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하는 걸까.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거지? 왕가위의 <2046>을 보는 동안 나는 내내 속으로 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와 상투적인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 다 식어 빠진 차를 바라보며 언제 자리를 떠야 할지 고민하는 선보는 자리의 여자처럼. 


'왕가위의 낙관'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화려하면서 몽환적인 영상과 현란한 편집, 무엇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그림에 잘 입혀진 음악들'...... 게다가 나오는 배우들도 다 볼만하다. 장쯔이는 정말 그림 속 여자처럼 예쁘다. 틀어올린 머리와 몸에 착 달라붙는 중국식 드레스가 이제까지 그녀에게서 보지 못한 도발적인 매력을 마음껏 발산시키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장쯔이가 평범하게 예쁘장한 얼굴에 아직 연기에 물이 오르지 않은, 그래서 그의 명성과 승승장구가 잘 이해되지 않는 그만그만한 연기자라고 생각해 왔다. 헌데 중국어로 '감독'을 '도연(導演)'이라고 쓰는 용법에 충실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왕가위는 배우로부터 그 배역에 가장 잘 맞는 최선의 것[아름다움이든, 분위기이든, 의상이든, 특정한 아우라이든...]을 이끌어 내는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양조위야 그만의 우수 어린 표정과 몸짓으로 변함없이 화면에 조용하면서도 충만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지만,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장쯔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 주는, 그녀를 위한 작품인지도 모르겠다. 장만옥에게 <화양연화>가 그랬던 것처럼.



 

 

 

어쨌든 그림 그만하면 나무랄 데 없고, 음악은 영상을 압도할 만큼 분위기를 넘실거리도록 이끌어 가고, 배우들도 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나름의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2046>에서 왕가위는 끊임없이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긁어 모아다놓고 스스로를 인용하려고 작정한 듯이 보인다. 하나의 영역을 구축한 대가가 자기 세계를 나른하게 복제하고 있는 듯한 느낌. 더 이상 어떤 긴장과 절제와 질문이 없는, 수십 년의 이력 속에 작성된 왕가위표 매뉴얼대로 죽죽 뽑아 낸 듯한 캐릭터와 상황과 대사들........

오래 전 앙코르와트 사원 석벽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한 그 남자는 세월의 흐름 속에 자기를 에워싸고 있던 석벽에 금이 가듯 자기 안에 숨어 있던 위악적인 모습을 느물느물 드러낸다. 잘 빠진 정장 차림에 기름칠해서 정확히 가르마를 가른 헤어 스타일에서 보여지듯이. 그의 얼굴에는 위악적인 미소와 사랑에 대한 냉소가 끈적거리는 땀처럼 배어 나온다.
왕가위는 <2046>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자신이 사랑한 여자에게 거절당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영화"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나는 그 남자의 변화에, 그의 외로움에, 그의 삭막함에 공감하지 못한다. "시간과 몸은 나눠 줄 수 있지만, 마음은 빌려줄 수 없다"는 그의 말에 자연스레 설득되지 않는 것이다. 한번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다시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된 그의 공허가 아무런 울림도 전해 주지 않는다. 사랑은 기억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늘 아직 살지 않은 현재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는 내 감성이 메말라진 탓이든, 아니면 익숙한 자기 문법을 반복 재생하고 있는 왕가위가 나른하고 느슨해진 탓이든, 둘 중 하나가 원인일 듯.......

싱가포르에서 만난 도박사 '수리첸'(공리)은 도박장에서 많은 돈을 날린 차우(양조위)에게 충고한다.
"우울한 날에는 도박을 하지 말아요. 그런 날에는 늘 잃게 돼 있어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번에 판돈을 다시 찾게 되면 도박을 그만두고 여기를 떠나요."라고.
나는 그 말을 조금 변형시켜 왕가위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더 이상 자신에게 어떤 질문도 떠오르지 않거든 영화를 만들지 말아요. 그럴 때는 진짜를 만들 수 없는 법이에요." 그리고 한마디 더.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된 자기 이름에 기대 전작들을 그럴듯하게 콜라쥬해 놓은 것을 새로운 작품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아요. 나는 낯익은 이미지와 감미로운 음악으로 편집해 놓은 두 시간 짜리 뮤직 비디오를 보기 위해 돈을 내고 극장에 올 생각은 없으니까."
 
기이한 피곤과 허탈감에 젖어 집에 돌아온 내게 문득 떠오른 한 구절.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이 황량한 사막에서 어떤 사진은 갑자기 나에게 찾아와 나를 흥분시키고, 또 나는 그 사진을 흥분시킨다. 그러므로 내가 사진을 존재케 하는 매력을 열거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방식에 의해서이다. 즉 그것은 흥분시키기이다. 사진 그 자체는 조금도 흥분되지 않지만, 그러나 사진은 나를 흥분시킨다. 이것이 바로 모든 모험의 행위이다."

바로 그것이었다. 내가 <2046>을 보고 있는 내내 불편했던 연유는. 나를 조금도 흥분시키지 않는다는 것. 행복한 고통을 주지 않는다는 것. 어떤 의미로건 나를 흔들고, 찌르고,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지 않는 영화를 두 시간 동안 지켜보는 일은 괴롭고 고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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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10-25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오늘 밤 10시22분부터 두시간동안 남편이랑 보고왔어요. 다리가 저려 죽는줄 알았네요.^^ 저도 이 영화 보면서 흔들리지 않더군요. 님 페이퍼 멋집니다. 추천하고 가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0-25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신랄하게 평가하셨네요. 어떤 영화일까. 님의 리뷰까지 벌써 여러 님이 감상을 읽었는데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제게 이미 들어와 있어도 잘 모르겠는 영화군요. 보지 않으면 정확히 모를 영화일 것 같아요. 한때 스포트라이트 받던 인물이 서서히 내려앉는 거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왠지...

담유 2004-10-25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척 지루했어요, 이 영화. 엄살도 심했고요. (양조위로 대변되는) 왕가위의 드라마가 장쯔이가 아니라 왕정문으로 이동하는 순간, 이 영화는 가짜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에레혼 2004-10-2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틀만에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바람에 답글이 늦었어요.... 들러서 읽어주시고 '공감'을 표해 주신 분들께 고맙고 미안하네요

배혜경님, 남편이랑 같이 보기에는 조금 거시기^^하지 않던가요? 저는 워낙 혼자 보는 방식에 길들여져서, 누군가와 같이 영화를 보며 옆자리의 그에게 전달되는 느낌까지 짚어지는 그런 경험이 무척 낯설고도 신선하게 들리네요

이안님, 제가 신랄할 땐 좀 신랄합니다^^ 뭐, 책이든 영화든 열 사람이면 열 가지의 감상이 나올 수 있는 것이므로, 제 감상은 제 내부의 작용으로만 그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의 찬사든 비판이든, 그건 그 사람의 시각이자 감상일 뿐.......본다고 해서 무언가를 명료하게 말해 주는 영화는 아닌 듯싶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으로, 마음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게 좋겠지요?

오후님, 엄살.... 그렇군요, 엄살에 가까운 것..... 저는 심드렁한 겉멋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자신도 그리 도취되지 못하는, 나른한 겉멋부림 같은 것.......
저는 중간중간 졸기도 하다가[아주 드문 경우인데...] 다시 깨어나서 보다 보면 여전히 '나는 외로워, 헌데 다시 사랑할 수 없어, 난 진짜 단 한번의 사랑을 잃어버렸거든' 식으로 징징거리고 있어서...., 게다가 웬 뜬금없는 에스에프적 삽화의 끼어듦? 짜증과 피로 사이를 오가며 견디면서 끝까지 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