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도 수집하죠.

물론 이런 책들은 끝없이 많지만,

한 권이라도 손에 넣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 요슈타인 가아더 외, <마법의 도서관> 중에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09-08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해봤어요. 읽고 싶어지네요. 얄팍한 독서를 일삼는 제가 라일락와인님 덕분에 풍요로워지는 것 같은 예감입니다 ^^

에레혼 2004-09-08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 일찍 다녀가셨네요.
한때 저녁마다 동네 가까운 산에 올라가면서 이 책을 들고 다녔지요. 하산길, 나무의자에 앉아 <마법의 도서관>을 몇 페이지씩 읽다보면, 작은 천국이 따로 없다는 기분이었어요.
재미있고 따뜻한 책이에요.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든 좋아할 만한 이야기이지요. 권해 드립니다.

물만두 2004-09-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지미의 <지하철>이군요... 책을 읽고 전 정말 읽어야 하는 분께 드렸습니다. 하지만 취향과 상관없이 글이 좋더군요. 목소리가 좋다면 누군가 책을 읽지 못하는 분께 글을 읽어드리고 싶은데... 가끔 그런 것이 속상하답니다...

에레혼 2004-09-0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림은 지미의 책에서 빌려왔지요. 어쩐지 여기 어울릴 것 같아서.....
물만두님은 목소리로 읽어주는 대신에 좋은 글로 '책 읽어 주는 여자'이시잖아요, 알라딘의 막강 서재 장인(이런 용어가...ㅜㅜ)

물만두님이 다녀가시면, 쉼없이 부지런히 무공 정진에 힘써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이...^^
 

 

필립 솔레르스의 <여자들>에서 롤랑 바르트는 실제와 비슷한 발음의 '베르트'로 등장한다.


베르트의 말년, 사고 당하기 직전의 그가 생각난다......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어머니는 2년 전에 이미 죽고...... 홀로...... 그는 점차 미소년 취향에 빠져들기 시작했는데, 그건 그가 원래 갖고 있던 경향이 갑작스럽게 강화된 것이었다. 그는 결별, 금욕, 새로운 생, 써야 할 책, 새로운 시작들을 꿈꾸면서도, 이제 오로지 그 생각만 했다.......
....... 예전엔, 그들의 대화는 문학이라든가, 이런저런 작가, 구성이나 서술의 섬세함 등에 관해 이루어졌었다...... 프루스트...... 고립된 채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써보겠다는 극적인 결심...... 그러나 이제는 점차, X와 Z 사이의 정사, 신체의 무기력과 관련된 사소한 심리적 상처들 얘기뿐이다....... 타락보다 더 심리화되는 것은 없다.
...... 나는 많은 호모들에게서 때때로, 똑같이 이상한 인상을 받았다. 내부로부터 먹혀 들어가는 듯, 마치 피층의, 척추의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을 덜 자란 유령의 상태로 이끌어가는 듯...... 뒤틀리고, 음험한 유령들로. 마르면서 굳어 가는...... 점차 틀이 잡혀가고 있는 소금 상(償)....... 말기의 베르트에게서 그것은 뚜렷했다...... 뭔가 부서질 것 같고, 반투명한, 회색빛 도는 흰색의...... 핏기 없는....... 억제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분노와도 같은 것...... 꾸며낸 경쾌함....... 욕망, 질투...... 무거운, 굼뜬 불...... 남이 되는 것, 남과 똑같이 되는 것, 마침내는 흡수와 퇴화로 나와 남이 구별되지 않는 것...... 항상 경계를 늦추지 않는 신경과민...... 발아들이기, 간을 꺼내기...... 베르트에게서 그 과정은 매우 잘 제어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매 순간마다 보이고 들렸다. 자아도취의 심화, 상상 속의 상처를 점점 더 탄탄하게 채우기.....

