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61.109.246.11/mv3/old/n/n052.asf

Unforgettable - Natalie Cole & Nat King Cole

11월이 되자 마음이 자꾸 애잔해진다

시간과 바람 사이에 어떤 긴장된 공감이 채워지고 있다

사방에서 희미한 목소리들이 아우성친다

새벽마다 안개가 마을을 뒤덮는다

그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오는 것들

잊혀지지 않는,  잊을 수 없는,  사라진 줄 알았으나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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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11-05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 곡도 추억의 곡인데. 동시대의 공기엔 동감의 바이러스도 공유되는 건지..

에레혼 2004-11-05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지금 제 방에 머물러 계시는군요..... 동감의 바이러스에 자꾸 감염되고 싶은 시절인가 봐요, 이즈음......

얼마 전 방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사진 꾸러미를 발견하고는, 또 그 자리에 앉아 한참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았지요. 문득 그 정지된 장면들 속에 담긴 모든 것이 재생되기 시작... 그때의 날씨, 공기의 움직임, 그 시선이 가닿은 곳, 미소의 의미, 그 거리의 햇살, 그 순간 나를 스쳐지나가던 심상...... 왜 그런 것들은 잊혀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건지...... 우스꽝스러울 만큼 길치이고, 방향치이고, 숫자치인 데다 한두 번 만난 사람들 얼굴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저인데 말이지요...

로드무비 2004-11-0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르하바님, 오늘 저는 모처럼 서재에 종일 눌러앉아 있네요.

재밌슴다.ㅎㅎ

그나저나 님은 요즘 페이퍼 올려놓고 찐득허니 앉아계시는 것

같지 않습디다? 바쁘신가 봐요.^^

님의 글을 읽으니 '사진에 관하여'라는 김화영 씨의 산문이 생각나네요.








에레혼 2004-11-0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오늘 님의 페이퍼 덕분에 '메르하바'란 이름도 새삼 떠올려 보게 됐네요...



우리나라에 소개된 터키 영화가 <욜>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놀랍더군요...... 'Yol'은 터키 말로 '길'이란 뜻이라지요? 오늘, 간간이 'uzak' 'uzak'...이란 말을 속으로 되뇌어 보곤 했어요.



언제 시간과 마음이 같이 움직여지면 제가 터키에서 만났던 길의 풍경도 얘기해 보고 싶어요, 천천히,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같은 행보로......
 



 Noon in the Neighbourhood of Moscow by Ivan Shishkin

같이 걸을까요? 날도 이렇게 좋은데......

벨 소리가 울려 문을 여니, 문 앞에 처음 보는 얼굴의 여자가 서 있다. 자주색 츄리닝 차림에 조금은 파리한 낯빛. 말없이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내 표정에 수줍음 반 망설임 반인 목소리로 "저, 앞집인데요" 한다.
의아함과 가벼운 경계심을 풀고 나도 멋적게 "아, 네......"하고 말을 받는다.
"산에 같이 안 가실래요?"
여자는 한번 입을 떼자 그때부터 갑자기 말문이 터진 명랑한 계집아이처럼 경쾌해진다.
"어제 남편이랑 같이 요 앞 산에 올라갔다 왔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코스도 다양하게 있어서 그 날 그 날 상태에 따라서 골라서 올라가면 될 것 같아요. 저, 지금 한번 가보려는데, 같이 안 가실래요?"
"아, 네......"
나는 그것 말고는 적당한 응대의 표현을 알지 못한다는 듯 또 그렇게 말을 받고는 잠시 궁리한다.
"저도 요 며칠 저녁때마다 동네 한 바퀴씩 돌다 오곤 했는데, 참 좋더군요. 근데 오늘, 내일은 좀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시간 맞춰서 같이 한번 가도록 해요."
"네, 그럼 그렇게 해요...... 집에만 있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날도 좋고, 가까이 산도 좋은데......."
여자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가볍고 발랄하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간다.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조금 후에 나가 봐야 할 일이 있긴 했다.
허나 그럴 계획이 없었다 해도 선뜻 내가 여자의 제의를 받아들여 운동화를 꿰신고 나서게 됐을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의 제안 자체는 신선하고 유쾌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사와서 나누는 첫 인사가 접시에 담긴 떡 돌리기인 것에 비하면, 이 편이 훨씬 귀엽고 정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나는 곧 이어 며칠 뒤 앞집 여자와 산행을 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뚜렷한 불안과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동안 서로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지. 나이, 취미, 남편의 직업, 또는 자신의 일, 지금까지 살아 온 대략의 이력, 요즘 관심 있어 하는 것,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 아마 그런 얘기들을 하게 되겠지.
나는 이웃이라든가, 동년배 그룹이라든가, 학부모 모임이라든가... 이런 식으로 엮인 사람들과 그 일정한 테두리 안에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직, 늘, 여전히 서툴고 어색하다. 무엇을 어느 선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어법으로 말해야 서로 부담 없이 편안한지, 그런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소통을 공유할 수 있는 건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공감하는 주제는 어떤 것인지....... 그런 것에 관한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한번 후루룩 훑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 내 또래의 여자들이 갖고 있는[갖고 있으리라고 짐작되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주제들에서 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 늘 현실 속에 두 발을 균형 있게 딛지 못하고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을 부유하고 있다는 자의식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자의식쯤이야 내가 우려하는 것처럼 그리 기이하거나 특이한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 안의 소심함과 예민함은 앞지른 우려를 하게 만든다. 가끔 나 자신을 '타인의 시선'으로 들여다보면,   

