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할머니 모시고 병원에 다녀왔다. 명절 전날 아침, 와 줄 수 없겠냐는 할머니의 전화에 별 일도 아닌 일에 왜 그러시냐고, 내일 가겠다고 고집 부리고 안 갔는데.. 그날 아침부터 할머니는 코피가 나서 멈추질 않으셨나보다. ㅡㅡ 그럼 그렇다고 말씀을 하실 일이지..
암튼 나오다 안 나오다 했는데, 설 전 날 저녁부터는 아주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 온 가족이 다 모여서 백병원 응급실로 모셔갔다. 우리가 가기 전에는 세숫대야에 코피를 받아가며 흘리고 계시던 할머니. 아이고.. 암튼 가슴 깊숙히 막 대바늘 하나가 푹 들어간 것처럼 따끔거리고 아프고 눈에서는 짜증과 안타까움 섞인 눈물이 고였다. 진작 그럼 그렇다고 말씀을 하실 일이지..
지혈하고 링겔을 맞고 나니 할머니는 금방 좋아지셨다. 오늘은 좀 더 자세한 진료를 받기 위해서 다시 병원에 모시고 갔다. 피가 멎고 더이상 날 것 같지도 않건만.. 할머니는 양쪽에 솜을 틀어막고 오셨다. 그러고선 힘들다고 투정 아닌 투정, 어린 양 아닌 어린 양을 피우신다. 82세답지 않은 건강한 할머니시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난 코피가 너무너무 두려우신 모양이다.
연휴 끝이라 그런지 병원은 엄청 북적대고, 2시간이나 기다려서 들어간 진료실. 지쳐 죽는 줄 알았다. 다행히 의사는 별 이야기 없었다. 그저 날씨가 건조하고 혈압이 조금 있어서 모세혈관이 터져 그렇게 된 거라고.. 바르는 연고를 처방해 주었다. 그래도 할머니가 건강하셔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했다.
집에 와서 밥먹고 학원에 갔다. 일하시는 선생님께서 내 생일겸 설이라고 제비꽃 꽃다발을 주셨다. 헤헤헤 향도 좋고 여자에게 받긴 했지만, 기분 참 좋더라. 나도 앞으로는 좀 더 많이 베풀고 선물도 주면서 살아야지 했다.
어제 남편과 함께 머리를 뽀글뽀글 볶았더니 오늘 저녁, 마주 앉은 남편의 얼굴이 너무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 어린양 하시는 할머니 한숨쉬시는 모습이며, 투정부리시는 모습을 따라하면서 나를 웃겨주었다. 연휴동안 본 할머니가 정겨웠던 모양이다.
아.. 이제는 할머니 코에서 코피가 안 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