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뭔가에 신경쓰지 않고는 안 되게 되어 있어. 너는 너의 소설을 쓰고 싶지 않니?"
"아빠,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서 도대체 내가 무엇을 알고 있죠? 나는 여러 가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쓰는 것은 벌써 잊어버렸어요."
"그래, 쓰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생각하도록 하자."
"이제 기분이 좋아졌어요."
"나도 기분이 아주 좋아졌단다. 그러나 아직 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단다. 나에게는 아직 돈이 필요하니까."
"좋아요, 그럼 돈에 대해서만 조금 생각해 볼까요?"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돈이 들어오지 않아."
"그럼 좋아요, 돈에 대해서. 그리고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생각하면 되잖아요."
"내가 아는 유일한 돈벌이 방법은 쓰는 것이란다."
"쳇, 필요없어요, 아빠. 진전이 없잖아요. 결국 아빠는 작가일 수밖에 없군요. 하지만 나는 달라요. 작가 따윈 될 대로 되라죠. 나는 부랑자가 되어야겠어요."
"멋있구나. 나도 부랑자가 되고 싶은걸. 하지만 나는 부랑자가 될 기회를 놓쳤어. 나는 이미 작가고 앞으로도 계속 작가겠지."
"아빠, 뭔가 다른 방법으로 돈을 벌 수 없나요?"
"없어. 유감스럽게도 내겐 쓰는 재주밖에 없단다. 글을 써서 버는 돈은 조금밖에 되지 않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아빠."
"응?"
"나, 돌아왔어요."
"무슨 뜻이지?"
"나는 다시 작가로 돌아왔어요, 아빠. 아빠는 요리책과 희곡을 쓰면 돼요. 나도 소설을 쓸게요. 어떻게 하면 쓸 수 있을지 배워야겠어요."
"정말?"
"신께 맹세하고 진짜예요."
"하지만 왜 갑자기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지?"
"아빠 모르세요? 나도 아빠와 마찬가지로 작가일 수밖에 없어요."
"과연…… 내가 생각하건데 아마, 이 순간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일 거다."
"하지만 원하는 게 있어요, 아빠. 우리 두 사람 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쓰도록 해요. 돈 따윈 벌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람들이 웃으며 살 수 없다면 인생이란 어떤 의미도 없을 테니까요."
-- William Saroyan의 <아빠, 미쳤군요> 중에서

에곤 실레, 이중자화상
* 이 대목을 읽다 보니, 누군가 했던 이런 말이 떠오른다.
"나는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의 그 재미를 다시 느껴 보고 싶은데, 내 몸은 이미 자전거 타는 법을 알고 있거든..."
이미 무언가를 보거나 알아버린 사람은 그 무언가를 보거나 알기 이전의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윌리엄 사로얀은 이렇게 말한다.
"멋있구나. 나도 부랑자가 되고 싶은걸. 하지만 나는 부랑자가 될 기회를 놓쳤어. 나는 이미 작가고 앞으로도 계속 작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