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여배우? 그건 나의 과거일 뿐"
[스타뉴스 2004-10-28 08:55]
獨시벨 케킬리 데뷔작 '미치고 싶을 때'서 놀라운 연기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현록 기자]'포르노 스타로 시작해서 오스카로 가는 것이 그 반대보다 낫다.'

독일 언론이 영화 '미치고 싶을 때'의 여자 주인공 시벨 케킬리를 두고 내린 결론 중 하나다.

시벨 케킬리는 첫 영화 '미치고 싶을 때'로 2004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거머쥔 독일 영화계의 차세대 기대주. 그러나 영화제 수상 이틀만에 하드코어 포르노 배우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곤욕을 치렀다.

시벨 케킬리는 이번 영화에서 구속을 거부하는 열정적인 젊은 여성 '시벨' 역을 맡아 전신 노출과 과감한 베드신을 불사한 연기를 펼쳤다. 그녀의 포르노 이력을 두고 더욱 말이 많았던 건 이같은 영화 속 장면들 탓이 컸다.

그러나 시벨 케킬리는 신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된 연기와 '내 과거, 내 삶에 대해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겠다'는 당당한 태도로 황색 언론의 빗나간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독일 영화계도 '포르노는 과거일 뿐'이라는 이 자신만만한 여배우에게 2004년 독일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연기력을 갖춘 배우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케킬리는 이달 중순 열린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 직접 팬들과 함께 영화를 감상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첫 영화에서 독일에 사는 터키인 역을 맡은 그는 차기작 '케밥 커넥션'을 통해 이탈리아인으로의 변신을 꾀할 예정.

피터 아킨 감독의 영화 '미치고 싶을 때'는 엄격한 집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장 결혼을 택한 젊은 여성과 마약과 무기력에 찌든 채 그녀를 받아들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독특한 멜로드라마. 다음달 12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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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읽고 있는 40대 여성 사회학자(우에노 치즈코)와 60대 남성 철학자(나카무라 유지로)의 왕복 서간집 <인간을 넘어서>에는 성인 비디오 배우인 구로키 가오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인 그녀는 80년대에 자신의 체험담을 놀랍도록 솔직하고도 분석적으로 기록해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라는 책을 낸 바 있다고 한다.

도쿄의 중류 가정에서 자랐고, 자폐증이 있지만 성적으로 조숙한 여자아이가 대학생이 되었고 이탈리아에 가서 종교미술사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 자금이 필요했다, 그때 우연히 모델 아르바이트를 권유받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성인 비디오 배우가 되면서 헤어나기 어려운 궁지에 처하게 되자 "이젠 할 수밖에 없다"고 결심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당하게 그 길에 몸을 던진 여자 배우로 매진해 나간다는 내용......

구로키 가오루의 책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 억압적인 부르주아 성도덕, 강간당하고 싶어하는 심리, 마조히즘 등 성에 관한 온갖 담론이 생생한 체험의 목소리로 얘기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 소개된 몇 구절을 재인용해 본다.

"자기의 사적 소유권을 던져버리고 타자가 전적으로 소유하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실로 지상에서 거주할 권리를 얻는 것이며, 동시에 내가 이 세계를 획득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
"어느덧 나는 '형이하(形而下)에서의 패자는 패배를 수용함으로써만이 승자에 대항해서 형이상(形而上)의 승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법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위상에서의 승리, 이거야말로 바로 SM의 진수였습니다."
"드레싱 소스에서 식초와 기름은 결코 뒤섞여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격렬하게 흔들면 각각은 절대 융화되지 않고 자잘한 분자 상태가 되어 뒤얽혀 버립니다. 식초를 이성, 기름을 욕망이라고 바꾸어놓으면, 마구 흔들린 드레싱 소스는 그때의 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 성인용 비디오 촬영이라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폭력적인 '힘'이 나를 격렬하게 휘저어서 분자 상태의 이성과 욕망이 고속으로 뒤범벅되어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내달리게 했던 것입니다."

