 소항목들 서술부터 일국사가 아니라 다국사 또는 지역사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소재나 작은 주제를 한 나라의 얘기로 채우는 게 아니라 다국 또는 지역 얘기가 교차하는 식으로 짜는 것이다. 집필 편의상 각 장들은 전공별로 나눠 한 사람이 대표집필할 수밖에 없었지만 의견과 자료 교환을 통해 집필자 모두의 생각이 담길 수 있도록 애썼다.

그때의 서술원칙이 ‘연관과 비교’다.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역사가 중심이지만 주제에 따라 필리핀과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나 인도까지도 ‘연관’되고 ‘비교’된다. 예컨대 필리핀에서 2차대전 뒤 독립과 계급해방을 위해 싸운 세력들이 미국의 제국주의적•냉전적 필요에 의해 제거당하고 우익보수 친미•친일세력이 주류로 등장하는 과정은 광복 뒤의 한국 현대사 과정과 흡사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미완의 토지개혁조차 달성할 수 없었던 필리핀이 오늘날까지 대지주들이 지배하는 반봉건적 후진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비교점이다. 문인 사대부들이 권력기반을 이룬 중국•조선•베트남, 그리고 무사가 권력기반이 된 일본은 다른 근대의 길을 걸었다. 전후 일본 개조에서 재무장(역코스)으로 바꾼 미국의 대일정책 선회에는 인도의 간디 암살과 제3세계의 등장도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동아시아라는 ‘지역’ 안에서 ‘국가’ 및 ‘민중’(민간사회) 상호간의 의존•연관과 대립•갈등을 아울러 파악하도록 하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가는 노력을 부각시킨다”고 집필자들은 밝혔다. 지역•국가•민중의 교직이 서술 방법상의 원칙이라면 이 연대와 협력, 자유와 평등은 이 책을 관통하는 서술의 기본정신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선 세계적 차원에서 냉전이 붕괴된 지 20여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는 동아시아, 그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정신구조, 진보를 가로막는 그 수구적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지은이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61201.html

아울러 중국사를 개괄할 수 있는 책이 소개되었다.

천추흥망 1~8
거지엔슝 총편집•이지연 외 옮김/따뜻한 손•각 권 1만8000원

 
“중국 역사를 책 몇 권으로 압축하려는 시도는 무모하거나 무용할 것이다. 아득한 천추(千秋)의 시간이고, 그 세월이 지나온 내용의 두께를 책이란 물건이 온전히 감당해 내기엔 버거운 일이다. 중국 역사학자 거지엔슝 푸단대 교수의 지휘(총편집)로 중국 역사가 <천추흥망> 8권의 책에 담겼다. 중국 대륙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부터 마지막 왕조 청까지의 중국사를 여덟 칸(진, 한, 삼국•양진•남북조, 수•당, 송, 원, 명, 청)으로 나눠 들여다본 이 책은, “무모했지만,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란 거지엔슝 교수의 겸손한 자평과는 달리 “신해혁명 후 중국 학계가 이룩한 최고의 연구 성과”라는 소리를 들었다. 통사 형식이 아니라 그 시대나 왕조의 특징과 의미를 잘 드러내는 10여개의 주제를 뽑아 다루는 방식이어서 방대한 분량에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 중국에서는 2000년에 모두 출간됐지만, 우리나라에선 2008년 1권이 나온 뒤 이번에 마지막 8권이 나오면서 완역됐다. 4권 당나라 태종을 다룬 ‘봉건시대 치세의 모범’ 부분을 보자. 그 시대 ‘정관의 치’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대규모 농민봉기가 일어난 뒤에는 어김없이 훌륭한 황제가 출현했다. 태종도 수나라를 무너뜨린 농민들의 봉기를 보고 백성 무서운 줄 알았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침몰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이었다.” 선정을 베풀던 군주도 말년엔 초심을 잃고 어김없이 폭정으로 갔다. 지은이는 그것이 바로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요, 권력의 속성이라고 썼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8894.html

지젝은 낯선 이름은 아니다. 데리다, 푸코, 장 보드리야르 등 모든 이름 솔직히 익숙하다. 독서보다 책 정보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은 쓰는 나로서는 이런 현대철학자들은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 읽어보았느냐고 한다면 시뮬라시옹 등 극소수의 책을 제외하곤 손도 대지 않았다. 나이가 들고 식구들이 늘어나면서 읽을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폭력을 주제로 한 지젝의 책이 나왔다 하여 소개글을 관심있게 읽었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음•이현우 외 옮김/난장이•1만5000원

이야기는 독일 문예비평가 발터 베냐민(1892~1940•사진)이 1920년에 쓴 짧은 에세이 <폭력 비판을 위하여>에서 시작된다. 당시 유행하던 조르주 소렐의 <폭력에 대한 성찰>을 지적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 에세이는 폭력을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베냐민이 말하는 신화적 폭력의 ‘신화’는 그리스 신화를 가리키고, 신적 폭력의 ‘신’은 유대교의 신, 곧 야훼를 가리킨다. 베냐민은 그리스 신화 속의 ‘니오베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테베의 왕비 니오베는 아들 일곱명과 딸 일곱명을 두었는데, 그 다복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니오베는 자기가 여신 레토보다 더 훌륭하다고 뽐냈다. 레토에게는 아들(아폴론), 딸(아르테미스) 한명씩밖에 없었다. 화가 난 레토는 아폴론을 시켜 니오베의 아들들을 죽이게 하고 아르테미스를 시켜 딸들을 죽이게 하였다. 자식을 모두 잃은 니오베는 울며 세월을 보내다 돌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레토의 분노가 바로 신화적 폭력이다.

