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 -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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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은 사회적 주제를 다룬 작품에 무척 강했다.
베트남 전쟁의 플래툰이나 7월4일 생이 준 여파는 매우 컸고 케네디 암살을 다룬 JFK는 새로운 역사 인식을 만들어냈다.
그가 선구적 안목을 보여준 작품 하나가 <월스트리트 1>이었다. 당시 월가에서는 새로운 기법이 도입 되었는데 시중의 자금을 긁어 모아 기업을 사고 이를 다시 잘게 분해해서 팔아버리는 방식이었다.
이른바 정크 본드, 레버리지 바이 아웃 등의 개념은 적은 밑천으로 대박을 거뭐지는 월가의 젊은 스타들을 만들어냈다.
빛이 있다면 그늘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이들은 더 많은 성과를 위해 내부 정보를 이용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다 뉴욕 검찰에서 이들의 혐의를 포착했고 잡혀들어가는데 마침 함정수사 기법이 쓰인다.
여기까지가 월스트리트 1의 주요 배경이었는데 스톤은 이들이 잡혀 들어 간 직후에 영화를 개봉하는 선구적 안목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월가에는 새로운 태풍이 몰아쳐온다.
그린스펀의 장기집권이 말기에 이르자 시장은 마이더스라는 신화적 개념으로 그의 능력을 칭송한다. 인간이 신에 비유되는 것은 오만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그들은 갖지 못했다.
자신들에게 내려진 만능통치의 처방이 실은 통증을 완화해주는 모르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아직 현명함이 부족했었다.
월가 인사들은 파티에 모여서 누가 더 젊은 여친을 데려올 수 있고 또 그들에게 얼마나 더 현란한 보석을 안겨주었는지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 호사의 뒷돈을 대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막대한 보너스를 받아야만 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아이비리그 출신의 특별한 신분이고 자신의 일은 무척이나 특별하다는 점을 그들은 늘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 속 인물들이 중요한 순간에 보여주는 행위들은 통찰 보다는 고객에게 그냥 기다려라 이 폭풍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라는 식의 상투적 멘트 이상이 되지 못했다.
실은 이들이 하는 행위의 상당부분이 브러커리지, 일종의 복덕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복덕방은 매매를 일으켜야 돈을 번다. 그러니 양쪽에 서로 다른 논리의 말을 하면서도 자신은 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면서 양쪽 모두에게 자신만이 진리를 알고 있고 예언을 할 줄 안다고 행세한다. 틀리면 어쩌냐지만 예언의 반은 맞았고 이미 돈은 벌었는데 그 정도야 뭘.

그런 잘난 월가의 핵심들이 모인 회의장의 분위기가 오늘은 매우 심각하다.
엄청난 규모의 돈을 정부가 투입해야만 자신들이 살아난다는 뻔뻔한 이야기다. 이들의 배짱은 오직 자신들이 너무나 커서 만약이라도 망하게 하면 정부와 국민경제가 몽땅 날라갈 것이라는 협박성 발언에 잘 나타난다.
무척 황당하고 분노까지 치밀어 오르게 하지만 이는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무너질 듯 하는 모습을 보이자 미국의 증권시장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금융시장이 다 무너질 뻔했다. 비록 어제 같지만 2008년 말은 수많은 개미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날이었다. 당시 정부의 주요 관계자들이 연일 TV에 나와서 문제 없다 잘 극복될 수 있다고 반복했던 말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증권의 전문가들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문제 없다고 외칠 때에는 실은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늘은 자신들의 생사와 전세계 금융시장의 생사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의 테이블에 1997년에는 한국경제의 존폐가 논의 된 적이 있다. 당시 월가 은행들은 수시로 들어오는 중남미 나라들과 동남아 나라들의 생사 여부를 결정했었다. 그리고 그 막바지에 한국이 넘어 오게 되었다. 한쪽에서는 월가 투자은행들이나 투기자본들이 자유화라는 미명하에 자본을 몰고 여러 나라들을 휘젓고 다녔다. 국경을 넘어 온 돈은 금리가 무척 쌌다. 처음으로 싼 돈을 맛보았던 많은 자본가들이 마구 투자를 했는데 갑자기 국제금융자본이 태도를 바꿔 회수를 시작하자 겉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려갔다. 덕분에 각국의 은행들도 이 사태를 막지 못했고 결국 나라 경제가 통째로 월가에 넘어와 이 심판대에서 살리냐 죽느냐의 판정을 받게 된것이다.

