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새사연 신서 2
김병권. 손우정. 안태환. 여경훈. 이상동. 정희용. 한우림 지음 / 시대의창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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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인 베네수엘라가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쓴 것은 바로 선거로 혁명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20세기 혁명의 역사는 전반적으로 피로 이룬 혁명의 경우가 많은데 베네수엘라의 혁명은 그와 달리 선거혁명이었다. 선거혁명이 힘든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4.19 혁명을 촉발시킨 3.15 부정선거에서 처럼 선거가 기존 세력의 시스템내에서 치뤄지는 관계로 상당부분 기득권 세력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엘고어가 부시에게 졌을 때 일부 선거 부정과 관련된 사건들이 대두되었었다. 그만큼 선거로 기존 틀을 깨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베네수엘라의 경우 1958년 푼토피호 협정이후 양당체제가 확고하게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 정권을 창출하는 것은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40년 만에 양당체제를 깨고 차베스의 제3세력이 정권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차베스를 두고 국내외 언론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포퓰리즘의 대명사는 뮤지컬 에비타로 알려진 아르헨티나의 에바 페론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국가의 상황과 상관없이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정책을 남발하며 사회혁신을 이루지는 않는 것인데 책에 따르면 차베스는 포퓰리즘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먼저 차베스는 주민소환제를 도입하였고, 이에 따라 소환투표를 당하기도 하였다. 주민자치위원회를 장려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틀리다. 기존의 기득권 세력을 권력을 몰수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도 않았다. 대다수 언론이 차베스에 반기를 들 정도로 언론을 장악하지도 않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차베스를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국내외 언론들의 정치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국내외 언론은 차베스를 사회주의자로 낙인찍으려 한다. 실제로 차베스는 '사회주의'를 말을 사용한적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우리가 경험한 소련이나 다른 국가들의 사회주의와는 분명 다르다. 그는 취임사에서 "우리의 계획은 국가 통제 경제도 아니고 신자유주의 경제도 아닙니다. 우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국가의 보이는 손이 서로 맞잡는 중간지대를 모색합니다. 국가도 필요하고 시장도 가능합니다."(151쪽) 이에 대해서는 차베스의 경제정책은 사회주의 보다는 오히려 보수적이고 자본주의적이라고 말할수 있을 정도이다. 차베스가 집권하면서도 정상적으로 축적한 부에 대해서는 기업이건 개인이건 보장하였다. 부당하게 국각와 결탁하여 축적한 부가 아니면 정부가 간섭하지 않았는데 이는 바로 자본주의의 기본이 아닌가.

 

물론 차베스는 경제적으로 반대세력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무력에 의한 강압정책이 아니었다. 보수 언론과 외국세력과 결탁한 기업들 그리고 노동자들 보다는 권력자의 편에 있던 노조가 연합하여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목적으로 벌인 장기간 대규모 파업의 결과로 그들이 자연스럽게 해고되면서 차베스는 효과적인 경제정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베네수엘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석유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5대 산유국이면서 매장량에서는 세계최대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석유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좌파 정권이 들어선 20세기 초반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정부주도의 석유정책을 펴왔지만 곧바로 정권을 잡은 우파정권은 석유산업의 민영화 뿐만 아니라 세계 유수 기업들에 석유 이권을 나눠 주었다. 이로 인해 석유산업의 호황, 침체에 따라 국가 경제가 흔들리고, 석유 이외의 산업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석유산업으로 인한 이득 역시 외국자본과 일부 국가권력의 나눠먹기 장이 되어 국민경제에 미치는 혜택은 크지 않았다. 국내외 언론은 차베스를 깎아내리기 위해 차베스의 뒤에는 석유산업이 있었음을 강조하는데 차베스가 집권한 10년 이상 석유산업의 성장률은 산업평균 성장률보다 낮았다. 차베스가 집권한뒤 경제성장율은 평균 10%에 가까웠지만 석유산업은 그 절반에 미칠 뿐이고, 제조업과 광업의 성장률이 높았다. 즉, 차베스는 단순히 석유에 의종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제조업과 그 제조업의 바탕에 있는 광업에 중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차베스 사후 많은 평가들이 오고 가고 있다. 그 어떤 평가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나라와는 상관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지도자였음이 분명하다. 베네수엘라의 상황과 역사가 우리와 분명히 달라 동일한 정책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분명 우리와는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속에서 차베스를 배워 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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