베르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점차 모든 것에 괴로워하고, 피곤해하고, 혐오했다...... 한쪽에서의 요구, 다른 쪽에서의 탄원.
베르트는 환상 없이, 일종의 약화된 관능성, 변형된 향락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불교신자, 일본 애호가, 약간 의기소침한......

"이제 그는 자기 어머니를 다시 만나겠군"하고 베르트가 수혈대 위에서 숨을 거두려 하고 있는 병원 응급실을 나오며 뎁이 말했다......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여기저기 관들을 꽂고, 마치 물결치는 대로 숨쉬고 있는 커다란 물고기처럼 거기 있었다...... 느리고 기계적인 몸짓으로, 마치 관을 빼고 목숨을 끝내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도 모두들 그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별로 나쁜 상태가 아니라고...... 실제로는 곧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열과 죽음으로 불타는 듯한 그의 눈이 나를 향해 올라왔고, 내가 그에게 몇 마디 억지로 건넸을 때, 그의 입은 "고마워, 고마워"하고 중얼거렸다...... 뭐가? 나도 모르겠다......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내가 그와 함께 있다는 것 말고는...... 전적으로 그와 함께...... 그때는 더운 봄날이었는데,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베르트는 서서히 수직으로, 마치 물에 빠진 사람처럼 멀어져 갔다.  
                         


                       필립 솔레르스, <여자들>(최윤정, 조현실 옮김, 한길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09-0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합니다. 퍼갈게요. ^^
 

 

우리에게는 기호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불가리아 태생으로, 1965년 말에 프랑스로 갔다.
크리스테바는 골드만의 지도 아래 '소설적 진술의 기원'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마쳤다. 그 과정에 그녀는 롤랑 바르트의 강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바르트와의 만남은 그때까지 그녀 자신이 축소 지향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형식주의 문학 접근 방식에 새로운 시선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녀의 정신적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크리스테바는 1966년 5월에 역시 바르트의 강의에 참석하고 있던 제라르 쥬네트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인 필립 솔레르스와 만나게 된다. 당시 바르트의 강의실에서는 말라르메에 대한 솔레르스의 연구 논문이 화제가 되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크리스테바는 솔레르스가 편집을 맡고 있었던 <텔 켈Tel Quel>지에 참여하게 된다. 

한동안 솔레르스의 자의식 강한 다변(多辯)의 세계에 매료돼서, 그의 소설들을 몇 권 읽었다.
그 시작은 <여자들>(한길사)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찾는다, 쳐다본다, 듣는다, 책을 펼친다, 읽는다, 또 읽는다...... 그러나 아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쨌든 공공연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모호한 말들, 안개, 구름, 비유......"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종결 어미로 맺어지지 않는 관념적 명사들의 나열과 잦은 말줄임표.
"세계는 여자에 속한다.
다시 말해 죽음에 속한다.
여기에 관해서 사람들은 모두 거짓을 말한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다가, 롤랑 바르트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장면과 그와의 시간들을 회상하는 대목이 있어 내 눈길은 거기 오래 머문다. 롤랑 바르트, 나는 그를 흠모한다. 그의 언어를, 그의 감성을, 그의 생각의 흐름을, 그의 말하는 법을..... 그는, 역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는 사이 나는 또 오래 전에 읽었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무라이>(내가 가진 책은 1995년에 솔에서 나온 것으로, '武士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를 다시 넘겨보곤 했다. 역시 <사무라이>에도 롤랑 바르트가 자주 등장한다 ('브레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동시대를 산 것이다. 나는 같은 거리를 거닐며 같은 하늘을 바라봤을 그들을 질투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필립 솔레르스를 따로 또 같이 읽는다. 겹침과 미묘한 차이의 듀엣 연주. 동시 다발적인 책읽기의 묘미.
여기 그들의 책에 그려진 롤랑 바르트를 옮겨 놓는다.

