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는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으로 도서관 구석진 곳에 진열되어 있던 책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최수지가 주인공 최서희 역으로 나온 KBS 대하드라마가 있었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한국 작가중 노밸문학상의 후보를 뽑을때 항상 1위를 차지했던 박경리의 소설이라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최소한의 상식이었다. 이때 시도할 수 없었던 토지 전편을 쉽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청소년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최대한 압축해서 얇은 책 12권으로 편집한 책이 <청소년 토지>다. 작가 박경리가 쓰진 않고 소설토지연구회가 편집한 점은 아쉽다.우선 토지는 방대하다. 등장하는 인물은 물론이고 소설의 시간적 범위가 무척 길다. 조선말기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그야말로 대하드라마로 펼쳐진다. 이 속에슨 지금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져 있고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 스며있다. 신분사회가 붕괴되는 과정속에서의 갈등은 물론 무능력한 지식인의 고통이 있고 사랑과 배신이 그려지고 있으며 토지를 둘러싼 민족간의 암투가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눈앞에 펼쳐진다.정말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청소년 토지>를 읽은 후 토지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사라져 진짜 <토지>를 토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하지만 전 21권의 대하소설을 완독하는 것 자체가 내겐 큰 부담으로 다가선다. 이러한 대작을 수십년에 걸쳐 완성한 작가 박경리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미암 유희춘의 생활사를 들여다 보면 16세기 조선의 생활풍습을 훤히 엿보게 된다. 500년이나 된 16세기 삶의 모습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맛볼 수 없었던 실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미암 유희춘과 아내 송덕봉, 이들 부부와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식솔들은 하나의 거대한 가족사회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양반과 노비간의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관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부부관계, 그들의 사는 모습은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시대는 흘러도 사람이 사는 것은 그리 변하지 않는 듯 싶다. 필요에 따라서 소설적 허구를 가미하면서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고전을 부드럽게 처리해 주고 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빠져들게끔 하는 마력으로 작용한다. 계급, 부부관계, 복식사, 첩에 대한 얘기 등 이야깃거리를 장으로 나눠 기술함으로써 지루함보다는 흥미를 불러 일으켜 한번 책을 잡으면 거침없이 한권을 읽게 해준다. 더운 여름날 500년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한완상 현 한성대총장은 교육부총리를 지낸 교육계의 거목이다.386세대중 대학시절 한완상총장의 ''민중과 지식인''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모태신앙으로써 기독교적 문화양식이 몸에 베어 있는 저자가 70년대의 한국사회를 살면서 교회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저 낮은 곳을 향하여''가 바로 이 외침의 문학적 표현이다. 이 책의 초판일은 이미 30년전이지만 지금의 한국 교회의 현실에 비추어도 그리 맞지 않는 것이 없어보인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이 땅에 어두운 곳, 가난한 자를 향해 그의 사역을 펼쳤듯이 지금의 한국교회가 그 길을 뒤따라 걷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이 책은 한국사회와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고전이자 신자의 지침서다.
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 001, 출판사 그린비에서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제대로 읽어보진 못한 나로서는 리라이팅에 대한 책을 얼마나 소화해 낼 수 있겠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책 읽기 이전, 열하일기에 대해서는 청황제를 알현하기 위해 조선사절단의 일원으로 참여한 연암의 연경방문기라는 정도가 나의 기초지식이었다.저자 고미숙은 고려대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고전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전 전문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통해서 그녀의 해박한 지식세계를 우선 엿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열하일기의 본문을 해석하기 보다는 열하일기를 쓰고 있는 연암의 퍼스널리티에 대한 소개, 그의 인생관, 세계관, 그리고 그가 시대의 반항아적인 기질의 소유자였음을 얘기해 주고 싶어한다.사실 한양을 떠나 머나먼 중국의 연경(지금의 북경)까지 걸어서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어드벤처이다. 지금이야 비행기로 몇시간만 가면 될 곳을 그들은 일생 일대의 모험을 한다는 자세로 청황제 건륭제를 알현하러 떠나는 것이다. 죽을 고비를 여러차레 넘겼지만 막상 도착한 연경에는 황제가 없다. 피서지이자 북중국 남만주의 변방에 위치한 열하에 있다는 소식은 그들 일행에게 비보가 아닐 수 없다.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서 티벳의 판첸라마를 만나야 하는 난처한 경험도 하게 되고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술로 인한 수많은 에피소드를 일기로 펼쳐낸다. 원전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리라이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없음이 한탄스러울 뿐 그 시대의 만능 엔터테이너 연암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중국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차에 서점에서 우연이 이 책을 발견했다. 우선 책 표지부터 진한 적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중국의 운치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는 한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대만에는 가 본 경험이 있고 특히 대만의 중경박물관을 둘러보고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경험 등등으로 중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내지 경외감은 항상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게다가 말로만 들었던 자금성의 위용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나를 들뜨게 했다.이러한 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한권의 책을 통해 중국의 역사를 엿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경복궁은 자금성의 화장실 정도 수준이라는 얘기가 과언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자금성의 규모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자금성에서 펼쳐지는 중국의 역사를 만화를 곁들여서 작가 진병팔은 재미있게 그려나가고 있다.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항복한 후 청황제를 향하여 세번씩 아홉차례나 이마에 피가 터질 정도로 절을 올려야 했던 역사의 아픔도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