결혼을 하고 살림이란 걸 처음 시작했을 때,  내가 세웠던 생활의 원칙(?) 중에 하나는 아침마다 식구들 다 나가자마자 "커피 한잔 하러 와"하며 줄창 내 집 네 집 넘나들며 일상을 같이 나누는 '모닝 커피 친구' 즉, 동네 아줌마 친구는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가족처럼 지내는 이웃'이란, 생활의 편의를 공유하는[서로 돕고 사는] 친밀감과 정을 나눈다는 장점에 비례해, 무심한 간섭과 침해가 수시로 일어날 수 있는 '잠재적 폭력'이 내재해 있는 관계인 것이다. 나는 내 일상 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런 친밀한 관심과 무분별한 침해가 두렵고 끔찍했다. 수시로 드나들며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같이 시장을 보고 목욕을 가고 같이 TV를 보고 서로 반찬 접시를 들고 오가며 간간이 같이 놀러도 다녀야 하는 그런 관계의 지형학........ 또 다른 혈연 관계와도 같은 의무와 책임과 관습이 부과되는.......

'모닝 커피 친구'를 두지 않겠다는 나의 원칙이랄까, 그런 자기와의 약속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를 '혼자 잘 노는 사람'으로 강화시켜 준 대신에 일상의 친구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나는 영화를 혼자 보러 다니며,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간다. 혼자여서 간혹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도 있지만, 대개는 편안하고 익숙하고 평온하다. 누구와 시간을 맞추거나 내키지 않는 상황에 마음을 맞춰야 할 일이 없으므로. 그리고, 혼자 있어서 느끼는 심심함이나 외로움은 누군가와 같이 있으면서 느끼는 지루함과 피곤함보다는 더 심신에 유익하다고 자위한다.

나의 사정이 이러한 터라, 앞집 여자의 가볍고 유쾌한 산행 제안 뒤에 나의 마음은 사뭇 복잡하고 꼬인 행로를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의 말마따나 "날도 좋고, 산도 좋으니까" 그 좋은 것을 같이 나눠 가지면 그야말로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며칠 뒤 나는 옆집 여자와 도란도란 무언가를 얘기하며 낮은 산길을 걸어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산길에는 그런 '관계의 시간'이 생각보다 제법 유쾌하고 가뿐했다는 느낌에 몸도, 마음도 발그레하게 상기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산책은, 내가 이끌리는 걷기는 바로 이런 모습, 이런 풍경이다. 혼자서 낯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처음 온 거리를 걷듯이 낯선 눈으로 기웃거리며 천천히 거니는 것. 그리하여 내가 풍경 속으로 한 발 한 발 들어가고, 풍경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점차 저무는 풍경처럼 내가 엷어지고 지워지면서 경계가 지워져 가는 것, 더 이상 나를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어떤 지점, 어떤 순간........

 

 Street in Venice by John Singer Sargent

혼자, 낯선 사람들 속을, 처음 온 거리인 듯, 그렇게 기웃거리며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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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04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우리는 각각 혼자 같이 걸읍시다.^^

2004-11-04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11-04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한 선배가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함께 오르는 지인과 한 마디 말도 주고받지 않고, 그저 서로의 생각에만 빠져 있었지요. 그러나 둘의 간격이 벌어지면 그저 한쪽에서 가만히 기다려만 주고. 옆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친구,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 이따금 확인하면 그것으로 족한 친구. 전 혼자보다는 그런 이와 함께 걷고 싶어요.

urblue 2004-11-0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속의 여자, 라일락와인님 같습니다.