당시 월가 은행들은 한국에 연 9%대에 가까운 고금리를 물리는데 더구나 중간 반환도 안된다는 처참한 조건을 제시했었다. 다행히 그 꼴은 면했지만 그들이 입에 달고 말하던 모럴 해저드가 이제 다시 이 영화 속에 나타났다는 점은 정말 만감을 교차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자신이 하면 연애, 남이 하면 불륜이네요.

이들의 부도덕 한 행위를 좀 더 고상하게 영어로 표현하면 모럴해저드라는 단어가 된다.
누군가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세요 하고 누군가 이야기하자 고든 게코는 아주 간명하게 도와준다.
누군가 당신의 돈을 가져가버렸는데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겁니다.
그럼 누가 나의 돈을 가져갔단 말인가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게코는 부연을 해준다.
바로 당신 젊은이들. 아쉽지만 이 사태는 당신들의 세대들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Job, income, asset 모두가 없는 불쌍한 세대로 만든 것입니다.

영화속 젊은이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2008년 중반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상황을 알게되어 상황을 반전시켜보려고 오바마를 당선시켰지만 2010년 지금도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한세대가 퍼질러 놓은 잔치의 뒤끝의 결과물로 남겨진 청구서는 그 다음 세대에게 슬쩍 미뤄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발행한 막대한 채권의 담보는 다음 세대로 자연히 넘어가기 마련이다.
또한 기업들이 일제히 비상조치를 취하게 되자 젊은이들의 취업은 막혀버렸다.
아무리 애써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암담한 모습에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의 고통이 고스란히 오버랩 되어 보인다.

또 잊지 말아야 할 영화 속 내용도 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이다.
당시 리먼 브라더스가 망하기 직전 한국의 잘난 산업은행이 이를 인수하려고 했다. 왠 폭탄.
자칫하면 한국경제가 고스란히 결단나고 월가의 잘난 매니저들의 고액연봉이 만들어낸 거대한 부채를 우리 세금으로 메꿀 뻔 했네요.
론스타에게 깜빡 속아 값싸게 외환은행 넘겼던 국내금융관료들 왠 걸 이번에는 정말 나라를 통째통 거덜낼뻔했구나.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게코가 한국인들에게 당신들 세대 몽땅 거덜났군요라고 말했을 것을.
정말 그렇게 하지 않게 된 게 정말이지 다행이다.

영화가 길고 내용이 전문적이라 지루함을 느낀 분들도 많지만 하나 하나 곱씹어 보면 배울점 느낄점도 적지 않다.

더 많은 이야기는 영화를 보신 분들이 많아진 다음에 이어서 하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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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0-2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가 요즘 극장에서 상영되는 모양이군요.
다소 긴(?) 내용의 영화 리뷰지만 아주 흥미롭게(그리고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선가 매일경제에선가 '애널리스트가 쓴 영화평'에서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읽었답니다. 대우증권의 某 애널리스트가 썼는데,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무척이나 매끄럽게 쓴 글이더라구요.

[고은 시인이 쓴 `순간의 꽃`이란 제목의 짧은 시가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 그 꽃.` 영화를 본 후 문득 이 시를 떠올리게 된 것은 탐욕의 절정을 향한 오르막길에 도취된 현대인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꼭 봐야겠군요.(그러고 보니 최근까지도 -뭐가 그리 바빴는지는 몰라도- 영화관에서 어떤 영화가 상영되는지 전혀 모르고 지내왔다 싶군요.)

사마천 2010-10-27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 감사드립니다.
정확하게는 영화를 보기전에 소개 자료에 가깝습니다.
영화가 개봉된지 얼마 안되었는데 국내 관객들 큰 호응을 얻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연관성 몇개를 강조했습니다. 참 스톤 감독 부인도 한국인이죠. 소로스도..
앞으로 리뷰 한편을 더 적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격려 감사합니다 ^^

라로 2010-10-27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호응이 별로라 저도 참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멋진 리뷰를 올려주시니 기뻐요~.^^
다음에 이어서 하실 것도 기대하겠습니다.^^

사마천 2010-10-27 22:45   좋아요 0 | URL
ㅎㅎ 관심 감사합니다.
다음 리뷰를 빨리 써야겠네요.
격려를 힘삼아서 오늘도.. ^^
 
식코 SE - 아웃케이스 없음
마이클 무어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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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무척 큰 일을 해냈습니다. 
바로 의료보험개혁입니다.
처음 말 꺼낼때부터 될까 될까 했는데 정말 큰 고비들을 넘어갑니다.
인기 많던 클린턴도 집권 1기 초반에 영부인 힐러리를 내세워 나섰지만
냉정한 현실에 좌초하고 말았죠.
그 힐러리에 더해서 오바마가 힘을 합치더니 과감히 밀고 나간 결과 여기 까지 왔습니다.

