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잔실수가 많았던 근자였다. 나를 돌봄이 여의치 않으니 이래저래 핍진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요즘 살만하다 싶으니 지극히 삶의 본질과 연관된 질문이 마음을 할퀴고 계속 부스럼을 낸다. 지친 마음을 달래러 간만에 음악을 듣는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모차르트가 작곡한 27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 24번과 함께 단조곡이다.
장조는 밝고 단조는 우울하다 하나 기실 아름다움에 있어선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매우 아름다운 모차르트 교향곡 40번도 G단조의 조성을 띄고 있다. 기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중 가장 유명한 40번 교향곡은 서두의 모티브가 인상적이다.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그 모티브는 모차르트가 왜 가장 위대하지는 않아도 가장 사랑받는 작곡가인지 말해준다.
주피터라고도 불리는 41번 교향곡을 위대하다고 꼽는 사람이 많으나 풍부한 관현악 외에 41번에서 딱히 떠오르는 멜로디가 없다. 모차르트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을 연구하여 정점에 이른 대위법 실력을 41번에서 뽐냈다고 하나 말 그대로 울림이 좋은 것이지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
다시 귓가에 울리는 음악에 집중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굴다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빈필의 협연으로 듣는다. 몇 년 전 타계한 굴다를 일컬어 매우 순수한 영혼을 가진 피아니스트라고 하는데 그가 들려주는 음악만으로는 그 진위를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곡을 상당히 화사하게 연주하고 있다. 풍성한 느낌이다. 모차르트 시대엔 지금처럼 교향악단이 대규모가 아니었을 테니 피아노 연주 부분만이 오롯이 모차르트의 느낌을 담아낸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보았을 때 굴다는 20번을 작곡할 당시 모차르트에게서 밝음을 느꼈나 보다. 교향악단의 반주도 좋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선 괴짜로 그려진 모차르트지만 기실 평범한 사람이었고 음악에 있어서만 말 그대로 천재였을 테다. 그의 삶을 추적한 관련 서적이나 자료를 꽤나 보아온 바 생활인 모차르트와 음악인 모차르트는 거의 분리된 다른 자아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물론 포개짐이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음악인 모차르트는 신격화해도 좋을만큼 비범하고 생활인 모차르트는 눈에 띄지 않을만큼 범상하다. 지금 이 곡을 들으면서도 다시금 느낀다.
간만에 모차르트를 듣는 건 오늘 회사 선배와의 대화 때문이다. 선배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30번이 나오는 영화 제목이 생각 안 난다며 스스로를 채근하였고 나는 혹 엘비라 마디간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어린 니가 그 영화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고 나는 고등학생 시절 그 영화를 봤다고 답했다. 가난한 삶은 아름답지만 행복하기 어렵다는 인생의 씁쓸함을 가르쳐 준 영화이기도 했다. 아울러 그 곡은 30번이 아니라 21번이고 모차르트의 피협은 27개 밖에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21번이 듣고 싶었고 굴다의 앨범에 커플링된 20번을 듣고 차후 울릴 21번을 기다리고 있다.
아르농쿠르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41번 연주더 불현듯 듣고 싶다. 자취방에는 칼뵘의 연주밖에 없기 때문에 들을 수 없음이 사뭇 안타깝다. 오늘 밤하늘엔 모차르트가 들려주는 추억하나와 몇 곡의 음악이 가득하다. 창밖에 비가 오기에 꽤나 운치 있고 적적한 것이 조금은 나른하다. 굴드는 모차르트가 너무 오래 살았다 타박했다는데 나는 그의 6분지 5만큼의 삶을 살아왔는데 이리도 남긴 것이 없다. 시저도 알랙산더 대왕의 동상 앞에서 제 자신의 느린 성취와 미욱함을 탓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도 어떤 조급함을 느꼈을라나.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