베냐민은 신적 폭력의 사례로 <구약성서> 민수기의 ‘고라의 반역’을 든다. 고라는 모세의 사촌이었는데, 무리를 지어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다. 모세가 분수에 넘치도록 교만하고 독선적이라는 것이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같은 레위지파 후손으로서 모세에게만 영광이 돌아가는 데 대한 질투가 진짜 이유였다. 모세에 대한 반역은 모세에게 권위를 준 야훼에 대한 반역과 다르지 않았다. 모세가 야훼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자,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솟아 고라의 무리는 한꺼번에 소멸당했다. “신은 레위족 사람들(고라의 무리)을 경고도 위협도 하지 않은 채 내리치고 주저없이 말살했다.” 이것이 신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신화적 폭력과 신적 폭력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베냐민은 신화적 폭력이 법을 정립하고 보존하는 폭력, 다시 말해 지배를 구축하고 유지하려는 폭력인 데 반해, 신적 폭력은 그런 법을 파괴하고 해체하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신화적 폭력이 법 정립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들을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한다.” 베냐민은 이 신적 폭력을 ‘순수한 폭력’이라고 옹호한다.

………
지젝은 베냐민의 신적 폭력의 구체적 사례로 프랑스 대혁명의 자코뱅 공포정치, 그리고 1919년 러시아 내전 때 붉은 군대의 ‘테러리즘’을 거론한다. “신적 폭력을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적 현상과 등치시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모호함을 피할 수 있다.”

이렇게 지젝의 이 책은 신적 폭력이라는 이름의 ‘순수한 혁명적 폭력’을 변호한다. 이 폭력은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저지르는 거대한 구조적 폭력에 맞서는 대항 폭력이다. 이 신적 폭력은 그 내부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고 지젝은 단언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8960.html

아울러 미술에 대한 입문서가 하나 소개되었다.

미술은 똑똑하다
리처드 오스본•댄 스터지스 글•나탈리 터너 그림•신성림 옮김/ 서해문집•1만1900원.

○○○이란 무엇인가? 무언가의 정의를 묻는 질문은 언제나 힘들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수천수만 갈래로 나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질문의 대상이 추상적인 것일 때, 문제는 더욱 골치 아파진다. 미술 개괄서인 <미술은 똑똑하다: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이 읽기 만만치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입문자를 위한 이론서’라는 서문의 주장만 철석같이 믿고, 혹은 책 곳곳에 삽입된 키치풍의 만화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 속에 뛰어든 독자들은 책을 읽어갈수록 당혹스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미술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짜여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미술 이론이란 결국, 특정시대들이 미술에 관해 품은 다양한 문답들을 정리한 것이다.

고대 동굴 벽화부터 시작해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미술’ 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변화를 겪는다. 특히 지은이들은 근대 미술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산업화가 시작된 근대•현대의 대격동은 미술의 기존 개념과 정의 역시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초현실주의•미니멀리즘 등 다양해진 철학의 스펙트럼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된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예술은 더더욱 추상적, 전위적, 그리고 철학적인 논쟁을 키워가며 현재에 이르렀다. 깡통수프, 좌변기가 예술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도 이런 시대의 변화가 깔려 있다. 런던 미술대학의 캠버웰 칼리지에서 진행된 미술 입문 강좌를 정리해서 묶어냈다. 리처드 오스본•댄 스터지스 글•나탈리 터너 그림•신성림 옮김/ 서해문집•1만1900원.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66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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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소개된 책들은 의외로 눈에 띄는 인문사회,경제서적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최근 오세훈 시장의 무상급식 등과 관련된 정책에 대해 째째하다며 비판을 가한 선대인씨의 책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지적해 왔던 그가 이번엔 세금에 대한 지적을 해왔다.  

  

프리라이더 / 선대인

 

“책 제목 ‘프리 라이더’는 무임승차자를 뜻한다. 부패가 사전 뜻 그대로 ‘정치?사회제도?의식 따위가 타락한’ 상태라면, 한국 사회는 공정하지도, 타락에서 자유롭지도 않다. 세금을 제대로 내지도 않고 그 세금으로 제공되는 공공재(공공서비스)에 거저 올라타서 온갖 혜택을 누리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무임승차자들은 재벌기업들과 부유층, 고소득 전문직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세금이 얼마나 불공정하게 걷히고 있는지, 세금을 걷어야 할 곳에서 정부와 제도가 얼마나 과세를 방기하고 있는지, 따라서 무임승차한 이 사회 특권층이 누리는 특혜실태를 분노에 찬 필치로 까발린다.

지은이는 우리가 더 분노할 대상은 구조적으로 잘못 짜인 현행 과세제도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 세금제도는 ‘1970년대 개발연대’에 만들어졌다. 경제 부문을 ‘자산경제’와 ‘생산경제’로 나눌 때, 당시 한국경제는 생산경제 중심이었다. 곧 기업이 공장을 가동하고 그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월급을 받아 소비지출을 하는 경제가 주축을 이뤘다. 그렇게 부가가치세?법인세?근로소득세가 국세 수입의 3대 축을 형성했다.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 조세체계 근본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2000년대 내내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주식 거래가 활발해지며 주식?부동산으로 대표되는 자산경제 규모가 비대해졌다. ‘7500조원의 자산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으로 대표되는 생산경제의 7배를 넘어섰다. 그런데 자산경제의 각종 자본이득, 이자?배당 소득에 대해 걷는 세금은 전체 세수의 17.8%에 불과하다. 자산경제 규모는 생산경제의 7배인데 그 세금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지은이는 따라서 대부분 자산소득이 ‘불로소득’인 셈이라고 말한다.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제도는 월급쟁이들의 근로소득엔 칼 같은 반면 자산소득에는 헐겁다. 집값이 올라 수억 차익이 생겨도 1가구1주택일 경우 시가가 9억원을 넘지 않는 한, 세금이 필요 없다. 주식으로 큰돈을 벌어도 역시 세금이 필요 없다. 국내 부동산 보유세 부담액은 부동산 자산가치의 0.09%에 불과한데도 부유층은 이를 ‘세금폭탄’이라 호도한다. 지은이는 반문한다. 실질 보유세율이 1%를 넘는 미국 같은 나라는 세금 핵폭탄이 떨어지는 나라인가.”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5698.html


