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이 1,800만을 찍을 기세다. 진중권은 명량을 '졸작'으로 규정하고, 씨네21 평론가들도 별 3개에 약간 못미치는 별점을 줄 정도로 작품성은 떨어진다. 나 또한 명량이 별로였다.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아쉬움들을 하나하나 복기해본다. 


우선 명량의 이순신은 '고집쟁이 늙은이'로 묘사된다. 다들 말리는 전쟁을 하자며 집을 불태우고 배수진을 친다.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나쁜 장수라 해도 무방하다. 합심해서 전쟁을 수행해도 이길까 말까 한데, 내분과 불화에 시달리는 군대가 왜놈에 대한 증오심 하나로 이긴 것처럼 묘사된다. 한마디로 명량의 이순신은 매력적이지 않다. 


전쟁신도 이해가 안간다. 당시 일본은 200년 전국시대를 종결 짓고 조선으로 출병했다. 상시 칼질만 하고 어떻게 하면 상대를 먼저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이들이 대다수다. 백병전에서의 위력은 문치가 200년 이어진 조선과 비교가 안된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백병전은 막상막하다. 느린 움직임으로 전개되는 백병전 풍경은 피터 브뤼겔의 풍속화처럼 설핏 해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중간에 나오는 화약선 또한 전술적 가치가 의문이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화약선은 이 전투에 쓰려고 미리 준비해둔 것이다. 조선인 포로를 배에 묶어두고 노를 저어가게 하는 것 만으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약선이 대장선에 부딪히지 않으면 이용가치가 없다. 이순신이 닻을 내리고 대장선 한척으로 일본국을 상대할 것이란 예측하에서만 가능한 전략이다. 진구와 이정현의 애틋함을 자아내기 위한 극적 요소로 억지로 끼워넣은 것으로 보인다. 