* 남성 관객은 포르노 속의 여자를 욕망하지만 그 여자는 남성 관객을 욕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영화 관람이 그렇듯이 이것은 나르시즘의 퇴행적인 환상이다. 포르노를 보는 사람은 욕망하는 주체라기보다는 욕망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김영진, <영화가 욕망하는 것들>, 책세상 문고·우리시대]

포르노에서 나타나는 성교는 일반 사회에서 남녀가 누리는 권력 관계를 정확히 비유하고 있다. 포르노 영화 속에서 대개 남성은 주인[권력자, 지배자]이고 여성은 노예[피지배자]이지만, 실제로 그 세계에서 주체성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관계를 연기하는 여자 배우가 아닐까.

"내 과거, 내 삶에 대해 누구에게도 사과하지 않겠다"[사과라니! 사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인가...]는 시벨 케킬리의 당당함과, "있어야 하는 것을,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없는 것처럼 처신하는 이상한 상태의 우스꽝스러움이란!"하고 꼬집는 구로키 가오루의 태도는 그 체험의 단순한 겹침을 넘어서는 인식의 일맥 상통함을 보여준다.

* 포르노의 환상은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어떤 욕망을, 넘어설 수 없는 어떤 경계를 잠시 꿈꾸듯이 체현하고 넘어서게 한다는 점에서 슬픈 욕망의 세계이다. 그건 자정까지만 빛나는 신데렐라의 구두 같은 것이다.
나는 포르노 영화를 즐겨 보지 않지만[사실 제대로 본 것도, 아는 바도 거의 없다...], 포르노 영화가 상징하고 있는 욕망의 세계에 대해서는 늘 관심과 시선이 간다. 위반의 욕망과 연결돼 있는 판타지의 세계...... 내게 그 판타지는 어떻게 내재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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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10-2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여자들.사람들은 대개 환상에 넋을 저당잡히죠.실체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왜소하고 초라한 것인데 환상과 거짓말은 풍선기구처럼 거창하고 매혹적입니다.

로드무비 2004-10-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고 싶을 때', '타락에도 정도가 있다' 등 제목들이 너무 재밌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글이군요.

코코죠 2004-10-28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르노 스타로 시작해서 오스카로 가는 것이 그 반대보다 낫다.'

이런, 멋져버리쟌아요. 그래서 오즈마는 덜컹, 그리고 뭉클, 해버렸다는.

에레혼 2004-10-2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병든 구조나 상황 속에서 주눅들거나 상처로 좌절하지 않고 자기를 똑바로 응시할 줄 아는 '어른 여자'들의 당당함이 때로 나의 머리를 내려치곤 합니다.... 나의 나약함, 나의 비겁함, 나의 거짓, 나의 타협들을 씁쓸하게 돌아보게 하는.....

로드무비님, 님처럼 뜨겁고 다정한 여자의 마음에 꼭 들만한 제목들이지요.

오즈마님, 나의 사랑스런, 마이 퍼니 오즈마님(ㅋㅋㅋ 전염!), 그 말의 반대 순서로 가는 쪽도 분명 있으니, 지당한 말이 아닐까요? 오즈마님은 세상의 모든 멋진 것에 그렇게 덜컹, 뭉클할 수 있는 열정과 촉촉함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리도 이쁜 청춘을 보내고 있는 듯....
그나저나 가을 엽신이 왜 아직 안 올까, 날마다 포스트맨의 벨이 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건만...
 