21세기 초반 인문학의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 이 담근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데 이전처럼 반자본주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묻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끈 책은 정치가 우선한다 와 이론 이후 이다. 일단 독서목록에는 올려놓지만 실제로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정치가 우선한다
셰리 버먼 지음?김유진 옮김/후마니타스?1만7000원

<정치가 우선한다-사회민주주의와 20세기 유럽의 형성>은 정치학자 셰리 버먼(사진)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2006년에 펴낸 책이다. 2006년이면 자유시장주의의 21세기적 극단형인 신자유주의가 이데올로기적 지배력을 최대로 휘두르던 때다. 20세기 역사를 자유주의의 승리의 역사로 서술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이 책은 이런 시대 분위기에 맞서 전혀 다른 명제를 제시한다. 20세기에 승리한 것은 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사민주의)였다!

그동안 사민주의는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와 자유주의의 실용주의적인 타협으로 이해돼 왔다. 사민주의자는 ‘혁명적 신념이나 용기가 없는 사회주의자’라는 다소 경멸스러운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사민주의를 이런 어정쩡한 타협 혹은 타락으로 보는 태도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단순한 정책방향의 차원을 뛰어넘어 명확한 자기완결적 이념체계를 지닌 정치이데올로기로써 자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사민주의 이념이 어떤 역사적 경로를 거쳐 성립했는지, 또 누가 사민주의 성립 과정에 노력과 희생을 바쳤는지, 그리고 그 사민주의가 왜 우리 시대에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보편이념인지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사민주의가 분화돼 나오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다.
……..
지은이는 이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인식이 19세기 말에 이르면 현실 설명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 것인데, 이런 시대적 상황에 대응해 등장한 것이 ‘정치의 우선성’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판본, 곧 ‘민주적 수정주의’와 ‘혁명적 수정주의’다.
……..

이 두 이념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자본주의의 ‘사회 파괴’에 대항하여 맹렬하게 타오르던 민족주의적 공동체주의를 받아들여 내적 성격을 변화시켰다. 소렐의 혁명적 수정주의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민족주의와 결합해 파시즘으로 나아갔다. 또 독일에서는 나치즘(국가사회주의)을 낳았다. 비슷한 시기에 민주적 수정주의는 공동체적 연대에 눈을 돌림으로써 사회민주주의로 진화했다. 지은이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자본주의에 맞서는 이념으로서 이 파시즘과 사민주의가 서로 격렬하게 경쟁했는데, 결국 승리한 것은 사민주의였다고 말한다. 파시즘과 그 급진적 형태인 나치즘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과격한 성격 때문에 파산했다.
 
사민주의는 민주주의를 수단이자 동시에 목적으로 인식했다. 또 자유주의를 ‘자유시장에 대한 집착’에서 분리시킴으로써 이 이념의 본질적 핵심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전후에 사민주의는 가장 유력한 정치이념이 되었다. 지은이는 사민주의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에서 벗어나 ‘정치의 우선성’을 앞세우고, ‘계급 투쟁’을 넘어 계급 타협을 통한 공동체적 연대를 실현하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외면했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수용함으로써 탄력 있는 정치이데올로기로 자립했다고 말한다. 특히 사민주의자들은 시장과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경제성장의 ‘귀중한 도구’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와 단절했다. “동시에 그들은 시장이 하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주인으로서는 끔찍하다는 주장을 흔들림없이 지켜나갔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060.html
 

이론 이후
테리 이글턴 지음?이재원 옮김/길?2만5000원

<이론 이후>는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1943~?사진)의 2003년 저작이다. 2003년이면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이라크를 초토화하던 시점이다. 이글턴은 “미국 정부를 장악한 극단주의자들과 반(半)광신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날뛰고 있는데도, 이런 반인륜적 광기를 제어하지 못하고 진보운동이 주저앉은 이유 가운데 하나를 ‘이론의 무기력’에서 찾는다. 단적으로 말하면, “이 시대의 통설”인 ‘포스트모더니즘’이 문제다. 아무런 전망도 저항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불임의 이념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글턴은 바로 그 포스트모더니즘이 종언을 고했다고 선언한다. 이 책은 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경로로 서구 좌파의 대세를 장악했는지, 또 어떤 이유로 이 이념이 무기력 속에서 파산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글턴 특유의 생기 넘치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하는 ‘이론’이란 ‘문화이론’을 가리킨다. 문화이론은 1960년대의 격동 속에서 태어났다.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의 흐름을 타고 격렬해진 서구 학생운동이 문화이론의 산파 구실을 했다. 당시 학생운동은 자본주의 지배체제에 복무하는 인문학을 격하게 거부했는데, 그 과정에서 인문학이 전면적인 자기성찰을 감행했고,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문화이론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이란 것은 바로 인문학의 비판적 자기 성찰이다.” ………‘문화이론’은 1980년대에 들어와 소비주의가 만연하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몰락해 버렸다. 그 이론의 폐허 위에 깃발을 꽂은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이글턴은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60년대의 대항문화가 낳은 이론들 속에서 자라났으나 결국에는 그 이론들의 건강한 비판성을 잃어버린 껍데기 이념이다
………….
이글턴이 보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지적 흐름은 “총체성, 보편적 가치, 거대한 역사적 담론, 인간 실존의 튼튼한 기반, 객관적 지식의 가능성”을 거부한다. 또 “진리?통일성?진보에 회의적이다.” 요컨대, 영원한 보편적 진리도, 보편적으로 타당한 가치도, 인간 실존의 굳건한 토대도 없다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부분적이고 상대적이어서, 거기서 진리나 보편을 찾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글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주장들이 모두 틀렸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
이글턴은 말한다. “초국적 기업들이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펴져나가는 동안 지식인들은 보편성이란 일종의 환상이라고 목청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2003년의 전 지구를 뒤덮은 네오콘 광기였다. 이런 광기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끝없이 자기 회의와 자기 부정에만 골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끝에 다다른 듯하다.” 이글턴은 “이론 없이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숙고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결코 ‘이론 이후’에 존재할 수 없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론적 파산’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이론이 자본주의의 저 야심만만한 전 지구적 역사와 싸워나가야 한다면 자기만의 책임있는 원천을 지니고 있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문화이론은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저 숨 막힐 듯한 통설에서 벗어나 새로운 주제들을 탐구하라.”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4483.html