2004-11-05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레혼 2004-11-0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각각 혼자 같이.... 그런 현명한 방법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지금 우리처럼!



선인장님, 옆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친구,그저 옆에 있다는 것만 이따금 확인하면 그것으로 족한 친구...... 그런 벗을 곁에 두고 있다면 참 잘 살아 온 삶이 아닐까 싶어요. 하기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벗이 돼 줄 수 있느냐 아니냐를 먼저 생각해봐야 할 듯..... 전 '관계'에서는 자신에게 늘 평균치 이하의 점수밖에 줄 수가 없어서..... 그런 친구를 바라는 것이 제게는 과욕이 아닌가 싶어요.



유아블루님, 느낌이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에레혼 2004-11-0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하신 분이 두 분이라....... 차례대로, 그 님들은 알아보시겠지요?^^



...... 님, 저는 일찌기 알아봤는걸요. 님이 나와 同種의 사람이라는 걸...... 전 받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는 늘 불쑥 '침입'하듯 울려오는 전화도 '공격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긴요한 용건이 있는 경우 말고는 전화로 그저 수다를 떠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답니다. 지인들은 그런 절더러 가끔 손가락이 부러졌냐고도 한답니다. 실은 커피도 혼자 마시는 커피가 맛있고, 영화도 혼자 보는 영화가 맛있어요! 제대로 음미할 수 있지 않나요? 그 순간의 맛을, 그 순간의 그것과만 독대함으로써....... 이 아침에 님도 혼자 커피를, 저도 혼자 커피를 마시며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이도 나름대로 조용한 '소통의 시간'이지요!



...님, 언젠가부터 저에게 님은 '모닝 커피 친구'처럼 느껴져요. 좋은 의미에서요...... 이만큼의 거리와 친밀감이 서로에게 쾌적하다고 느껴지지 않으세요? 적당히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구요^^ .

이웃집 '아줌마 친구'가 없으면 생활면에서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있기는 해요, 그때그때 유용한 살림 정보를 귀동냥할 기회도, 물건을 싸게 '공동 구매'할 기회도 없고, 인근의 새로 생긴 맛집이나 찜질방 같은 데도 잘 모르게 되구요......

그래도 이젠 혼자 슬슬 걷는 방식이 몸에 익어서 누군가와 동행하는 산책이 좀 부담스럽고 난감하게 느껴지니, 어쩔 수 없지요.

님의 방에 마실 갈 생각에 마음이 설렙니다, 건강 해치지 말고 일 부지런히 마치시고 서재에 초대해 주세요!
 


 

 

 

 

 

 

 

 

 

 

 

 

 

 

 

 

 

 

 

이런 기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끝없이 다시 돌아 내려가야 할 것 같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 가고, 아직 입에도 설고 마음에도 선 11월의 첫날이 오고, 그 사이 알라딘 사이트는 개편을 하느라 아주 느린 동작으로 문을 열어줬다 안 열어줬다 한다. 꼭 해야 하는, 불가피한 변화가 아니라면 이제는 변하는 것들, 새로운 변화라는 것이 편치 않다. 굳이 의식하려 들지 않지만, 미미한 두려움도 거기 섞여 있음을 안다. 
어쨌든 내가 원치 않은 이런 변화가 없었다면, 나는 그 시간쯤이 되면 꼭 커피를 한잔 마셔 줘야 하는 것 마냥 어느새 몸에 붙은 습관으로 몇 개의 페이퍼를 설렁설렁 올려놓았을지 모른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또 다른 형태의 도망은 아니겠지.
지금, 잠시, 숨 멈추고 걸음을 쉬고 있는 자신을, 낯선 눈으로 바라본다.

물기 없이 축축한, 온기 없이 다정한 그 기운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바라보는 눈길에서, 아니면 그 눈에 비쳐지고 있는 타인 같은 자신에게서.