 

李賀

이승훈

 

 당나라 시인 이하는 체구가 가냘프고 연약했고 시를 빨리 지었고 매일 아침 해가 뜨면 허약한 말을 타고 어린 종을 데리고 나서며 종은 등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메고 그는 시가 떠오르면 시를 써서 비단 주머니에 던져 넣고 그는 제목을 정하고 시를 짓지 않았으므로 시를 제목에 억지로 맞추기 않았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와 지은 걸 다시 살펴보는 일이 없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지은 시들을 보고 말했다 너는 심장을 토해내야만 그만 두겠구나 그의 시는 일반규범에서 벗어나 흉내 낼 수 없고 그는 길에서 쓴 많은 시들을 바로 버리고 스무 일곱살에 죽었다

 

 

이승훈

 

 저 돌은 어딘가 두고 온 나이다 돌을 보려면 돌 속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지난 날은 잊어버리자 저 돌도 이름일 뿐이다

 

 

모두가 시다

이승훈

 

 쓰는 건 모두가 시다 원고지 뒷장에 갈기는 낙서 거리에 떨어지는 햇살 아스팔트에 뒹구는 낙엽 달리는 자동차 달리는 오토바이 해안에 부서지는 포말 새기고 사라지고 쓰고 다시 쓴다 낙서도 편지도 일기도 만화도 신문도 마침내 신문도 신문도 시다 시는 쓰는 것 새기는 것 흘러가는 것 그러므로 가을 오후 시청 앞 사람들도 시다 시는 없으므로 이 시들을 사랑해야 하리 간판도 거리에 시를 쓰고 마네킹도 유리창에 시를 쓰고 이 저녁도 시를 쓰네 시를 쓰며 한 세상 산다 시는 없으므로

 

 

여백

이승훈

 

 낱말은 어디에도 닿은 적이 없다 저 나무는 나무이고 거리는 거리일 뿐이다 이 한계를 사랑하자 이 한계에 도달하자 이 한계는 한이 없다 한이 없는 놀이, 대치, 생략, 황홀, 낱말을 던지면 낱말이 돌아오고 당신이 웃을 때 당신이 사라지고 이 글도 사라진다 시 쓰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능력이고 생략, 여백, 결핍의 웃음이고 사막의 웃음이다 지금 내 방에 있는 의자의 웃음이다 이 웃음을 사랑하자

 

 

 


 

 

 

 

 

 

 

 

 

 

 

 

 

 

 

 

 

 

 

 

 

 

 

Handel's Sarab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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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훈 시인은 건실한 생활인의 얼굴을 목 위에 걸어놓구선 가끔
너무나 섬세하고 서정적인 시를 쓰시더군요.
인사동 거리나 카페에서 두어 번쯤 스쳐지났는데 아주 다정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시 좋네요.
저는 현대시학이니 잡지에서 그의 시 읽고 좋아라 한 적은 있는데
한번도 그의 시집을 사본 적이 없군요. 미안해라.
시와 그림과 음악 잘 감상하고 갑니다.^^

2004-10-27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rry Manilow, When October Goes

 

달력을 보지 않는다

그래도 시월이 가고 있음을 안다

가, 고, 있, 다

가는 것들은 언제나 한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어딘가에서 무덤처럼 하나씩 모여들어 봉긋한 '추억'의 봉분으로 쌓여 가고 있을까

시월은 가고, 추억은 돌아온다

.............................

오늘 내내 이 노래를 떠올렸다

 


 

 

 

 

 

 

 

 

 

 

 

 

 

 

 

 

 

윤상과 김동률이 부르는 같은 노래

www.believeinme.net/audio/october.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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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7 0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10-27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님, 제 안에도 그 열 몇 살짜리 아이가 살고 있답니다, 그 아이 때문에 종종 난감하고 부끄럽지만, 또 어느 때는 위안이 되기도 하지요. 언제까지나 자라지 않는 그 아이 덕분에 아주 많이 나이가 들어서도 그저 기운 없고 만사에 무심한 노인으로 살지는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내가없는 이 안 2004-10-2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언뜻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시월이 가고 있네요. 전 어제 아이 숙제로 낙엽 몇 장 주웠답니다. 어렸을 땐 낙엽이 너무 속쓰린 가을이었는데 지금은 아이 숙제감이 된 가을이라니... 많이 걸어오긴 했나봐요. ^^
 

 



 

 

 

 

 

 

 

 

 

 

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 걸까.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왕가위의 <2046>을 보는 동안 나는 내내 속으로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상투적인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 다 식어 빠진 차를 바라보며 언제 자리를 떠야 할지 고민하는 선보는 자리의 여자처럼. 