 

반자본 발전 사전
볼프강 작스 외 지음?이희재 옮김/아카이브?3만2000원  


“빈곤층의 가난은 부유층의 풍요를 만들고, 빈곤층의 굴욕은 부유층의 자부심을 낳고, 빈곤층의 의존성은 부유층의 자립성을 낳는다. 따라잡기를 통한 평등은 현실의 불평등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신화에 불과하다.”

<반자본 발전 사전>(The Development Dictionary) 셋째 항목 ‘평등’을 집필한 더글러스 러미스(74)의 얘기다. 빈곤과 풍요, 독립과 종속, 평등과 불평등은 각기 독립적인 게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인과관계 또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가난은 그 홀로 게으르고 못나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타인 몫을 앗아가거나 독점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누구도 가난을 의식하지 않고 만족했으나 부자라는 이질적 존재가 나타난 순간 가난이 만들어지고 의식되고 불행해졌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가 부자이기 때문에 또다른 누구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국민총생산이니 국민소득이니 하는 서구산업문명이 고안해낸 일률적 잣대에 따라 나라들 순위가 정해지면서 다양한 가치를 향유하던 멀쩡하던 나라들이 무더기로 어느날부턴가 ‘저발전’의 못살고 못난 나라가 됐다.

그 순위의 포로가 되면서 모두들 순위의 사다리를 먼저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경쟁의 광풍이 몰아쳤다. 극소수 꼭대기만 배를 불리고 대다수가 패배자가 되는 한국의 학교?학벌 서열화를 빼닮았다. 지난 반세기의 세계가 그랬다. 결과는 거꾸로였다. 저발전의 발전이요, 프랭크식으로 말하면 저개발의 개발이다.
개발이나 발전이나 모두 영어 디벨로프먼트를 옮긴 것인데, 옮긴이는 개발이란 말은 이미 긍정적인 의미를 잃은 것이어서, 굳이 한국사람들이 막연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또 개발보다 외연이 더 큰 발전으로 옮겼다고 했다. 흔히 좋게들 생각하는 단어들이 실상 얼마나 위험한 뜻을 담고 있는지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발전(성장)을 고발하기 위해 끌어온 ‘환경’이란 말도 서구적 기준의 빈곤을 없애려면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일반화하면서 성장을 통해서만 지킬 수 있다는 자기파괴적인 함의를 갖게 됐다.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간 평등이란 말도 결국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됐다. 자급자족하며 유유자적 마음 편히 살아가던 사모아의 어부는 서구적 국민(국내)총생산 기준으로 따지면 졸지에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 돼버리고, 카라카스 빈민촌의 빈사상태 실직 노동자는 사모아 어부들에 비하면 갑부가 돼버리는 ‘생활수준’도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반자본 발전 사전>은 이들과 함께 시장, 생산, 도움, 요구, 참여, 계획, 인구, 빈곤, 생산, 진보, 한 세계, 자원, 과학, 사회주의, 국가, 기술 등 절대선으로 믿어왔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온 총 19가지 개념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뿌리째 뒤흔들어놓는 비판적 개념사전이다. 서구문명 비판론자 이반 일리치를 중심으로 1988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1992년에 초판을 마무리한 이 책은 딱딱한 개념어 풀이 사전이 아니다. 성장이 곧 발전인가? 진보는 늘 정의로운가? 언젠가는 정말 모두가 평등하게 잘살게 될까? 그리고 지금 방식의 서구문명은 존속 가능할까? 이런 의문들에 대해 생태학자들이 그 핵심 개념어를 중심으로 사회적?철학적?역사적 맥락까지 짚어가며 답해 놓은 에세이 모음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4476.html


12월 리영희선생께서 작고하셨다. 선생에 대한 많은 기사들이 나왔는데 그 중 두 기사를 스크랩했다.