 


   
브레알의 시간에 강의실은 완전히 초만원이었다. 그녀는 복도에서 선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느릿느릿하고 선정적인 비브라토였다.
"나는 저렇게 매혹적인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어."
그 우상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발끝으로 서 있던 청바지를 입은 금발 여학생이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브레알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붙잡을 수 없는 알베르틴느(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의 애정의 대상이 되는 여주인공)를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을 묘사한 유명한 대목의 단상들에 접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면서, 프루스트의 텍스트를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로 잘라 나갔다.
....... 동성애나 세속적 위계 질서의 배반이 아니라 질투에 가득 찬 고통스러운 귀와 관계 있는, 예상치 못하던 의미들이 조금씩 명확해졌다.
....... 프루스트의 용어들의 굴곡들을 결합시키면서 브레알의 목소리는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마다 그 아름다움을 새겨놓고 있었다. 그리고 경박한 여인으로 되어 가는 주인공 화자의 사랑에 빠진 변화를 해독하는 데 있어서 박식하면서도 우아한 어휘들을 구사해서 공감을 얻고 있었다.


이와 같이 브레알이 말했다.
"사랑이란 감각적이 된 시간입니다. 결코 육체나 열정에 빠진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감지할 수 있는 추억들로 흔들리는 단어들의 계약인 것입니다. 소리와 색채와 향기들을 지각할 수 있게끔 되었음을 상기시키는 말들입니다."
........ 오로지 브레알의 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대단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동의를 한 것일까? 그녀도 동의를 했을까?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그저 매혹되어 있었다. 마치 철학적 대화나 억제된 경솔함이나, 근거도 없고 전달되지도 않는 공손함에 의해 그러는 것처럼. 도대체 뭔가? 개인의 무질서들은 랩소디의 형식을 빌어야만 완전한 표현을 할 수 있는 한 자유주의자의 취향에 맞춘다는 것이. 그 강의는 정말이지 일종의 랩소디였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중에 이 남자는 익숙해진 기발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텍스트에 옮겨놓고 있었다. 올가는 이렇게 공유된 희열은 결코 자서전적인 고백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발뺌(신중함)은 죽음에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브레알은, 섬약하고 평온하지만, 근거 없는 선생이야. 


....... 브레알의 목소리는 사랑스런 촉감으로 부드럽고 허식에 찬 말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무라이>("무사들", 홍명희 옮김, 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09-0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 제가 열렬히 사모하는 남자입니다. 사랑의 단상, 신화론, 이미지와 글쓰기... 겨우 요렇게 밖에는 읽지 못했지만 그를 정말정말 사모합니다. 필립 솔레르스의 여자들 읽어보고싶네요. 님의 서재 문을 열고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가 없네요. 감사해요, 라일락와인님....

stella.K 2004-09-0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서재에서 보고 왔습니다. 음~이런 좋은 페이퍼가 있었다니...! 추천하고 퍼갈께요.^^

에레혼 2004-09-19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님도 저의 경쟁자이시군요^^. 그는 정말 혼자서만 조용히 사랑하기에는 너무 경쟁이 치열해요. 그래서, 조금 분발해 봤답니다.
필립 솔레르스의 <여자들>은 저도 우연찮게 헌책방에서 구했는데, 지금은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도 1권만 있을 뿐.....어쩌면 2권은 아예 출판이 안 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거의 판매가 안 됐을 거란 짐작이 들거든요.

아직 제 서재에서 못 빠져 나간 건 아니겠지요^^

에레혼 2004-09-08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도 오셨군요, 그의 기척을 듣고......
이런 매혹적인 강의 듣고 싶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그러게 공부할 때 '연애하듯이'만 했으면 좋았으련만......
무엇에라도 '사로잡혀서 빠져들고 싶은' 가을날입니다.
스텔라님, 행복한 날 맞으세요.

2004-09-1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이거 일일이 이렇게 안밝혀도 되지요?

에레혼 2004-09-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나님, 일요일 아침에 일찍 찾아와 주셨네요...
가져가실 만한가요?
고맙습니다.
 

 

Ibrahim Ferrer & Omara Portuondo - Silencio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아바나의 해변에는 어떤 파도가 몰려오고 있을까

저 목소리, 저 눈물, 저 미소, 저 주름살 아래의 그 모든 것들......

