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거처

말하지 마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 나무도 생각이 있어
여기 이렇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 - [장자] 인간세편

 

살다보면 그렇다지
병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지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
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

긴 목의 걸인 여자 -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
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폐허예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눈
나는 텅 빈 집이 된 듯했네

살다보면 그렇다네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詩 김선우

 

 

 

 



브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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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선우의 시는 어머니에 대한 시가 좋더군요~

플레져 2006-02-11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선우, 얼굴도 예쁘고 시도 잘 쓰고~ ^^
저도 김선우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시도 좋구요, 산문도 좋아해요.

야클 2006-02-1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쳐다보는 견공이 웃기네요.ㅋㅋ

플레져 2006-02-1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 견공의 마음을 이해하시죠? ㅎㅎ

비로그인 2006-02-13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선우씨 시 참 좋지요.
목소리도 이뻐서 (인터넷) 방송도 잘 어울리더군요.

2006-02-13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2-13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개비님, 텔레비전에 나온 시인을 본 적 있어요.
인터넷 방송을 하는가 보네요? 그 시인...참 여려보이지만 시어는 그렇지만은 않아서 좋아해요.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그름처럼 부풀어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리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詩 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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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승자 시인의 시만 읽던 시절이 까마득합니다.

히피드림~ 2006-02-10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시네요.^^ 근데 플레져님은 어디서 이런 멋진 이미지들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플레져님 서재에 들어올때마다 늘 궁금하다는...^^

플레져 2006-02-1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최승자를 읽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었나봅니다 ^^
펑크님, 인터넷 사냥과 소풍을 즐기다 낼롬 집어옵니다 ^^:;

2006-02-11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6-02-1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님 서재로 안가고 바로 댓글다는...ㅎㅎ)
저 구절을 한 줄 한 줄 타이핑했어요.
다 적고 나서 왈칵, 뭔가가 비져나오려고 해서 눌렀어요.
그냥 왈칵 할 걸 그랬나... 고마워요 ㅊㅊㅃ ^^
 

거울에 비친 괘종시계 


나, 이번 生은 베렸어
다음 세상에선 이렇게 살지 않겠어
이 다음 세상에선 우리 만나지 말자
......

아내가 나가버린 거실;
거울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는 사나이가 있다 치자
그는 깨우친 사람이다
삶이란 게 본디, 손만 댔다 하면 中古品이지만
그 닳아빠진 품목들을 베끼고 있는 거울 저쪽에서
낡은 괘종시계가 오후 2시를 쳤을 때
그는 깨달은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지나갈 것

아내가 말했었다 "당신은 이 세상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당신, 이 지독한 뜻을 알기나 해?"
괘종시계가 두 번을 쳤을 때
울리는 실내: 그는 이 삶이 담긴 연약한 膜을 또 느꼈다
2미터만 걸어가면 가스 밸브가 있고
3미터만 걸어가도 15층 베란다가 있다

지나가기 전에 흔적을 지울 것

괘종시계가 들어가서 아직도 떨고 있는 거울
에 담긴 30여 평의 삶: 지나치게 고요한 거울
아내에게 말했었다: "그래, 내 삶이 내 맘대로 안 돼!"

서가엔 마르크시즘과 관련된 책들이 절반도 넘게
아직도 그대로 있다
석유 스토브 위 주전자는 김을 푹푹 내쉬고


詩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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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0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로드무비 2006-02-02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 참 좋지요?
양치질을 해도 입에서 냄새가 난다고 아내가 구박하는 건 다른 시였나?^^;

mong 2006-02-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지우님 시가 점점 좋아져요 ;;

플레져 2006-02-03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흠...2
로드무비님, 다른 시였을걸요? ㅎㅎ
몽님, 저두요...흑흑...

2006-02-04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2-04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


어제가 좋았다

오늘도 어제가 좋았다

어제가 좋았다, 매일

내일도 어제가 좋을 것이다.