…………………………
1974년에 창작과비평사가 펴낸 리영희의 평론집 <전환시대의 논리- 아시아?중국?한국>. 리영희라는 새로운 민주주의 전사, 우상 파괴자의 등장을 알린 그의 첫 단행본은 1970년대 유신 전체주의 억압체제하에서 “‘전논’이라는 은어로 불리면서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 ‘해일과 같은’ 폭발력으로 퍼졌다.”(김삼웅 <리영희 평전>) 금서가 된 이 스테디셀러는 이처럼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떠돌고 회자되면서 20세기 말 한국사회 격동을 예비했다. 87년체제와 민주정부 탄생이 상징하는 한국 민주화와 변혁운동의 이론적?실천적 주역들 다수가 그 세례를 받았다. 그런 점에서 리영희는 분명히 ‘의식화의 원흉’이요 ‘주범’이었다. 베트남전에 개입하기 위한 미국의 ‘통킹만 사건’ 조작 사실을 폭로한 대니얼 엘스버그와 그 사실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보도태도, 냉전의식에 사로잡혀 미국사회를 분열과 해체상태로 몰아가던 반공주의세력을 비판하면서 권력의 언로차단과 비밀주의, 자유 억압이 결국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논한 그 책 제1장은 이후 평생 변하지 않은 우상파괴자 리영희의 존재방식에 대한 예시였다. 코페르니쿠스처럼 ‘가설’임을 전제로, 6개의 장으로 구성된 그 책은 중국에 대한 접근을 축으로 한 이른바 ‘닉슨 독트린’에 따른 연쇄반응인 주한미군 감축, 그 자리를 대신할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 그것이 야기할 한반도 정세의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대한 분석과 전망을 담고 있으며, 아무것도 모른 채 조건반사의 토끼처럼 권력과 외세의 조종에 놀아나던 한국인들에게 토끼장에서 벗어나라고 절규한다. 그가 전한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으며, 그것은 결연하고 처연했던 그 뒤 한국사회의 변혁을 예고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는 유명한 선언적 머리말이 실린 <우상과 이성>(1977년, 한길사)은 <전환시대의 논리> 출간 이후의 세상변화까지 담은 그 책의 ‘속편’적 성격을 지니면서 그 책과 더불어 리영희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광복 32주년의 반성과 중국이란 나라, 베트남전 총평가, 냉전과 독일통일문제 등을 담아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이 책 두달 전에 <8억인과의 대화>(창작과비평사)가 나왔다. 1974년에 한양대가 설립한 ‘중국문제연구소’를 맡은 리영희의 중국연구 성과를 담은 <8억인과의 대화>는 해외 중국 전문가들 저술의 편역이었음에도 출간 약 2달만인 그해 11월1일 중장정보부가 판매금지 조처를 내렸다. 그 책이 판금당한 바로 그날 <우상과 이성>이 출간됐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유신체제에 대한 저항이 거세지고 있던 그 상황에서 당국은 그 이념적 배후로 리영희를 지목했고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은 그를 반공법으로 옭아넣는 구실이 됐다. “1977년 11월23일 아침 7시, 나는 집에서 세 사람의 낯선 손님의 방문을 받았다. 그들은 다짜고짜로 서재로 올라가 수백 권의 책을 훑어 꾸린 다음 ‘잠깐 조사할 일이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그가 끌려간 곳은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고 1980년 초에야 그는 광주교도소에서 출감했다.

<80년대의 국제정세와 한반도>(1984년, 동광), <분단을 넘어서>(1984년, 한길사), <역설의 변증- 통일과 전후세대와 나>(1987년, 두레)는 이스라엘-아랍 등 제3세계로 그의 시선을 더욱 넓히는 한편, 문화적 접근단계를 넘어 군사협력체제로 나아가던 한-일 보수정권 유착관계의 진화와 이를 뒤에서 조종한 미국의 세계정책 구상 분석을 중심으로 핵문제와 통일 문제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킨 그의 ‘80년대’ 저작들이다. 이들 80년대 저작 중에서 특별한 책 하나가 그의 탄생부터 5?16쿠데타 직후 그의 30대까지의 삶을 뒤돌아본 <역정>(1988년, 창비)이다.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이 책의 내용은 이후 말년까지 그가 여러 글과 책에서 회고하고 재인용한 그의 삶의 형적들의 원형을 이룬다. 고향에 대한 애틋한 기억들, 가난했던 서울 유학시절, 문사기질의 그가 경성공립학교 전기과와 국립해양대 항해과에 들어가게 삶의 궤적과 백범 김구를 연모하며 4?19혁명에 뛰어들었던 얘기, 미군 통역장교 등으로 복무한 7년간의 군대생활, 그때 목도한 군과 국가의 부패와 부도덕이 그의 인생지침을 돌려놓게 되는 과정, 언론사 입문 과정 등이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장교 시절 군인들이 불쏘시개로 삼던 신흥사 목판경전들을 구한 얘기, 술 마신 기분에 호기를 부렸다가 도리어 준엄한 꾸중을 듣고 무릎꿇고 사죄해야 했던 어느 진주 기생의 기개와 인간적 무게를 보며 깨친 생각 등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다.

<自由人, 자유인>(1990년, 범우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년, 두레), <스핑크스의 코>(1998년, 까치), <반세기의 신화-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1999년, 삼인) 등 그의 ‘90년대 저작’들에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급속히 진행된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를 지켜봐야 했던 리영희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고뇌가 깊게 배어 있다. 하지만 그의 1970년대적 시선과 문제의식은 일관되게 유지되며 종교?문화?언론?통일문제를 아우르는 그의 사유는 더욱 깊고 풍성해진다. 1996년 지중해 일대를 여행한 뒤 쓴 <스핑크스의 코>는 지식?문화?종교?예술?정서 등 모든 면에서 오로지 자기 것만을 내세우며 약자에게 이를 강요한 지배적 문명, 그 폭력숭배와 잔인성, 반지성, 반문화, 몽매와 독단이 이집트 스핑크스의 코를 무참하게 뭉개버린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를 처참하게 망가진 얼굴의 한국사회를 대비시킨다.

2005년에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와 대담형식으로 엮은 회고록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리영희의 삶과 사상의 종합편이다. 리영희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역할을 맡은 임 교수의 주도면밀한 진행에 따라 리영희의 삶과 기억들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풍부하게 종합된다. 원숙과 깊이, 그리고 삶에 대한 달관의 경지까지 느낄 수 있는 <대화>는 <전환시대의 논리>의 문제의식이 세상과의 사투를 벌이며 마침내 당도한 변증법적 종합이라 할 수 있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24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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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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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와 배신, 정의와 휴머니즘이 버무러진 재미있는 드라마 뒤 슬픈 대한민국의 속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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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해를 마감하는 출판계 기사들을 곧 만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이슈는 아마도 '정의란 무엇인가'일 것이고, 하반기에 돌풍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11월에 소개된 책들중에는 보수, 진보를 주제로 한 책들이 보인다.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 '진보와 보수의 12가지 이념' 등의 책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책은 노골적인 제목의 '진보집권플랜'이다.