지금 반대가 심해서 오바마도 쉽지 않을거라는 관측이 나오지만
정말로 의보개혁은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래서 그 배경을 알기 위해 바로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다 보고 나시면 아마
미국이 정말 선진국이었나요? 라는 물음이 절로 나오실 겁니다.

손가락이 날라간 환자에게 이쪽 붙이려면 1만$, 저쪽 붙이려면 5000$ 그러니 어쩔래요?
이렇게 물어가는 병원 덕분에 결국 이 환자는 한쪽을 버립니다.
이런 사례들은 무수히 많이 나오죠. 영화 가득 가득..

미국이라는 사회는 자기 책임에 기초해서 매사를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덕분에 죄를 크게 지면 과감하게 사형판결 내리고 집행해버립니다.
이는 이 사회의 특성이 다민족,다인종으로 구성된 덕분이기도 합니다.
원래 동질적인 관계에서는 상대와 공감을 어느 정도 느끼기 때문에
사형이 무작정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공지영의 사형수 소설을 보시다가 갑자기 주인공을 흑인이나 멕시컨 양아치로 바꾸어보세요.
그 상황에서도 독자들이 사형수에게 같은 공감을 느낄수 있을까요?

죄와 벌은 좀 극단적인 예인데 미국의 주류들은 가난도 곧 죄이니 빈곤에 따르는 불이익 또한
벌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손이 잘려도, 폐가 상해도 어쩔 수 없는거죠.
기회를 공정히 줬으니..

하지만 이런식의 기회 공정이론은 서부개척 시대의 카우보이 수준의 룰입니다.
애초부터 정의에 기초해 사회를 운영하는게 아니라 총 잘 쏘면 더 자유롭게 다니고
총 못 쏘면 감히 고개들고 남과 시비하지 말라는 단순 무식한 논리죠.

이렇게 개인의 극단적인 자유를 기반으로 한 사회운영은 결국 병폐를 만듭니다.

08년말 미국월가의 붕괴도 뿌리를 따져보면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리먼이 파산하지만 반대편에서는 폴슨이라는 헤지펀드가 수백억$을 벌어갑니다.
그래놓고 리먼 때문에 만들어진 구멍에는 더 큰돈을 종이로 찍어 메운다닌 말이 됩니까?

이 모든게 인간의 자유에 대한 과신이 만들어낸 사회병폐죠.

그런데 비슷하게 고질적으로 만들어놓은 체계가 바로 의료보험입니다.

사적인 기관의 이윤추구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인 의사들의 철저한 철밥통 지키기와
맞물려서 지금의 비극을 만들어냅니다.
철밥통을 지키는 방법은 한국에서도 경험했지만 의사수를 늘리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비싸지죠. 그리고 매우 친절하게 서비스합니다. 죽기 직전의 수명을 마구 늘려주죠.
생에 전체의 저축 중에 절반 가까이를 죽기 몇년전에 다 쓰도록 만듭니다.
이게 과연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체계일까요?

그래도 민주주의가 소중하고 이성적이지 않냐고 물으시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 두사람은 가장 민주주의적인 도시국가 아테네가 얼마나 어리석게 몰락의 길을
걸어갔는지 뼈저리게 알았고 그 결과물은 그들의 책 <국가>와 <정치학>입니다.

절대로 민주적 토론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다시 강조드리건데.

미국의 제조업 붕괴의 상징은 GM의 몰락이고 다시 그 원인에는 막대한 퇴직자 의료비
지원금이 있었습니다. 그 의료비의 과잉에는 다시 보험사와 의사의 탐욕이 있죠.
이렇게 물고 물고 늘어지며 난맥상이 된 상황이 현실인데
여기에 칼을 들고 덤빈 오바마.
그의 모습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끊은 알렉산더의 영웅적 행위와 비교됩니다.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오바마와 마이클 무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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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어른을 위한 하나의 동화다.

