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이(가명)는 네 살짜리 어여쁜 어린이다. 네 살이라도 올박이라서 여간 영악한 게 아니다. 그런데 처음 말 배울 땐 안 돌아가는 혀로 존댓말을 곧잘 하더니 요즘은 반말을 찍찍 해댄다. 우리 중에 보다 못한 누군가가 애를 끌어 당겨 앉혀 놓고 점잖게 타이르기 시작했다.
"雪이야, 어른한텐 그렇게 말하는 게 아냐."
라고 시작해서 3분 4분, 아니면 5분 또는 6분? 3분이든 6분이든 상관없다. 집중력이 얼마 안 되는 설이한테는 지루하고 힘들기는 매한가지였을 테니까. 雪이는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보아왔던 훈육하던 방법 그대로 두 팔과 두 다리를 힘으로 완전 제압 당하여 옴짝달짝 못하면서 어른한테 높임말을 해야 하는 이유 같은 걸 들어야 했다. 나는 목도 마르지 않으면서 물을 뜨러 일부러 雪이 등 뒤의 정수기에 소리없이 갔다.
"결론은 넌 어리니까 어른한테 '다나까'까지는
못 하더라도 반드시 '~요'체로 말을 해야 이쁘지~
말 놓으면 안 돼~알겠지?"
식으로 이제 훈계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雪이가 "네~~"하고 대답하면 상황은 종료.
나는 속으로 외쳤다. 雪이야 예 대답해야지, 얼른 대답해, 얼른! 그런데 雪이는, 네 살 짜리 어린이면서 영악하기로 짝이 없는 雪이는 요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도 지금 놓잖아?"
어이쿠 이런!
'아, 그야..나..나는 어른이구, 넌 애니까, 난 어른이니까 말 놓는거구...
어른은 애한테 말을 놓아도 되는거구....아, 이것 참, 새로 해야 하나?'
훈육을 망쳐버린 어른은 부랴부랴 변명 하느라 雪이를 붙잡았던 팔에 힘이 풀렸다. 雪이의 모습을 보니까 오늘의 훈육이 왜 망했는지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너도 지금 놓잖아?"를 문자로 옮겨 적은 것만 보면 영악을 넘어 시건방지게 보이지만, 雪이는, 누구는 반말을 누구는 높임말 써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었다. 만약 저 분이 다시 훈육을 시작한다면 '어른'의 범주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저 애는 그토록 영악해 보이지만 실상은 할아버지,할머니,아저씨,아주머니..등등이 '어른'이란 걸 모를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아직 똥오줌도 구분 못하는 어린애인 것이다. 세 돌 지난 아이한테 더 첩첩산중인 것은 집에선 할아버지든 할머니든 죄다 말 놓고 사는 데 새삼 왜 높혀야 하는지? 아니면 집 식구들은 그대로 놓고, 남한테는 높여야 한다고...'악 복잡해~' 이것도 세계에서 유래가 드물게 '높임말'이 특히 발달한 국어의 특징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애 한테 그럼 '국어의 특질'에 대해 한 학기 강의를 해?
그럴 필요 없다. 아기가 자라면 언어예절이라든가 여러가지를 가르쳐야 하는 게 옳지만 자연스럽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방법은 雪이가 이미 알고 있다. '너도 지금 놓잖아' 속에 답이 있다. "雪이 이리 오세요~"하면 雪이는 대번에 "녜에~~~"하며 달려 온다.
20110324.
*사진은 雪이가 아니예요. 제 휴대폰에 雪이 사진이 있긴 한데 컴에 올리기가 번거로워서..가 아니라 아직 배우지 않아서 할 줄 몰라요^^;;; 그래서 다음의 tv팟에 올려진 푸른바람(강정선)님의 동영상(http://tvpot.daum.net/my/ClipView.do?ownerid=NJqmfhQfrpA0&clipid=30684328&lu=v_title) 사진을 빌려 왔습니다. 설이는 저 아기보다 좀 더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