<진보 집권 플랜>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뉴스
 
  
"2012년, 늦어도 2017년 대선에서 진보·개혁 진영 재집권 가능성을 검토하고, 구체적인 재집권 방안을 모색한 <진보 집권 플랜>.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는 부제가 붙은 이 대담집은 6·2 지방선거의 핵심 의미를 진보·개혁 연대의 학교 ‘무상급식’ 전략에서 찾는다. 이거야말로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서울 강북 ‘뉴타운’공약이 서울표를 휩쓸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파를 6·2 지방선거에 몰고 왔을 뿐 아니라, 무엇이 차기 대선 판을 휩쓸어버릴 진보·개혁 세력의 초강력 무기가 될 것인지를 보여준 강력한 예시라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구체적인 공약, “진보가 밥 먹여 준다. 뿐만 아니라 더 좋은 밥을 더 인간다운 방식으로 먹게 해 준다”는 사실을 생활 속에서 피부 깊숙이 각인시켜줄 구체적인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4분5열을 극복하고 6·2 지방선거 때처럼 연대하고 뭉치는 것이다.

 

조국과 오연호는 지난 대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을 참패로 몰고간 요인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교육, 일자리, 의료, 주택 등 진보·개혁 세력 발목을 잡았던 핵심 민생문제 실패를 이젠 현 정권이 훨씬 더 열악하고 증폭된 형태로 되풀이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49.8%에 달하는 비정규직 비율, 더 심화된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 문제, 거품붕괴 위기 속에 더 멀어지고 있는 서민들의 내집 마련, 상생이 가져다줄 무한대의 실익을 외면하는 파탄상태의 대북정책, 대기업만 살찌운 기업프렌들리, 4대강 개발 등 막무가내 토건사업….

 

두 사람은 현 정권의 이런 실정과 무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무상급식, 반값 (대학)등록금, 동일노동 동일임금, 사회임금, 무상의료 또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원가공개와 반값 아파트, 검찰 개혁, 종부세 개선 부활, 산업·기업 민주화 등 획기적인 대안들을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들이대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집권당이 차기 대선을 겨냥해 내놓은 복지국가론이 그들의 줄·푸·세(세금을 줄이고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는 정책)정책과 어떻게 모순되는지를 지적하고 탈신자유주의 대안 복지정책의 진수와 진정성을 보이라고 촉구한다. 이를 통해 무능하고 부패한 것은 진보·개혁이 아니라 수구·보수 세력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이탈리아 올리브 동맹이든 무지개연대든 2단계 소통합 방식의 야권통합이든 386(486)과 20대의 연대든 유권자들 변화욕구를 최대한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내라고 강조한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8509.html

 

조국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부드럽지만 촌철살인 같은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그의 바람처럼 이 망국의 개발시대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많지는 않지만 조국교수는 몇 권의 대중적인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생각해보니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가 몇 년째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앨버트 허시먼 지음·이근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보수에 대해 분석한 책도 소개되었다. 진보,개혁정책에 대해 역효과를 내세우며 무용론을 내세우는 보수의 논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다.

 

"앨버트 허시먼(1915~)의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원제 The Rhetoric of Reaction: Perversity, Futility, Jeopardy)는 예컨대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비판 논법을 이렇게 요약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시장개입에 부정적인 경제학적 시각에서 실업자와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의 일부를 돌리는 ‘이전지급’이 야기하는 갖가지 문제들에 초점을 맞춘다.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그런 이전지급 방식들은 ‘나태와 타락’을 조장하고, 의존을 부추기고, 더 건설적인 국가의 다른 부양제도들을 파괴해서,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것은 허시먼이 이 책에서 보수주의자들이 개혁이나 진보를 가로막기 위해 들이대는 전형적인 ‘수사적 무기’(rhetoric of reaction, 반동의 수사학)로 든 세 가지 명제 가운데 ‘역효과 명제’(perversity thesis)다.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 추천자 우석훈은 이를 “너희들이 뭘 해봤자 역효과만 난다” “그래봐야 너만 더 힘들어진다”는 말로 요약하면서, 차라리 감세가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던 이명박 대선 공약, 세금과 정부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며 이를 ‘줄푸세’라 불렀던 박근혜 경제공약이 이 명제 위에 선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둘째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그 노력들은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무용 명제’(futility thesis)다. 셋째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에 얻어낸 소중한 성취들마저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하는 ‘위험 명제’(jeopardy thesis)다.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봤자 소용없어!”라는 얘기다.

 

역효과 명제와 무용 명제는 인간과 사회의 활동 목적을 보는 관점이 거의 정반대다. 역효과 명제는 인간 세계를 매우 변덕스럽다고 보고 그 때문에 변화 시도가 뜻밖의 반작용을 낳는다고 보는 데 비해 무용 명제는 세계가 고도로 조직화돼 있고 내재하는 법칙에 따라 진화하는 것이어서 인간이 그것을 고치려는 건 소용없는 짓이라고 본다. 따라서 어떤 면에선 무용 명제가 역효과 명제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 역효과가 나더라도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있는 세계와 개입의 여지조차 없는 세계의 차이. 무용 명제는 마르크스주의 사조에 맞서는 무기였고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비판도 무용론 중심으로 전개됐다.
  ........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는 진보와 개혁을 저지하려던 세력이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이후 20세기 복지국가 논쟁에 이르는 시기에 동원한 보수주의 담론과 주장, 수사법을 좌우한 ‘논쟁의 규범’들을 역사적·분석적으로 살핀다. 바로 그 가공할 역추진력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역효과·무용·위험 명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리스트, 조지프 슘페터, 니컬러스 칼도 등과 함께 동아시아국가들 경제성장 기적에 기여한 “다른 종류의 경제학자들” 중 한 명으로 꼽은 허시먼이 이 책을 출간한 것은 1991년이다. 레이건 정권의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를 이어받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걸프전쟁’을 지휘하던 당시와 정치적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횡행하는 지금의 한국 사정이 닮은꼴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0868.html