다시 가자. 저 한없는 미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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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0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라일락와인님. 문을 열어줄까 말까 약올리는 것처럼......
피를(?) 토하는('')(..) 듯한 리뷰나 페이퍼는 당분간 안 써야겠어요. 히히~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지러워요. 그냥 커피 마시며 얘기나 나누는 게 어때요?^^

물만두 2004-11-0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서워요... 저 공포증있다구요 ㅠ.ㅠ

2004-11-03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1-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 먹고 와서 코멘트 답니다. 라일락와인님이랑 맨 꼭대기에 같이 올라가서 우스갯소리 같이 해보고 싶어요. 아~ 어지러워, 이럼서요. ^^

에레혼 2004-11-0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냥 커피 마시며 하는 얘기, 실은 거기에 내공의 진수가 있을지도 몰라요^^ 물만두님, 문득 히치콕의 '현기증'이 떠오르네요, 추리소설 매니아인 님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니...... 귓속말의 오즈마님, 아아, 그 주소는 바로 저희 앞집 주소이군요, 내일 아침에 앞집에 가서 물어 봐야겠네요...... 프로포즈를 할 기회, 아주 멀어져 버린 건 아닌 듯! 이게 얼마만에 온 설렘인데, 그냥 놓쳐 버리겠어요? 그럴 순 없지요. 이 안님, 우리 꼭 한번 그래요, 남산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서이든, 63빌딩의 꼭대기에 올라서이든...... 무거운 얘기 말고, 우스갯소리로요! 아, 어지러워, 이러면서..... 아니면 우리 번지점프라도 함 할까요?
 

 

몸무게를 달아보니

65킬로그램

먼지의 무게가 이만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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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먼지가 아니라 풍요의 무게겠지요^^

2004-11-02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없는 이 안 2004-11-03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글(!)과 사진이네요. 라일락와인님,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요.
이젠 며칠 못 보면 퍽 오랫동안 적조한 것 같다니깐요. ^^

에레혼 2004-11-11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풍요의 무게가 아니라 풍만의 무게, 아닐까요^^

귓속말님, '라와'라는 약칭으로 불러주시니, 또다른 뉘앙스가 생긴 듯합니다. '나와 ...(me & ...)'라는 의미 또는 '나와(come out)'라는 의미..... 이렇게 갖다 붙이면서 잠시 말장난을 해봤답니다.

새벽별님, 공감의 표시이겠지요(특히 체중의 숫자!)?^^

이 안님, 그렇죠? 가만히 꼽아 보면 며칠 안 됐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그냥 흘러간 것 같이 느껴져요. 적조함... 이 '시간의 상대적이고 심리적인 측량'은 아마도 서재폐인의 한 증상이겠지요?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제 4권 <호수의 여인>(북하우스)이 출간되었다.

<하이 윈도> <빅 슬립> <안녕, 내 사랑>에 이은 네 번째 책......

나는 어떤 위험한 상황에도 쿨한 농담과 적절한 비유를 빼놓지 않는 필립 말로에 기꺼이 매료당한다.

실제로 그와 같은 사람을 현실에서 만난다면 그 오만함과 냉소적 태도에 밥맛 없어할지 모르겠지만, 챈들러가 그려낸 필립 말로는 '스타일리스트'이고 '쿨 가이'이다!

[챈들러의 독특하고 뛰어난 묘사에 대해서는 5월 29일 '독서일기' 에 적은 바 있다.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525710]

 

"여기 이 비열한 거리를 지나가야만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자신은 비열하지도 않으며 세속에 물들지 않았으며 두려워하지도 않는 사람."

챈들러의 에세이 <간단한 살인 기술>에 나오는 이 문구는 필립 말로라는 캐릭터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은 이 구절에서 따와 <비열한 거리>를 자신의 영화 제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은 웹에서 이런 글을 찾았다.

이 글은 하루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단편에 대한 오마쥬로 쓴 글이라고 한다.

 

 

 

 

 

사우스베이 스트리트「サウスベイストラット」

 

<캉가루 날씨 (カンガル-日和)>(1983, 헤이본샤(平凡社)

 

무라카미 하루키

 

 

 

남캘리포니아의 대부분의 지역이 그러한 것처럼, 사우스베이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물론 전혀 내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비가 내린다는 현상이 어떤 반응을 수반하는 기본적 관념으로써 사람들 속에 깊이 스며들 만큼 내리지는 않는다. 즉 보스턴이나 피츠버그에서 온 누군가가 "정말 비가 내리는 것처럼 지긋지긋하군" 하고 말했다고 해도, 사우스베이 사람들이 그 뉘앙스를 이해하는 데는, 남들보다 반 호흡 정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이다.

남캘리포니아라고 해도, 사우스베이에는 서프 포인트도 없고, 핫 로드 코스나 영화 배우의 저택도 없다. 단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을 뿐이다.

이 도시에는 레인코트보다는 불량배가 훨씬 많고, 우산보다는 주사기의 수가 더 많다.