 

동화에는 커다란 꿈이 있다.

 

그렇게 우리는 어려서부터 꿈을 안고 살았다.


작든 크든 그 꿈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한살 한살 어른이 되가면서 꿈은 자신의 자리를 현실이라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다른 존재에 점점 양보해간다.

 

학문의 뜻은 어느새 취업준비 학원으로 바뀌고

자아실현은 알바로 변하면서

인턴이라도, 이 정도 자리라도 하는 소리, 사오정이라는 소리 등등

들을 때 마다 우리를 왜소하게 만드는 말들이 많다.

 

그럴 때 우리는 동화를 다시 보고 싶게 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우리 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이제 갈날이 얼마 없는 할아버지다.

 

어려서부터 모험가라는 꿈을 꾸었지만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열심히 모은 저금통을 망치로 툭 깨져나가는 반복을 하도록 강제하는 장면은 그 상징이다.

 

그렇게 살다 마지막에는 코너에 몰리고 결단이 필요한 순간까지 왔다.

그냥 깔려서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낡은 사진첩을 다시 돌아보니 먼 탐험을 하려던 내가 정말 아무도 가지 않았던 미지의 땅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목숨까지 걸면서 확 달려들어가보고 싶던 나는 오늘 어떤 모습이 되었는가?

 

낡은 집, 낡은 가구, 주변에서 옥죄어오는 자본, 제도 등등.. 무엇 하나 반가운 것이 없다.

 

이 대목에서 내릴 수 있는 결단은 무엇일까?

 

내가 발을 디디던 대지는 나에게 안전을 보장해주지만

안전은 곧 나를 계속 같은 수준에 머물게 만든다.

 

그래서 주인공은 확 질러버리기로 했다.

영화속 포스터에 나오는 것처럼 풍선으로 하늘 높이 날 수 있도록..

 

하늘은 땅만큼 안전하지는 않다.

하늘에는 땅처럼 길도 없고 도로 표지판도 없다.

 

그리고 장벽 또한 없다.

 

누가 말했던가 배가 항구에 머문다면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목적은 아니라고..

 

이제 하늘을 향해 확 올라가버린 우리의 주인공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오기를 성원할 때가 된 것 같다.

 

누구든 꿈을 접어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있다면

주인공과 함께 하늘 위로 확 날아가는 체험을 하면서 풀어감이 딱 좋을 듯 하다.

여행의 끝에 다시 만나는 자신은 출발할 때 두고온 남들이 알고 있는 찌들고 힘들어 하는

그 모습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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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1 : 거대한 전쟁의 시작 (2disc) - 아웃케이스 없음
오우삼 감독, 금성무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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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

누구나 한번쯤 손에 대보는 동양인의 고전 삼국지.
그 이야기는 두고 두고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됨.
주인공도 익숙하고 실제 우리 주변에도 영향을 많이 주었음.
가깝게 2호선 동묘역 옆에 있는 동묘는 명나라의 돈으로 건립되었고 모시는 인물은 삼국지의주인공 관우임.

그런 삼국지의 장면 중 가장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 바로 적벽대전임.
이제 다 대업을 이룬 것처럼 무소불위로 오만해진 조조가 처음 제대로 패배를 맛보았는데 그 상대방은 18년간 패전을 거듭했던 유비와 2세로 가업 물려 받아 능력 없어 보이던 손권이었음.
강자가 약자를 이기는 것이 약육강식적인 세상의 질서인데 어떻게 한참 약해보이던 유비와 손권이 역전승을 거두었을까 궁금해지기 마련임.
그 과정을 하나 하나 드러내주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세계적 거장 오우삼(영웅본색,미션 임파서블 3의 감독)이 내어 놓은 작품이라 기대가 많이 되었음.

스토리는 삼국지연의의 주요 장면을 많이 도입함. 공명 화살을 빌리다, 제갈량과 주유의 목내기 경쟁 등등임. 반면 각색도 많음. 제갈량이 남동풍을 불러온다는 비과학적 이야기를 일기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바꿈.

그런데 약점은 진행이 너무나 느리다는 점. 중국 사람의 특징을 만만디라고 한다는데 정말 영화도 이렇게 늘어지며 만들어야 하는지 답답했음.