'왕가위의 낙관'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화려하면서 몽환적인 영상과 현란한 편집, 무엇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림에 잘 입혀진 음악들'...... 게다가 나오는 배우들도 다 볼만하다. 장쯔이는 정말 그림 속 여자처럼 예쁘다. 틀어올린 머리와 몸에 착 달라붙는 중국식 드레스가 이제까지 그녀에게서 보지 못한 도발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장쯔이가 평범하게 예쁘장한 얼굴에 아직 연기에 물이 오르지 않은, 그래서 그의 명성과 승승장구가 잘 이해되지 않는 그만그만한 연기자라고 생각해 왔다. 헌데 중국어로 '감독'을 '도연(導演)'이라고 쓰는 용법에 충실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왕가위는 배우로부터 그 배역에 가장 잘 맞는 최선의 것[아름다움이든, 분위기이든, 의상이든, 특정한 아우라이든...]을 이끌어 내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양조위야 그만의 우수 어린 표정과 몸짓으로 변함없이 화면에 조용하면서도 충만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장쯔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 주는, 그녀를 위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장만옥에게 <화양연화>가 그랬던 것처럼.



 

 

 

어쨌든 그림 그만하면 나무랄 데 없고, 음악은 영상을 압도할 만큼 분위기를 넘실거리도록 이끌어 가고, 배우들도 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2046>에서 왕가위는 끊임없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긁어 모아다놓고 스스로를 인용하려고 작정한 듯이 보인다. 하나의 영역을 구축한 대가가 자기 세계를 나른하게 복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 더 이상 어떤 긴장과 절제와 질문이 없는, 수십 년의 이력 속에 작성된 왕가위표 매뉴얼대로 죽죽 뽑아 낸 듯한 캐릭터와 상황과 대사들........

오래 전 앙코르와트 사원 석벽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한 그 남자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자기를 에워싸고 있던 석벽에 금이 가듯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위악적인 모습을 느물느물 드러낸다. 잘 빠진 정장 차림에 기름칠해서 정확히 가르마를 가른 헤어 스타일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얼굴에는 위악적인 미소와 사랑에 대한 냉소가 끈적거리는 땀처럼 배어 나온다.
왕가위는 <2046>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자신이 사랑한 여자에게 거절당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는 그 남자의 변화에, 그의 외로움에, 그의 삭막함에 공감하지 못한다. "시간과 몸은 나눠 줄 수 있지만, 마음은 빌려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자연스레 설득되지 않는 것이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다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그의 공허가 아무런 울림도 전해 주지 않는다. 사랑은 기억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늘 아직 살지 않은 현재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는 내 감성이 메말라진 탓이든, 아니면 익숙한 자기 문법을 반복 재생하고 있는 왕가위가 나른하고 느슨해진 탓이든, 둘 중 하나가 원인일 듯.......

싱가포르에서 만난 도박사 '수리첸'(공리)은 도박장에서 많은 돈을 날린 차우(양조위)에게 충고한다.
"우울한 날에는 도박을 하지 말아요. 그런 날에는 늘 잃게 돼 있어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번에 판돈을 다시 찾게 되면 도박을 그만두고 여기를 떠나요."라고.
나는 그 말을 조금 변형시켜 왕가위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더 이상 자신에게 어떤 질문도 떠오르지 않거든 영화를 만들지 말아요. 그럴 때는 진짜를 만들 수 없는 법이에요." 그리고 한마디 더.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된 자기 이름에 기대 전작들을 그럴듯하게 콜라쥬해 놓은 것을 새로운 작품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아요. 나는 낯익은 이미지와 감미로운 음악으로 편집해 놓은 두 시간 짜리 뮤직 비디오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극장에 올 생각은 없으니까."
 