 

누군가가 그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쥐비알 동문선 현대신서 113
알렉상드르 자르댕 지음, 김남주 옮김 / 동문선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이제 네 나이 서른을 넘고 마흔을 넘어 누군가의 남편, 아내라는 이름, 그리고 아비, 어미 된 자의 무게를 낙타의 등짐처럼 지고 타박타박 걸어가다 보니,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려도 아무렇지 않은 듯 딱딱하고 바싹 마른 빵 같은 일상을 질기게 씹으며 견뎌 내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겠지?  인생은 결코 '네 멋대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서 '사느라고 어쩔 수 없이 진 빚'들을 세상에 갚아 나가는 것 -- 그게 산다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 요즘 이렇게 말하곤 하는 너의 곁에 슬쩍 밀어넣어 주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긴 설명 따위 없이 그저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하나 있다.
아니, 그런 게 삶이라고? 그런 게, 설마, 네가 살고 싶은 삶이었던 건 아니겠지? 여기, 산다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고 온몸으로 외친 사람, 어느 한 순간도, 일상의 단 한 조각도 자기 자신이 아닌 것으로 채워질까봐 소스라치게 경계하며 경탄할 만큼 자기 자신에게 충실했던 이 사람을 한번 만나 보라고. 어느새 뻣뻣하고 무미건조하게, 신념 따위와 무관하게 흔들림 없이, 혼자 있어도 덤덤하고 부담 없이 무난한 어른이 되어 버린 너는 그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내게 또는 너에게 이렇게 묻고 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아마도 우리가 이 세상에 와서 풀어야 할 유일한 숙제일 그것, 바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우리는 왜 그토록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며 주저하며 살고 있는 걸까.

"짐짓 경박한 체할 때조차도, 아니 그런 때일수록 본질적인 삶을 누리는 데 몰두했던 사람... 그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자신을 완벽히 표현하고, 자신의 진실을 거리낌없이 주장하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은 지상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는 모순 투성이인 자기 본성을 단 1그램 잘라낸다는 생각만으로도 파랗게 질렸으리라."


그토록 자신의 갈망과 모순에 완벽하게 접근한 사람, 그렇게 오만하게 존재의 위험을 무릅쓰며 자신에게 충실하려고 한 사람이 바로 '쥐비알'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파스칼 자르댕이다. 이 책을 쓴 '쥐비알'의 아들 알렉상드르 자르댕의 설명에 따르면, '쥐비알'은 코알라, 맥( ), 얼룩말, 긴팔원숭이간의 잡종이라고 할 수 있는 특이한 동물이라고 한다. 이 희귀한 동물은 감정 이입에 있어서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상대의 감정을 즉각 알아차리고 환희이든 슬픔이든 더할 수 없이 진하게 그것에 동화되는 '감정의 바로미터'인가 하면, 다른 한편 즐겁게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쥐비알에게는 고단한 인생을 매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절실하게 살아낼 줄 아는 재능이 있다. 그의 일상은 있음 직하지 않은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상충되는 행동이야말로 그의 특기였다...... 초대받은 만찬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아버지는 거리낌없이 지루하다고 말하고 여주인의 손에 입을 맞춘 다음 자리를 떴다. 원하는 여자가 유뷰녀라면? 그녀의 남편에게 알려지는 것에 아랑곳없이 바로 그날 밤 그 여자를 납치하기 위해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의 담을 넘었다."


재기발랄하고 유머 넘치고 시끌벅적한 한바탕 모험의 연속인 듯한 쥐비알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축은 바로 자신의 본성을 밑바닥까지 탐사하고 싶은 욕망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으로 살아 있고 싶어했고, 사람을 마취시키는 일상 속에 매몰되는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언뜻 돈 키호테와 닮은 듯 보이는 충동적이고 무모한, 그래서 종종 사람들의 상식과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그의 행동들은 어쩌면 자기 안의 광기를 믿어 주려는 용기이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보다 위대한 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욕구에 충실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그의 유쾌하고 낙천적인 믿음 뒤에 지울 수 없는 그림자처럼 삶에 대한 깊은 절망과 운명에 무릎 꿇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깔려 있음을 본다. 쥐비알은 '자기 자신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운명이 부과하는 절망에 대한 하나의 치유책, 하나의 해결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너에게.

