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노 여배우? 그건 나의 과거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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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뉴스 2004-10-28 0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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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시벨 케킬리 데뷔작 '미치고 싶을 때'서 놀라운 연기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현록 기자]'포르노 스타로 시작해서 오스카로 가는 것이 그 반대보다 낫다.'
독일 언론이 영화 '미치고 싶을 때'의 여자 주인공 시벨 케킬리를 두고 내린 결론 중 하나다.
시벨 케킬리는 첫 영화 '미치고 싶을 때'로 200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거머쥔 독일 영화계의 차세대 기대주. 그러나 영화제 수상 이틀만에 하드코어 포르노 배우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다.
시벨 케킬리는 이번 영화에서 구속을 거부하는 열정적인 젊은 여성 '시벨' 역을 맡아 전신 노출과 과감한 베드신을 불사한 연기를 펼쳤다. 그녀의 포르노 이력을 두고 더욱 말이 많았던 건 이같은 영화 속 장면들 탓이 컸다.
그러나 시벨 케킬리는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된 연기와 '내 과거, 내 삶에 대해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겠다'는 당당한 태도로 황색 언론의 빗나간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 영화계도 '포르노는 과거일 뿐'이라는 이 자신만만한 여배우에게 2004년 독일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케킬리는 이달 중순 열린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 직접 팬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첫 영화에서 독일에 사는 터키인 역을 맡은 그는 차기작 '케밥 커넥션'을 통해 이탈리아인으로의 변신을 꾀할 예정.
피터 아킨 감독의 영화 '미치고 싶을 때'는 엄격한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택한 젊은 여성과 마약과 무기력에 찌든 채 그녀를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독특한 멜로드라마. 다음달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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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고 있는 40대 여성 사회학자(우에노 치즈코)와 60대 남성 철학자(나카무라 유지로)의 왕복 서간집 <인간을 넘어서>에는 성인 비디오 배우인 구로키 가오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인 그녀는 80년대에 자신의 체험담을 놀랍도록 솔직하고도 분석적으로 기록해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라는 책을 낸 바 있다고 한다.
도쿄의 중류 가정에서 자랐고, 자폐증이 있지만 성적으로 조숙한 여자아이가 대학생이 되었고 이탈리아에 가서 종교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 자금이 필요했다, 그때 우연히 모델 아르바이트를 권유받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인 비디오 배우가 되면서 헤어나기 어려운 궁지에 처하게 되자 "이젠 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당하게 그 길에 몸을 던진 여자 배우로 매진해 나간다는 내용......
구로키 가오루의 책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억압적인 부르주아 성도덕, 강간당하고 싶어하는 심리, 마조히즘 등 성에 관한 온갖 담론이 생생한 체험의 목소리로 얘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몇 구절을 재인용해 본다.
"자기의 사적 소유권을 던져버리고 타자가 전적으로 소유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실로 지상에서 거주할 권리를 얻는 것이며, 동시에 내가 이 세계를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
"어느덧 나는 '형이하(形而下)에서의 패자는 패배를 수용함으로써만이 승자에 대항해서 형이상(形而上)의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법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위상에서의 승리, 이거야말로 바로 SM의 진수였습니다."
"드레싱 소스에서 식초와 기름은 결코 뒤섞여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격렬하게 흔들면 각각은 절대 융화되지 않고 자잘한 분자 상태가 되어 뒤얽혀 버립니다. 식초를 이성, 기름을 욕망이라고 바꾸어놓으면, 마구 흔들린 드레싱 소스는 그때의 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 성인용 비디오 촬영이라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폭력적인 '힘'이 나를 격렬하게 휘저어서 분자 상태의 이성과 욕망이 고속으로 뒤범벅되어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내달리게 했던 것입니다."
* 남성 관객은 포르노 속의 여자를 욕망하지만 그 여자는 남성 관객을 욕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 관람이 그렇듯이 이것은 나르시즘의 퇴행적인 환상이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은 욕망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욕망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김영진,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책세상 문고·우리시대]
포르노에서 나타나는 성교는 일반 사회에서 남녀가 누리는 권력 관계를 정확히 비유하고 있다. 포르노 영화 속에서 대개 남성은 주인[권력자, 지배자]이고 여성은 노예[피지배자]이지만, 실제로 그 세계에서 주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관계를 연기하는 여자 배우가 아닐까.
"내 과거, 내 삶에 대해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겠다"[사과라니! 사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는 시벨 케킬리의 당당함과, "있어야 하는 것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없는 것처럼 처신하는 이상한 상태의 우스꽝스러움이란!"하고 꼬집는 구로키 가오루의 태도는 그 체험의 단순한 겹침을 넘어서는 인식의 일맥 상통함을 보여준다.
* 포르노의 환상은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어떤 욕망을,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경계를 잠시 꿈꾸듯이 체현하고 넘어서게 한다는 점에서 슬픈 욕망의 세계이다. 그건 자정까지만 빛나는 신데렐라의 구두 같은 것이다.
나는 포르노 영화를 즐겨 보지 않지만[사실 제대로 본 것도, 아는 바도 거의 없다...], 포르노 영화가 상징하고 있는 욕망의 세계에 대해서는 늘 관심과 시선이 간다. 위반의 욕망과 연결돼 있는 판타지의 세계...... 내게 그 판타지는 어떻게 내재되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