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賀

이승훈

 

 당나라 시인 이하는 체구가 가냘프고 연약했고 시를 빨리 지었고 매일 아침 해가 뜨면 허약한 말을 타고 어린 종을 데리고 나서며 종은 등에 낡은 비단 주머니를 메고 그는 시가 떠오르면 시를 써서 비단 주머니에 던져 넣고 그는 제목을 정하고 시를 짓지 않았으므로 시를 제목에 억지로 맞추기 않았고 날이 저물면 집으로 돌아와 지은 걸 다시 살펴보는 일이 없었고 그의 어머니는 그가 지은 시들을 보고 말했다 너는 심장을 토해내야만 그만 두겠구나 그의 시는 일반규범에서 벗어나 흉내 낼 수 없고 그는 길에서 쓴 많은 시들을 바로 버리고 스무 일곱살에 죽었다

 

 

이승훈

 

 저 돌은 어딘가 두고 온 나이다 돌을 보려면 돌 속으로 들어가야 하리라 지난 날은 잊어버리자 저 돌도 이름일 뿐이다

 

 

모두가 시다

이승훈

 

 쓰는 건 모두가 시다 원고지 뒷장에 갈기는 낙서 거리에 떨어지는 햇살 아스팔트에 뒹구는 낙엽 달리는 자동차 달리는 오토바이 해안에 부서지는 포말 새기고 사라지고 쓰고 다시 쓴다 낙서도 편지도 일기도 만화도 신문도 마침내 신문도 신문도 시다 시는 쓰는 것 새기는 것 흘러가는 것 그러므로 가을 오후 시청 앞 사람들도 시다 시는 없으므로 이 시들을 사랑해야 하리 간판도 거리에 시를 쓰고 마네킹도 유리창에 시를 쓰고 이 저녁도 시를 쓰네 시를 쓰며 한 세상 산다 시는 없으므로

 

 

여백

이승훈

 

 낱말은 어디에도 닿은 적이 없다 저 나무는 나무이고 거리는 거리일 뿐이다 이 한계를 사랑하자 이 한계에 도달하자 이 한계는 한이 없다 한이 없는 놀이, 대치, 생략, 황홀, 낱말을 던지면 낱말이 돌아오고 당신이 웃을 때 당신이 사라지고 이 글도 사라진다 시 쓰기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능력이고 생략, 여백, 결핍의 웃음이고 사막의 웃음이다 지금 내 방에 있는 의자의 웃음이다 이 웃음을 사랑하자

 

 

 


 

 

 

 

 

 

 

 

 

 

 

 

 

 

 

 

 

 

 

 

 

 

 

Handel's Sarab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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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2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훈 시인은 건실한 생활인의 얼굴을 목 위에 걸어놓구선 가끔
너무나 섬세하고 서정적인 시를 쓰시더군요.
인사동 거리나 카페에서 두어 번쯤 스쳐지났는데 아주 다정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시 좋네요.
저는 현대시학이니 잡지에서 그의 시 읽고 좋아라 한 적은 있는데
한번도 그의 시집을 사본 적이 없군요. 미안해라.
시와 그림과 음악 잘 감상하고 갑니다.^^

2004-10-27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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