영화 본 소감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전투장면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이 사실적 특히 사운드가 웅장해서 전쟁터 한 가운데에 놓인 듯함.
비주얼도 훌륭해서 아마 체계적인 고증을 잘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고대의 전투 장면을 상세히 보여주었고 무기의 사용처도 잘 이해가 감.
가끔 주인공 중심으로 무공 과장은 있으나 너무 어색할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되지는 않았음.

그럼 영화의 흐름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역사와 비교해가면서 의견을 이야기해보겠음.

먼저 전쟁의 명분을 천하통일이라는 조조의 웅장한 꿈에서 소교를 빼앗자는 다분히 동물적인 욕심으로 줄여 놓은 것은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다.
마치 멀리 트로이 전쟁이 헬레네를 놓고 벌이는 왕과 남자들의 자존심 다툼이었고 이는 위로는 신들까지 개입시킬 만큼 거대했다고 늘어 놓는 일리아드의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여자들이 소재로만 머물지 않고 실제 역사를 만들어내는 주인공들로서 활약이 커졌다. 정작 삼국지나 삼국지연의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역시 관객의 비중을 절반 차지하게 된 이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배려일 것임. 디즈니의 만화영화 알라딘 또한 공주의 캐릭터를 강하게 변화시켰었는데 같은 맥락임.

하지만 당시의 역사는 여자들은 그냥 소유물 특히 승자에게 넘어가는 소유물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여줌. 목숨을 걸고 싸운 다음에는 약탈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재물과 함께 적장의 처첩은 승자를 통쾌하게 만드는 좋은 전리품이었음.
삼국지를 잘 읽어보면 손책과 주유가 각각 대교와 소교와 결혼하게 되는 과정도 일종의 강압이 포함된 준약탈혼 이었다고 보여짐.

조조 또한 관도대전 이후 원소를 멸문시키는 과정에서 원소의 아들 원희의 아내를 놓고 아들과 쟁탈전이 있었음. 아들 조비가 한발 빨라서 낚아챈 것으로 보고 차마 달라고는 못하고 입맛을 씁쓸하게 다셨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음.

그럼 실제 싸움으로 돌아가서 보다 상세히 살펴보겠음.
당시 조조의 군대는 규모가 커서 100만이라고 허풍을 떨었지만 약 20만 정도로 추정됨. 그래도 유비가 1만에서 2만 수준이고 손권이 3만 정도의 군대를 보냈다는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대부대임.

이 대부대를 거느리고 막 오랜 저항세력이었던 유표의 형주의 항복을 받아내었으니 조조도 한껏 기뻤을 것임. 이제 패전을 거듭하던 유비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고 강동의 샌님 손권의 항복만 받는다면 천하는 모두 통일 된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음.
하지만 교만은 곧 패배를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 마련임.

반면 그가 얕잡아 본 유비와 손권은 역사에서 후일 자신들의 나라의 황제들로 이름을 올리게 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저력과 의지를 가지고 있었음.
유비는 특히 최근 제갈량이라는 불세출의 참모를 받아들여 자신의 세력을 일신시켰음.
단순히 충성심으로만 똘똘 뭉친 자존심 센 집단에서 이제 지략을 키워 유표의 또 하나의 아들 유기의 군대를 교묘히 접수하고 다시 손권과는 유표의 후계자를 자칭하며 당당히 동맹을 맺고 조조와 맞서자고 외교전을 펼치게 됨.
명분과 논리 이 두가지가 제갈량이 유비군에 들어오면서 만들어낸 무형자산이었고 이를 통해 주변의 협조를 끌어내며 유비의 위상을 높임.

손권 또한 용기로 이름난 아버지와 형의 위업을 거저 물려 받은 재벌 2세가 아니고 자신의 솜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줌.
원래 재산이 많아도 이를 지켜낼 능력이 되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음. 로또 하나 되면 사방데서 벌떼처럼 달려들어 빌려달라 기부해달라 투자해서 불려주겠다고 사기쳐대다 보니 그 등쌀을 이겨내기 어려움.
특히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더하고 사회적 위신 가진 사람들이 더 교묘히 벗겨먹으려고 덤빔.
하여간 손권은 이런 야수 같은 세상에서 오랫동안 2세로서 지키는데는 무리가 없었음.
그의 가장 큰 장점을 사람을 보는 안목이었음.
자신이 직접 싸움터에 나가 지휘를 하는 능력은 아버지나 형에 비해 한참 아래였음.
단 형이 키워 놓은 인맥을 알아보고 이들 중 어른인 장소 등은 잘 공경하고 형님뻘 주유에게는 권한을 잘 주었음.