만의 입고 부근에서 근근히 생계를 꾸려 가고 있는 새우잡이 어부가 가슴에 45구경 총알 세 발을 맞은 사체를 끌어올렸다고 해도, 그것은 그다지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니며, 롤스로이스를 탄 흑인이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해도, 게다가 그가 은빛의 시가렛 케이스로 젊은 백인 여자를 후려치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그다지 보기 드문 풍경이 아니다.

요컨대 사우스베이는, 젊은이들이 영원히 젊고 그 눈동자는 바다 색과도 같은 블루라는, 그러한 타입의 남캘리포니아는 아닌 것이다. 우선 사우스베이의 바다는 푸르지 않다. 거기에는 중유가 떠 있고, 선원들이 내던진 담배꽁초 때문에 때아닌 바다의 불길을 구경하게 되는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영원히 젊다고 할 만한 것은 죽은 젊은이들뿐이다.

물론 나는 관광을 하러 사우스베이를 찾아온 게 아니며, 모럴을 구하러 찾아온 것도 아니다. 어느 경우든 간에, 사우스베이 시티보다는 오클랜드의 시립 동물원으로 가는 편이 훨씬 낫다.

내가 사우스베이를 찾아온 것은, 한 젊은 여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그 일을 의뢰한 사람은 로스엔젤레스의 교외에 살고 있는 중년의 변호사며, 내가 찾는 젊은 여자는 이전에 그의 비서였다. 그녀는 어느 날 몇 장의 서류와 함께 모습을 감추었는데, 그 서류에는 매우 개인적인 한 통의 편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흔히 있는 이야기다.

그리고 1주일 후에, 그 편지의 복사본과 조심스러운 요구라고는 보기 어려운 액수의 돈을 요구하는 편지가 날아든다. 편지에는 사우스베이 시티의 소인이 찍혀 있다. 변호사는 그 정도의 돈이면 지불해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5만 달러 정도의 돈 때문에 세계가 뒤집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만일 편지의 원본 자체가 되돌아왔다 하더라도 협박자에게는 아직 몇 다스의 복사본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도 흔히 있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립 탐정이 고용된다. 하루에 120달러와 필요한 경비, 그리고 2000달러의 성공 보수가 주어지는 싼 일거리다.

남캘리포니아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아무도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여자의 사진을 손에 들고, 사우스베이 일대의 바와 클럽 등을 모조리 찾아다녔다. 이 도시에서 재빠르게 누군가를 찾아내고 싶으면,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프스테이크를 한 쪽 손에 들고 상어의 무리 속을 걸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반드시 누군가가 덤벼들게 마련이다.

그 반응은 기관총의 총알일지도 모르고, 도움이 되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반응인 것은 분명하고, 내가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나는 사흘 동안 돌아다니면서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의 이름을 수백 명의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다음에, 방에 틀어박혀 캔 맥주를 모조리 비우고 45구경 권총을 소제하면서 그 반응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반드시 무엇인가가 찾아온다는 것을 직업적인 직감력으로 알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기다리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틀이나 사흘 동안 방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신경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이런 데서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밖에 나가 세상 사람들을 들쑤시고 돌아다니는 편이 더 빠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주의 사립 탐정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기다렸다. 나는 서른 여섯 살이라 아직 죽기는 이르고, 그리고 적어도 사우스베이의 소변 냄새가 풍기는 골목 안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

사우스베이에서는 사체보다는 손수레가 더 정중히 다루어진다. 일부러 그러한 거리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반응은 사흘째가 되는 날 오후에 나타났다. 나는 테이블 뒤에 45구경 권총을 껌 테이프로 부착하고, 소형 리볼버를 손에 들고 방문을 2인치쯤 열었다.

"양손을 방문에 대고 있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는 일찍 죽고 싶지는 않다. 비록 싼 일거리긴 해도, 나는 나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인간인 것이다.

"알았어요, 쏘지 말아요."

여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천천히 방문을 열어, 여자가 안으로 들어오게 한 다음에 문을 잠갔다.

사진과 같은, 아니 사진 이상으로 멋진 여자였다. 근사한 금발과 로켓과도 같은 유방 --- 중년 남자가 열중해 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녀는 몸에 꼭 맞는 원피스 차림에, 구두 뒤축이 6인치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에나멜 핸드백을 손에 든 채로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버본밖에 없는데 마시겠어요?"

"마시겠어요."

