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는 자신의 단편 소설 '이사'에서 중산층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낯섦에 대한 공포를 이야기 한다. 

얼마전 이사를 하려고 했다. 광화문에 있는 오피스텔로. 전세를 알아보면서 신경쓸게 많다는 걸 알았다. 익숙지 못한 것으로 고민하며 일상을 영위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아포리즘을 이해했다.  

1억5천이 넘는 액수가 거론되며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금액의 크기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방문하는 부동산 거래소의 갯수가 늘어나면서 이사에 대한 회의도 같이 커져갔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사를 해야하냐는 소시민적 회귀본능이 마음에 자리했다. 이사는 쉽지 않았다.  

결국 자금조달 문제로 이사는 올해 끝머리에 하기로 했다.  

#다음주엔 대만 출장과, 모회사 대표 인터뷰와, 이제는 조금 널럴해진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일상의 무료함이 두터워질수록 책과 명상보단 절실한 만남이 간절해지는 듯하다. 너무 가벼워보였던 시절. 신중했던 하나하나의 마음새가 이제는 아쉬움으로 자리한다.  

트위터를 열심히하는 트위터리안에겐 팔로어가 수백명이 넘쳐나는 시절. 이곳에서 만났던 상큼했던 인연들이 단문의 트윗보다 내겐 더 알맞은 이들이었다 본다.  

가을만되면 계절처럼 마음이 스산해지기에 내 심장 눅이고자 사소한 글을 그린다. 노스탤지어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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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27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7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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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시대를 겪고 나면 사람들은 각성하기 마련이다. 각성의 모양새는 이 세상에 뛰고 있는 심장의 개수만큼 다양하다.

각성 후 자신에 대한 반성을 통해 조금 더 푼푼하면서 겸손한 삶을 살려는 이가 있을 테다. 비루한 삶을 돌파하기 위해 제 성장 동기를 강화하여 나르시시즘에 탐닉하는 이도 있을 테다. 잔약한 신경을 가진 예술가들이 전자에 해당할 것이고 히틀러나 무솔리니 같은 이들이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파시즘은 결국 후자에 해당하는 이에게 동조하는 무리가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차 대전의 잔혹함은 2차 대전만큼 역겹지 않았고 반성을 하기엔 울분도 지나치게 많았다. 아울러 이전 전쟁이 덜 잔인했기에 이후 전쟁은 더욱 잔혹해졌다. 

2차 대전이후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돌아봐야만 했다. 아우슈비츠라는 극단의 역겨움을 겪고 나서도 제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건 삶을 ‘영위’가 아닌 ‘견딤’의 형태로 가져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1차 대전의 결과 각개약진이라는 삶의 모토가 강화되었고 결국 차별과 반목을 낳아 더 큰 황폐화를 낳았다. 2차 대전의 결과 세계는 아우름이란 가치에 집중하고 현재의 삶이 다소 풍성해졌으니 지옥이 낳은 아이러니다.

2차 대전의 역설은 그 후의 세상사를 돌아봐도 알 수 있다.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쓸 수 없다고 했으나 다양한 문사들에 의해 더 섬세해진 언어와 감각이 결합된 글이 태어나며 세상을 풍요롭게 했다. 영화는 영상이란 매체로 삶의 어두움과 밝음을 일상처럼 잘 담아냈고 음악은 제3세계 음악의 약진으로 다채로운 형태를 보이며 아름다운 앙상블을 보여줬다.

지나친 혁신으로 제 지위를 위태롭게 한 분야도 있다. 클래식은 ‘존케이지’ 나 ‘쇤베르크’ 등이 혁신을 시도했으나 그저 제 잘남을 드러내기 위한 과한 레토릭으로 점철되어 대중과 멀어졌다. 미술은 원근법이나 고유의 색채를 무시하는 등 점점 작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름의 복잡계를 이뤄가며 사회와 멀어져갔다. 결국 2차 대전 이후 무거움은 가벼움으로 진중함은 발랄함으로 전이되어 개인은 이전시대보다 덜 잔혹하고 풍요로운 현실을 누리며 대중문화를 향유하게 된다.

전쟁의 상처가 다소간 아물었을 70,80년대엔 다국적 기업이 강세를 띄며 개인 간의 경쟁은 격화됐고 삶의 여유는 차츰 무뎌져 갔다. 88만원 세대라는 담론이 유행하는 현 시대에 벨에포크(La belle époque)는 이제 와 닿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다. 하지만 기존의 벨에포크와는 다른 사회적 담론이 너울대며 세상은 그 이전보다 분명히 살만한 것이 되었다.

