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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호수 ㅣ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44
앨런 세이 글 그림, 김세희 옮김 / 마루벌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동화는 산문이지만 시(詩)에 가장 근접한 장르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화의 문장은 시의 언어를 닮는다.
시의 언어가 가지는 특징은 함유, 비유, 상징.
이를 한꺼번에 묶어 말하자면, 하나의 문장에 여러 가지 뜻을 담는다는 것.
앨런 세이의 <잃어버린 호수>의 문장이 바로 그렇다.
무심히 지나갈 수 있지만,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더욱 더 큰 의미를 가진 문장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오솔길에서 만나는 이정표처럼, 험한 산길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처럼.
물론 그림의 힘도 크다.
차분하고 사색적인 그림은 이야기와 잘 조화되어 가치를 높인다.
맛보기용으로 다음 문장들을 소개한다. 그림과 함께 보면 더욱 아름다우니, 꼭 책으로 확인하시길!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마침내 나는 물어보았습니다.
“잃어버린 호수로 떠나는 것이란다, 얘야.”
“호수를 잃어버리다니요?”
“아무도 찾지 못했으니까 잃어버린 거지.”
아빠가 씨익 웃었어요!
아빠는 나를 위해 자주 멈추었지만
배낭은 내려놓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번 배낭을 내려놓으면
다시 계속 올라가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찾지 못한 곳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것 같구나.”
“더 높이 올라가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거기에 우리만의 호수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동지,
우리는 이 길 따라 가지 말고 산을 가로질러 가자.”
“그러다 길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현명한 사람은
집을 떠날 때 나침반을 빠뜨리지 않는 법이란다.”
그리고 바로 우리 앞에 호수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참동안 우리는 물빛이 조금씩 변하면서
점점 밝아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빠는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 역시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