 

가난한 사람들이 맹렬히 보수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에 대한 마땅한 대답을 갖지 못한 내게 선거와 정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이다. 조지 레이코프를 설명할 때 종종 노암 촘스키에 빗대기도 한다. 그가 촘스키의 제자인데다가 언어학자이면서 현실정치에 활발히 참여하기 때문인데, 그런 설명에서 놓치는 점이 하나있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는 촘스키와 전혀 다른 입장이라는 점이다. 물론 정치를 분석하는 시각도 전혀다르다. 촘스키의 경우 자신의 학문과 현실정치라는 분리된 두개의 세상을 가지고 있지만 조지 레이코프의 경우 자신의 전공인 인지언어학 개념을 확장시켜 현실정치에 참여한다.


           
 

11월에는 조지 레이코프의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가 소개되었다. 이번 조지 레이코프의 번역 출간을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책은 이미 작년에 출간되었던 자유전쟁이 출판사만 바뀐 경우인데 지난달에 소개되었던 도덕, 정치를 말하다 역시 2004년에 '도덕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같은 역자가 번역 출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저자의 책이 이슈가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는데 다시 출간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흥미롭다. 하여간 조지 레이코프의 책은 일독의 가치가 충분하다.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나익주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5천원

 

"프레임(Frame)이란 말은 흔하게 쓰인다. 가볍게 생각하면 ‘생각의 틀’쯤으로 해석되지만, 그것이 지배하는 힘은 깊다. 우리의 믿음과 행동, 주의와 철학은 늘 그 틀 모양대로 생성되고 변형되며 작동한다. 프레임은 말의 영향을 받는다. 언어는 곧 인지의 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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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프 교수가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에서 주목한 것은 ‘자유’라는 단어다.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2005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자유, 해방이라는 단어를 20분 동안 49차례나 사용했다.” 이라크 전쟁은 자유를 지키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는 숭고한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지은이는 이를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진보의 가치였던 ‘자유’가 보수주의의 프레임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고 표현했다.

 

자유는 프레임에 따라 내용이 전혀 달라진다. 부의 재분배나 의료보험을 한쪽에선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자유가 있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른 쪽에선 부를 누릴 개인의 자유를 앗아가고 시장의 자유 작동 원리를 억압하는 해악으로 해석한다. 공항 알몸투시기도 한쪽은 개인 자유의 영역을 훼손하는 폭력으로, 다른 쪽은 테러로부터 자유를 지키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인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미국에서 보수주의의 일방적인 승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후진적인 의료보험제도가 용납되고, 부자 감세가 횡행한다. 종교의 자유는 억압되고 영장 없이 사생활도 뒤질 수 있다. 미국 국민이 이런 폭력을 용인하고 따르는 이유는 뭘까? 보수주의자들이 붙인 ‘자유’라는 딱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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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진보주의자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보수주의자들의 언어를 따라하지 말고 본원적 ‘자유 프레임’을 서둘러 복원하라는 것이다. “자유를 잃는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자유의 개념을 잃는 것이 훨씬 더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0865.html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후 대한민국은 한미합동훈련에 이어 포사격훈련까지 수행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당사자의 시각으로 보면 이는 어떤 판단의 근거도 허용하지 않는 일이다. 평화롭던 우리 땅에 포격을 가했으니 우리땅에서 우리가 훈련을 하는 건 당연하다고. 그런데 이게 당연할까? 조금만 눈을 돌려 보면 세계정세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러시아가 남한의 사격훈련에 대해 유엔안보리를 소집한 것이다. 당한 것은 우리인에 어째 세상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뜻과 같지 않다. 이런 시대에 시각을 조금 폭 넓게 볼 만한 책이 나온 것 같다. 

 



정세현의 정세 토크
정세현 지음·황준호 정리/서해문집·1만5000원



" 북핵 폐기냐, 아니면 북핵 관리냐. 지난해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까지만 해도 미국의 평화협정 논의에 상당한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그걸 워낙 견제하고 반대하니까 미국이 슬그머니 중단했고,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미국이 변했다. 사고 직후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없다”고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도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을 먼저 설정해 놓고 그걸 입증하는 증거자료를 찾아내거나 또는 만들어내려는 한국의 움직임에 서서히 동조했다.

 

아마도 미국은 사건 초기에는 그게 일본하고 갈등을 빚고 있던 오키나와 미 해병대 기지 이전 문제 해결에 유용한 카드가 되리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으로 북풍몰이를 하는 이명박 정부의 움직임을 적당히 활용하고 맞장구를 쳐주면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는 하토야마 내각을 압박할 수 있고, 결국 미국 국익을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다. 그렇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6자회담 재개 동력이 떨어져버렸다.

 

미국이 왜 이러나? 미국의 본심 자체가 겉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어영부영 나중에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려는 건가? 다시 말해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

지난해 7월 토크에선 이런 얘기를 했다. “해마다 하는 한-미 군사훈련도 사실은 미국이 신형 무기 들고 나와서 성능 보여주면 우리 국방부가 신무기 구매계획을 세우고 예산 신청을 하는 거잖아요.” 올해 4월에는 이런 얘기. “2009년 한-미 정상회담 때 미국이 한국에 ‘확장된 억지력’을 제공한다는 합의를 했습니다. …사실 ‘확장된 억지’는 ‘확장된 의존’과 표리관계입니다. 우리가 미국에 군사·안보적으로 더 의존하게 된다는 건데, 달리 말하면 미국산 무기 수입을 더 늘린다는 얘깁니다. 확장된 억지가 명문화되는 시점을 전후로 미국산 무기와 군사장비를 구매하는 한국의 자격(FMS)이 최상위로 격상됐는데, 그거 다 돈 나가는 얘깁니다. 이런 상황이 극단적으로 가면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 방어(MD)에까지 들어가자는 말이 나올 겁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9747.html


11월에는 스님의 주례사와 한겨레특강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또한 읽어볼 만하다. 