서경식은 글을 통해 충분히 아프고 고민한 이가 던져줄 수 있는 문장을 드러낸다. 육체가 욱신거리는 듯한 자지레한 고민의 선홍빛은 빛 뒤에 항상 그림자가 자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뿐만 아니라 담담하게 진술하는 시대의 잔혹함이 그림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추상화를 그려낸다. 고흐를 알기 위해, 오토 딕스를 이해하기 위해 그만큼 던적스러움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글로 들려준다. 그러기 위해 이전 시대를 자꾸 일깨우며 적당한 풍요와 지나친 긴장에 휩싸인 이들의 영혼을 꾸짖는다.

책을 읽으며 충족된 자신의 지적허영을 만족스러워하고 잗다란 고통을 느꼈다 기뻐하며 제 마음 씀씀이에 감탄하는 이는 얼마나 비루한가. 펠릭스 누스바움의 그림이 그려진 겉면표지마냥 책을 통해 삶을 읽어내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초라한가.

다들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을 살자고 애쓰는 시기에 현재의 고뇌는 얇지만 나름의 색깔과 두터움을 보여준다. 다만 책 한권으로 그 모든 투터움을 아우르기엔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서경식의 책을 읽고 허무함을 느꼈다면 그건 삶의 바닥을 추체험 했기에 가능한 일일 테다. 이러한 삶의 허무를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종교가 난립하고 또 사라졌지만 허무는 이겨내기 보다는 그저 덤덤히 받아들이는 거다. 그 허무를 받아들여야지만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 다만 삶의 고통을 먹고 자라는 예술가들에게 그러한 허무는 독(毒)일 테다. 달콤한 독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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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개가 아닌 이상 제 목줄을 죄고 있는 이에게 경외(敬畏) 이외의 친근감을 느끼긴 힘들다. 아울러 밥벌이와 관련된 허접한 부딪힘 속에서 제 밥줄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웃음의 강도와 말의 도타움이 달라진다. 그런 것이 싫다며 손사래 치고선 제 깜냥대로 살다가는 그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못난 사람으로 남기 마련이다. 제 자신은 고고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실 고고함을 위해서 백조의 자맥질처럼 치열한 근천스러움이 기저에 깔려 있어야 한다.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다가 문득 든 생각이다. 외로웠던 독신남의 울림이 마음을 가라앉혔나 보다. 무언가 적잖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오후에 브람스는 독(毒)이다. 묵직한 보랏빛이다. 고요한 짓누름이다. 왠지 무거운 구름이 하늘을 맴도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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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독(毒)."보랏빛 무엇", 짓누름, 무거운 구름이군요.

알듯 말듯. 저는 브람스 1번을 들으면 날카로운 사선들이 휘휘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바밤바 2010-07-29 15:10   좋아요 0 | URL
저는 브람스에게서 두터운 선이 느껴집니다. 붓으로 칠한 두터움.. ㅎ
잘지내시죠?^^
 

 

서경식의 고뇌의 원근법을 읽고 있다. 이런 책을 무던히 읽을 수 있는 내 자신의 교양수준을 보며 감탄한다. 기실 이러한 감탄은 자기만족에 불과하지만 이런 소소한 만족이 무던한 삶을 운치있게 만들어 준다.

신입사원이라서 휴가를 3일 가게 됐다. 타인들은 6일이나 5일 이지만 난 3일이다. 그 3일동안 무얼 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날짜를 내 마음대로 택할 수 없음을 알고 짧은 행복마저 사치라 여기며 고개를 떨군다. 연인이 없으니 휴가가 로맨틱할리 없고 친구가 적잖이 떨어져 나갔으니 풍성할 리도 없다. 또 책읽고 음악듣고 영화보며 소일하자니 언제까지 그따위로 살거냐는 마음속의 외침이 울린다. 아직 한달이 넘게 남았으니 그저 두고볼 일이다.

요즘 내게 부쩍 잘해주는 직속 선배를 보며 그의 살가움이 고맙고 정겹지만 한편으론 불안하다. 나의 모자람이 언젠가 그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을까하는 부족한 자존감 탓일 테다. 그래도 여유 속에 믿음이 싹트고 스스로를 아낄 수 있는 힘이 자라나는 법이니 그 도타운 정 또한 내 것이라 여기며 다스워지련다. 오늘 서울의 바람은 따뜻했지만 거세기도 했다. 간만에 학교 뒷동산을 달려야겠다. 숨이 턱밑까지 차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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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7-26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뵈요. 바밤바님. 저같은 아줌마는 어떻게 하면 혼자 있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고 휴가도 혼자만 보낼 수 있으면 진짜 휴가라고 좋아하는데..바밤바님은 저와는 정반대시네요.