기이한 피곤과 허탈감에 젖어 집에 돌아온 내게 문득 떠오른 한 구절.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 황량한 사막에서 어떤 사진은 갑자기 나에게 찾아와 나를 흥분시키고, 또 나는 그 사진을 흥분시킨다. 그러므로 내가 사진을 존재케 하는 매력을 열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방식에 의해서이다. 즉 그것은 흥분시키기이다. 사진 그 자체는 조금도 흥분되지 않지만, 그러나 사진은 나를 흥분시킨다. 이것이 바로 모든 모험의 행위이다."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2046>을 보고 있는 내내 불편했던 연유는. 나를 조금도 흥분시키지 않는다는 것. 행복한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것. 어떤 의미로건 나를 흔들고, 찌르고,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는 영화를 두 시간 동안 지켜보는 일은 괴롭고 고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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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10-25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늘 밤 10시22분부터 두시간동안 남편이랑 보고왔어요. 다리가 저려 죽는줄 알았네요.^^ 저도 이 영화 보면서 흔들리지 않더군요. 님 페이퍼 멋집니다. 추천하고 가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0-2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신랄하게 평가하셨네요. 어떤 영화일까. 님의 리뷰까지 벌써 여러 님이 감상을 읽었는데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제게 이미 들어와 있어도 잘 모르겠는 영화군요.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를 영화일 것 같아요. 한때 스포트라이트 받던 인물이 서서히 내려앉는 거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왠지...

담유 2004-10-2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지루했어요, 이 영화. 엄살도 심했고요. (양조위로 대변되는) 왕가위의 드라마가 장쯔이가 아니라 왕정문으로 이동하는 순간, 이 영화는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에레혼 2004-10-2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틀만에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답글이 늦었어요.... 들러서 읽어주시고 '공감'을 표해 주신 분들께 고맙고 미안하네요

배혜경님, 남편이랑 같이 보기에는 조금 거시기^^하지 않던가요? 저는 워낙 혼자 보는 방식에 길들여져서,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보며 옆자리의 그에게 전달되는 느낌까지 짚어지는 그런 경험이 무척 낯설고도 신선하게 들리네요

이안님, 제가 신랄할 땐 좀 신랄합니다^^ 뭐, 책이든 영화든 열 사람이면 열 가지의 감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므로, 제 감상은 제 내부의 작용으로만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찬사든 비판이든, 그건 그 사람의 시각이자 감상일 뿐.......본다고 해서 무언가를 명료하게 말해 주는 영화는 아닌 듯싶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으로,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게 좋겠지요?

오후님, 엄살.... 그렇군요, 엄살에 가까운 것..... 저는 심드렁한 겉멋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자신도 그리 도취되지 못하는, 나른한 겉멋부림 같은 것.......
저는 중간중간 졸기도 하다가[아주 드문 경우인데...] 다시 깨어나서 보다 보면 여전히 '나는 외로워, 헌데 다시 사랑할 수 없어, 난 진짜 단 한번의 사랑을 잃어버렸거든' 식으로 징징거리고 있어서...., 게다가 웬 뜬금없는 에스에프적 삽화의 끼어듦? 짜증과 피로 사이를 오가며 견디면서 끝까지 보았답니다
 
 전출처 : 플라시보 > 그래 이 작자를 믿는게 아니었어.

나는 그랬어야 했다. 파울로 코엘료의 전작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을때를 기억했어야 했다. 그 제목만 끝내주게 멋있고 알맹이는 쥐가 반쯤 파먹은것 같은 책을 사서 읽은다음 '이 작가는 이 책 하나로 나에게서는 땡이로군' 했던 결심을 다시 떠 올렸어야만 했다. 하지만 또 귀가 얇다면 나름 얇은 나는 이 책을 권하는 친구의 감언이설에 홀라당 넘어가서 책을 사고야 말았다. 연금술사가 꽤 히트를 쳤다던데, 11분도 요즘 대박치는 분위긴데 하면서 말이다. 내가 아는 지인이 예전부터 이 책을 사지말라고 말렸건만 왜 나는 사라는 말에 더 귀를 귀울였을까?