詩 :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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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

 

우리 동네엔 빵집이 다섯 개 있다

빠리바게뜨, 엠마

김창근베이커리, 신라당, 뚜레주르

 

빠리바게뜨에서는 쿠폰을 주고

엠마는 간판이 크고

김창근베이커리는 유통기한

다 된 빵을 덤으로 준다

신라당은 오래돼서

뚜레주르는 친절이 지나쳐서

 

그래서

나는 빠리바게뜨에 가고

나도 모르게 엠마에도 간다

미장원 냄새가 싫어서 빠르게 지나치면

김창근베이커리가 나온다

내가 어렸을 땐

학교에서 급식으로 옥수수빵을 주었는데

하면서 신라당을 가고

무심코 뚜레주르도 가게 된다

 

밥 먹기 싫어서 빵을 사고

애들한테도

간단하게 빵 먹어라 한다

 

우리 동네엔 교회가 여섯이다

형님은 고3 딸 때문에 새벽교회를 다니고

윤희 엄마는 병들어 복음교회를 가고

은영이는 성가대 지휘자라서 주말엔 없다

넌 뭘 믿고 교회에 안 가냐고

겸손하라고

목사님 말씀을 들어보라며

내 귀에 테이프를 꽂아놓는다

 

우리 동네엔 빵집이 다섯

교회가 여섯 미장원이 일곱이다

사람들은 뛰듯이 걷고

누구나 다 파마를 염색을 하고

상가 입구에선 영생의 전도지를 돌린다

줄줄이 고깃집이 있고

김밥집이 있고

두 집 걸러 빵 냄새가 나서

안 살 수가 없다

그렇다

살 수밖에 없다

詩 최정례  - 붉은 밭-

 

 

 

 

***

시집을 들고 아무데나 펼친다.
그날의 패러독스로 삼는다.

오늘은 빵집에 들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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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01-17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시인줄 모르고 읽다가, 몇몇 대목에서 갸우뚱했는데. 시였구나.

세실 2006-01-17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저도 플레져님 동네가 그렇다는 말씀인줄 알고~~~ 시였군요~
전 뜨레주르 치즈바게트를 가장 좋아합니다. 생뚱맞은 세실~~~

urblue 2006-01-17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크라운 베이커리도 가고 빠리 바게뜨도 가고 뚜레주르도 갑니다.
오늘 저녁은 빵 사 먹을 생각이었는데.

물만두 2006-01-1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쓴 신 줄알았어요~

Kitty 2006-01-17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밤에 빵먹고 싶은.. 전 깨찰빵이 좋아요오오오~

2006-01-17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님 얘긴줄 읽다가 아차! 했네요. 그런데 사는 모습이 다 비슷비슷 한가봐요.. 거의 우리 동네 풍경이군요. 저 집은 빵이 맛있어서 가고 이 집은 장사 안 돼 보여서 가고 요집은 신장개업해서 격려차^^ 가고..그나저나 우리 동네에도 갑자기 미용실이 는 것을 보면 불경기의 상징이 아닌가. 옹기종기 시장 골목에만 미장원이 다섯군데나 되어요...간만에 왔다고 긴 댓글 달았는데 저 이쁘죠? 플레져님^^

그림자 2006-01-1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는 빵집이 한 정거장의 거리쯤에 빠리바케뜨랑 동네빵집 이렇게 두군데 빡에 없어요... 빵을 주식으로 삼는 저에게는 ㅠ ㅠ 빵집많은 동네로 가고 싶다^^

어룸 2006-01-17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핫! 저도 플레져님이 쓰신 시인줄알았어요...^^a

실비 2006-01-17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시였군요.. 빵을 좋아는터라... 빵에 대해 이야기 하는줄 알고 왔답니다.ㅎㅎ

플레져 2006-01-18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저 시집을 좋아하는데 오늘 처음 본 것인양 만난 시여요 ㅎㅎ
세실님, 우리 동네에는 뚜레주르가 있구요, 10분쯤 걸어가면 파리 바게뜨가 있어요. 요샌 뚜레주르 꽈배기를 즐겨 먹어요 ㅎㅎ 치즈 바게트도 있구낭... 참고하겠삼~

블루님, 골고루 애용해야합니다 ^^

만두님...헤헤~~

키티님, 깨찰빵이 한때 제과업계에서 괜찮은 신인이었는뎅...ㅎㅎ

새벽별님, 빵먹는 즐거움과 밥먹는 즐거움이 달라서리... 좀 줄여보자구요 ^^

참나님, 너무너무너무 이쁘십니다! 저의 댓글은 짧지만 마음은 무진장이어요....^^

그림자님, 빵집마다 빵맛이 달라서요, 골고루 먹어줘야 해요. 빵을 좋아하시니 정말 빵집 많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어요. 골라 먹는 재미~!

투풀님, 제가 한번 써보도록 노력하겠삼...^^*

실비님, 제목이 참 정겹죠? ㅎㅎ

로드무비 2006-01-1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집이 다섯 개 있는 동네'로 시를 한 편 써볼까요?=3=3=3

플레져 2006-01-18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써주세요. 아셨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