그리고 무엇보다 유종처럼 허무하게 가업을 넘겨주게 되는 약골이 아니었음.
강한 의지와 정확한 판단으로 항복을 권유해온 문관세력을 다 물리치고 유비세력과의 동맹을 맺어 목숨을 걸고 싸움에 나서게 됨.

이들이 비약적으로 강해진 상태에서 다시 조조군을 살펴보면
20만 대부대에도 약점이 있었음. 조조의 직속 강병들은 원소와의 싸우면서 키워진 기병이였음. 이 들의 위력은 대단해서 장판파 싸움은 단숨에 형주에서 정예만 끌고와 유비의 퇴각을 저지하고 박살을 내버릴 정도였음. 당시 가족을 다 잃고 아두 하나 간신히 빼오는 조운의 도주가 활약으로 포장되었고 다시 이를 맞아들이며 유비가 벌였던 퍼포먼스는 어려움을 잘 보여줌.
그런데 이들 기병을 말에서 내리게 해 배를 태우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님.
실제 물에서 잘 훈련된 수병은 막 점령한 형주의 군사들이었는데 이들은 바로 직전까지 조조에게 대항했던 유표의 군대들이라 아직 통합이 되지 못함. 채모 장윤의 죽음은 실제 역사적 사건은 아니었지만 이런 조조군의 약점을 잘 나타내는 상징적 사건임.
더 큰 문제는 풍토병에 조조군이 적응하지 못했다는 점인데 후일 조조도 이때의 패전에서 원인을 이 돌림병으로 거론함.
또한 대군이 장기간 근거지를 벗어나 원정하게 되면 보급의 문제가 나오게 됨.
원소와의 관도 싸움에서도 식량이 다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상대의 식량보급원을 파괴시켜 대성공을 거둔 것이 조조의 성공요인이었음.
이를 놓고 추론해보면 몇 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20만으로 부풀려 놓은 조조군을 먹여 살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임.

여기에 강쪽에서 확 밀려오는 바람을 타고 손권의 군대가 화공을 해서 배를 많이 태워버렸고 육지에서는 유비의 군대에게 기습을 당했음.

물에 막혀 앞으로 나가기도 어렵고 병과 식량 때문에 머무르기도 쉽지 않으면 조조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후퇴였을 것임.

단 이때의 후퇴가 체계적으로 질서 잡혀 이루어지지 못했음은 조조의 고백에서도 나옴.
화용도 사건은 소설처럼 관우가 조조를 다 잡았다가 놓아 준 형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음.
하지만 화용도 즈음을 지나면서 조조가 말하기를 자기가 유비였다면 여기에 불을 확 놓았고 그러면 자신도 목숨이 어떻게 될 지 몰랐을 거라고 하면서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고 유비의 무지를 비판한 일이 있었음.
이를 놓고 추론하면 조조도 준비 없이 급속히 퇴각했다고 생각됨.

전체 싸움의 결과를 놓고 보면 참패는 아니었다고 조조가 이야기하는데 이는 조조의 주장도 인정을 해주어야 함. 왜냐면 정말 수습도 못 할 정도로 참패였다면 형주가 고스란히 유비와 손권의 손에 들어가야 하는데 약 절반 수준에서 그쳤으니 그 수준이 실제 싸움의 결과물이었을 것임.

영화로 다시 돌아가면 여전히 조조는 간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유비와 손권의 활약상을 보여주는데 주력해서 아주 사실적이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음.
간웅이라면 간웅대로 실력을 거기까지 키워가는 솜씨가 있었는데 이를 이해시키기 보다 오히려 사소한 듯 보이는 장면에 할애를 많이 함. 축구를 보면 소림축구 축약판 같은데 이제 현대인의 보편적인 취미가 되어버린 중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영화속에 넣었다고 보임.
비둘기를 놓고 왔다갔다 하는 첩보전도 꽤 지루한 느낌이었음.