화약선이 실패한 후 일본군이 전군 돌격 태세에 들어가는 장면도 의문이다. 화약선이 비록 대장선을 폭파시키지 못하더라도 조선수군의 전열을 흐트러놓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화약선의 돌진과 동시에 일본군의 돌격이 이뤄져야 전술적으로 옳다. 일본 수군의 전략 수준이 떨어진다기 보다는, 한 전투를 말끔히 치러내기 위한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나룻배 몇적이 회오리에 휩쓸려 가는 대장선을 구하는 장면, 이순신이 아들과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울돌목에서의 전투에서 요행을 바란것처럼 묘사되는 장면도 거슬린다. 나룻배 장면은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하다는 점에서, 아들과의 대화 장면은 전략적 천재라는 이순신의 매력을 반감시킨다는 점에서 아쉽다. 허지웅이 전투장면 편집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장면이 몇몇 있었다고 밝혔는데 그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인물들에 대해 기대감만 잔뜩 심어넣고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도 지적하고 싶다. 류승룡의 첫 등장장면은 이순신과의 대결에서 기대를 갖게 만든다. 실제 영화 최고의 악당이 어떻게 등장하느냐는 후에 그가 내뱉는 몇백마디 대사보다 더욱 함축적이다. 실제 류승룡은 칼로 살해당하기 직전의 조선 포로를 자신의 부하를 통해 사격후 등장한다. 신무기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소장파와 같은 느낌을 준다. 사카모토 료마가 자신의 무기를 칼에서 총으로, 다시 국제법책으로 바꾼 것과 같이 시대의 조류를 잘 읽는 그런 무장 말이다. 하지만 이후 류승룡은 대장선 하나를 격파하지 못하고 전장에서 난전 중에 죽은 무능한 장수로 생을 맺는다. 첫 장면 이후 보여준 전략이 거의 전무하다. 무언가 보여줄 듯 했지만 무엇도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 전쟁사에 정통한 모 선배는 조선과 일본 수군의 차이는 일본 육군과 조선 육군의 차이만큼 뚜렸했다고 전한다. 신기전 등의 화포를 잘 활용하고 남해안의 바닷물에 익숙한 조선 수군이 충분히 유리한 싸움이었다는 것이다(일본이 당시 신립장군을 패퇴시킨 탄금대 전투를 보면 조총과 다양한 전술로 무장한 일본군을 조선육군이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실제 신립 장군은 기마전에 특화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다 노부나가는 나가시노 전투에서 '풍림화산'으로 유명한 다케다의 기병을 조총으로 몰살 시킨 경험이 있을 정도로 기병을 잘 상대했다. 히데요시의 기반이 노부나가 군임을 감안하면 신립을 필두로한 조선군이 이기기 벅찬 상대였다). 반면 일본은 전국시대 기간 내해에서 백병전 위주의 물싸움에 익숙할 뿐 남해와 같은 큰 바다에서는 힘을 제대로 쓰기 힘든 상황이었다. 단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의 패배는 그가 북방 오랑캐 토벌에 특화된 맹장이라는 점과 권율에 의해 수전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 이해할 여지가 있다. 당시 조선 수군의 전술과 화력은 확실히 왜놈들보다 몇단계 위였다. 물론 이를 잘활용하여 압도적 승리를 일궈낸 이순신이 최고의 명장임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가 많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군도'를 훨씬 재미있게 보았고, 윤종빈 감독의 승승장구를 바랐다. 하지만 영화 보다는 상품을 만든다는 느낌이 강한, 김한민 감독이 차세대 흥행주자로 우뚝서는 상황은 못내 아쉽다. 그의 이전 작품 2편이 표절 논란에 휩싸인 것 또한 뒷맛을 개운치 않게 한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Winner takes it All'이고 관객의 눈이 정확하다는데. 군도의 흥행 저조와 송혜교 파문으로 두근두근 내인생 흥행마저 빨간불이 들어온.. 군도의 소드 마스터 강동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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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14-08-21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딱히 졸작이라 할 만한 건덕지는 없지만 이렇게 대흥행을 할만한 건덕지도 전혀 없는 영화인데 말이죠. 뭣보다 매력이 없는 영화란 생각이 들더군요. 서사도 단조롭고 이순신이란 캐릭터도 지루하고... 사실 최민식이 누구보다 더 잘 알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알맹이 없는 대흥행의 의미에 대해서 말이에요.

바밤바 2014-08-21 13:49   좋아요 0 | URL
제 주위엔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들이 꽤 있더라구요. 근데 저에게는 허술한 점이 너무 많이 보였어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영화를 너무 무겁게 가져가다 보니 허술한 구조가 더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군도 같은 경우는 아예 영화 '킬빌'을 보듯 현실성을 배제하고 봐서 그런지 잼있었어요.
 
[수입] 베를린 필 8개의 위대한 녹음 [8CD]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외 지휘, 무터 (Anne-Sophie Mu / DG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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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회사 선배 한명은 2012년말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이민 가겠다"고 했다. 알다시피 박근혜는 대통령이 됐고 그 선배는 이민을 가지 않았다. 원래 말이 가벼운 선배라 그러려니 했다. 


베를린 필 8개의 위대한 녹음. 그저그런 예전 녹음 몇 개 묶은 컴필레이션인가 했다. 수록 곡은 놀랍다. 쇼팽 연주를 제일 잘하다고 평가받는 친머만 연주가 가장 눈에 띈다. 브람스를 연주하기는 하나, 협주곡 1번을 친머만스럽게 연주한다면 경청할만 하다. 개인적으로 친머만의 쇼팽 발라드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은 동종 연주의 최고 명반이다. 

반주자는 사이먼 래틀. 래틀 지휘의 베를린필 연주를 한번도 들은적이 없지만, 번듯한 상임 지휘자이니 훌륭한 반주를 들려 줄 듯. 


