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기호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불가리아 태생으로, 1965년 말에 프랑스로 갔다.
크리스테바는 골드만의 지도 아래 '소설적 진술의 기원'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마쳤다. 그 과정에 그녀는 롤랑 바르트의 강의에 참석하게 되는데, 바르트와의 만남은 그때까지 그녀 자신이 축소 지향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던 형식주의 문학 접근 방식에 새로운 시선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고, 그녀의 정신적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크리스테바는 1966년 5월에 역시 바르트의 강의에 참석하고 있던 제라르 쥬네트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인 필립 솔레르스와 만나게 된다. 당시 바르트의 강의실에서는 말라르메에 대한 솔레르스의 연구 논문이 화제가 되고 있었고, 이를 계기로 크리스테바는 솔레르스가 편집을 맡고 있었던 <텔 켈Tel Quel>지에 참여하게 된다.
한동안 솔레르스의 자의식 강한 다변(多辯)의 세계에 매료돼서, 그의 소설들을 몇 권 읽었다.
그 시작은 <여자들>(한길사)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시도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찾는다, 쳐다본다, 듣는다, 책을 펼친다, 읽는다, 또 읽는다...... 그러나 아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쨌든 공공연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모호한 말들, 안개, 구름, 비유......"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종결 어미로 맺어지지 않는 관념적 명사들의 나열과 잦은 말줄임표.
"세계는 여자에 속한다.
다시 말해 죽음에 속한다.
여기에 관해서 사람들은 모두 거짓을 말한다."
그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이 책을 읽다가, 롤랑 바르트가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장면과 그와의 시간들을 회상하는 대목이 있어 내 눈길은 거기 오래 머문다. 롤랑 바르트, 나는 그를 흠모한다. 그의 언어를, 그의 감성을, 그의 생각의 흐름을, 그의 말하는 법을..... 그는, 역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는 사이 나는 또 오래 전에 읽었던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사무라이>(내가 가진 책은 1995년에 솔에서 나온 것으로, '武士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를 다시 넘겨보곤 했다. 역시 <사무라이>에도 롤랑 바르트가 자주 등장한다 ('브레알'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동시대를 산 것이다. 나는 같은 거리를 거닐며 같은 하늘을 바라봤을 그들을 질투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필립 솔레르스를 따로 또 같이 읽는다. 겹침과 미묘한 차이의 듀엣 연주. 동시 다발적인 책읽기의 묘미.
여기 그들의 책에 그려진 롤랑 바르트를 옮겨 놓는다.
브레알의 시간에 강의실은 완전히 초만원이었다. 그녀는 복도에서 선생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느릿느릿하고 선정적인 비브라토였다.
"나는 저렇게 매혹적인 사람을 들어본 적이 없어."
그 우상을 조금이라도 보려고 발끝으로 서 있던 청바지를 입은 금발 여학생이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브레알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붙잡을 수 없는 알베르틴느(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의 애정의 대상이 되는 여주인공)를 가슴 아프게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을 묘사한 유명한 대목의 단상들에 접하는 것에 재미를 붙이면서, 프루스트의 텍스트를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로 잘라 나갔다.
....... 동성애나 세속적 위계 질서의 배반이 아니라 질투에 가득 찬 고통스러운 귀와 관계 있는, 예상치 못하던 의미들이 조금씩 명확해졌다.
....... 프루스트의 용어들의 굴곡들을 결합시키면서 브레알의 목소리는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마다 그 아름다움을 새겨놓고 있었다. 그리고 경박한 여인으로 되어 가는 주인공 화자의 사랑에 빠진 변화를 해독하는 데 있어서 박식하면서도 우아한 어휘들을 구사해서 공감을 얻고 있었다.
이와 같이 브레알이 말했다.
"사랑이란 감각적이 된 시간입니다. 결코 육체나 열정에 빠진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감지할 수 있는 추억들로 흔들리는 단어들의 계약인 것입니다. 소리와 색채와 향기들을 지각할 수 있게끔 되었음을 상기시키는 말들입니다."
........ 오로지 브레알의 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대단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동의를 한 것일까? 그녀도 동의를 했을까?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그저 매혹되어 있었다. 마치 철학적 대화나 억제된 경솔함이나, 근거도 없고 전달되지도 않는 공손함에 의해 그러는 것처럼. 도대체 뭔가? 개인의 무질서들은 랩소디의 형식을 빌어야만 완전한 표현을 할 수 있는 한 자유주의자의 취향에 맞춘다는 것이. 그 강의는 정말이지 일종의 랩소디였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중에 이 남자는 익숙해진 기발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의 텍스트에 옮겨놓고 있었다. 올가는 이렇게 공유된 희열은 결코 자서전적인 고백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발뺌(신중함)은 죽음에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브레알은, 섬약하고 평온하지만, 근거 없는 선생이야.
....... 브레알의 목소리는 사랑스런 촉감으로 부드럽고 허식에 찬 말들을 전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가보고 싶었다. 물론, 그럴 필요는 없었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무라이>("무사들", 홍명희 옮김, 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