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감수성이 어지간히 메말랐는지 짜달스럽게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그러고보니 소리내어 웃은 건 지난 보름 윷 놀 때, 펑펑 울었던 건 작년 이맘때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릴 때. 일 년에 한 두번은 나도 소리내어 웃고 눈물 콧물 짜며 우는구나. 지난 주 작은 아이 중학교 졸업할 때도 마음이 짠하면서 콧마루가 시큰거리긴 했지만 눈물은 억누르니까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오늘은 큰아이 졸업하는 날.
학생들이 펼치는 졸업축제(요즘은 졸업식이 아니고 축제다)가 부디 오래 끌지 않기를 바라며 강당 의자에 앉을 때만 해도 나는 차분하다 못해 시니컬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눈물샘 자극하는 회고 영상도 아니고 고3 담임 선생님들이 '사랑으로'를 중창으로 부를 때도 아닌 '2009년 3월 입학식' 사진이 영상으로 스쳐 지나갈 때였다. 매서운 꽃샘 추위에 바짝 얼어붙은 부동자세로 운동장에 운집한 신입생을 전체 샷으로 찍은, 우리 애는 찾아볼래야 찾아 볼 수도 없는 그런 사진 한 장에 내 왼쪽 눈이 반응하였다. 내 왼쪽 눈은 어쩌자고 고장난 수도마냥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왼쪽 눈만 잘 운다. 손수건으로 눌러 닦아도 연신 흘러나오는 맑은 물. 혹시라도 지금 나를 누군가가 본다면 제발 오른쪽 얼굴만 좀 봐 다오. 눈물은 한번 시동걸리더니 입담 좋은 전문 사회자가 웃기는 말을 해도 아랑곳없이 솟았다. 이런 낭패가 있나. 웃기니까 반사적으로 웃음도 터져나오는데 눈물도 동시에 그러고 있으니.
생각하면
가여운 나의 피붙이.
무대에선 재학생들이 소녀시대 군무를 얼추 비슷하게 소화해내고 보는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졸업 축하'라는 현수막이 아니라면 콘서트 왔다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참 잘 노는 아이들. 애석하게도 내 눈은 아직도 울고 있었다. 내 마음은 십이 년 전인가, 큰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로 훌쩍 거슬러 갔다.
참새같이 유약한 내 아들아
할머니가 사주신 옷을 입고, 이모가 사준 가방을 메고,
또 누군가가 사준 새 신을 신고
참 어젓하게도 운동장에 서 있었지.
앞으로 공부의 짐이 얼마나 무거울지는 모르고
머루같이 새카만 눈동자가 반짝거렸지.
유치원 때는 하루 등원하면 이틀을 쉬어야 할 만큼 큰아이는 몸이 약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결단을 내리고 여름방학 때부터 아이와 등산을 시작했다. 아침밥만 먹으면 산으로 향했다. 일주일에 닷새는 일곱 살과 네살 짜리 어린이가 오르기엔 에베레스트만큼 높은 높이 670m에 달하는 산을 올랐다. 점점 체력이 좋아지는 걸 보고 2학기때는 유치원을 아예 관뒀다. 이듬해 입학식 전까지 눈이 와서 미끄럽거나 아주 추운 날 빼곤 등산했다. 그 덕에 몸이 많이 좋아져서 초등학교 생활은 결석이 없었다. 우리집 아이들의 최고 목표는 개근상 받는 것이다. 그래서 큰 애도 초·중·고 12년간 내리 개근하였고, 작은애도 지금까지 개근이다. 장하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나면 무조건 서울로 가야지'라는 대세를 깨고 아들은 고심 끝에 이 지방의 학교를 택했다. 나는 '그냥 서울이 싫어'였지만 아들은 "따져보니 이곳이 더 실속있어요. 국립대니까 등록금 싸고, 이공 대학에선 빵빵하게 실력있는 학교니까 진로도 밝을 것이며, 생활비 교통비 절약도 되고, 열심히 하면 장학금도 받을 승산도 크고..."하면서 숱한 고민의 시간을 뛰어넘은 맑은 얼굴로 말했다. 막연하나마 아빠 곁을 지켜드리고 싶다는 이유는 말 하지 않아도 엄마는 안다. 나는 그저 - 네가 잘 생각해보고 잘 택해라, 사람이 뜻을 세우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다. 학자금대출 같은 것도 있고 하니까. 그리고 엄마는 최선을 다해 너를 도울게-하며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었었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지....달포동안 나와 옆지기도 머리 뽀개지게 생각에 생각을 또 하였지만 어디 당사자만큼이랴. 진학할 학교 결정은 생애 처음으로 녀석이 나보다 더 고민 많이 한 사건이다. 이제 성인이니까 앞으론 더 많은 일들을 네 힘으로 결정하고 이끌어 나가야 하겠지......
2.7kg!
깃털처럼 가볍고
만지면 부서질 듯
연약하디 연약했던 내 아들아
배냇저고리에 쌓여
내 품에 처음 안기던 그날을
잊혀지지 않는단다.
내가 엄마가 되던 그날.
되돌아보면 내가 지금껏 해낸 일 중에 가장 멋있던 일이 "엄마 되기"이다. 엄마가 되면서 나는 비로소 사람이 해야 할 도리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것 같다. 그전까지 나는 철부지였고 내 한 몸밖에 모르는 뼛속깊이 이기적인 한 마디로 덜된 인간이었다. 아이를 낳아 수고롭게 키우면서 비로소 나의 강퍅한 아집은 무너지고 세상 사람들이 새로워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두 부류로 보였다. 자식을 낳아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키우는 부모 한 부류와 그 부모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을 받고 자라는 자식 한 부류. 사랑은 희생이 동반됨을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보드라워지고 살아가는 이치를 조금씩 깨우치게 되었다.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웠듯이 아이들 때문에 내 마음 그릇도 조금씩 커져갔다.
아들아
나의 아들로 태어나 줘서
고맙다!
20120215ㅅㅂㅊ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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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졸업하면서 두 아이 다 표창장 받은 것 고맙다. 반듯하게 자라줘서 고맙다^^
그리고,,,,,
졸업 때 둘 다 장학금,
큰 애 입학 장학금 받아줘서
넘 고맙더라^^;
고맙다..앞으로도 계속 좀 받아줘-라고 하면 엄마 낯이 너무 두꺼운거지...걍, 부담없이 열심히 해..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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