 



<스님의 주례사>
법륜 지음/휴·1만2000원


 

"정토회라는 불교 수행단체를 이끌고 있는 법륜 스님은 지난해 정해진 주제 없이 현장에서 나온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즉문즉설’(則問則說) 전국 순회강연을 했고, 그때 강연 주제가 사랑과 결혼이었다. <스님의 주례사>는 그 즉문즉설 녹취문 중 일부를 가려 뽑아 간추린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부부 사이에 생긴 갈등 문제예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 왜 갈등이 생길까요?” 스님은 그게 다 상대방 덕을 좀 보자는 지극한 이기심에서 비롯됐다고 잘라 말한다. 스님 얘기는 길게 에두르거나 번다한 장식이 없다. 쉽고 명쾌하다. 하지만 그 정도 얘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끌릴까.

 

그다음 얘기는 “결혼은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지 않을 때 해야 합니다”로 이어진다. “내가 온전한 상태에서 상대와 관계를 맺을 때 … 기대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상대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덕을 보려 하지 말고 덕을 베풀라는 것, 그런 걸 깨친 경지가 ‘온전한 상태’인 듯한데, 그게 말처럼 쉬운가. “결혼한 아내와 남편은 자식이 없는 스님들보다 열배, 백배는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끝없는 연습” “수도” “마음공부”도 같은 말인데, 먼저 이치와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 중심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교설이 자리잡고 있다. 스님 얘기는 사랑과 결혼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관계, 개인의 절망감, 무지, 행복, 운명 등 닿지 않는 데가 없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7385.html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한겨레출판·1만2000원


"세상은 ‘드럽고 치사하게도’ 1등만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를 ‘술 푸게’ 한다. 술만 푸지 말고 제대로 반기를 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마쓰모토 하지메. 그는 대학 식당 밥값 인상에 항의해 구우면 악취 나는 ‘꽁치 굽기’ 데모를 하고, 모두가 자기계발에 열 올리는 ‘바쁜 사회’에 저항하며 역 앞에서 고타쓰(일본식 난방기구) 놓고 술 마시는 ‘한가한’ 데모를 했다. <예스맨 프로젝트>라는 영화를 찍은 앤디 비클바움은 신자유주의의 첨병 세계무역기구(WTO)의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투표권도 사고팔 수 있다”며 이들의 생각을 정론직필한다. 이런 방식으로 주류 권력의 음모를 널리 알리는 셈이다. 지지율로 따지면 ‘하위권’이었음에도 끝까지 서울시장 후보를 완주해낸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 얼핏 1등처럼 보이는 소설가 공지영씨, 한국 사회 비주류인 ‘좌파’ 안에서 또 ‘비(B)급’을 지향하는 김규항씨 등도 참석했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매년 주제를 정해 벌이는 ‘인터뷰 특강’에서다. 올봄 이들이 모여 전수한 ‘무한경쟁사회에 발칙한 발차기를 날리는 비법’을 모아 묶었다.

 

노회찬 전 대표는 모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서울대의 ‘1등 독식’이 없도록 16개 국공립대가 통합되는 ‘꿈을 꾸라’고 말한다. “천만명이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되니까.” 마쓰모토는 등록금 투쟁을 하는 대학생들에게 “대학을 그만둔 다음 매일 학교에 가라”고 제안한다. 수입이 없어진 대학은 당혹스럽고, 학생들은 간판 획득이 아닌 공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 저항하지 않는 당신, 모두 유죄!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49757.html

 

일년을 갈무리 하는 독서내용을 담은 정혜윤의 글도 관심을 끌었다.

올해 읽은 책들을 돌아보며…
정혜윤의 새벽 3시의 책읽기 /


"볼라뇨의 <칠레의 밤>에 대해선 죽기 전날 밤의 변명이란 부제를 내 맘대로 달아뒀다. 죽기 전날 변명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어떤 삶의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나는 이 책을 읽고 배웠다.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서 네덜란드어를 모르는 프랑스인 조제프 자코프는 어떤 지적 모험을 하게 된다. 즉 네덜란드에 가서 프랑스어를 가르쳐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정확히 말하면 스승은 네덜란드어를 모르고 제자들은 프랑스어를 모르는 상황), 그런데 이들이 겪은 일이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뒤흔들어 놓는다. 학생들은 프랑스어 철자법도 배우지 않은 상황에서 프랑스어를 스스로 익히기 시작했다. 교육에 있어서 유식한 자 무식한 자 유능한 자 무능한 자 똑똑한 자 바보 같은 자의 분할이 깨진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만약 천재 교육을 원하는 부모라면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이 책에서 “나는 인간이다. 고로 생각한다”로 뒤집을 때 인간에 대한 어떤 강력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신뢰가 사람을 얼마나 해방시키는지 알게 될 것 같다.

 

           


<감정노동>은 언제나 친절한 항공사 승무원의 미소로 시작한다. 감정노동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고양시키거나 억제할 때의 노동을 말한다. 승무원들뿐 아니라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미소가 저마다의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요구된 것의 결과물일 가능성에 대해서 동의한다면 감정노동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까지 이르게 된다. 서비스직의 비중이 늘어가는 사회에서 감정이 상품이 된다면 그렇다면 내 진짜 감정은 언제 어디서 표현해야 하나부터 나는 도대체 정말은 뭘 느끼는가까지 다 궁금해질 것이다.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4508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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