나는 손수건으로 잔을 닦은 다음, 거기에 올드 크로우를 절반쯤 따라 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는 한 모금을 맛보고는 절반쯤 쭉 마셨다.

"아름다운 우정의 시작인가요?"

"그러면 좋겠지만 우선 편지 이야기를 합시다" 하고 나는 말했다.

"좋아요. 편지 이야기요. 로맨틱하군요. 하지만 대체 무슨 편지에요?" 하고 여자가 물었다.

"당신이 훔쳐가고, 그것을 증거로 삼아 누군가를 협박한 편지말이오. 아직 생각나지 않나보죠?" "생각나지 않아요. 그리고 나는 편지 따위를 훔치지 않았는데요." "그럼 로스엔젤레스의 변호사 밑에서 비서로 일한 적도 없어요?" "물론이에요. 나는 다만 이리로 와서 당신과 좋은 일을 하면 100달러를 받을 수 있다고......"

검은 덩어리가 내 위의 입구로 치밀어 올라왔다. 나는 여자를 바닥에 쓰러뜨리고는, 테이블 밑의 45구경 권총을 뜯어내고, 침대 밑에 엎드렸다. 이와 거의 동시에 기관총의 총알이 진 크루퍼의 드럼롤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방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것은 문을 부수고, 잔을 깨고, 벽지를 찢어 버리고, 꽃병의 조각들을 방 안에 흩뜨리고, 매트리스를 솜사탕처럼 만들어버렸다. 톰프슨 기관총풍 세계의 재구축인 셈이다.

그러나 기관총이라는 것은, 그 요란스러움에 비해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고기를 다지는 데는 적합하지만, 사람을 정확히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아니다. 말이 많은 여자 컬럼니스트와도 같다. 요컨대 경제 효과의 문제다.

총알이 다 떨어져 철컥 소리가 나는 걸 확인한 다음에 나는 일어서서, 황홀하리만큼 재빠른 속도로 잇달아 네 번 방아쇠를 당겼다. 두 발은 반응이 있었지만, 나머지 두 발은 빗나갔다. 5할의 확률이면, 다저스 팀의 4번 타자는 할 수 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의 사립 탐정 노릇은 할 수 없다.

"썩 잘하는군" 하고 방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야 알겠군. 협박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던 거야. 편지 이야기도 거짓말이구. 제임슨 사건과 관련하여 내 입을 막고 싶었던 것뿐이지." "그렇소. 머리가 잘 도는군. 당신이 입을 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지지. 그래서 당신은 사우스베이의 싸구려 호텔에서 매춘부와 함께 죽어야 하는 거야. 틀림없이 좋지 않은 소문이 나겠지."

꽤 훌륭한 계획이었지만, 애석하게도 대사가 너무 길었다. 나는 방문을 향해 45구경 권총의 나머지 세 발을 쏘아댔다. 한 발만 반응이 있었다. 3할 3푼 3리 ---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 누군가가 15달러짜리 화환쯤은 보내 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납의 샤워가 퍼부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다. 두 개의 총성이 진 크루퍼와 버디 리치의 드럼 배틀처럼 서로 겹쳐졌고, 10초 후에 모든 일이 끝났다. 일단 유사시에는 경찰의 행동이 빠르다. 유사시가 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제 안 오는 줄 알았어" 하고 나는 외쳤다.

"물론 오지. 단지 조금 지껄이게 하고 싶었던 거야. 자네는 정말 훌륭하게 해냈네." 하고 오보니언 경위는 말했다.

"상대는 누군가?"

"사우스베이의 대수롭지 않은 불량배야. 누구의 부탁을 받았는가 하는 것은, 내가 있는 힘껏 자백시켜 보겠네. 로스엔젤레스의 변호사도 붙잡을 거고. 기대해도 좋네." "꽤 열심이군 그래."

"사우스베이도 이제 산뜻해질 때가 되었으니까. 자네가 어떻게 증언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의자마저 흔들릴 거네. 자네 취향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세상에는 매수당하지 않는 경찰도 있지." "그런가?" 하고 나는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의 사건이 함정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네. 자네는?"

"나는 의뢰인을 의심하지 않네. 그 점이 경찰과 다른 점이지."

그는 히죽 웃으며 방을 나갔다. 경찰의 웃는 모습은 언제나 똑같다.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사람만이 그런 식으로 웃는다. 그가 나간 뒤에는 나와 여자와 수백 발의 납으로 된 총알만이 남겨졌다.

사우스베이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거기에서는 사체보다는 손수레가 더 정중히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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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7 0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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