평점은 처음 기대만큼 높게 주기는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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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렘펫 2009-03-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분석이 시원시원하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사마천 2009-03-09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칭찬 감사합니다. ^^
 
색, 계 [초회한정판 스페셜 패키지] (2disc)
리 안 감독, 탕 웨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색계 色戒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장소는 채석장의 깊은 골짜기이고 그 앞 여러 남녀 청년들이 꿇어 앉혀져 있다. 총을 겨눈 병사들이 등 뒤에 보이고 구제될 길이 없어 보인다.
이들 청년들이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되는 죄목은 애국 애족 바꾸어 말하면 일본과 괴뢰 정부에 반했다는 것이다.

관객의 한명으로서 청년들을 보면서 안타까움, 동정, 애처로움 등의 감정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복합되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묻게 된다. 저들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저들의 짧은 삶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色이란 말과 戒란 말은 왜 쓰이고 있는 것일까?

사람의 목숨을 걸게 하는 거창한 미션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시대적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시각으로 보면 선과 악은 단호히 나뉘어진다.
1930년 전후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여 무단 점거하였고 이들에 빌 붙은 친일 매국노, 소위 한간들에 대해 중국의 대중들이 느끼는 분노는 매우 컸다. 후일 남경 대학살로 대표되는 전쟁 중 일본의 악행 이전에도 일본은 여러가지 잔혹한 행위를 많이 저질렀고 중국 대중들은 끊임 없이 반감을 키워갔다.
중국으로서는 수천 년간 동아시아라는 세계에서 유력한 중심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최근 몇십년 사이에 급히 서구화되었다고 뿌듯해 하며 자신들을 따르라고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는 일본의 모습이 아니꼬 왔다. 중국을 대 놓고 착취하는 모습에 더 더욱 분노를 가졌는데 한 예로 일본에 유학 왔던 의학도 노신은 영화관에서 일본인이 중국인을 목 베는 장면을 보고 공부를 때려쳐버렸다. 이런 시대 환경에서 뜻을 품은 청년이었던 영화속 주인공들은 당대의 부정과 불평등을 보면서 가만히 책상에 머무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학생의 신분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 사회 참여를 결심했다. 출신과 배경은 달라도 그들은 연극을 하면서 항일정신을 고취하다가 그 의지를 무대에서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연극속의 시나리오가 그대로 삶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덕분에 우연히 마련된 계기에 직접 한간을 처단하려고 나섰지만 현실에서의 싸움은 아마추어의 솜씨로 바로 끝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계획의 중심에는 저격의 대상이 될 남자를 유혹하는 막부인 바로 탕웨이가 놓이게 된다. 첫번째 시도에서 꽤 성공에 근접했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실패였다.

시간은 흘러 이(양조위)는 더욱 승진했고 더 많은 악행을 저지른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옳지 않기 때문에 더 더욱 의심이 많아진 인간 李에게 접근하기 위해서 연극은 필수였다. 그 주역으로 탕웨이가 다시 한번 선택되었다.

그녀의 마음은 처음 올곧게 출발했지만 수년에 걸친 오랜 투쟁은 그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다시 한번 의무를 떠안게 되었는데 상대의 성장 만큼이나 과제의 난이도도 올라갔고 길어질수록 마음의 동요도 커져간다.
주인공으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그녀는 연극을 해야 하는데 그 연극에 몰입할수록 진실은 모호해진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에 다다르게 되면 자신의 연극에 감동한 양조위의 사랑에 스스로 빠져버려서 임무를 놓쳐버린다.
탕웨이 입장에서 진실은 사랑에 있는지, 임무에 있는지 모호해져버렸고 또 양조위의 경우도 사랑이 무엇인지 임무가 무엇인지 헷갈리게 되어버렸다.

원래 연극은 인생에서 나왔다. 모방을 통해 생의 가치를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거꾸로 말해 인생 또한 하나의 연극이고 세상 자체도 하나의 무대로 간주될 수 있다.
극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삶과 극 둘 사이에서 이중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면 그 중 어느 쪽이 진실일까? 이쪽일까 아니면 저쪽일까? 우리를 궁금하게 한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꾸준하게 보여주는 것은 삶에서 진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먼저 주인공 남자들이 탕웨이에게 당당하게 외치는 약속들은 대부분은 지켜지지 않았다.
혁명가들이 탕웨이에게 “너에게 절대 해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고 또 일이 잘 풀리면 영국으로 보내준다고 호언장담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탕웨이가 아버지에게 보내달라는 편지조차 즉석에서 태워버리고 모른체 해버린다.
공작의 대상이었던 李는 또 어떠한가? 자신의 입으로 내뱉은 “누가 해치려고 하면 내가 지켜주겠다”라는 더 할 나위 없는 약속을 하지만 죽음의 위기에 놓인 탕웨이에게는 그냥 공염불이 된다

이렇게 속고 속이는 세상속에서 무엇이 진실이였을까?
마치 장자가 꾼 꿈처럼 나비가 인간이 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나비가 된 것인지 모호할 따름이다.

