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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열정을 말하다 ㅣ 인터뷰로 만난 SCENE 인류 1
지승호 지음 / 수다 / 2006년 7월
평점 :
다음은 누구일까요?
깡패, 나이 상관 없이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욕설 퍼붓고 심하면 구타까지 한다
장군, 수 없는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지시해달라고. 그런데 막상 내가 제대로 지시하는건가 의심스럽다
힘없는 피고용인, 사방에서 님자 부치며 대접받다가, 다음 번에는 이 일 하지 못할까봐 고민하게 된다
간택받는 여인, 열심히 치장했는데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으면 어쩔까
이 모든 것이 영화판의 감독이다.
그런 감독 여럿과 인터뷰라는 이름으로 말들을 주고 받아 책 한권을 만들어내었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이들 감독의 모습을 담겨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노력했다고 보여진다.
굳이 특정한 시각을 가지고 거기에 맞추어 재단하려고 하지 않고 말 그대로 드러내려고만 했다 생각된다.
그래서 인터뷰 내용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데 감독 각자의 개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는 딴지일보 총수 김어진님의 까발리는 듯한 인터뷰 방식과 대조가 된다고 한다.
두 방식 모두 일리가 있다.
우선 까발리는 방식은 거짓말 많이 하는 집단, 사실 보다 허구에, 속보다 겉을 치장하는 분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 꽤 필요하다. 특히 거짓 좋아하는 정치인들을 대상으로는 잘 까발려야만 한다.
반면 감독들은 스스로 자기 주장이 분명한 사람이다.
철학 아니면 미학, 그것도 아니면 유머라도 가지고 2시간 가까이 관객을 붙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인터뷰는 개성을 드러내는 쪽이 훨씬 훌륭한 접근법이었던 것 같다.
인터뷰로 꽤 유명한 분들이 있다. 최일남, 오효진 두 작가의 인터뷰집을 보면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 분들 작품도 볼만하고...
이 책에서 본 감독 중에 변영주의 경우는 한명의 당당한 논객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 박하사탕이 너무나 관대하다고, 광주에 대해 참회하는 군인 하나도 없는 지금 현실에서
고민하다가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그런 진압군을 영화에 담는 것은 웃기지 않냐고 묻는다.
스스로 초청 강사료 낮추고 대학 마다 다니면서 한미 FTA 반대, 스크린쿼터 반대를 논리적으로 설파한다고
하는데 이 책의 출연 감독들 중에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로 주장을 전개하는 것 같았다.
화두로 스크린쿼터 폐지 부분이 많았는데 이준기를 노무현과 토론에 내보내고 가서
노무현의 말장난도 아닌 우스운 대답 듣고 나온 걸 보고 분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법정에 나가려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게 기본인데 최소한 투쟁하는 자신들과
제대로 협의 했다면 그런꼴 당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것.
고시공부는 혼자와의 싸움인데 그 시험의 약점이 남을 제대로 설득해내는 역량과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감성이 키운 인재를 골라낸 것은 아니다.
관료들의 괘변도 화가나지만 영화에 대해 무지하고 몽매한 노무현의 말장난에도 다들 화가난다.
참고로 얼마전에 영화판에 일하는 친구를 만났다. 탄핵 다음날 만나서 논쟁 벌렸던 친구인데
FTA 찬성하냐고 물으니 당근 아니라고 한다. 그럼 아직도 노무현 지지 하냐고 물으니 그렇다는 답변에.
영화 FTA하는 논리와 경륜으로 외교니 행정이니 경제운용 해대는데 누가 그를 지지해야 하느냐고
내가 반론해주었다.
읽다보면 영화판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나아가야 하는 과제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건물주는 한국영화든 외국영화든 흥행이 많이 되면 좋아 한다. CJ,오리온과 같은 영화재벌이
스크린쿼터 반대에 나서지는 않는다.
배우는 영화 못 찍고 그냥 CF 나가도 돈 많이 번다.
감독은 어떨까? 아마 막대한 피해자일 것이다.
세상은 공평한 것이 아니라 영화 찍는 것은 선착순으로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들 감독은 분명 남이 부러워할 만한 행운아다.
그래서 앞장서는데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많다.
조감독이라는 거창한 타이틀 달았다는 뿌듯함에 한편에 돈 300만원 받으면서 밤낮없이
고생한 시절이 길었다. IMF 맞아서 경제가 무너질 때는 정말 데뷰할 날 없을 것 같아 하늘이 노랗게
보였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같은 대작 영화가 망해버려 영화판에 돈이 씨가 말라버릴 때는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증이 온다.
이렇게 괴로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게 된 힘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열정이다. 무언가 세상을 향해 토해내고 싶은 목소리가 안에 있다.
그것을 그대로 삭히지 못하고 수백 수천번 다듬어 하나의 시나리오를 내놓고 다시 이를 들고
돈 잃지 않으려고 고심하는 자본가 꼬여낸 다음 갖은 고생 해가면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그래도 대부분 실패하는 것이 영화라는 세계다.
수련이 시련이 되고 기대가 절망이 되는 그런 냉혹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본다.
이들 중에 민노당 당원이 왜 많을까 물어본다면 그들이 한 때 뜨거운 열정을 가슴에 품었고
아직도 그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점으로 답을 달고 싶다.
거대한 변혁을 거쳐왔던 남한사회와 그 속에서 한껏 뜨거운 열정을 품었던 이들 젊은 감독들이
한국영화를 바꾸어 놓았듯이 더 큰 세상에 더 큰 메시지를 줄 날을 기대해본다.
80년대 전두환 시절의 암울함 속에서 올리버 스톤의 살바도르를 보며 언제 우리들은 광주를 놓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 세계시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까 물어보았다.
변영주 감독의 접근은 위안부 다큐먼터리로 얼마간 이루어내었고 봉준호의 괴물은 반미를 유머로 보여준다.
아직은 더 좋은 것이 앞에 남아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그날까지 행군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전에 우선 스크린쿼터부터 이겨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성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