그 다음으로 눈을 끄는 건 아바도의 말러 9번. 말러 앨범을 여러장 갖고 있는데 아바도의 말러는 1번 밖에 없다. 아직 말러를 잘 모르지만 아바도의 1번은 좋았더랬다. 말러의 1번과 9번. 미완성 10번 곡이 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9번이 마지막이니, 말러 교향곡의 시작과 끝이 1번과 9번이다. 9번 연주를 주의깊게 들은 적은 없지만 아바도 지휘라면 신경써서 들어 줄 법 하다. 말러의 시작과 끝을 아바도로 듣는다면 더욱 그럴 듯. 


다음 관심은 라파엘 쿠벨릭의 슈만. 라파엘 쿠벨릭은 드보르작 교향곡에서 최고의 역량을 보여준 것으로 안다. 실제 그의 8, 9번 교향곡 연주는 매우 좋았다. 슈만은 어떻게 지휘했을지 모르겠다. 슈만곡은 관현악 편성의 피아노 협주곡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선율이 아름답다. 다만 교향곡 형식이라 하기에는 좀 미진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니.. 교향곡 특유의 구조를 좋아하시는 분은 감안하고 들으시길. 


푸르트 뱅글러의 바그너 전주곡.. 나이드신 분들이 워낙 좋아하는 뱅글러 할아범. 살릴때는 확실히 살리고 죽일때는 또 잔잔히 죽이는, 그런 스탈의 연주라 할 수 있겠다. 히틀러 생일 때 녹음한 1943년 베토벤 5번 실황에서 확실히 느껴진다. 바이로이트 축제 실황인 베토벤 9번도 워낙 유명하니 거장은 거장이다. 독일인이 독일작곡가의 곡을 지휘하니 연주도 매우 좋을 듯. 근데 녹음 상태는 안좋을 듯 하다. 별로 안들을 듯. 


줄리니의 베토벤 9번. 베토벤 9번은 카라얀 연주를 좋아한다. 탐미적이니까. 조미료 잔뜩 넣었다 뭐다 하는 소리 있는데 나에게는 매우 아름답고 좋은 연주다. 줄리니 앨범도 몇장 갖고 있긴 한데. 크게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기대지수는 그냥 평범 정도.


칼뵘의 슈베르트, 카라얀의 리하트르 스트라우스, 안네소비무터와 카라얀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모두 갖고 있는 음반이다. 다들 좋다. 칼뵘의 슈베르트는 다만 좀 지겨운 느낌 난다. 8번말고 9번. 솔직히 9번은 '그레이트'라는 부제처럼 매우 웅장한 느낌이 나나, 슈베르트 특유의 선율이 잘 안느껴진다. 그냥 어정쩡한 베토벤 느낌 같다. 


여튼 말이 앞서는 시절이다. 말 조심하고 음악듣자. 남을 괴롭히며 꿀꿀거리는 인간들을 상대하려면 귀막고 그냥 내가 듣고 싶은거 듣는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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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모폰 2022-05-04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이민 갔어야 클린한 대한민국에 도움이 됐을텐데 말이죠
 

니가 없을 땐 모르겠는데

니가 없으니까 참 좋다


아니, 니가 있을 때도 좋은데

니가 없으니까 더 좋다


그니까 내말은

아침에 혼자 이어폰없이 출근길 나설때

멍하니 니 생각으로 참 좋다고


니랑 있을땐 니가 좋은데

니가 없을땐 니가 더 좋다고


그니까 니가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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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브루크너 : 교향곡 전집 [9CD]
브루크너 (Anton Bruckner) 작곡, 귄터 반트 (Gunter Wand) 지휘, / SONY CLASSICAL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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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이 덥고, 일많고, 관계 맺기 번잡한 날은 클래식 듣는 것도 사치다. 

특히 직장에서 갈굼 당하고, 발법이로 마음 졸이고, 내가 하지 않은 일로 욕먹을 땐. 클래식 따윈 그저 '유한계급'의 양식이다. 나같이 비루한 이에겐 조급증을 일으키는 느린 음악일 따름이다. 


