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내 나쁜 몸이 당신을 기억해
온몸이 그릇이 되어 찰랑대는 시간을 담고
껍데기로 앉아서 당신을 그리다가
조그만 부리로 껍데기를 깨다가
나는 정오가 되면 노랗게 부화하지
나는 라벤더를 입에 물고 눈을 감아
감은 눈 속으로 현란하게 흘러가는 당신을
낚아! 채서!
내 기다란 속눈썹 위에 당신을 올려놓고 싶어
내가 깜박이면, 깜박이는 순간 당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내 이름을 길게 부르며 작아지겠지?
티끌만큼 당신이 작게 보이는 순간에도
내 이름은 긴 여운을 남기며
싱싱하게 파닥일 거야
나는 라벤더를 입에 물고
내 눈은 깜빡깜빡 당신을 부르고
내 기다란 속눈썹 위에는
당신의 발자국이 찍히고
詩 박연준
***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등단작인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을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찌 이리 귀여울꼬.
어찌 이리 앙증맞고 기발할꼬. 게다가 푸릇한 나이라니!
시인의 시집은 덜 여문 열매처럼
막 동그라진 꽃봉오리처럼 설익었다.
파닥파닥한 기운도 펄펄,
정제되지 않은 (혹은 정제, 를 거부하는) 시어들과 은유들, 이미지들.
시인은 1980년생.
시인의 말은 넘치는 젊음과 끼가 포진해 있다.
■ 시인의 말
스물다섯 때, 시가 몸살나게 좋았다.
그랬으니 신생아처럼 하루 스무 시간 잠으로 보내는, 아버지 발아래 엎드려 자꾸만 연필을 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든 발목, 혈관 깊숙이 빨대를 꽂아, 공들여 시를 뽑아먹었다.
시를 뽑아먹을수록 나는 통통해지고 아버지는 아무렇게나 툭, 툭, 부러졌다.
그게 마음이 아프다.
정말 신이 나서 쓴 시들이라는 걸 금세 눈치챈다.
덤블링, 공중곡예는 기본.
두번째 시집은 어떤 모양일까.
비명이 아닌 속삭임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게 될지도.
부디, 그 파닥거리는 신선도는 유지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