바밤바 2010-07-27 16:47   좋아요 0 | URL
다들 자신이 가진 걸 평가절하하고 타인이 가진 걸 평가절상하곤 하죠.
덥네요. 마음의 휴가가 필요할 듯~ 씽씽!!ㅎ

무해한모리군 2010-07-27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까운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궈요.
아 서경식.. 저도 이번 휴가에 특별한 일정이 없어서 고향집에서 조카랑 엄마랑 보낼까해요.

바밤바 2010-07-27 16:48   좋아요 0 | URL
오.. 멋지다.
엄마랑 조카랑 계곡 살자~~ㅎ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잔실수가 많았던 근자였다. 나를 돌봄이 여의치 않으니 이래저래 핍진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요즘 살만하다 싶으니 지극히 삶의 본질과 연관된 질문이 마음을 할퀴고 계속 부스럼을 낸다. 지친 마음을 달래러 간만에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모차르트가 작곡한 27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24번과 함께 단조곡이다.

장조는 밝고 단조는 우울하다 하나 기실 아름다움에 있어선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매우 아름다운 모차르트 교향곡 40번도 G단조의 조성을 띄고 있다. 기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40번 교향곡은 서두의 모티브가 인상적이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그 모티브는 모차르트가 왜 가장 위대하지는 않아도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인지 말해준다.

주피터라고도 불리는 41번 교향곡을 위대하다고 꼽는 사람이 많으나 풍부한 관현악 외에 41번에서 딱히 떠오르는 멜로디가 없다. 모차르트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연구하여 정점에 이른 대위법 실력을 41번에서 뽐냈다고 하나 말 그대로 울림이 좋은 것이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다시 귓가에 울리는 음악에 집중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굴다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의 협연으로 듣는다. 몇 년 전 타계한 굴다를 일컬어 매우 순수한 영혼을 가진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 그가 들려주는 음악만으로는 그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곡을 상당히 화사하게 연주하고 있다. 풍성한 느낌이다. 모차르트 시대엔 지금처럼 교향악단이 대규모가 아니었을 테니 피아노 연주 부분만이 오롯이 모차르트의 느낌을 담아낸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굴다는 20번을 작곡할 당시 모차르트에게서 밝음을 느꼈나 보다. 교향악단의 반주도 좋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선 괴짜로 그려진 모차르트지만 기실 평범한 사람이었고 음악에 있어서만 말 그대로 천재였을 테다. 그의 삶을 추적한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꽤나 보아온 바 생활인 모차르트와 음악인 모차르트는 거의 분리된 다른 자아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포개짐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음악인 모차르트는 신격화해도 좋을만큼 비범하고 생활인 모차르트는 눈에 띄지 않을만큼 범상하다. 지금 이 곡을 들으면서도 다시금 느낀다.

간만에 모차르트를 듣는 건 오늘 회사 선배와의 대화 때문이다. 선배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30번이 나오는 영화 제목이 생각 안 난다며 스스로를 채근하였고 나는 혹 엘비라 마디간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어린 니가 그 영화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나는 고등학생 시절 그 영화를 봤다고 답했다. 가난한 삶은 아름답지만 행복하기 어렵다는 인생의 씁쓸함을 가르쳐 준 영화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 곡은 30번이 아니라 21번이고 모차르트의 피협은 27개 밖에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21번이 듣고 싶었고 굴다의 앨범에 커플링된 20번을 듣고 차후 울릴 21번을 기다리고 있다.

아르농쿠르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41번 연주더 불현듯 듣고 싶다. 자취방에는 칼뵘의 연주밖에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없음이 사뭇 안타깝다. 오늘 밤하늘엔 모차르트가 들려주는 추억하나와 몇 곡의 음악이 가득하다. 창밖에 비가 오기에 꽤나 운치 있고 적적한 것이 조금은 나른하다. 굴드는 모차르트가 너무 오래 살았다 타박했다는데 나는 그의 6분지 5만큼의 삶을 살아왔는데 이리도 남긴 것이 없다. 시저도 알랙산더 대왕의 동상 앞에서 제 자신의 느린 성취와 미욱함을 탓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도 어떤 조급함을 느꼈을라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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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7-1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아니면 어제는 뭔가 간결하면서도 그 자체로 순수한 어떤 삶을 바라보셨나 봅니다. 하늘이, 하늘에서 내려주는 물이 그런 느낌에 도움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바밤바님 :D

바밤바 2010-07-17 11:58   좋아요 0 | URL
바람결님. 빗방울이 참 우직하네요. 하늘만 곱다시 바라보다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찬 제헌절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