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끈이란 오묘하여 미(美)를 추구하는 이에게 회색의 서슬퍼런 얼굴울 쥐어주기도 한다.
그렇듯 세상이 다 이런저런 이름으로 치유되는 역설은 인열을 얻지 못해 망망대해를 방랑하던
어느 오후의 슬픈 자아와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혼자 듣는 라흐마니노포의 파가니니 주제
에 의한 광시곡은 그런 인연을 이어 놓을 만큼 분절적이고 또 피상적이다. 아무런 마음을 지니지
못한 무심한 어느 스님의 발자욱 만큼 무서운 복수는 없으니, 아마 세상이 지금껏 이리도 휘몰아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건 그런 복수와 치유의 자기 부정적 자유를 동반한 도피의 산물일 것이다.
그래서 가을의 열매는 푸른 산만큼 시고 또 가슴에 저리고 지리고 맴돈다.