브루크너다. 누구보다 느리다. 누군가는 구원의 음악이라 하지만, 제 아무리 위대한 음악도 사람을 구원하기엔 힘이 부치다. 특히 이 처럼 느린 음악이라면 '후크송'에 길들여진 이를 구원하리 만무하다. 오히려 숙면을 취하는데 도움이 됐음 됐겠다. 


그러나. 제 아무리 팍팍하다고. 제 아무리 버겁다고. 삶을 내팽개 칠 수는 없는 거다. 귄터반트의 브루크너를 다시 듣는다. 너무 집중해서 듣기보단 백그라운드뮤직(BGM) 정도로 가벼이 듣는다. 그닥 흉폭하지도 그닥 나른하지도 않는 음악이 묘한 안정을 준다. 콜라와 치킨에 쩔은 내 몸에 유기농 채소가 들어오는 느낌이다. 한때 그 맛을 알았던 터라 쉬이 받아 들인다. 좋다. 


이번주 금요일만 지나면 더위가 조금 가신다던데. 그러면 또 가을이 온다. 가을은 여름보다 덜 퍼석퍼석 할 터이니 기분 좋을 일이 많을 거라 믿는다. 

브루크너가 BGM처럼 삶을 어루만지는 저녁이, 일상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여름.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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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 Best [재발매] [2CD]
김광석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최근 엠넷에서 레전드100 이란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한달 에 한번 꼴로 방영되는 듯. 

우리나라 음악사의 '전설'로 불리울만한 인물 20명을 각 부문별(예를 들어 가창력, 퍼포먼스, 싱어송라이터 등)로 선정해 발표한다. 

임진모, 박은석 등의 기존 평론가는 물론 빛과 소금의 장기호 같은 이들도 선정단에 참여한 걸로 안다. 한대수, 송창식, 양희은, 신대철 등의 레전드 급 가수들이 실제 인터뷰에 응해, 그들의 육성으로 당시 음악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김광석은 당연히 레전드다. 가창력과 싱어송라이터 부문 20명에 손꼽혔다. 이승철과 조용필 류의 감성 충만한 고음과 달리 일상처럼 삶을 이야기하는 그의 노래는, 20명 안에 들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중학생 때였다.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이란 음악을 짬뽕 테이프에서 처음 들었다. 가수는 김광석이라 했다. 서지원과 비슷한 시기에 죽었던 이었지만 당시 나에겐 서지원의 죽음보다 덜 애잔했던 이였다. 김광석은 당시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날 내곁을 떠나갔다네'라고 읊조렸다. 자극적이지 않은 그 노래가 그냥 무덤덤하니 귀에 걸렸다. 조금은 오래된 듯한 그 음색에 귀 기울이다 '이런 가수들은 돈을 어떻게 벌지' 하는 생각으로 감상을 마무리 했더랬다. 


김광석 베스트 앨범이다. 베스트 앨범이란 소장가치가 떨어진다. 해당 가수가 직접 리마스터링을 하고 신곡 몇곡을 넣고 몇 곡의 헌정곡이 담기지 않는이상 베스트 앨범은 일종의 '추억팔이'다. 


레전드 가수인 김광석이라 하더라도 이 기획의 조악함을 극복할 방법은 없다. 특히 고인이 된 그가 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CD로 김광석을 듣는건 MP3와 다른 또다른 '추억 만들기'다. CD하나를 넣어 음악을 돌리기 까지의 그 수고로움만으로 김광석 다시 듣기를 위한 마음가짐은 충분하다. 

자본주의의 최대 관심은 죽음이라 했다. 김광석이 죽은지도 20년이 다돼 간다. 죽어서도 회자되고 죽어서도 제 노랠 들려주는 이에게, 안됐다며.. 불쌍하다 말하는 건 분에 넘치는 애도다. 그냥 그의 음악을 듣고서 내 비루한 삶에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 그런 느낌 하나 받는게 가장 김광석을 위함이다. 

나는 그래도 유재하가 제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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