쥐비알을 만나는 동안 네 안에서 졸고 있는 온갖 충동적인 인물들이 되살아나기를, 삶의 순간 순간에 감탄할 수 있는 역량이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 받기를, 스스로의 모순들이 불러일으키는 아찔함을 받아들이게 되기를, 다른 이들로부터 판단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따위 내던져 버릴 수 있기를, 경박하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살 줄 알게 되기를, 그리하여 지혜로워진 끝에 마침내 충동적이 될 수 있기를, 무엇보다 스스로의 심연을 건너는 일이 너에게 오직 진정한 기쁨임을 깨닫게 되기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09-0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개된 내용보니 참 좋구만 상품 평점은 왜 그렇게 야박하게 주셨나요?
정말 궁금합니다.

에레혼 2004-09-0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가 좀 박했나요?
글쎄, 그 별점의 기준이란 것... 제가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라, 별점이란 걸 매길 때마다 자의적이고, 변덕스럽고, 들쑥날쑥하고 그렇지요, 그래서 마지막 클릭하는 순간 좀 주저하게 되기도 하구요.
그래도 굳이 '야박했던' 이유를 찾아보자면, 읽는 동안은 촉촉하게, 뿌듯해 하면서 읽었는데요, 아무래도 이 글의 성격이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삶을 자기의 시각에서 포착해서 그려낸 것이니까, '쥐비알'이라고 불리는 파스칼 자르뎅의 실제 삶이 이 글보다는 더 넓고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해 낸 세계가 아닌, 실제의 삶이 글보다 더 '진하고 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책'임에도 별 두 개 뺐어요, 그래도 역시, 좀 야박했지요?

플레져 2004-09-08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인님 진짜 야박하시넹...ㅎㅎ
욕심쟁이같지만, 님 덕분에 좋은 책 "또" 알게 되서요, 저 이 책 읽어볼래요.
제가 별 몇 개 줄지 기대하세요...^^ 읽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셨으니, 추천합니다~!

에레혼 2004-09-0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은 진짜 후하시네요, 추천까지 해주시고^^
자주 놀러오셔서 좋아요
후덕한 님은 별을 몇 개나 얹어 주실지, 지켜보고 있을게요.

근데 플레져님만 뵈면, 플라맹고를 배우고 싶다는 숨은 욕구가 다시 고개를 들곤 합니다, 이 村에는 배울 데도 없는데.....몰라요, 책임지세욧~~!

2004-09-19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쥐비알 읽을래요, 제목도 리뷰도 다 구미가 당기게끔 조작되어 있군요..ㅋㅋ 오늘 아침 책을 읽으며 문득 떠오른 말이 '나를 버리기' 와 '안 읽어도 된다' 였는데...연관이 있는 것 같군요. 그나저나 책을 읽으려면 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것두 하기싫은 게으름은 어떡해야 하는지 스캇펙에서 좀 물어봐 주서요..저 지금 집에 혼자 있어서 무지 기분 좋아요..룰루~

에레혼 2004-09-19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게으름에게 자신을 기대세요, 아주 느슨하고 가볍게...... 나중에 그 기댐이 버거워지면, 게으름 제가 출구를 가리켜 줄 테지요.
쥐비알 같은 아버지를 만났다면, 인생이 참 많이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내 인생이 지금 이런 모습인 걸 누구 탓을 하겠어요.....
식구들 다 나가고 혼자 집에 있을 때의 그 공간감, 굉장히 뿌듯하지요, 아무 것도 안 해도 기분 좋고 배 부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