아마 내가 리뷰를 쓰면서 별 하나를 주는건 극히 드문 일일 것이다. 만약 그저 재미만 없었다면 나는 별 둘을 주는 자비를 발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재미도 없을 뿐더러 새로운 지식을 주지도 않고 거기다 심기까지 건드리는. 책으로써 지닐 수 있는 모든 소양을 비껴간 책이기 때문에 별 하나를 주기로 했다. (할수만 있다면 주황색이 아닌 까맣게 탄 별을 날리고 싶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책은 한 창녀에 관한 내용이다. 다소 멀쩡했던 그녀가 어이어이 해서 창녀가 되고 그 다음에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길이만 좀 짧았다면 하이틴 로맨스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어이없는 책이다. 주인공 마리아는 별 다른 이유도 없이 창녀가 된다. 브라질 처자인 마리아는 어느날 스위스에서 온 스폰서를 만나게 되고 그는 춤과 노래로 돈을 벌게 해 주겠다면서 그녀를 꼬드겨 스위스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처음 약속과 달리 1년을 뼈빠지게 일해야 겨우 브라질로 돌아갈 표값이나 벌까 말까 한 현실 앞에서 마리아는 갈등을 한다. 그녀는 운좋게 스위스인에게서 약속한 금액을 받아내고 고향으로 돌아갈것인가 아니면 좀 더 남아서 돈을 벌 것인가를 망설인다.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고향에 그냥 돌아가면 쪽팔릴꺼라는 생각에 창녀가 되기로 한다. (세상에 쪽팔려서 창녀가 되는 여자가 어디있겠는가?)

이 작가는 창녀라는 직업을 너무도 미화시키고 또 쉽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창녀는 정말 여자들이 선택하는 마지막 길이다.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무언가 큰 문제나 압박을 받았을 경우 택하게 된다. 그녀처럼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가는게 쪽팔려서 창녀가 되지는 않는다. 그 정도 이유로 창녀가 되었을것 같으면 여자들의 대부분이 아마 창녀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남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창녀가 그저 다리를 벌리고 잠깐동안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는 대여업 정도로 생각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녀들은 몸이 아닌 영혼을 팔거나 갉아먹힌다. 가장 기본적인 자신의 육신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남에게 돈을 받고 빌려준다는 것은 돈을 받고 짐을 져 주거나 노동을 해 주는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사랑에 의한 섹스가 아닌 돈을 받고 하는 섹스. 생각만 해도 기분이 더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걸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여자들은 어떻겠는가? 그냥 재미삼아 시작해서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할것 같은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다. 물론 그 중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나는 일단 이 작가가 너무 가볍게 창녀를 탄생시킨것에 거부감이 느껴졌다.

마리아가 창녀가 되고 부터는 남성의 성적 판타지에 충실한 개가 된다. 몸만 따먹으면 재미 없으니까 소위 그녀는 한차원 더 높은 서비스를 위해 경제에 대해 그리고 정신분석학에 대해 공부를 한다. 이 얼마나 근사한 창녀인가 죽여주게 아름답고 대화도 통화고 유식하기까지 한 그녀. 하지만 단돈 얼마면 내가 그녀를 올라탈수 있다. 대체 어느 남자가 이 유혹을 거절하겠는가. 파울로 코엘료는 단순히 몸만 파는 창녀에서 뭔가 있어보이는 창녀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마리아는 심지어 SM을 즐기기까지 하니 더이상 바랄게 뭐가 있겠는가. 색정광이던 변태던 유식한 인간이건 정신적인 문제에 시달리는 남자건 모든 남자를 위해 어머니와 친구와 창녀가 되는 여자. 그런 여자가 마리아이다. 그러나 이 여자 느닷없이 너무너무 괜찮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받아들인다. 비록 창녀였지만 가랑이로 남자 하나만 꽉 물면 여자 팔자는 식은죽 먹기랍니다 하는것 같지 않은가?

