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깜빡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너무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에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詩 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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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는 박성우의 시<거미>의 마지막 행은
마지막 버스만큼 씁쓸하고 황량하다. 거기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금 전 읽은 시를 자꾸 읽고 또 읽고 다시 보게 된다.
일상 한 켠을 긁어 모아 언어로 짜놓은 시어들이 거미집처럼 얽혀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이 여기 모여있다.
그의 첫 시집 <거미> 의 연작시집 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조금 더 깊어졌거나 처음 보는 언어들도 전학생처럼 더러 앉아있다.
여전히 농촌의 따스한 굴뚝 연기도 사투리로 피어난다.
도시에서 지친 핼쓱한 군상들도 또 찾아왔다.
지치고 외로워보이지만 쓸쓸함이 없다면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