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교때 음악 선생님이 계셨다. 어찌나 말씀을 재미있게 잘 하시던지 항상 그 수업때 선생님의 재담에 이끌려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내던 게 생각난다. 기억에 남는 선생님의 결혼 이야기또한 너무 즐거웠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금의 남편분. 처음 봤을 땐 끌리지 않았지만, 처음 만난 날 집에 데려다주며, 대문 앞에서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그 남자에게 왠지 지금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결혼을 하게 될것만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지나가는 순간 벌써 입에서는 전화번호를 부르고 있더란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결혼에 예식날 어머님은 서운해서 마구 눈물 지으셨지만, 선생님과 남편은 신이나서 뒤도 안 돌아보고 제주도로 출발했다는 뒷 이야기에 순정만화에 젖어 눈물짓고, 가슴 떨리는 여중생의 마음을 분홍색 로맨스로 가득찼던 걸 기억한다. 유쾌한 결혼 이야기.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은 선생님인데도 커리어 우먼 같았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지적으로 보이는 안경과 160 아담한 키에 처녀때부터 그 당시 5살 배기 아들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 48KG을 유지했노라. 그러나 고3때는 그런 내가 60Kg까지 쪘으니 너희도 살찌는 거 신경쓰지말고 공부하라, 다 빠진다를 외치신 선생님도 말이라면 속도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그 누구에도 뒤치지 않았다.
선생님은 공항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하셨다. 공항에서 우연히 어떤 일을 계기로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 본 순간 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이런 저런 에피소드를 겪고, 결혼 해, 말어.를 반복하시다 결혼하셨단다.
나는 그 느낌이 어떤 걸지 너무 궁금했다. '아 이 사람이구나'하는 느낌말이다. 나는 결혼 생활에 대한 환타지 보다도 일단 '이 사람이다!'는 느낌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느낌은 있는 것 같다. 과연 그런 게 있을까, 나에게도 찾아올까 하는 환타지 하나가 이루어졌다. ^^ 사랑은 멋진 거다.
결혼에 대한 나의 환타지는 멋진 청혼을 받는 거였다. 뭐 거창한 이벤트는 아니어도 좋다. 그저 깔끔하고 조용한 식당에서 촛불 켜고, 드라마에서 하는 것처럼 반지 보여주며 '나랑 결혼해줘'라는 말을 들으며 '네 그러지요'하는 식이라도 좋았다.
내 동생 남자친구는 이벤트 전공이다. 그래서 풍선 데코레이션에 현수막, 온갖 장식을 자신의 스타렉스 넓직한 뒷 트렁크에 꾸며 내 동생에게 "00야 사랑해! 나와 결혼해주세요" 이벤트를 했다고 한다. 허허.
최근에 '그 사람'과 함께 커플링을 맞췄다. 결혼반지도 할 겸, 평생 낄 거라고 소박하고 담담한 금반지로 맞추러 갔는데, 가게에 마침 나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딱 맞는 반지가 있는 거다. 너무 신나서 끼고 나오는데 한 마디 한다. " 에이~ 사이즈 없다고 찾으러 오라고 하면 아이스크림에라도 넣어서 청혼할라고 했는데~ 아줌마가 눈치없이 그냥 주네~"
헐...이렇게 나의 두번째 환타지는 깨졌다. 모든 일엔 타이밍이 중요한 거다. ㅡㅜ
지난 대학 시절, 나의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유럽 여행이다. 너무너무 신났던 고로, 나는 그 이후로 신혼 여행으로 유럽을 가고자 하는 환타지가 생겼다. 배낭여행 다닌 곳은 모두 데이트 코스 같더라. 독일의 로맨틱 가도, 런던의 뮤지컬, 그리고 예쁜 공원들, 하이델베르크의 성과 짤츠부르크의 멋진 풍경, 그리고 기차 여행과 한적한 들판 모습들. 생각만 해도 설렌다.
그치만 유럽을 2박3일로 다녀올 수도 없고... 남편이 학생이거나, 실업자라면 모를까..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으나 우리는 가능할 것 같다. ^^ 이번 4월 달에 10일동안 다녀오기로 했는데, 만약 유럽에 무사히 잘 다녀온다면 나의 결혼에 대한 3번째 환타지, 멋지게 이루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