오히려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색의 영역들이다.

두 주인공이 색에 몰두했을 때 서로는 서로를 더 깊이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를 탕웨이는 마음을 파고들어 어찌할 수 없다고 고백한다.
순간이지만 그런 색은 점점 서로를 동화시키는데 그 감정이 오히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색이라는 상징은 넓게 보면 밥과도 통한다.
모든 인간은 먹어야 살고 아름다움을 보면 감탄하고 자기 짝을 찾아나가는 공통된 본성을 가지고 있다. 굳이 비율로 표시하자면 인간은 99%는 비슷한 존재다. 아주 약간 아주 미세한 수준에서 서로 차이가 날 뿐이다.

이념은 그 약간의 차이를 더욱 크게 벌어지도록 만들어 놓는다. 특정한 공간,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서 다름을 확인하고 치열하게 갈등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멀어지고 공간이 떨어진 상태에서 그들의 갈등을 쳐다본다면 과연 그만큼 커다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마 의외로 그 차이를 크게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수백년전에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싸웠던 서구인들이나 동서 분당으로 쟁투하였던 조선의 당인들, 멀리 멀리 이슬람과 기독교를 놓고 싸웠던 싸움들의 차이를 제대로 구별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시간을 많이 많이 흘려보낼수록 차이에 대해 적게 느끼게 된다. 윤봉길 의사는 딱 24년 6개월을 살다가 떠나갔다. 아마 자폭까지 감행하는 테러리스트에 40대 이상 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목숨을 거는 일 자체가 젊음의 권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성공과 실패에 대해 큰 차이를 두기도 어렵다. 성공해서 이름을 오래 오래 남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더 추앙 받아야 할까? 그러면 반대로 폭탄 투척에 실패한 이봉창 의사라고 덜 추앙 받아야 할까?

관객으로서 아주 멀리서 떨어져 쳐다보면 그 차이는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시점을 지구 저 멀리로 옮겨 버리면 이편이던 저편이던 그 차이보다 인간 그 자체의 모습이 나올 것이다.

그 보다 똑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의 색이 더 공통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보통 사람의 차이는 순간에 나타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색은 戒의 대상이다. 마치 움베르코 에코의 걸작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을 경계해서 연쇄 살인이 일어 나듯이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아도 혁명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긴장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를 보고 중국정부가 상영 금지를 시켰다는데 충분히 이해가 간다. 혁명열사를 모독했다는 표면적인 이유가 거창했다. 왜냐하면 중국정부는 바로 이념의 토대 위에서 무수한 인간의 피에 의해 수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념을 비웃는 듯한 색을 강조하는 영화라면 체제를 위협한다고 간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진실일까? 중국 자체가 이미 등소평의 개혁개방을 통해 색의 시대로 들어와버린 상황에서 진실을 고집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인간은 순간적으로는 이념에 경도되어 진실을 그 안에서 머물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크게 보면 보다 큰 진리가 우리를 죄어온다. 인간이 먹고 싸고 놀아야 하는 매우 비속한 존재라는 진리 말이다.
또 그렇다고 진실에 푹 빠져 목숨을 걸었던 젊은 영혼들을 모독할 수는 없다. 세상은 그런 모험가들에 의해서만 한 단계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상을 향해 달려간 존재를 영웅으로 떠 받들어 이상화하지만 모두 다 영웅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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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 2008-10-14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 달 전 보았던 탕웨이의 갈등과 아픔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오는군요. 그 순간 순간의 몸 짓이 양조위의 불안과 공포를 어떻게 감싸주었을지도 ...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들도 그들의 것처럼... 항상 진실할 수는 없지만 항상 진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 진지함으로
매국도 불륜도 좀은 아름답게 치장할 수 있겠지요.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사마천 2008-10-14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에 진지하지 않은 사람이 삶 전체를 진실로 만들기는 쉽지 않은 듯 합니다. 색계는 제가 볼 때 일종의 야유가 될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혁명 내지 중국 공산당 정부에 대한. 처음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는데 상영금지가 되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