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시계공 1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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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정재승의 투입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이번 작품에 대한 김탁환의 고민이 전작에 비해 확연하고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그동안 보았던 김탁환의 그 어떤 소설보다 탁월한 상상력과 꼼꼼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에 있어서, 더구나 SF에 있어서 이는 매우 강력한 장점이 된다. 


※ SF와 판타지의 창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세계관'이다. (보다 학술적인 용어로는 '배경'이라고 할 것이고, 일반적으로는 '설정'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야기는 모방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다시 한번 상기할 때, SF와 판타지처럼 모방할 '현실'이 없는 경우에는 설정을 더욱 치밀하게 잡지 않으면 독자들을 이해시키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들의 창작에 있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세계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소설적으로 평가하다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는 상상력을 제외한 다른 부분, 즉 구성과 표현의 문제이다.


솔직히 이 소설을 주도하는 사건과 구성은 기존의 추리물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이다.
뇌를 빼내버리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보다 엽기적인 코드가 추가되었을 뿐.

범인과의 연애에 빠지는 탐정, 동료애와 애정 사이를 오가는 남녀 수사관 콤비,
각종 격투와 액션 역시 기존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혈연이 문제의 중심이 된다는 설정, 어린시절의 왕따와 폭행으로 시발된 문제 등은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엉망인 것인 표현,

물론 미래에 대한 상상과 각종 잡다한 사실을 설명할 때는 제법 문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는 가끔씩 도를 넘는 부연설명과 어설픈 과장은 자꾸 눈에 걸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 지휘자의 지휘봉에 맞춰 악기들이 스스로 연주를 하고, 객석 의자가 관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오케스트라단에 보내면서 그에 맞춰 연주 색깔이 바뀌도록 만들었다. 관객과 악단이 함께 만들고 경험하는 음악 공연, 그야말로 파격적인 연주였다.(p.233.)

마지막 문장이 문제다. '파격적인 연주'라니 이처럼 무책임한 발언이 어디 있는가?
더구나 SF소설에서.
독자들이 채 경험하지 못한 것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표현해 버리면 어찌 알아들을 수 있을까.
  
- 머리(뇌파)와 손이 함께 연주하고, 로봇과 인간이 함께 음악을 만들고, 무대와 객석이 함께 공연을 완성하는 경이로운 체험.(p.234.)

마찬가지다. 무엇이 어떻게 경이롭다는 것인지, 도무지 설명이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런 무책임한 표현은 작품 전반에서 너무도 쉽체 찾을 수 있다.
  

아쉽다. 이 상상력을 보다 좋은 표현에 담을 수는 없었을까? 아니면 세계관만이라도.
세계관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거나,
스티븐 킹처럼 아마추어 작가들에게는 1달러만 받고 같은 세계관을 활용한 새로운 작품을 만들도록 허락하는 것은 어떨까?
 
문과와 이과의 결합은 매우 의미 있는 실험이지만,
작가와 독자가 결합하는 이런 실험 또한 의미 있을 터인데.
 
물론 현실적으로는 어렵겠지.
하지만 꿈이야 누군들 꿀 수 없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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