진짜로 걱정스러운건 이 책을 읽고 혹시나 창녀가 멋진 직업이구나 (남자에게 욕망의 충족과 구원을 동시에 내리는 성스러운 존재) 혹은 창녀가 되어서라도 괜찮은 남자를 만나면 그때부터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이구나 하는 환상을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세상은 냉정하다. 몸을 파는 것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른 여자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사랑으로 인해 남자와 섹스를 할때 나는 노인이건 청년이건 선택권이 없이 단지 돈을 지불한 남자를 위해 옷을 벗어야 한다. 거기서 좀 철학적인 소리를 하거나 약간 아름답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보통 여자들도 만나기 힘든 근사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에 골인하지는 못한다. 그녀들은 어떤 형태로건 비교적 쉽게 돈을 많이 버는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마리아처럼 과일 칵테일- 춤 - 섹스 - 많은돈이 다가 아니다. 단지 그걸로 보통 여자들의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단 며칠만에 벌 수 있다면 아마 금전적으로 힘든 많은 여자들이 섹스산업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하여간 이 책에 대해 내린 결론은 좀 길고 지루한 하이틴 로맨스이다. 주인공 마리아라는 여자를 보라. 그 여자는 추진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약간의 허영끼도 있고 늘 들떠서 살고 있다. 고민을 하는 척 하긴 하지만 그건 수박 겉핥기식의 고민이다. 사는데 있어 그녀만큼 고민을 안하고 산다면 세상 편하겠다 싶을 정도이다.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했던 마리아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 오르가즘을 느낀다. 그런데 왜 하필 그 과정 중간이 창녀야 하는지를 나는 알 수가 없다. 언듯보면 그녀는 창녀들이 가장 힘들다는 돈 꼬박꼬박 모으기를 했고 고향에 돌아가서 농장을 할 계획을 세우는 기특한 처녀라고 보일수도 있겠지만 영혼을 팔아먹어서 저금을 한들 농장을 한들 나는 그게 무슨소용일지 궁금하다. 작가는 마지막까지 하이틴 로맨스류의 결말을 낸 주제에 이 책은 온전히 자기 머리에서만 나온게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픽션이라고 시일 변명을 해 놨다. 치사한 자식. 하이틴 로맨스 작가들도 그따위 변명은 안하겠다.

P.S. 이 책의 광고 문구이다.

걷지말고 춤추듯 살아라! 사랑은 오직 고통을 줄 뿐이라 믿는 브라질 처녀 마리아는 일자리와 모험을 찾아 제네바에 갔다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줄 젊은 화가를 만나는데...성과 사랑이 가져다주는 내면의 빛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우화.  지랄하고 자빠졌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책 팔아먹는 것도 좋지만 이정도면 사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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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혼 2004-10-24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들은 이렇게 솔직하게 실망하고 분개한 대로 자기 생각을 밝히는데, 나름대로 식견도 있고 영향력도 가진 평자들이나 출판 관계자들은 왜 그리도 허위 과장 광고를 해대는 걸까?
난 이 책을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겠지만, 이런 정도의 소설에 저런 광고를 해대고[서울에서는 버스 옆면 광고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공격적인 광고 덕분인지 이 책이 몇 달째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올라 있는 현상이 씁쓸하고 쓸쓸하다.
방금 플라시보님의 리뷰를 읽고 어딘가 꽉 막혀 있는 듯한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에 얼른 내 방으로 옮겨왔다. 실은 오늘 오후에 나도 왕가위의 최신작을 보는 동안 내내 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속이 불편했던 터라, 이 리뷰를 만나서 사이다 한잔 쭉 들이키는 셈 쳤다!

플라시보 2004-10-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 와인님. 저도 왕가위 영화 보면서 좀 답답했어요. 그리고 감히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이젠 영화 그만 만드세요.' 그는 너무 좋은영화들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좀 아닌것 같았습니다. 제 리뷰를 읽고 사이다를 드신 기분이시라니 저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